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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다구의 종류와 용도/다구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15. 09:24



1. 문헌에 나타난 다구

<우리 토기 도자기의 역사>
- 신라시대 : 충담사(忠談師)가 다구함인 앵통(櫻筒)을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찻을 꺼내 사용 하였다.
안압지 복원 공사중에 정언다(貞言茶)라는 명문(銘文)이 있는 토기잔이 나왔고,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은 우통수에서 물을 길어다가 1만의 문수보살에게 차를 공양하였다니까 표주박·물병·물통을 사용했을 것이다. 원효가 거처했던 방에는 병(甁)과 자구(瓷 )가 있었다고 하며, 진감국사는 한명(漢 茗)을 돌솥(石釜)에서 삶았다고 한다.
또 강릉의 경포대와 한송정에서는 네 화랑의 야외용 대형다구인 석지(石池)·석정(石井)·석조(石 ) 가 있었다.
이밖에 왕릉에서 출토된 금완(金 )·은완(銀 ) 따위도 찻잔 으로분류해야 옳지 않을까? (술 잔이거나 차·술 공용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고려시대 송나라 사람 서긍(徐兢)은 고려인들이 금화오잔(金花烏盞)·비색소구(翡色小 )·청자다완 (靑磁茶碗) 등의 잔과 탕호(湯壺)·화로(화爐)·솥, 그리고 잔뚜껑을 사용하더라고 <고려도경(高麗圖 經)>에 기록하였다.
그런데 홍조(紅俎) 위에 다구를 진열한 다음 붉은 색의 비단 상보를 덮었으며, 연회 시에는 뜰에서도 차를 달이고 주인이 권해야 들더라는 것이다.

 

 

 

 

다구 감상



1. 가야, 고구려, 백제의 다구


① 토기 기대 화형잔

이 꽃모양의 잔은 잔입술을 눌러 만들어 웃 사람이 마신 잔 입술자리 에 다음의 아랫사람의 입이 닿지 않도록 배려하여 만들어진 찻잔으로 짐작된다.


② 청동 초두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三神사상이 있어 이 초두의 三足도 三神사상에 서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이 삼족 초두는 산이나 야외에서 찻물을 끓 이거나 茶湯을 끓일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③ 고구려의 간이화덕


굴뚝이 달린 이동식 화덕은 산이나 들에서 차를 끓였거나 음식을 데우는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④ 은제 유개잔, 잔탁

일본의 『동대사요록(東大寺要錄)』에 백제의 귀화승인 행기(行基, 66 8∼749)가 말세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차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으 므로 백제의 승려들은 7세기 이전에 이미 차를 마셨다고 볼 수 있다. 백제는 지리나 기후로 보아 차문화도 일찍부터 발달하였으리라는 추측이 가나, 신라와의 전쟁에져서 멸망했으므로 사료가 드물어 몹시 아쉽다.


2. 신라시대의 다구


① 묘련사 석지조 (妙蓮寺 石池 )
돌 화덕과 돌 못(石池)이 동시에 있는 석지조기의 화덕은 깊이가 11cm로 얕아서 숯으로 불을 때게 되어 있다. 위쪽에 걸개발이 세 개 있어 작은 탕관도 올려 놓게 되어 있다. 돌못에는 먼 곳의 물을 길어 다가 가득 담아 놓고 찻그릇을 씻었고, 자연상태로 내버려져 있을 때 는 빗물 등이 고여 있게 되므로 돌못을 가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② 토기 언정형완
* 토기 언정영 찻그릇, 통일신라, 8세기 이전, 입지름 16.8, 높이 6.1∼6.5, 안압지 출토, 국립경주박물관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그릇 바깥에 묵으로 그린 풀꽃과 구름이 있으며 「言貞榮」이 쓰여 있는데 「貞」과「榮」사이에 작은 글씨로「茶」자가 씌여 있다. 이것은 일반 토기보다 고온에 구운 것으로 특 별한 의례때 사용되었으며, 굽이 없는 뒷바닥의 모양으로 볼 때 굽이 있는 받침이 따로 있었던 것 같다. 잔입술 바깥에 오목선이 둘러져 있고 전체적으로 흰 회색을 띠고 있으며 매우 정선된 태토를 사용하였다.

