베스트셀러였던 소설 ‘동의보감’이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허준’에서는 불치병을 앓고 있던 스승 유의태가 자신의 몸을 제자인 허준에게 연구용으로 제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십 년간 의과대학의 해부학 교수로 재직했던 노교수가 자신의 시신을 제자들의 실습용으로 기증했다는 몇 년 전의 보도처럼 유의태도 자신의 시신을 해부하도록 허준에게 맡긴 것이다.
드라마에서 스승의 몸에 어떻게 칼을 대나며 망설이는 허준에게 유의태의 친구인 삼적대사는 스승의 숭고한 뜻을 저버릴 것이냐며 재촉한다. 허준은 떨리는 손으로 스승의 시신을 해부하였고, 그 결과 인체에 대해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허준은 명의가 되었고, 역사에 길이 남을 ‘동의보감’을 저술하게 되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이어진다.
실제로 동의보감에는 ‘신형장부도’라고 하는 인체해부도가 실려
있다. 그런데 ‘신형장부도’는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인체해부도와는 많이 다르다. 여러 장기들이 이름과 함께
표시되어있지만 각각의 그림이 실제 장기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동의보감’에는 각 장기별로 독립된 그림들도 실려 있는데, 예를
들어 심장도의 그림과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심장은 피어나지 않은 연꽃같이 생겼는데... 심장 가운데는 9(혹은 7)개의 구멍이 있다... 아주 지혜로운 사람은 심장에 7개의
구멍과 3개의 털이 있고, 중간정도 지혜로운 사람은 구멍이 5개, 털이 2개 있고, 지혜가 얕은 사람은 구멍이 3개, 털이 하나있고, 보통사람은
구멍 2개에 털이 없으며, 어리석은 사람은 구멍이 하나만 있으며, 몹시 어리석은 사람은 심장에 아주 작은 구멍이 하나 있을 뿐이다...”
스승을 해부한 허준이 심장에 구멍과 털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일까? 물론 우리는 심장에 털이나 구멍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것이 해부와 관찰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사실 동의보감에 실린
이같은 그림과 설명은 허준이 직접 해부하고 관찰해서 그린 그림이 아니라 모두 중국의 책에 실린 것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또한 ‘동의보감’이나 그밖에 허준과 관련된 어떤 기록에서도 그가 인체해부를 했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설령 허준이 스승을 해부했다고 하더라도 한번의 해부 결과 인체에 대해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도 의심스러운 일이다. 해부학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 해부를 한번 해보았다고 해서 인체의 구조에 대해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을까? 처음으로 인체 내부의 여러 장기를 관찰한 사람이 과연 어떤 장기가 건강하고 어디에 병이 들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읽고나서 짐작했겠지만 앞에 나온 허준이 스승을 해부했다는 소설이나 드라마의 상황은 순전히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허구이다. 심지어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허준의 스승 유의태도 실존인물이 아니다. 허준보다 100여년
뒤에 유이태라는 경상도 출신의 실존인물이 있으며, 그는 당대의 명의로 이름을 날렸지만 허준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물론 허준의 옆에서 해부를 재촉했던 삼적대사나 드라마의 또 다른 주요 인물인 의녀 예진 역시 가공의 인물이다. 소설과 드라마가 역사책과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가공의 인물과 줄거리가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스승의 해부라는 설정은 허준이라는 실제 인물과 한의학이라는 우리의 의학전통을 크게 왜곡시킨다는 문제를 지니고 있다.
인체 해부를 통해 뛰어난 의학적 성취를 이루었다는 설정은 서양 의학의 바탕에 해부가 깔려있고, 따라서 한의학 역시 해부라는 방법을
통해 발전했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의 결과이다. 사실 서양에서는 기원전 3세기 헬레니즘시대의
알렉산드리아에서부터 인체해부가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에 이미 몇몇 의학자들은 내장기관을 포함하여 뇌와
신경계통에 이르기까지 대한 상당한 해부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고대의학을 집대성한 갈레노스도 이러한 해부학적 지식에 바탕해 인체에 관한
종합적인 이론체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해부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살리우스가 16세기에 들어와 갈레노스의 해부학적 지식이 많은 경우 인체가 아닌 개나 원숭이의 것임을 지적할 때까지 서양의 해부학은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베살리우스 이후 많은 의학자들이 수많은 시체를 해부해 가면서 해부학, 병리학, 생리학 등의 기초를 세웠고, 이를 바탕으로 질병과 특정 부위를 연결시키는 접근법이 서양 근대의학의 중요한 원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와는 달리 한의학에서는 몸 안의 기의 흐름을 중시하여 인체의 기능을 설명하기에 인체해부가 반드시 필요한 연구방법이 아니었다.
‘동의보감’에 실린 인체해부도는 몸 안에서 기의 통로가 어떻게 비롯되며, 그것이 어떻게 오장육부 등의 생리작용과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즉 각 기관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질병이 걸렸을 때 그 조직에 어떤 병변이 나타나는가를 이해하기위한 서양의 해부도와는 달리
한의학의 인체해부도는 각 기관의 존재와 위치만을 표시하고 이들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동의보감’에 실린 심장에 대한 설명은 심장이라는 장기의 실제적인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라기보다 인체 내에서 심장이라는 장기가 차지하는 기능을 중심으로 설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인용한 부분의 다음에는 심장의 구멍을 통해 외부의 기운과 통한다는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
똑같은 사람의 몸이지만 서양의학에서 바라보는 관점과 한의학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기에 인체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 역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의학이 발전하기 위해서 해부학을 필요로 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한의학 자체의 전통에 대한 무지와 서양의학의 발전과정만을 올바른 길로 여기는 서양의학 우월주의적 시각의 결과인 셈이다.
한 가지 더. ‘동의보감’에 실린 인체해부도는 중국의 의학서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동의보감의 전체적인 내용은
어떠한가? 사실 ‘동의보감’의 아주 많은 부분이 중국 의서에서 옮겨온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동의보감’은 기존 의서를 단순히 인용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조선과 중국에는 서로 모순되는 의학이론이 어지럽게 주장되고 있었고, 제대로 된 처방과 그렇지 못한 처방이 뒤섞여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허준은 의학 경전의 전통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기존의 잘못된 부분까지를 바로잡겠다는 의도 하에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의서에서 취사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동의보감’은 동아시아의 전통의학의 원리를 체계적이고 독창적으로 정리하고 있어서, 조선에서 간행된 이후 중국에서 30차례, 일본에서 2차례 정도 출간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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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qna.scienceall.com/qna/cservice/question_detail.php?queId=26321&flag=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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