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CBMC포럼과 성서교육

[스크랩] 사도신경 설교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0. 11. 07:35
 

도입>사도신경-사랑을 담아 드리는 믿음의 고백!!


본문: 마 16:13-19

제목: 사랑을 담아 드리는 믿음의 고백!!



오우~ 저기를 보세요!! 한 남자가 꽃을 들고 있네요. 과연 저 꽃을 누구에게 주려는 것일까요?

자~ 보기를 드릴께요.

1번. 사랑하는 말자씨를 만난지 100일!! “말자씨!! 나와 결혼해 주세요!”프로포즈를 하면서 사랑하는 여자친구, 말자씨에게 주려는 것이다

2번. 오늘은 어버이날! “지금까지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공부시켜 주시고, 잘~키워주신 부모님!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사랑하는 부모님께 드리려는 것이다

3번. 오늘은 스승의 날!! “늘 우리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는 선생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존경의 마음을 담아 선생님께 드리려는 것이다


자, 과연 몇 번이 정답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때요?

1번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 손들어 보세요. 그럼 2번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 손들어 보세요.

마지막으로 3번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 손들어 보세요.

오~ 아주 막상막하로군요...자~ 정답은..따라라라라~ 1번 (큰소리로 외치고, 1번이라고 손들었던 친구들이 좋아하고 있을 때) 2번, 그리고 3번....

그래요! 1번도 2번도 3번도 다 맞아요!! 3가지 모두 대상이 다르고 그 내용은 다르지만, 3가지 경우 모두 마음의 고백이 담겨져 있어요.

사랑하는 애인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 담겨있기도 하고, 부모님께 대한 감사의 고백이 담겨져 있기도 하고,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고백도 담겨져 있어요.

이번주부터 앞으로 몇주간 동안, 우리가 예배시간에 외우는 “사도신경”에 대해 배우게 될거예요. 그런데, 이 사도신경을 한마디로 쉽게 이야기하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을 향한 우리들의 사랑과 감사와, 믿음의 고백이예요.

1) 베드로가 드린 믿음의 고백!!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오셔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시는 등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어요.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예수님! 까악~예수님이다!” 하면서 우르르~ 우르르~ 예수님을 쫓아 다녔어요.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을 좇아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이 진짜 어떤 분인지도 모르고 아무 생각없이 그저 사람들을 따라서 우르르~ 우르르~좇아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심지어 예수님과 아주 가까운 12명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정말 어떤 분인지 제대로 잘 몰랐어요. 어느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어요. “애들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좇아 다니는데,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느냐? 도대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제자들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아까~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다시 살아난 거라고 하던데요!” “아니야! 나는 예레미야 선지자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 걸~”“무슨 소리!! 세례 요한이라고 그랬어!”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께서 조용히 제자들에게 물으셨어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예?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냐구요?” 긁적 긁적 “글쎄요~”

그때 베드로가 대답했어요. “예!!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딩동뎅!! 베드로의 대답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베드로를 칭찬하시며 축복해 주셨어요.

그래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좇아 다녔지만, 예수님이 베푸시는 큰 기적을 보고도..예수님이 전하시는 천국의 말씀을 듣고도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어요. 그저 엘리야나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로 생각했고, 세례 요한같은 위대한 선생님 정도로 생각했어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예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교회를 다녀도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도신경의 신앙고백을 드리면서 우리가 가진 믿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짜 믿음인지 점검하는 거예요.


2) 그러면 사도신경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드리는 사도신경을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궁금하시죠?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사도신경의 고백은 하루아침에 금방 뚝딱하고 만들어 진것이 아니예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 믿는 사람으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만들었어요. 또한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몇 백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회의하고, 기도하면서~~ 고치고, 또 고쳐서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신앙고백이 만들어 졌답니다.


3) 사도신경은 왜 만들어 졌나요? 또 어떻게 쓰였나요?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다음 처음 교회가 세워지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어요. 그러자 예수님을 믿지않는 유대인들과 로마의 황제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핍박하기 시작했어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집도 빼앗기고, 가진 모든 재산을 빼앗기기도 했고, 심지어 생명까지 빼앗겼어요. 로마의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 만을 믿는다는 이유로 짐승들의 밥이 되기도 했어요. 박해를 피해 도망간 사람들이 동굴에 숨어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끝까지 자신들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생명을 다해 믿음을 지켜나갔어요. 그때 숨어서 예배드리던 사람들이 그들만 알아볼 수 있는 암호를 만들었는데...바로 물고기 암호였어요.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냥 물고기 그림이지만 거기에는 믿는 사람들의 신앙의 고백이 들어 있었거든요. 바로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신앙의 고백이였어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신앙의 고백이지요? 그래요!! 베드로가 예수님께 드렸던 신앙의 고백을 물고기 그림속에 담아 처음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지켜갔어요.

