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는 京城이라고 불렀다.소중한 자료입니다."
일본 정부로부터 거액의 융자를 받아서 한국의 토지를 손에 넣었다. 한국 최대의 지주가 되었다. 수탈 방법도 악랄하였으므로, 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小門)이 설치되었는데, 1483년(성종 4)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한말까지 보존되어 오다가 1928년 문루가 퇴락하였으므로 이를 헐어버리고 홍예(虹霓)만 남겨 두었는데, 일제는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의 전차길을 내면서 이마저 헐어버려 그 형태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 문은 양주·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1918년경에 명월관이 소실된뒤 순화관(현 종로구 인사동 194)에 명월관 분점격인 태화관(太華館)을 차렸다가 뒤에 태화관(泰和館)으로 개명했다. 축하연을 베푼 곳으로 유명하다. 명월관을 경영하던 안순환이 경영했기 때문에 명월관에 모였던 명기들이 그대로 모여 전처럼 번창했다. 우미관양악대와 단성사양악대를 꾸며 태화관에 등장하기도 했다. |
<출처;eroom.korea.com/bs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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