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차 한잔이 생각나는 계절, 우리 꽃차를 만드는 민정진씨를 찾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의 살림살이를 들여다 보았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서후리.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는 농가 사이에서 그의 집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참을 헤매다 길을 묻기 위해 연락을 했더니 그는 대뜸 ‘전봇대에 붙은 초록 별을 따라오라’고 한다. 들은 대로 차 한 대가 겨우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니 전봇대 서너 개에 초록 별이 줄지어 붙여져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건물도, 제대로 된 이정표도 하나 없는 곳에서 집 찾기 수월하도록 만든 집주인의 배려였던 것.
1백 년 된 농가를 개조해 만든 전원 속의 집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꽃을 따 차로 만드는 꽃차 전문가 민정진씨(49)는 산과 들로 둘러싸인 양평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다. 집 밖으로 한 발짝만 나서도 도처에 널린 것이 꽃이니 집과 주인의 궁합이 제법 잘 맞는 셈이다. 이곳에 터를 잡은 지 10년이 넘었다는 그에게 시골에서의 삶이 심심하거나 불편하지는 않은가 묻자 자연 속에서 살며 얻은 것에 비하면 조금 귀찮고 번거로운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며 꽃처럼 탐스러운 함박웃음을 짓는다. 공기 맑고 물 좋은 것은 기본이고 따로 피부관리를 하지 않아도 얼굴이 고와지는 것은 물론 무엇을 먹어도 소화가 잘 된다고. “자연 속에서 살면 계절이 바뀌는 것이 눈에 보여요. 매일매일 나뭇잎 빛깔부터 달라지거든요. 게다가 봄이면 봄꽃 따러 가야죠, 여름이면 여름꽃 따야죠, 장도 담그고 간식도 만들어야 하고… 사계절을 몸으로 겪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답니다.”
01_ 마당 위에 지붕을 얹어 본래 외벽이던 곳이 내벽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래된 레코드 판을 모으는 게 취미인 민씨는 차를 만들 때면 늘 음악을 듣는다.
02_ 강원도식 전통 벽난로 코쿨을 응용해 만든 벽난로는 밤이 길고 추운 겨울에 실내를 훈훈하게 만들고 은은한 조명 역할도 한다. 부뚜막 앞에는 쿠션을 놓아두고 소파를 만들어 독특하면서도 아늑한 공간을 만들었다.
민씨가 살고 있는 집은 지은 지 1백 년 된 농가를 개조한 것. 건축가인 남편 윤태서씨가 사진 촬영을 왔다가 풍경에 반해 주인 할머니에게 들고 있던 카메라를 계약금 삼아 단박에 구입했다고 한다. 집은 겉으로 보기엔 소박한 농가 같지만 안은 리모델링 작업을 거치면서 카페 같은 독특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본래 외양간이었던 곳부터 대문까지 사각뿔 모양의 지붕을 얹고, 석회와 흙을 반죽해 안마당을 덮고, 벽에는 흙을 발라 손질해 마당을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지붕 삼면에는 창을 달아 햇살이 오랫동안 집안에 머문다. 대문을 활짝 열면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음악을 틀고 차 한잔 마시며 풍경을 바라볼 때가 그에게는 가장 호사스러운 시간이라고 한다.
옛 향기가 자연스레 묻어나는 주방
주방도 마찬가지로 지붕을 덮고 나무 바닥을 깔아 공간을 넓혔다. 일하기 편하도록 입식으로 디자인한 덕에 조리도구들은 천장에 조르르 매달려 있다. 못 없이 나무를 서로 끼워 만든 서랍장, 나뭇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원목 식탁은 비죽비죽 걸려 있는 조리기구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부엌 한 켠에 놓인 벽난로는 ‘코쿨’을 응용해 만든 것. 코쿨은 전기가 들어오기 이전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사용하던 우리나라 전통 벽난로로 생김새가 사람의 콧구멍과 비슷하다고 해 ‘코굴’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밤이 길고 추운 겨울에는 난방과 조명의 역할을 하고 여름에는 습기를 없애는 역할을 맡는다. 바짝 마른 참나무나 소나무를 때면 황토와 나무 향이 섞여 아로마향 부럽지 않은 향긋한 냄새가 난다고. 여기에 고구마나 밤을 구워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한다.
은은하고 향이 그윽한 우리 꽃차
서울에서 찻집을 운영하던 민씨는 적당한 나이가 되면 전원 생활을 하리라 꿈꿔왔던 터라 남편이 시골에서 살 것을 제안했을 때 별 고민 없이 모든 것을 툭툭 털어버리고 따라 내려올 수 있었다고 한다. 자연이 주는 여유를 만끽하며 살던 그가 꽃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3년 전, 아주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어느 날 보니 집 앞 찔레나무에 꽃이 너무도 탐스럽게 피었더란다. 향도 그윽하고 깊어 꽃을 따다가 뜨거운 물을 부어봤더니 외국산 허브 차는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맛이 좋더라고. 그렇게 관심을 갖기 시작해 꽃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욕심에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을 보아가며 공부하다 보니 지금은 1백여 종이나 되는 꽃차를 만드는 전문가가 되었다. 외국산 허브는 향이 강하지만 우리 꽃으로 만든 차는 은은하고 그윽해 많이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꽃차를 타두고 물 대신 수시로 마시고 있다고.