또한, 이런 박해 뿐만 아니라 심각한 문제가 생겼는데 바로 가짜 선지자들이 가짜 믿음을 전해서 성도들의 믿음을 알쏭달쏭 헷갈리게 만든다는 사실이였어요. 교회 안에 가짜 선지자들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그냥 좋은 선생님이였다고 말하기도 하고,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고 하는 등 터무니없는 소리로 사람들의 믿음을 흔들었어요. 그래서 처음 교회의 사람들은 그런 가짜 믿음을 물리칠 수 있는 진짜 믿음이 무엇인지 고백문처럼 만들어서 새롭게 예수님을 믿으려는 사람이나, 이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사람들, 혹은 어린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었어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신앙고백을 통해서 하나 하나 확실하게 가르쳐 주었지요. 그렇게 사람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만들었던 고백이 발전하고 발전해서 오늘의 신앙고백이 되었어요.

그리고 오늘날에는 전세계의 수많은 교회, 수많은 성도들이 예배시간에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내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나는 하나님이 이런 분이심을 믿습니다.”라고 우리들의 신앙을 하나님 앞에 고백한답니다.


4) 신앙고백은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만들어진 신앙고백을 어떤 마음으로 드려야 할까요? 맞아요!! 그냥 앵무새처럼 달달달달 외우는 사도신경의 고백이 아니라, 한 줄 한 줄 그 안에 담겨있는 진짜 믿음을 나의 믿음으로 만들수 있어야 해요!!


얼마전에 전도사님이 신문을 보니까 요즘 우리 사회에 짝퉁 상품 (가짜 상품)이 큰 문제라는 뉴스를 보았어요. 짝퉁 시계, 짝퉁 가방, 작퉁 옷, 작퉁 신발 등등등!! 진짜와 똑같아 보이지만 진짜가 아닌 상품들에 속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심지어는 가짜 돈, 위조 지폐까지 만드는 등 큰 사회 범죄가 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그런 가짜를 구별하는 전문가들이 나와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아하!”하는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이런 짝퉁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 바로 “진짜”를 정확하게 바로 아는 거였어요. 어떤 것이 “진짜”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아무리 진짜와 똑같이 생긴 “가짜”라도 금방 알 수 있다는 거였어요. 바로 그거예요! 우리가 사도신경의 고백에 나오는 진짜 믿음, 진짜 신앙을 바로 알고, 정확히 알고 있으면 아무리 가짜 믿음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흔들어도 끄떡 없게 되는 거라구요~~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오늘부터 배울 사도신경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예수님을 기쁘시게 했던 베드로처럼 멋진 믿음의 고백을 드릴 수 있는 어린이들이 되길 바래요. 또한 그런 신앙의 고백들이 다른 사람의 고백이 아니라 바로 나의 고백이 되어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다 되길 바래요.


1과 나는 믿어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제목: 안녕하세요! 아빠!

본문: 요한일서 4장 16절



   안녕하세요, 여러분! 친구들과 인사를 하니까 굉장히 반갑고 기분이 좋아요. 그런데 오늘은 우리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분이 계세요. 우리 친구들이 조금 전에 선생님과 함께 “안녕하세요.” 인사한 것처럼 매일매일 즐겁게 인사를 나누고 싶은 분이에요. 그 분은 바로 하나님이에요.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아빠 되신 하나님을 소개할 거예요. 이 말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 하나를 들려줄게요.

   가시고기라는 물고기가 있어요. 아마 어떤 친구들은 들어봤을 거예요. 그렇다면 이 물고기가 왜 유명한지 이유를 아는 친구 있어요? 그래요. 가시고기는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가장 강한 물고기로 유명해요. 해마다 이른 봄이 되면 가시고기는 알을 낳기 위해 하천으로 올라와요. 한 일주일간 민물에서 적응을 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알을 낳기 시작하죠. 가시고기는 다른 물고기들과는 다르게 알을 낳는 것부터 키우는 것까지 모두 아빠 물고기의 몫이에요. 새끼 물고기들이 살 둥지를 지으면, 그 때부터 아빠 가시고기는 잠시도 쉬지 않고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둥지를 지켜요. 다른 침입자가 새끼 물고기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지키고 키워내는 일만 해요. 약 15일이 되면 새끼들이 모두 자라게 되는데, 그 때쯤이면 아빠 가시고기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오직 새끼들을 위해 온 힘을 다했기 때문에 탈진하게 돼요. 주둥이는 다 헐고, 화려했던 몸 색깔은 볼품없이 망가지고, 결국 목숨을 걸고 새끼를 지키던 둥지 앞에서 죽고 말아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죽은 아빠 가시고기의 몸은 새끼들의 먹이가 돼요. 아직 스스로 먹이를 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죽은 아빠 가시고기의 몸을 먹는 거죠. 이렇게 죽어서도 새끼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주고 가는 사랑이 바로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랍니다.


