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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중일 삼국의 차문화...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15. 07:39

 

 

중국 선종의 개산조인 보리달마(?~535)는 하남성 숭산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하였다.

오랫동안 앉아 있자니 피로가 쌓이고 눈꺼풀이 떨어지지 않자 눈꺼풀을 뜯어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자 눈꺼풀이 떨어진 곳에서 키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났다.

 

달마대사의 제자들이 그 나무의 잎을 뜯어 발효시켜서 물에 우려 마셨더니 선좌(禪坐)에서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선차(禪茶)의 내력이다./ 물론 꾸며낸 전설이지만 다도가 선도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29~30쪽, '다선동일미(茶禪同一味)' 몇 토막

중국 선종(禪宗)의 창시자 보리달마가 9년 동안 어두컴컴한 동굴 속의 벽만 바라보며 참선하다가 눈꺼풀이 달라붙어 눈꺼풀을 뜯어 바닥에 던지자 그 눈꺼풀이 차나무로 자라났다는 신비한 전설을 보듬고 있는 차.

차, 하면 어김없이 다선일미(茶禪一味) 혹은 다선동일미(茶禪同一味)란 낱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차의 맛과 선의 맛은 하나이기 때문에 차와 선은 어떠한 경우에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차가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해주고 차문화가 가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일러준다.

당나라 때, 하북성 조현 백림선사에 머물던 조주선사는 자신을 찾아와 수행과 깨달음의 도를 묻는 두 명의 행각승에게 '끽다거'(喫茶去, 차나 들고 가게나)란 말을 남긴다.

이에 제자가 조주선사에게 다녀간 적이 없는 자에게 '끽다거'라고 한 것은 이해가 되나 다녀간 적이 있는 자에게 '끽다거'라고 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묻는다.

이에 조주선사는 자신의 제자에게도 '끽다거' 란 말을 남긴다.

이는 차 한 잔을 마시면 이 세상의 모든 번뇌가 한꺼번에 사라지면서 선심(禪心)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자신의 수행과 깨달음의 도가 모두 차 한 잔 속에 들어 있다는 그런 뜻도 들어 있다.

"다선일미의 어원은 2001년 5월 중국 공업출판사에서 <중국차엽대사전>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다선일미란, 불교용어로 선미(禪味)와 다미(茶味)의 동일한 종류의 흥취임을 가리킨다.

본래 송대의 원오극근(圓悟克勤)이 선수행을 하던 일본인 제자에게 써 준 네 글자로 이루어진 진결로 일본의 대덕사에 보관되었으며 나중에 민간으로 널리 유행한 말이다' 라고 밝히고 있다." -'머리말' 몇 토막

한, 중, 일 학자 17명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다도 현장을 꼼꼼하게 훑어본 차 논문집 <茶禪一味, 다선일미>(불교춘추사)가 나왔다.

동아시아선학연구소와 명원문화재단이 엮은 이 책은 다선일미의 정신과 마조와 남전, 조주의 다선사상과 송대 주류를 이룬 천목다완 등을 주춧돌로 삼아 우리나라 차문화의 뿌리를 씨줄과 날줄로 촘촘하게 엮어놓고 있다.

다도와 선도, 차와 종교, 다선일미, 차에 담긴 미와 선, 선종과 중국 차문화, 강서 선종이 차문화에 끼친 영향, 다선일미와 운거산, 마조선과 다선일미, 남전과 조주의 다선일미, 송대 차문화와 천목다완의 세계, 고려도경과 고려사로 본 고려시대의 차문화, 한국 선종차의 수용과 전개, 일본에 전해진 다선일미 등이 그것.

월간 <차의 세계> 발행인 최석환은 머리말에서 "다선일미라고 말하면 일본 차계의 전유물처럼 여겨온 전통"이 있었다고 꼬집는다.

이어 우리나라에 뿌리내린 다선일미의 정신은 "송나라 때 원오극근(1063~1135) 선사로부터 나와서 조선조 시기 초의의순 선사와 추사 김정희 선생에 의해 명선(茗禪)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밝힌다.

최석환은 다선일미란 낱말이 비록 원오극근 선사가 일본인 제자에게 써 준 뒤부터 가람과 차인들 사이에 유행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다선일미의 정신은 그 뿌리부터가 다르다고 못박는다.

즉, 일본에서 말하는 다선일미의 정신과는 그 어원과 성립배경부터 다르다는 것.

최씨는 그 한 예로 원오극근 선사가 <벽암록>을 집필할 때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벽암천의 온천수를 길어와 그 온천수 물 위에 찻잎을 띄워 마셨다는 사실을 곱씹는다.

이어 그때 원오극근 선사가 "차맛의 느낌이 향상되는 만큼 불법의 이해와 지혜가 솟아난다"고 말한 것을 새롭게 되뇐다. 우리나라의 다선일미는 일본처럼 글씨 네 자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차와 선의 넓이와 깊이에 뿌리박고 있다는 것이다.

선종의 음차문화가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잡게 된 데는 양자강 문화에서 그 가닥을 찾을 수 있다. 양자강은 남종선을 일으킨 터전으로 달마대사의 현손인 마조도일 선사에 의해 비로소 다선일여의 정신세계를 이끌어내기에 이른다.

당시 신라 지식인들은 앞을 다투어 법을 구하기 위해 당으로 떠났다.

