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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론(聖經論:BIBLIOLOGY)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0. 7. 11:24

성경론(聖經論:BIBLIOLOGY)

 

정경(正經:THE CANON OF SCRIPTURE)

"정경(Canon)"이란 단어는 성경 66권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이 말은 갈대(Reed), 자(Measure), 규정(Rule) 등을 의미하는데, 결국 이것은 이 책들이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 책을 시험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66권의 책들만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고 나머지 책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로마 카톨릭은 외경이라고 하는 고대의 책 열 네 권을 성경과 똑같은 수준에 두고 있습니다. 외경은 다니엘서 등과 같은 정경에 어떤 첨가적인 말들을 포함시켜 놓은 것입니다.

구약 정경의 형성과정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옛날 족장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친히 하신 약속들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습니다. 이들은 자기 생애 가운데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했는데 대개 진흙판이나 돌판 위에 썼고 이것을 아버지가 아들에게 소중한 유산으로 대를 이어 물려주게 하였습니다. 모세오경을 쓸 때 모세는 이러한 조상의 전래된 글들을 하나님의 계시로 여겨 오경에 포함시켰고 또한 죽기 전까지 자신이 직접 기록한 것도 추가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통과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이 기록들을 매우 소중히 지켰습니다. 다른 책들도 초기 선지자들에 의해 씌어졌는데, 이것 또한 그 기록들에 추가되었습니다. 이 책들이 바로 역사서라고 부르는 여호수아서부터 열왕기하까지의 책입니다. 후에 시편과 대선지서와 소선지서가 기록되었고 마지막으로 구약의 나머지 책들이 씌어지게 되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무대에서 사라진 후에야 구약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뒤 400년이 넘도록 계시를 받은 기록자나 선지자의 목소리는 이스라엘 땅에서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신약 정경의 형성과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신약 27권은 구약에 비해 훨씬 더 짧은 시간에 기록되었으며 기록되고 얼마 되지 않아 곧 수집되었습니다. 침례 요한이나 예수님은 책을 직접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오순절 이후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이 기억하고 있던 그리스도의 말씀이 인용되었습니다. 후에 이러한 말씀들이 복음서에 기록되었습니다. 누가는 교회가 예루살렘에서부터 로마까지 확장되는 것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을 추가했습니다(사도행전). 사도들 또한 교회를 세우고 이 교회의 새로 거듭난 성도들을 굳게 세울 목적으로 열아홉 편의 서신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들의 편지에 야고보, 유다의 서신이 추가되고 마지막으로 계시록이 포함되었던 것입니다.
이 27권의 모든 책들이 처음부터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비록 대부분은 그랬지만). 이 책들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후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신약 정경이 최종적으로 공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에, 최초로 기록될 때부터 정경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겠습니다. 카르타고 공의회는 초대교회시대부터 널리 지녀온 믿음에 대해 공식적인 인정을 했을 뿐입니다.