   함께 읽었던 성경말씀에 보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것을 알고, 그 사실을 믿는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이래요. 우리가 사랑 안에 살면, 다시 말해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 사랑을 나누고 전하는 삶을 살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과 똑같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사람 안에는 하나님이 계신대요.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이지요.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보여 주신 것이에요. 아빠 가시고기가 새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사랑한 것처럼, 무슨 일이든 했던 것처럼, 잘 돌보아 준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빠예요. 오늘은 우리가 매 주일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 중 제일 처음에 있는 고백,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배우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에요.


   전능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전능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은 자신이 하려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세요. 그 증거가 바로 천지 창조예요. 요즘은 과학시대라 할 정도로 과학이 매우 발달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였어도 인간의 힘으로는 풀 한 포기조차 만들어 낼 수 없어요. 유전자 조작한 양이나 우주선, 첨단 프로그램도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재료를 가지고 만든 것이에요. 인간이 만든 놀랍고 훌륭한 작품도 모두 그 재료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단지 말씀만으로 이 세상을 만드셨어요. 아무 것도 없는 세상을 하나씩 채워가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전능하다고 말하는 거예요. 누구의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어렵고 힘들게 겨우 만들어내신 것도 아니에요. 오직 말씀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만드셨어요. 빛을 만드시고 하늘과 땅, 해와 달과 별, 동물과 식물, 사람까지 모두 만드셨어요. 그리고 만드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셔요. 다스리는 것은 함께 하면서 돌보고 가꾸는 것을 말해요.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이에요. 세상을 말씀만으로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돌보신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인 거예요.


   또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가 되신다는 것 자체가 전능한 일이에요. 우리가 하나님이 나의 아빠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게 되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쉬어져요. 우리 친구들은 모두 부모님에게서 태어났어요. 혼자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리고 부모님과 가족들이 우리 친구들을 돌보아 주고 있어요.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지으셨고 돌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우리의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에요. 놀라운 일을 하셔서 우리의 아빠가 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빠가 되셨기 때문에 전능하시다고 알고 믿는 것이죠.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가 되신다는 고백은 성경에서도 가르쳐 주고 있어요. 예수님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가 되신다고 가르쳐 주셨어요. 마태복음 5-7장을 보면 예수님이 산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데,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표현하고 있어요. 특히 주기도문에서 제일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고백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가 △△이네 집에 가서 살 게 있다고 돈 2천원 주세요. 그럴 수 있나요. △△이는 ○○이 아빠에게 돈 달라고, 무엇을 해 달라고 할 수 없어도, ○○이는 할 수 있어요. 왜 그렇죠? ○○이 아버지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에요.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아빠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을 믿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사랑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말씀처럼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계세요.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주면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이 발견되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사랑하는 어린이가 되어야 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을 어떻게 할 수 있죠? 사랑하면 기쁘죠? 그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과 같아요. 하나님은 우리 친구들이 예배하는 것을 기뻐하세요.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는 것을 기뻐하세요. 또 하나님과 매일 이야기하는 것, 기도하는 것도 기뻐하세요.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주위에 있는 친구들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에요. 그렇게 우리가 다른 친구들에게 사랑의 모습을 보이면 우리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에요. 자, 사랑할 준비 다 되었나요?


   우리는 이제 사도신경을 외울 때마다 이 세상을 만드시고,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어요. 특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나의 아빠가 되신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사랑하면 그 안에 하나님이 계셔서 아빠 되신 우리의 하나님을 알 수가 있어요! 이것을 믿는다는 고백이 바로 사도신경의 고백이에요. 앞으로 사도신경을 외울 때마다 이 뜻을 잘 기억해서, 하나님께 정직하게 고백하는 믿음의 어린이가 되기로 해요!


2과 나는 믿어요. 창조주 하나님을.

제목: 하나님, 나에게서도 보여요!

