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성경에 길을 묻다]
가난과 희년제도
탄자니아, 미얀마를 포함한 여덟 개의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 농촌지도자들이 학교에서 '빈곤의 극복'에 관한 강의를 듣고 있다. 강의시간 중에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시청하였는데, 병뚜껑에 우유 한 잔 마시는 것으로 한 끼를 때우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고 온 수강생이 울음을 터뜨려 강의를 진행할 수 없었다고 한다.
세계인구 중에 약 800만명 이상이 매년 극심한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 사람들은 너무나 가난해서 생존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만성적인 기근으로 몸이 쇠약해져서 말라리아, 결핵, 에이즈, 호흡기 질환 같은 치명적인 병에 걸리면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너무나 쉽게 목숨을 잃는다. 소리 소문 없이 세상에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생존을 위해서 몸부림치다가 그렇게 매일 죽어가고 있다.
성경은 가난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는 개인의 선택과 관련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의 탐욕과 관련된 것이다. 게으름이나 사업 또는 투자 실패로 인해 가난에 빠지는 것은 개인선택의 결과로서 개인이 책임 질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 때문에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억압, 폭정, 착취로 가난한 사람들이 발생하는데, 이것은 개인을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가난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일단 가난에 빠지면 스스로 그 가난으로부터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가난의 이런 속성 때문에 하나님은 희년제도와 가난한 사람 구제를 위한 규례(規例)를 선포하였다(레 25: 8-55). 희년제도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50년마다 신분회복과 재산권회복을 통해 선택의 자유와 경제의 자유가 회복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을 선택이 아니라 의무로 규정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추수를 할 때 떨어진 이삭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남겨두라고 하였고, 아주 가난해서 도저히 자기 힘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은 공동체가 돌보라고 하였다.
희년제도에는 가난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지혜가 담겨있다. 왜, 하나님이 헤어날 수 없는 가난에 빠져도 바로 구제를 하지 않고 50년의 세월을 묵혀 두는가? 그것은 가난에 책임문제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가난은 개인의 책임일 수도 있고, 인류공동체 모두의 책임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가난을 자발적으로 극복하려는 개인과 공동체의 공동노력을 보고 싶어 하신다. 아프리카든 북한이든 아이들이 우유 반 컵으로 하루 끼니를 때우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 권명중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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