자연이 키운 모든 꽃은 차로 만들어 마실 수 있지만 무작정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꽃은 비타민, 단백질 등 다양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영양 덩어리예요. 반면, 독의 집합체이기도 하지요. 종자를 보호하기 위해 독을 가지고 있거든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런 독을 빼내야 하지요.” 때문에 꽃차로 태어나기 까지는 꽃을 깨끗이 씻어 찌고 말리기를 아홉 번이나 반복하는 긴 여정을 거쳐야 한다. 횟수를 더하거나 덜하면 차 맛이 크게 달라지므로 꼭 아홉 번을 지켜야 한다고. 잘 말린 꽃은 바로 우려 마실 수 있는데 그해 만든 차가 가장 맛있다. 밥도 여러 곡식을 넣어 잡곡밥으로 만들어야 건강에 좋듯, 꽃차 역시 여러 꽃을 섞어 마셔야 영양 균형이 맞고 맛도 좋다고 한다.
01_ 국화과에 속하는 뚱딴지는 해열작용이 있고 출혈을 멈추게 한다.
02_ 따뜻한 성질을 지닌 벌개미취는 기침을 멈추고 가래를 없애는 데 효과가 있다.
03_ 국화과에 속하는 엉겅퀴는 정력제로 주로 쓰인다. 신경통에도 효과가 있고 이뇨작용, 항 바이러스, 항 염증 작용을 돕는다. 산후 자궁수축에도 좋다.
04_ 호박꽃은 지방유, 단백질, 비타민 B군 등이 풍부해 폐결핵과 생리불순, 당뇨, 각막건조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 이뇨와 산후 유즙 분비도 돕는다.
05_ 동백은 어혈과 부종을 없앤다. 타박상이나 출혈을 멈추는 데도 효과적. 연고제와 화장품의 원료로도 사용된다.
06_ 오래전부터 동서양에 두루 걸쳐 중요한 약재로 쓰인 달맞이꽃은 비타민 E가 풍부해 여성의 피부미용에 좋다. 피부병이나 당뇨, 고혈압에도 효과가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제철 꽃을 따서 차를 만드는 일은 보통 손이 가는 일이 아니다. 특히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은 꽃이 가장 영양가도 높고 맛이 좋기 때문에 그는 새벽같이 집을 나선다고 한다. 하지만 과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철칙. 한 가지에 달린 꽃을 모두 따지 않고, 줄기는 건드림 없이 꽃만 따야 하며, 처음 본 꽃은 씨가 퍼지도록 따지 않는 등의 몇 가지 규칙을 정해놓고 꽃을 채취한다. 이렇게 모은 꽃은 바로 찌고 말리는 법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솔직히 예쁜 꽃을 보면 모두 따고 싶은 욕심도 생겨요. 하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꺾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에요. 자연과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하나를 가져갔으면 두 개를 돌려주어야 다음에 자연이 다시 베풀게 되거든요.”
자연에서 살면 심심할 틈이 없다
그 흔한 TV 드라마 하나 보지 않지만 꽃차를 만들고 시골 살림을 하는 그에겐 사계절이 너무도 바쁘게 돌아간다. 반듯하게 찍어내는 것이 싫어 그릇도 직접 빚어 굽고, 텃밭에 야채를 기르고, 퀼트로 옷도 만들어 입는다. 간식 외 먹을거리도 모두 직접 만든다. 음식 만드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데다 슈퍼마켓도 멀어서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데 계절 과일과 곡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건강에도 좋고 만드는 재미도 그만이라고. 간장, 된장은 물론 과실주며 장아찌, 한과, 외국으로 치자면 시럽에 해당하는 당장까지 직접 담가 먹고 있으니 심심할 틈이 없다. 그는 최근 우리 음식을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농업대학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들으며 꽃차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는 꽃만도 4천여 종이 된다니 논문을 끝냈을 때 얼마나 더 많은 차를 우리에게 선보일지 사뭇 기대가 된다.
01_ 재봉틀, 선풍기 등 손때 묻은 오래된 물건들은 그냥 놓아두는 것만으로도 운치 있는 인테리어 소품이 된다.
02_ 지붕에 창을 내 햇빛이 집안 가득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03_ 간장, 고추장, 된장 할 것 없이 그는 모든 양념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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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empas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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