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에서 생리학까지 키스 앞에서도 심각한 과학자들이 밝혀낸 사실들…저명한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키스에 관해 유명한 명언을 두 개나 남긴 바 있다. 대중 강연이 끝난 뒤 한 청년이 그에게 다가와 “아인슈타인 박사님, 상대성 이론이 도대체 뭔가요?”라는 당돌한 질문을 했는데, 이에 아인
슈타인은 사랑하는 여인과 키스를 하면 3분도 3초처럼 짧게 느껴지지만, 난로 위에 손을 얹어놓으면 3초도 3분처럼 길다는 말로 시간의 상대성을 명료하게 설명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또 하나는 그가 키스를 하며 운전을 하는 연인을 보자 혀를 차며 했다고 전해지는 말인데 다음과 같다. “예쁜 여성과 키스를 하며 안전하게 운전을 하는 것은 키스에 온당히 바쳐야 할 예의를 다한 것이 아니다.” 이처럼 아인슈타인은 종종 키스의 황홀함을 빗대 과학을 설명하길 좋아했는데, 흥미롭게도 키스의 본질과 특성을 파헤치기 위해 인생을 건 과학자들이 있다. 키스학(Philematology)이라 불리는 이 분야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내용은 키스의 기원에서부터 키스의 생리학에 이르기까지 그 주제도 다양하다.
인류 조상의 10%는 키스를 하지 않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사랑의 도장이라고 불렀던 키스는 과연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키스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일까, 문화를 통해 형성된 것일까? 키스의 기원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1992년 인류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168개의 민족과 문화 중 약 87%에서 낭만적 사랑의 증거를 발견했으며, 약 90%에서 키스를 했다는 흔적을 찾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문화에서 입을 맞춘 행동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오히려 놀라운 것은 그것이 100%가 아니라 90%라는 사실일지 모른다. 10%의 인류 문화에서 키스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키스가 본능적 행동이 아니라 학습된 문화 행위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키스가 모성애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치아가 없는 어린 아기를 위해 음식을 씹은 뒤 입으로 건네 먹이던 어머니의 행동이 아이의 치아가 자란 뒤에도 비슷하게 반복하면서 친밀감과 사랑의 표현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성애 입맞춤이 이성 간 사랑의 입맞춤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에스키모인들이나 시베리아 지방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입을 맞추는 키스 대신 코를 비비는 것으로 인사나 애정 표현을 대신해왔는데, 이 현상을 어떻게 모성애 입맞춤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옛날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이 우리의 숨결에 자리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키스나 코를 비비는 행위를 통해 숨결을 공유함으로써 영혼의 만남을 주선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과학자도 있다. 이에 반해, 키스가 타고난 본능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동물들도 애정 표현의 하나로 인간의 키스와 유사한 행동을 한다는 데 그 근거를 둔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친밀감의 표현으로 코를 비비거나 서로의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는 등 유사 입맞춤 행위를 보인다. 특히 보노보의 경우에는 싸운 뒤 화해의 표시나 유대감을 높이기 위해 (혹은 인간들이 그렇듯 별 이유 없이) 키스를 한다. 동물들의 이러한 행동과 인간의 키스가 유사한 기원을 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그들의 조심스런 주장이다.
일요일 키스는 안 돼! 아니 무조건 안 돼!
진화론적인 관점에선 키스를 배우자의 적합성을 탐색하는 수단으로 해석한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냄새(페로몬)를 맡으면 상대가 강한 자녀를 갖게 할 우수한 유전자를 가졌는지 아닌지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쾌한 냄새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신호로 인식될 테니, 이런 탐색 과정을 통해 더욱 튼튼한 자녀를 갖게 될 확률이 높아지고 집단 생존의 가능성도 높아졌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한편, 키스는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판별하는 데 도움을 주며 때론 방금 누구와 은밀한 시간을 보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교묘한 행동이어서, 배우자끼리 서로 상대방의 부정을 감시하고 추적하는 방식으로 키스가 시작됐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종교적인 기원을 찾는 인류학자들도 있는데, 예를 들면 평화의 상징이자 종교의식의 한 과정으로 키스를 시작했다는 설이다. 널리 알려진 이론은 아니지만, 인간이 동굴에서 거주하던 원시 시절, 소금이 부족해 남녀가 서로의 입가에 묻어 있는 바닷물 소금기를 핥아먹은 데서 키스가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가설은 없으니, 너무 믿지는 마시라.