③ 석굴암의 문수 보살상
경주 석굴암의 보존불을 향하여 우측벽의 두 번째 상은 문수보살로 서 오른손에 찻잔을 드고 있다. 이 잔은 바라진 듯한 반원형의 잔몸 에 굽이 뚜렷하다. 『삼국유사』에 보천과 효명 두 태자가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서 매일 새벽에 차를 달여 문수보살에게 바쳤다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의 신라인들은 지혜의 표상인 문수보살이 차를 좋아한 다고 여겼던 것 같다. ④ 토기 돗자리문사발 신라문화의 전성기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이 사발은 식사用외에 茶을 위시한 여러 가지 음료를 마시는데 사용된 것 으로 짐작된다.

④ 토기 돗자리 문사발

신라문화의 전성기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이 사발은 식사용외에 茶를 위시한 여러가지 음를 를 마시는데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3. 고려시대의 다구


① 청자 운학문 통잔
고려 말기의 통잔으로 표면이 거친편이나 학이 이상히 돋보이는 잔이다.


 

② 청자 흑백 상감운학 통잔

고려시대의 의식용 탁잔으로 그 선이 유연하고, 잔의 입술이 꽃잎형으로서 잔의 우아함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③ 청동다구류
회암사의 오맥나한께 올리는 고려시대의 청다다로 로 잔의 밑에 -회암오맥성전, 다기양오십- 이라 씌여진다. 윗지름이 20.51cm인 상당히 큰 동양의 찻그릇이다.


④ 청자철사불노초문차병
고려시대인들은 부귀장수를 염원하여 창자 도자기에 불로초를 새겼다. 손잡이와 수구를 보호하기 위하여 물통을 높게 고안해서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⑤ 석제 차맷돌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고려의 차맷돌은 중국이나 일본의 뒷면이 납작한 원통형과는 달리 동그스름한 외(瓜)모양이다.




⑥ 은, 동제 찻숟가락

청동과 은으로 만든 말차뜨는 찻숟가락이다. 손잡이 뒤쪽에 고리가 달려 있어 차유(茶乳)를 휘저음으로써 차거품(乳花)이 일어나게 만든 것이 오늘날의 거품기와 비슷하다.





4. 조선시대의 다구


① 분청인화문완
구연부 외반에 백상감 인화가 조화를 이루어 그릇의 분위기를아름 답게 꾸며준다. 내부 저부에는 국화문이 모여서 한 송이의 국화꽃으로 피어나게 하여 아름다움을 더하여 준다.


② 분청귀얄문완

그릇 외부의 경치(유약이 시유되지 않은 부분)가 특색있게 나타나 있고 내부의 귀얄은 독수리의 날개짓 같이 매우 활달하게 보이며 그릇 바닥에 6개의 굽받침이 자연스러운 문양처럼 보인다. 남성의 혼이 보이는 수작이다.


③ 분청덤벙문완

무작위로 백토를 분장시켰지마는 잘 조화 연결되어 그릇의 외면을 분리하여 준다. 질서감과 아름다움을 주며 말차 한잔으로 색감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조선초기의 다완이다.


④ 백자 던덩이 사발
균열과 빙열이 불규칙속에 규칙적인 미를 보이고 저부의 더덩이는 애써 촌티를 더욱 부채질하여 주고 내부의 井은 거울 같이 보이는 우리 사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⑤ 백자양이 소문(素紋)잔 · 잔탁
하얀 소복한 여인의 날개를 보는듯한 손잡이의 아름다움과 가냘프다 싶을 정도의 형태감이 그릇의 미를 더욱 크게 늘려주고 안 전감을 주는 받침이 포근하게 잔을 감싸주는 수작이다.


⑥ 청화백자 매화·조(鳥)
경기도 광주 분원작품으로 백자에서 옥색빛을 발하고 일필휘지의 조화가 매우 윤택한 분위기를 일깨워 주고, 굽은 안정감을 주도록 청화원권문을 두른 수작이다.


⑦ 동제 국자 은제 숟가락
가냘픈 손잡이에 끝부분을 접어 마감하고 여자의 유방처럼 아름다움으로 국자 부분을 만들어 실용적이며 미적감을 준다. 은제 차 숟가락 역시 손잡이 끝을 접었고 숟가락의 형태를 타원형 잎사귀 모양을 하여 보기가 지루하지 않고 실용성도 가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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