본문: 창세기 1장 26-28절



   우리 친구들은 성경의 첫 구절이 무엇으로 시작하는지 알아요? 함께 말해볼까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아멘” 맞아요! 우리가 가장 기본적으로 하는 고백이 바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가 두 번째로 배울 사도신경의 의미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이에요. 성경의 제일 처음에 있는 것처럼,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이에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창조주이기 때문이에요. 그럼 하나님이 어떤 것들을 창조하셨는지 한 번 살펴볼까요?


   처음 세상은 썰렁했어요. 캄캄하기만 한 땅이었어요. 그 곳에 하나님이 한 가지씩 채우시기 시작하셨어요. 첫째 날에 빛을, 둘째 날에 하늘을, 셋째 날에는 땅을 만드시고, 그 위에 나무와 풀을 가득 심으셨어요. 넷째 날에는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어요. 다섯째 날에는 물고기와 새를, 여섯째 날에는 모든 동물들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셨어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어요. 그런데 이 모든 것들 중에서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이 있어요.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들 중에서 걸작품은 바로 사람이에요. 그 이유는 하나님이 다른 동물들을 만드실 때와 다르게, 사람을 만드실 때 특별하게 만드셨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다른 생물들을 만드실 때는 “있으라!”하고 말씀만으로 만드셨어요. 우리가 찰흙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처럼 재료를 가지고 만드신 것이 아니에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드셨어요. 쉽게 설명하면 하나님이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하나씩 불러내니까 세상이 점점 채워졌다는 것이에요. 여기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이해하고 믿을 수 있어요.


   하나님은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셨어요. 하나님이 명령하시니까 각기 다른 생물들이 그 종류대로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사람만은 직접 진흙으로 빚어서 만드셨어요. 다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후~”하고 불어 넣어주시자 사람이 살아있는 생명체가 되었어요. 그런데 사람이 다른 생물들과 구별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 때문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 자신을 닮도록 만드셨다는 사실이 다른 생물들과 다른 것이에요. 그러면 사람은 하나님의 어떤 것을 닮은 것일까요? 하나님도 사람처럼 눈, 코, 입 그리고 손과 발이 있다는 것일까요? 아니에요.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은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어요.


   첫 번째는 마음이 꼭 하나님을 닮았어요. 사람만이 생각을 할 수 있고, 그 생각대로 행동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잘못을 했을 때 떨리는 마음, 즉 양심이 있어서 잘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할 수도 있어요. 이것은 사람에게 자유가 있기 때문이고, 자신이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에요. 친구들은 산에 올라가 본 적 있나요? 우리가 산 정상에 올라가서 아래를 보면 그 멋진 풍경에 “야아~, 정말 경치 좋다~!”라며 감탄을 해요.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에요. 다른 생물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도 감탄하지 않아요. 오직 사람만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고 말할 수 있어요.


   두 번째는 사람들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하나님을 닮았어요.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실 때 남자와 여자로 사람을 만드셨어요. 둘이 함께 어울려 있는 모습에서 하나님은 온전히 발견되어요.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과 관련이 있어요. 우리가 배우고 있는 사도신경도 결국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에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니까요. 하늘과 땅과 모든 생물과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신 예수님,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은 서로 하나가 되어서 사람과 관계를 맺는 분이세요.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서로 사이좋게 사랑하면서 지내고, 사귀기를 원하세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사이좋게 어울려 서로 하나를 이룰 때 기쁜 것도, 우리가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이에요.


   세 번째는 다스리는 것이 하나님을 닮았어요. 하나님은 온 우주를 만드셨을 뿐 아니라 잘 다스리시는 분이세요. 지난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돌보시는 것에서 알 수 있다고 배웠어요. 그런데 다스린다는 것이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하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잘 가꾸고 보존하고 돌보아주고 섬겨주는 것을 말해요. 하나님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도록 사람을 만드셨어요. 이렇게 하나님을 닮아 다스리도록 창조된 우리가 서로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잘 가꾸고 보존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요? 하나님은 사람들끼리 사이좋게 지내고 서로 사랑하는 세상을 만드셨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아요. 서로 미워하고, 돈 때문에 다른 사람을 속이고 심지어 죽이는 나쁜 사람도 있어요. 남의 돈을 빼앗으려고 도둑질을 하고 사람을 죽이는 강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다른 나라와 전쟁을 일으켜서 죄 없는 많은 사람을 죽도록 만드는 일도 여기저기 일어나고 있어요. 이것은 분명 하나님을 닮은 사람의 모습과 달라요.

