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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국보 86호 경천사십층석탑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21. 14:19
86 경천사십층석탑 국보 86호 서울 종로구 고려 충목왕
 
경천사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던 절로, 고려시대 전기에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경천사터에 세워져 있었던 이 탑은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무단 반출되었던 것을 되돌려 받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3단으로 된 기단(基壇)은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층의 높은 탑신(塔身) 역시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이었다가, 4층에 이르러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기단과 탑신에는 화려한 조각이 가득 차 있는데, 부처, 보살, 풀꽃무늬 등이 뛰어난 조각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4층부터는 각 몸돌마다 난간을 둘렀으며, 지붕돌은 옆에서 보아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형태에 기왓골을 표현해 놓는 등 목조건축을 연상케 하는 풍부한 조각들을 섬세하게 새겨 놓았다. 또한 탑의 1층 몸돌에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 많이 출현했던 고려시대탑으로서도 특수한 형태를 자랑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특이하다. 전체적인 균형과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태로 눈길을 끌며, 지붕돌의 처마가 목조건축의 구조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당시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러한 양식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 제2호)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일본으로 반출되면서 훼손되었던 원래의 탑 형태는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복원작업을 하고 있으며, 완성된 후 앞으로 건립될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할 계획이다.


 

 

 관련 자료

[불탑순례]  경천사 10층석탑          <www.mandala.pe.kr>
 
경천사 10층석탑
높이 13.5m                                      고려(高麗) 충목왕(忠穆王) 4년 (1348)
서울 경복궁                                     국보 86호
원위치 :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중연리 경천사지
 경천사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던 절로, 고려시대 전기에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경천사터에 세워져 있었던 이 탑은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무단 반출되었던 것을 되돌려 받아 1960년에 이곳 경복궁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
3단으로 된 기단(基壇)은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층의 높은 탑신(塔身) 역시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이었다가, 4층에 이르러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기단과 탑신에는 화려한 조각이 가득 차 있는데, 부처, 보살, 풀꽃무늬 등이 뛰어난 조각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4층부터는 각 몸돌마다 난간을 둘렀으며, 지붕돌은 옆에서 보아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형태에 기왓골을 표현해 놓는 등 목조건축을 연상케 하는 풍부한 조각들을 섬세하게 새겨 놓았다.또한 탑의 1층 몸돌에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 많이 출현했던 고려시대 탑으로서도 특수한 형태를 자랑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특이하다.
전체적인 균형과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태로 눈길을 끌며, 지붕돌의 처마가 목조건축의 구조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당시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러한 양식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 제2호)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일본으로 반출되면서 훼손되었던 원래의 탑 형태는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복원작업을 하고 있으며, 완성된 후 앞으로 건립될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할 계획이다.
이 탑은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중련리 부소산(扶蘇山) 경천사터(敬天寺址)에 있던 것으로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일본인들이 반출한 것을 되돌려 받아 1960년 경복궁(景福宮)에 옮겨 세운 것이다.
고려(高麗) 충목왕(忠穆王) 4년 (1348)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탑골공원에 있는 원각사지십층석탑은 이 탑을 본따 만든 것이다.
높이가 13m 에 달하는 대리석 10층 석탑으로 네 면이 튀어나온 사면(四面) 두출성형(斗出星形)의 3층 기단 위에 같은 평면을 한 탑신을 3층 올린 뒤 정사각형의 탑신 7층을 쌓았다. 기단(基壇)과 탑신(塔身)에는 불(佛) 보살(菩薩) 초화문(草花紋) 등을 양각했으며, 탑의 지붕인 옥개석(屋蓋石)의 처마 구조는 목조 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당시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다.
 
<불교미술이야기>http://cafe.daum.net/mahndara
경천사 10층 석탑 뜯어봤더니…1960년 복원 때 조각면 뒤바뀌어이달에 다시 복원 작업…10월 용산 박물관으로
국보 제86호 경천사 10층 석탑이 보수작업을 위해 해체된 지 10년만에 다시 조립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김용한 보존과학실장은 1일 "이달부터 가조립 등 복원 작업을 벌여 오는 10월 용산 새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기간의 보수작업을 통해 석탑이 훼손되기 전의 모습과 조성과정 등을 말해주는 새로운 사실들이 상당수 밝혀졌다. 보기드문 10층 대리석탑으로 학계에서 흔히 "이형탑"(異形塔)으로 불리는 경천사 석탑의 비밀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비운의 탑"에서 새 중앙박물관의 "스타"로=고려 충목왕 때인 1348년 오늘날 북한 지역인 경기도 개풍군에 건립된 경천사 석탑은 20세기 들어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실제로 지난 100년간 경천사 석탑이 제대로 모양을 갖추고 있었던 시기는 40여년에 불과하다.

일제 통감부 시절인 1907년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야키(田中光顯)는 석탑을 무단 해체해 도쿄의 자기 집으로 옮기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시 국내 언론은 물론 미국 언론까지 들고 나서 문제를 제기했지만 정작 국내로 다시 반환된 것은 1918년께였다.

국내로 돌아온 뒤에도 40여년간을 경복궁 회랑에 해체된 채로 보관되다 60년 비로소 복원돼 경복궁 내에 전시됐다. 그러나 이후 시멘트로 복원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산성비와 새똥에 오염돼 95년에 다시 해체됐다.

김 실장은 "당시 곳곳이 깨지고 마모된 석탑은 마치 응급실에 온 중환자를 연상케 했다"며 "10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새 박물관의 "특별석"으로 모신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원형(原形)을 찾아라=경천사 석탑은 세월이 흐르면서 원형이 상당부분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최상륜부에 올려진 보탑형(寶塔形.모임지붕형) 부재는 원형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정교하게 제작된 석탑의 다른 부분과 어울리지 않게 이 부재는 표현방식이나 주물상태가 매우 조악하다. 또 한자와 한글이 섞인 낙서가 곳곳에 보이는 것으로 미뤄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신은정 연구원은 "경천사 석탑을 원형으로 삼은 원각사 석탑처럼 당초 상륜부는 "십(十)자 지붕"형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60년 복원 과정에서 2, 3층 탑신의 조각면들의 위치가 3~4개씩 뒤바뀌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결정적인 단서는 석탑 조성 당시 각 석재의 아래위에 새겨놓은 방위표시였다.

김사덕 석조보존팀장은 "당시 훼손된 석재가 워낙 많아 우선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조립하다 보니 원상태와 달라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특한 사면돌출형(亞자형) 구조로 만든 탑신의 조성방식도 밝혀졌다. 층당 8개의 석재를 조립해 모두 20면의 외부면을 만들어냈으며 석재 사이는 나비 모양의 고리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문화재연구소는 향후 해체보수과정에서 얻은 실측자료와 탁본 등을 토대로 종합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출처:-중앙일보>대전=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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