<경덕전등록>에는 신라로 돌아온 선사가 21명, 당에 머무른 선사가 5명으로 나타나 있다.

당에 머무른 선사 중 무상 선사는 정중종(淨衆宗)을 세워 산문의 일파를 이루었는데, 무상 문하에 마조 선사가 나와 중국 천하를 휩쓸어 버린다.

<마조록>에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육조 혜능선사가 남악회양 스님에게 "그대의 발 아래 망아지 한 마리가 나와 세상 사람을 밟아 버리리라" 하셨다. 그 망아지가 바로 마조도일이다.

-112쪽, '중국 선차가 해동으로 온 까닭' 몇 토막

최석환은 '선종 차문화의 전승과 그 의미'란 글에서 중국 선차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게 된 것은 신라시대 때며, 중국으로 불법을 구하러 건너간 스님들이 차를 가지고 왔다고 말한다.

이어 무상 선사의 제자 마조선사가 중국의 남종선을 휩쓸면서 선법이 동쪽(신라)으로 간다는 설이 크게 유행했다고 덧붙인다.

▲ 중국 운거산 진여선사(眞如禪寺)의 스님들이 차밭을 가꾸는 모습
ⓒ2005 불교춘추사

 

바로 그 때문에 신라사회에 차를 즐겨 마시는 문화가 크게 퍼졌으며, 경덕왕까지 나서 충담 스님으로 하여금 차를 민중화시켰다는 것이다.

 

이어 흥덕왕은 대렴을 중국으로 보내 아예 차씨를 가져오게 만들어 지리산 자락에 심었다. 그 결과 경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차문화가 마침내 지리산 차문화로 옮겨가게 되었다.

 

게다가 "중국으로부터 달마의 정맥을 정통으로 이어온 혜철, 보조체징, 홍척, 철감, 두선 선사 등은 무주(장흥 나주 강진)를 중심으로 들어와 선종사상을 펼쳤다.

그때부터 "지리산 자락을 중심으로 남종 선맥을 형성한 진감국사 등에 의해 마조 선사의 다선일여 정신이 당시 옥천사를 중심"으로 차문화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에 들어와서도 차는 계속 음차되었다. 궁중의 제례에서 민가의 제사와 혼사에 끊이지 않고 음차되었다. 특히 조선에 들어와서는 작설차가 유행하였다.

작설차는 '산차'라 달리 부르기도 한다.

작설은 원래 당대에 촉차로서 다엽이 아직 완전히 피지 않은 차의 새순을 말한다.

그 모양이 참새의 혀와 같다 하여 '작설'이란 이름이 붙었다. 따라서 작설차는 차의 제법이 아직 발달하기 전에 널리 이용되었던 것이며, 향미도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다.

<동인시화>(東人詩話)에 보면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다.

차의 이름이 '작설'이라 하니 그 마시기를 꺼려 하더라.- 이는, 중은 불살생계(不殺生戒)를 가지고 있는 고로 그것을 희롱하여 읊은 노래다.

조선의 차인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으로는 우선 정다산이 있다.

다산은 해남 대흥사의 아암혜장(다산보다 10세 어렸다)으로부터 보은선방에서 차를 배웠다. 다산은 후에 이 다법을 명인풍(明人風)의 문인다법(文人茶法)으로 발전시켰다.

-210~211쪽, '조선의 차' 몇 토막

시인 석지현 스님은 '차와 선'이란 글에서 조선시대에 들어오게 되면서 차문화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그 첫 번째 이유로는 조선이 배불정책을 실시해 사찰에 많은 세금을 내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

두 번째는 음료수 때문이다.

수질이 나쁜 중국에서는 차문화가 크게 일어났지만 우리 나라는 물이 맑기 때문에 차 대신 물을 올렸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끽연과 음주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늘어나기 시작한 끽연과 음주는 마침내 승려들에게까지 번지게 되었다.

이는 불교의 타락뿐만 아니라 차문화의 뿌리까지 뒤흔들게 되었다. 게다가 "진묵 같은 이는 술을 곡차라고 하여 차의 대용으로 사용하기까지 했으니" 차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석지현 스님은 "요즈음에는 또다시 다풍이 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물질주의와 인스턴트 음식에 식상한 현대인들이 차를 통해서 본래 자기를 되찾아가려 하고 있"기 때문.

여기에 월빙바람까지 거세게 불고 있으니 이제 차는 "건강한 삶을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어느 날 스님이 행각승에게 여쭈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남방에서 왔습니다."

"남방에는 차가 많겠구나."

"그렇습니다."

"그러면 자네 앞에 있는 이 그릇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차입니다."

이때 설봉선사가 말하길.

"똥무더기니라."

-103~104쪽, '선다일미의 세계' 몇 토막

<다선일미>는 우리가 흔히 마시는 한 잔 차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책이다.

이 책은 중국선학연구, 월간 <다의세계>가 중국과 공동 주최한 한·중 학술회의, 남전보원학술회의 등에 발표된 내용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다선일미'의 정신을 좀더 새롭고 꼼꼼하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은 한 잔의 맑은 차를 마시는 그 순간 순간이 곧 대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며, 대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야 더 큰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끽다거."

/이종찬 기자 오마이뉴스

 

 

 

[출처;시골길(br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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