   사람들끼리만 그런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은 원래 지구에 살고 있는 다른 생물들을 잘 다스리도록 창조되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해요. 고급스런 옷을 만들어 입으려고 동물들을 마구 죽이고, 몸에 좋다고 아무 동물이나 잔인하게 잡아먹어요. 그 뿐 아니라 폐수를 강물에 흘려보내서 물속의 고기들이 살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려서 지구를 점점 병들게 만들어요.


   이렇게 하나님을 닮도록 만들어진 사람이 하나님과 다르게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을 닮았던 모습이 많이 망가지게 된 것이죠. 하나님과 멀어지고, 점점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치려다 보니 하나님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에요.

   그렇지만 사람을 만드시고 기뻐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세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신 것도 순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망가진 부분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 것이에요.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 닮은 모습을 다시 회복할 수 있어요.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결심과 행동까지 모두 말하는 것이에요.


   독일의 과학자들이 사람의 몸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를 연구했어요.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어요. 사람의 몸에는 비누 일곱 장을 만들 수 있는 지방이 있고, 철분을 모으면 못을 하나 만들 수 있는 양이 돼요. 성냥개비는 2000개를 만들 수 있고, 귀찮게 하는 빈대를 좇아낼 수 있는 양의 유황을 가지고 있어요. 이 연구의 결과를 보고 히틀러는 사람이 그 정도의 가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람이 비누, 못, 성냥개비 몇 개의 가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에요. 사람들의 목숨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은 히틀러는 결국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 세계대전을 일으켰어요. 그리고 유대인들을 600만 명이나 죽이는 잔인한 짓도 했어요. 하나님을 닮게 창조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또 어떤 과학자들은 사람의 조상을 원숭이라면서 원숭이와 사람이 사촌지간이라고 말해요. 그러나 우리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존재가 아니에요. 분명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딸이에요. 우리는 원숭이나 다른 물건들과는 비교되지 않는 귀한 존재예요.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소중한 존재”라는 자신감을 갖기를 원해요. 또한 나 뿐 아니라 주위에 있는 친구들도 역시 귀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기 바라요. 왜냐하면 모두 하나님을 닮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색인들도, 혼혈인들도, 장애가 있는 사람도, 공부를 못하는 사람도, 잘 살거나 못 사는 사람도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 그 사람 안에 있는 소중한 존재예요.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 모든 사람 안에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은 처음부터 특별하게 창조되었어요. 하나님을 닮게 창조되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존재예요. 이 사실을 잊지 마세요. 사도신경을 외울 때마다 나를 특별하게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항상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애써야 해요. 또 나 뿐 아니라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이 세상에 있는 생물들을 잘 가꾸고 돌보는 어린이가 되어요!


3과 나는 믿어요! 하나님의 하나뿐인 아들 예수님을!


제목: 가장귀한 선물로 오신 분

본문 :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델라와 짐이라는 가난한 부부가 있었어요. 비록 가난하긴 했지만 둘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요.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자 델라와 짐은 서로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너무나 가난했던 둘은 작은 선물을 살 돈 조차 없었어요. 아내 델라는 남편에게 꼭 해주고 싶은 선물이 있었어요. 남편 짐에게는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시계가 있었는데, 너무 오래된 시계라 시계줄이 끊어졌거든요. 델라는 남편의 시계에 딱 어울리는 백금으로 된 시계줄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남편 짐도 아내에게 꼭 해주고 싶은 선물이 있어요. 아내 델라의 아름답고 긴 금발 머리에 꼭 어울리는 멋진 머리핀을 사주고 싶었어요. 크리스마스 저녁! 델라와 짐은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면서 깜짝 놀라 울고 말았어요. 글쎄 아내 델라는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잘라 그것을 팔아서 남편에게 줄 시계줄을 샀고, 남편 짐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시계를 팔아서 아내에게 줄 머리핀을 샀던 거예요.

   더 이상 핀을 꽂을 긴 머리카락도 없고, 시계줄을 걸 시계도 없었지만, 이 둘에게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하고 값진 선물이였어요. 왜냐하면 자신의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주었기 때문이지요. 이 이야기는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가 쓴 '크리스마스 선물' 이라는 이야기예요.

  델라와 짐이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맞아요! 그것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예요. 오늘 우리가 배울 사도신경의 고백 속에도 이런 놀라운 사랑의 선물이 담겨져 있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아주 귀하고 값진 사랑의 선물이지요. 선물이라고 하니까 “도대체 하나님께서 어떤 선물을 주셨을까?” 우리 친구들 눈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네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생명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시는 하나뿐인 아들 예수님! 이예요.

