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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탑과 부도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21. 14:31
 

    절 하면 생각나는 것이 탑이다. 대웅전 앞에 하나, 혹은 두개의 탑이 서 있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탑이 많다. (우리 나라의 국보,보물의 25%를 차지)탑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본다면 감상하는데 좀더 도움이 될 것이다.


    가. 탑이란?
    인도의 왕자로 태어나서 부처가 된 석가모니가 열반하신 후 인도의 풍속대로 화장을 하고 사리가 남게 되었다. 그 사리를 모신 구조물이 탑의 시원이다. 초기에는 진흙을 구워만든 벽돌을 이용, 큰 무덤과 같은 탑을 만들었으나 중국을 거쳐 오며 집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 초기에는 집을 쌓은 듯한 목탑 형식의 탑이 많았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우리 나라에서 많이 나는 화강암을 이용한 탑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중국은 벽돌을 이용한 전탑이, 일본은 목탑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중국을 전탑의 나라, 일본을 목탑의 나라 그리고 우리나라를 석탑의 나라라고 한다.

                       

    나. 우리 나라 탑의 변천
    초기 가람배치에서는 탑이 절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유일하게 남아있는 속리산 법주사 목탑, 팔상전에서 볼 수 있듯이 삼국 초기 목탑은 석가모니를 모셔두고 불공도 드릴 수 있는 장소였다. 지금은 탑이 서있던 자리의 초석만 남아 있지만 황룡사지 9층 목탑은 신라시대에 만든 탑으로  높이가 무려 225자(74.22미터)로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1238년 몽고 침입으로 소실되고 말았다. 그 후 목탑의 탑이 자연스럽게 재료가 돌로 바뀐다. 이를 잘 설명하고 있는 최고(最古)의  탑이 익산의 미륵사지석탑이다. 그리고 목탑형식을 더 발전시킨 듯 보이는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함께 두 탑은 백제시대의 최고의 탑으로 남아있다. 신라 탑의 형식도 목조형식을 따랐지만 전탑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신라탑으로 가장 오래된 경주 황룡사지 옆에 있는 분황사 모전석탑은 흑갈색의 안산암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전탑을 모방한' 석탑이다. 이렇게 백제와 신라의 독특한 탑 형식은 통일신라시대에 와서 융화되어 우리나라 탑의 전형을 탄생시킨다.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경주 박물관 내로 옮겨놓은 '고선 사지 삼층석탑'이다. 석가탑과 다보탑은 우리 나라 탑의 정점을 이루지만 이후 쇠퇴를 의미하기도 하다. 고려시대에는 다시 각 지역의 전통을 살린 탑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몽고침입으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고 탑 형식에 있어서도 전통을 잃고 원나라의 영향을 바탕으로 라마교 풍의 상륜부 탑이 만들어지곤 했다.


    부도(俯屠)
    절 밖 한적한 곳에 모셔져 있는 부도는 스님의 사리를 모셔둔 곳이다. 역사가 오래된 절에는 부도 군을 이뤄 둘레에 담을 두루기도 한다.(부도밭)
                    

출/http://www.iarted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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