정경임을 시험하는 기준들은 무엇일까요? 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서른 아홉 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그 외의 것들은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 우선 첫 번째 답으로 룻기, 에스라, 전도서, 아가서와 소선지서 일부를 제외한 구약의 모든 책들이 신약성경의 기자들에 의해 권위 있는 정경으로서 인용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어떤 중요한 교리가 이 책들 중 유독 어느 한 책에만 기초하고 있는 경우는 없으며, 주 예수님도 구약 성경 전체를 정경으로 인정하셨습니다(눅24:27). 더 나아가 우리는 성령님께서 초대교회를 통해 이 책들과 신약의 책들에 대해 증거하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이 이 책들 중 일부에 대해 얼마동안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성경 66권은 모두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고 있으며 또한 그분을 영화롭게 해드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외경에 속하는 책들에는 역사적, 지리적 오류들이 들어 있음을 들 수 있습니다. 외경은 거짓,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선행을 통한 구원, 이외에도 또 매우 비성경적인 개념들을 다 정당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외경은 결코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일부로 들어간 적이 없으며, 오늘날에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점은 교리의 발전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에 대한 교리는, "감동을 입어 기록된 어떤 책이나 단락이 특정 주제에 대한 모든 진리를 담고 있다"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어떤 주제에 관련된 여러 구절들간에 모순됨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는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으나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각 책들이 우리 하나님의 위(位)와 사역, 영광에 대한 가르침을 더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 전체는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시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현재의 사람들에게 이런 방법으로 스스로 드러내기 원하시는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더해질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리의 발전은 그리스도와 성령, 구원, 그리고 기타 주제들에 대한 교리의 발전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의를 강조하는 반면,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두드러지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계시된 진리의 극치는 바울서신에서 찾을 수 있지만, 이것조차도 구약성경의 배경과 신약성경의 일부에 대한 배경이 없다면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정경은 이제 완전합니다.
각 시대(경륜)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빛이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점에서, 교리의 발전을 성경 안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경륜은 하나님께서 어느 기간 동안 어떻게 사람을 다루시겠다고 친히 정해놓으신, 다루심에 따른 구분입니다(은혜시대, 율법시대 등). 이것은 오늘날 흔히 가르치고 있는 바 "종교의 진화"와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종교의 진화라고 하는 이론은 하나님이 은혜 가운데서 자신을 나타내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힘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발견해 나간다는 사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히브리인들의 부족신은 야훼(여호와)라고 하는 천둥신이라고 가르치곤 했습니다. 이들이 주장한 야훼라는 신은 복수하는 신이요, 피에 굶주려 있다고 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서 이기면 자기들의 "신"이 다른 민족들의 신들을 이긴 것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 뒤 선지자들이 명상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좀더 고등한 개념으로 진화시키고, 사실상 이것에 의해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이 만유의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론은 배척받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에 어긋나며 성경과 반대되고, 신성모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들과 달리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참되신 한 하나님께서 일정한 시대 간격을 두고 자기 종들을 통해 갈수록 더 놀라운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주셨다고 믿습니다.

성경의 해석

성경의 대부분은 쉬운 말로 씌어 있으며, 이는 보통 사람들도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어떤 구절들은 매우 뛰어난 지성인들조차도 난감하게 만드는가 하면, 그 보다 더 단순한 구절들에 말할 수 없이 깊은 진리가 담겨있기도 합니다. 영감의 교리가 있다고 해서 성경해석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단락을 보면 성령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깨닫기 바라시는 것인지 알기 힘듭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분들은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말씀하고 있지만, 또 어떤 단락은 그림이나 비유적인 것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나은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해석의 문제는 거짓된 이단들의 그릇된 가르침 때문에 더 중요합니다. 이단들은 자기들이 내세우는 주장의 근거로 성경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사실상 모든 기독교 계통의 이단들에게 어느 정도 다 해당되는 사실이지만 여호와의 증인, 크리스찬 싸이언스, 몰몬교가 특히 더 그렇습니다.
성경해석의 올바른 원칙들에 대한 연구를 "해석학"이라고 합니다. 해석학에 대해서는 많은 책들이 씌어졌는데, 그 중에는 성경적이면서 성경학도들에게 도움이 되는 해석원칙들을 제공해주는 우수한 책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들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성경해석에 있어서 관찰(본문에 있는 것)과 해석(본문에 있는 것이 의미하는 것), 적용(지금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보고(寶庫)이기에 한 단락의 말씀에도 깊은 영적인 의미와 그 적용이 무수하지만, 그 단락의 주된 의미는 단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해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또한 옛날 이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과 오늘날의 우리 사이에 있는 간격을 좁히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오직 거듭난 자로서 경건하게 성령님만 의지하여 가르침 받기를 바라는 자만이 왜곡하지 않고 성경을 옳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해 상치되는 해석이 많이 있는 것은 주로 성경을 모르는(그러나 가끔 학구적인) 사람들이 거룩한 이 책에 대해 자기들 나름의 해석을 갖다 붙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해석에 공히 적용되는 대 원칙으로는, 의미가 통한다면 모든 말씀은 정상적이고도 보편적인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비유법이 자주 사용되고 있지만 그 부분들조차도 글자 그대로의 진리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일곱 가지는 모든 해석원칙을 샅샅이 찾아서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우리는 성경전체를 통해 줄기차게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어떤 주제에 대한 최초의 계시가 혹 그 주제를 푸는 열쇠일 수는 있어도 마지막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처음에 나오는 계시의 말씀이 후에 계시된 말씀보다 "하등하다"고 말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경륜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면 점진적인 계시를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2.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를 만드셨고 그 언어로 교통하시려고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고 사람의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점은 하나님의 성품을 설명함에 있어서 "신인 동형 동성론(神人 同形 同性論: anthropomorphisms 3장 참조)을 사용할 때 특히 적용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자를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시되 그 언어의 불완전성에 방해를 받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말에 자신을 맞추셨기 때문입니다.
3. 성경에서, 자기 교파나 신조의 배경에서 나온 선입관을 이끌어내거나 "증거구절"을 찾는 대신, 주어진 주제에 대한 모든 구절을 처음부터 끝까지 찾아보고 이 구절들이 옳다고 보증해주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정직한 행동입니다.
4. 단어, 문법, 표현 등은 모두 문맥과 역사적인 틀 속에서 보아야 합니다. 문맥을 벗어난 본문은 오류를 만들어낼 뿐입니다.
5. 문법적, 역사적 해석은 성경전체에 대해 동일하게 적용하되, 시적인 표현과 비유적 표현이 명백한 경우는 따로 감안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예언의 경우만 제외하고는 모든 성경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의 방법을 임의로 달리 해야 할 성경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예언들은 글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에 대한 예언들도 역시 글자 그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천년왕국과 같은 것들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비유라고 둘러대고 넘어가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6. 성경은 하나님의 책으로서 한 가지 이상의 신앙체계를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가리켜 "신앙의 유추"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믿는 자의 영원한 안전과 "타락"을 동시에 가르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해석에 있어서는 강조하는 점이 다르거나 경륜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주제에 대한 하나님의 진짜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닫는 데는 관주와 병행구절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7. 만일 경건하고 학구적인 주석, 관주집, 사전, 어휘집과 같은 현대의 성경공부자료를 사용한다면, 번역본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상당히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만 해도 대다수 성경학도들에게는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어떤 해석논쟁에 있어서 최종적인 권위는, 구약에 대해서는 히브리어 성경이요, 신약에 대해서는 헬라어 성경에 있어야만 합니다. 이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도구로 친히 선택하신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안다고 해서 모든 해석상의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원어를 알면 해석상의 문제가 번역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원문해독 자체에 어려움이 있는지를 알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성경의 조명