  오늘 우리가 드린 사도신경의 고백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고 말씀하셨는지 다들 기억하고 있나요? 다시한번 큰 목소리로 함께 외워볼까요? “그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구요? 그래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외아들! 하나님의 하나 뿐인 소중한 아들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전도사님은 사도신경의 이 고백을 드릴 때 마다 너무 너무 궁금했어요. “아니~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귀하고 소중한 아들 예수님을 왜 이 땅에 보내주셨을까? 아니~ 예수님은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고 아픔도 없는 그 아름다운 하늘나라에 계시지 않고 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그 고통을 당하고 죽으셔야 했을까?”

  그런데 어느날 전도사님이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질문에 대해 답을 해주셨어요. “애야! 내가 하나 뿐인 독생자 외아들을 세상에 보낸 이유는 바로 널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널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널 구원해서 영원히 이 하늘나라에서 함께 살고 싶단다!”

   “애야! 내가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와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이유는~ 바로 널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널 구원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거란다”

  전도사님은 이 말씀을 듣고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이 말씀을 듣고 십자가를 바라보는데 막 눈물이 났어요. ‘하나님이 날 정말 사랑하시는 구나! 하나뿐인 독생자 외아들을 보내주실 만큼 날 사랑하시는 구나!’ ‘예수님이 날 아주 많이 사랑하시는 구나! 날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만큼 날 사랑하시는 구나!’ ...너무나 감사했어요!!

  그리고 또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왜 마음이 아팠냐구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뿐인 독생자 외아들 예수님을 믿고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깨닫지 못했어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데 그 사실을 믿지 못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어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선물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 선물을 받고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세요? 여러분은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하나뿐인 독생자 외아들이신 것을 믿으시나요?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가장 귀한 선물...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그 사랑에 감사하고 계시나요?

  우리가 오늘 드린 사도신경의 신앙고백 “그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라는 고백속에는 하나뿐인 독생자 외아들을 보내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 담겨져 있어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 담겨져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도신경을 외울 때 그냥 아무런 의미없이 외워서는 안돼요.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독생자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보내주신 하나님의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해요.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계세요. 여러분! 누군가 우리에게 선물을 줄 때, “이건 너한테 주는 선물인데 5,000원만 내!”라고 하지 않지요. 왜요? 그래요! 선물이기 때문이예요. 말그대로 선물은 그냥 값없이 주는 거예요.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귀하고 값진 선물이예요. 너무나 귀해고 값지기 때문에 도저히 우리의 노력이나 힘으로는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은혜를 그냥 사랑의 선물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거예요. 우리는 그냥 그 사랑의 선물을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어요.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보내주신 귀중한 선물...예수님! 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 선물을 받아 드릴 수 있어야 해요!!

  오래 전 미국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신앙의 도전을 주었던 어린 소년 ‘라이언 화이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라이언은 13살 때 혈우병을 앓아서 수술을 받았는데, 수혈을 잘못 받아서 그만 에이즈에 걸리고 말았어요. 자신의 잘못도 아닌 어른들의 부주의로 죽게 된 거 예요. 그런데도 라인언은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주었어요. 그를 염려하는 부모님을 위로하면서 기쁘게 지냈습니다. 라이언은 그렇게 5년 동안 살다가 결국 18세에 죽었어요.

   라이언이 죽기 전에 그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라이언에게 말했어요. “라이언, 사랑하는 내 아들아, 정말 미안하구나. 나는 아빠로서 더 이상 너에게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구나. 이 아빠가 더 이상 어떤 선물도 줄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그러자 라이언이 울고있는 아빠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어요. “아빠, 전 지금까지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아무도 아빠처럼 귀한 선물을 준 사람은 없었어요. 아빠는 저에게 천국에 갈 수 있는 티켓을 선물로 주셨잖아요. 바로 예수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아빠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선물로 얻었는걸요. 이보다 더 위대한 선물은 없을 거예요.”

사랑하는 친구들, 하나님의 하나뿐인 독생자 외아들 예수님보다 더 값진 선물은 없어요. 그 보다 더 위대한 선물은 없어요. 예수님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어요.

  앞으로 우리가 사도신경의 고백을 드릴 때마다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헤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래요.



4과 나는 믿어요. 주인되신 예수님을

제 목: 진짜 주인과 가짜 주인

본 문: 마태복음 6:24



(가짜 금귀고리와 진짜 금귀고리를 준비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여러분 여기에 예쁜 보석이 두개가 있어요. 하나는 진짜이고 다른 하나는 가짜예요. 만약에 여러분이 하나를 선택해야한다면 진짜를 가지려고 할까요? 가짜를 가지려고 할까요? 맞아야 이왕이면 값어치 있는 것을 가지려고 하는게 당연해요.  