오늘날 키스는 낭만적 사랑의 징표지만, 키스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환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고대 핀란드 사람들은 키스를 매우 불결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서, 심지어 발가벗고 섹스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키스만은 하지 않았다. 16세기 이탈리아 나폴리에서는 키스를 매우 공격적인 행위라고 생각해 남들이 보는 앞에서 키스를 하면 사형을 언도할 정도였다. 지금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는 콧수염이 있는 남자가 습관적으로 사람들에게 키스를 퍼부으면 폭력 행위로 간주해 체포한다. 또 믿지 못하겠지만,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포드시에서는 아직도 남편이 아내에게 일요일에 키스를 하는 것을 불법으로 여기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말이다. 이집트 카이로의 소아과 의사인 아델 애셔 박사는 최근 키스반대연합(anti-kissing association)이라는 국제시민단체를 조직해 키스 안 하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들의 모토는 더 이상 키스는 안 돼!(No kisses after today). 이유는 단 하나. 키스가 조류독감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키스공포증(philephobe)이란 것이 있다. 그들은 키스를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그것이 사회생활을 하거나 연애를 하는 데 심각한 장애가 된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키스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고 상상해보라! 사실 그들이 키스를 꺼리는 이유는 상대방이 싫어서가 아니라 키스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전세계적으로 아주 소수다.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이 게리 쿠퍼에게 했던 명대사. “저는 키스하는 법을 잘 몰라요. 잘 알았다면 당신에게 키스를 했을 텐데…. 키스할 때 코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지요?” 잉그리드 버그만이 던진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2년 반 동안 실험을 한 과학자가 한 명 있다. 독일 보훔에 있는 루르대학 교수 오누르 군투르쿤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가 오랫동안 연구해온 분야는 동물과 사람의 인체 좌우대칭. 어느 날 그는 미국 시카고를 방문했다가 오헤어 국제공항에서 5시간이나 꼼짝없이 갇혀야 하는 신세에 처하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던 그는 한 커플이 서로 키스를 할 때 얼굴을 오른쪽으로 기울여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 모든 사람들이 그럴까? 오른손잡이라서 키스를 할 때도 코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는 걸까? 그는 공항이야말로 키스를 연구하는 데 더없이 좋은 장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독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키스를 할 때 머리 기울임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한다. 공항이나 기차역, 해변과 공원 등지를 돌며 짐을 들지 않은 상태에서 얼굴을 마주 보며 입술을 맞닿아 키스를 하는 124쌍의 커플을 면밀히 관찰했다. 그리고 그들이 키스를 하는 동안 머리를 어느 방향으로 기울이는지 모두 상세히 기록했던 것이다.
공항은 키스를 관찰하기에 좋았네
결과는 매우 명료했다. 3분의 2 정도 되는 사람들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여 키스를 하더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이며, 출산하기 바로 전 며칠 동안 고개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그 자세가 본능적으로 좀 더 편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두 연인이 오른쪽으로 기울여 키스를 하고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키스>가 우리에게 그토록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리라.
사랑하는 연인과 첫 키스를 준비하는 분이라면, 군투르쿤 교수의 연구 결과를 명심하시라. 사랑하는 자기가 갑자기 당신의 오른쪽으로 코를 들이댈 가능성이 3분의 2라는 사실을.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라면, 내 배우자는 어느 방향으로 키스를 하는지 무심코 지나친 이 문제에 대해 이 칼럼을 읽자마자 한번 확인해보시라. 아침에 아내와 키스를 하고 나오는 남편의 평균 연봉이 그렇지 않은 남자보다 30% 가까이 더 높다는 통계도 있으니, 확인해본다고 해서 별로 손해볼 것도 없다.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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