물체가 빛으로 가득해진 것을 우리가 "조명"이라고 부르는 것과 똑같이, 하나님의 감동을 입어 기록된 그분에 대한 계시가 성령님으로 가득하게 되면 이것을 성령님의 조명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방금 살펴본 해석원칙들은, 인간 저자들을 통해 성경전체에 영감을 불어넣으신 성경의 참 저자이신 성령님께서 말씀을 조명해 주실 때라야 참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고전2:10-14. 요일2:20,27). 조명은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거나(계시), 계시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감동)과는 관계가 없으며,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 감동하신 그대로 성경본문을 명확하게 밝혀주는 것입니다. 이 용어들 간의 차이점을 명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대 신정통주의는 개신교에서 일고 있는 운동으로서 정통적인 전문 용어를 쓰고 있지만, 그 용어들이 성경에서 쓰일 때는 다른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경론에 있어 엄청난 혼동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신정통주의자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하는 대신에, "어쩌다가 우연히 자신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구절이 있을 때에 한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다"라고 합니다. 이 눈에 잘 띄지 않는 미세한 오류에 따르자면, 성경은 과학과 역사에 있어서 실수투성이지만 황송하게도 하나님께서 그나마 사람들에게 계시하시기 위해 사용하신다고 합니다. 이 운동은 조명과 계시를 본래 의미대로 제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일부 신정통주의자들은 책이나, 설교, 심지어 교회당의 스테인드 글래스까지도 하나님께서 성경과 똑같은 수준으로 사용하신다고 믿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여러가지 수단을 사용하셔서 사람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수단은 단연코 하나뿐이며 오류가 없는 확실한 책인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성경은 틀린 것이 전혀 없고(무흠:無欠), 오류를 범할 수가 없기 때문에(무오:無誤)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그 실천에 있어 최종적인 권위를 지닙니다. 참으로 겸손한 신자라면, 성령님께서 이 말씀을 자기의 마음과 이성에 비추시며, 자기의 영적인 문제들에 답하실 것이며, 또한 가장 깊은 갈망도 만족시켜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성경을 대할 수가 있습니다. 이 책의 나머지 장들도 이 하나님의 권위, 즉 하나님의 말씀에 엄격하게 기초한 것이 될 것입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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