오늘 말씀에 보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세요.

결국 한쪽을 택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만일 여러분이 이쪽 주인과 저쪽 주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한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 누가 진짜 주인의 자격이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진짜 주인과 가짜 주인을 어떻게 하면 가려 낼 수 있을까요?


 선생님이 사진을 한 장 준비했어요.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는 사람?

저학년 어린이들은 아직 히틀러라는 사람을 모르는 어린이가 더 많을거예요. 역사에 관심이 많은 고학년 어린이들 중에는 히틀러라는 사람에 대해 아는 친구도 있겠네요.


히틀러는 1939년 세계 제 2차대전이라는 커다랗고 끔찍한 전쟁을 일으켰고, 유태인을 모아서 수용소에 가두고 비참하게 죽였던 사람이예요. 당시 독일에서는 히틀러만큼 권력을 가진 사람이 없었고, 히틀러도 자기가 세상에서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 히틀러의 최후는 길거리에서 쓸쓸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끝났어요.  이처럼 역사 속에서 자기가 세상의 주인 것처럼 행동했던 사람들은 꾀있었어요. 하지만 이 사람들도 결국 자기가 자랑으로 삼던 돈이나 권력이 없어지면 힘을 잃고 비참하게 죽었어요. 히틀러 말고 또 누가 있을까요? (알렉산더, 칭기스칸...등) 

세상에서 자기가 ‘주인’이라고 나서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돈이나 명예나 지식의 많음을 자랑하면서 사람들의 주인이 되려고 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어요. 때에 따라서는 이 사람들이 가진 권력이나 지휘가 정말 대단해서 ‘와, 정말 저 사람이 우리를 편안하게 해줄 진짜 지도자야~’라고 사람들은 착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세상의 주인이나 혹은 어떤 사람의 주인이 될만한 자격을 가진 것은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인이라고 말씀하고 계세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째서 우리들의 주인이신가를 선생님이 지금부터 이야기해 볼께요.

만약에 여러분이 애지중지 기르던 예쁜 강아지가 있는데 이사를 가면서 누군가에게 주어야하는 상황이예요. 그런데 이 강아지가 너무너무 예뻐서 여러분 주면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강아지를 달라고 하면 여러분은 누구에게 이 강아지를 주겠어요? 넓은 정원이 딸린 집에서 사는 부자 친구에게 주겠어요? 가장 친한 친구에게 주겠어요? 밥을 많이 주는 친구에게 강아지를 주겠어요? (어린이들의 생각을 들어본다.) 네, 여러분의 생각도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만약에 선생님이라면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상관없이. 이 강아지를 위해 지극 정성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주겠어요. 그래야 강아지도 행복할테니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마다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다 달라요. 성경에서는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서 우리들의 행동이나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우리의 주인노릇을 하는 것이라고 얘기 하고있어요. 어떤 사람은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뭐든지 돈이 생기는 쪽으로 결정을 하고 따라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권력, 어떤 사람은 가족의 편안함, 또 어떤 사람은 지식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아서 살아가요. 하지만 앞에서도 말한 히틀러나 역사속의 다른 인물들처럼 그런 것들을 �아서 살아가는 삶은 결국 행복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따라갔던 것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예요.

그러면 영원한 것을 따라가야 행복할텐데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요?


성경을 찾아볼까요? (예레미야 31: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예레미야 31:3)

성경에서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랑하고 계시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신다고 말하고계세요. 구약시대때부터 하나님이 이렇게 말하고 또하고, 계속해도 사람들이 자꾸 까먹거나 믿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예요. 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신다고 말하셨을까요? 그래요. 죽기까지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거예요. 그것도 우리가 좋은 일하면 사랑해 주셨다가 미운 짓하면 미워하시는 변덕이 심한 그런 사랑이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었든간에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사랑하시 거예요.

또 예수님이 진짜 주인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서 돌아가시기 까지 예수님의 삶을 보면 예수님이 세상의 다른 가짜 주인들과는 다른 진짜 주인임을 알 수 있어요. 세상의 주인들은 자기의 힘이나 권력에 도움이 되는 아주 몇 명의 사람들만을 좋아하고 챙겼지만, 예수님은 가난하고 슬퍼서 아무에게도 위로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다가가셔서 그 사람들을 사랑해주시고, 그 사람들과 함께 먹고 함께 자면서 기쁨과 평안을 주셨어요. 그렇다고 예수님이 부자를 사랑하시지 않았을까요?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예수님도 부자들을 사랑했지만 더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는 서로 나누고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주시고, 그 사람들이 돈이나 명예를 따라가기 보다는 하나님과 사랑을 따라 살도록 격려해 주셨어요. 예수님은 세상에서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아낌없이 주셨으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신 것이지요.

이런 예수님을 우리들의 주인이라고 고백하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절대로 가짜 주인에게 속아서 가짜 주인을 쫓아가다가 인생을 낭비하는 일은 없을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이 이세상의 진짜 주인임을 기억하면 내가 가진 것도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것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고, 우리가 가진 시간과 물질, 그리고 우리의 능력이나 재능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어요. 왜냐하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 이기때문이지요. 우리가 이것을 알 때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이웃들과 함게 나눌 수 있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심부름으로 우리가 나누는 시간과 물질, 그리고 우리들의 재능으로인해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고, 그렇게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도 기뻐할 수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이 땅의 작은 천국을 맛볼 수가 있어요. 어떤가요? 우리가 진짜 주인을 따라가느냐, 가짜 누인을 따라가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달라 질 수 있어요. 여러분은 무엇을 따라 살건가요? 오늘 우리가 함게 나눈 말씀을 기억하면서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우리의 진짜 주인이라고 고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5과 나는 믿어요!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신 예수님을!

제  목: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

본  문: 누가복음 1장 35절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표준새번역)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가장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전도사님은 사도신경의 이 고백을 드릴 때마다 생각나는 친구가 있어요.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함께 예배 드리던 친구였는데, 이 친구는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을 잘 믿지 못했어요. 전도사님이나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면 “에이~ 그런 일이 어떻게 생겨요~ 말도 안돼요~ 뻥 아니예요?”하던 친구였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5학년이 되던 때에 아버님이 병에 걸리셨는데, 큰 병원에 의사들이 1년을 못사실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때부터 그 친구는 하나님께 정말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던 친구였는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죽은 나사로도 살리셨던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도 살려주실 줄 믿어요!” “홍해바다도 갈라지게 하셨던 능력의 하나님, 제발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하면서..초등학교 5학년인 친구가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했는지 몰라요. 전도사님이 기억하기로 온 교회 성도들이 그 친구의 아버님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 기도했던 기억이 나요. 자~ 이 친구의 아버지가 사셨을까요? 돌아가셨을까요? 그래요! 살아나셨어요. 의사들은 1년도 못사실 것이라고 말했지만, 하나님께서 고쳐주셔서 그 후로도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셨어요. 그 후로 이 친구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에 대해서 믿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친구들, 교회 나오고 예배를 드린다고 모두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짜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니예요. 교회에 나오고 예배를 드리지만 가짜 믿음을 가진 사람도 많이 있어요. 그러면 어떤 믿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짜 믿음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 진짜 믿음이예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전도사님의 친구처럼 “에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믿을 수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거예요.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구원 받을 수 없어요.


1. 성탄절의 기적

   오늘 우리가 드린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는 시도신경의 신앙고백은 성탄절에 일어났던 놀라운 기적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에이~ 남자랑 결혼도 안한 처녀가 어떻게 아이를 나을 수 있어? 말도 안돼!” “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겠어?”이 고백속에 나오는 성탄절의 기적을 믿지 못해요!

1) 동정녀 마리아가 보여준 믿음의 기적

   오늘 고백 속에 나오는 성탄절에 일어난 첫 번째 기적은 바로 마리아가 보여준 믿음의 기적이예요!! 사실, 그 기적의 주인공 마리아도 처음부터 잘 믿었던 건 아니예요! 마리아도 처음엔 깜짝 놀라서 믿지 못했어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전한 소식은 너무나 놀라운 소식이였거든요.“두려워하지 마세요. 마리아!, 그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예요. 보세요, 이제 당신이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세요! 그분은 우리 모두를 죄에서 구원하실 구원자가 이십니다” 마리아는 깜짝 놀랐어요. “나는 아직 결혼도 안했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남자와 같이 잔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죠?”

   “성령이 그대에게 임하시고, 더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그대를 감싸 줄 것 입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마리아는 그 말을 듣고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순종했어요. 그때 당시 이스라엘의 율법에는 결혼도 안한 아가씨가 아기를 가지면 돌로 쳐 죽이라고 되어 있었거든요. 잘못하면 사람들에게 결혼도 안한 아가씨가 아기를 가졌다고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데도 마리아는 생명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고 순종했던 거예요.

  어떻게 마리아가 이런 고백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마리아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 이예요! 마리아는 말씀으로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못하실 일이 없다는 것을 믿었어요. 100세가 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아들 이삭을 주신 능력의 하나님, 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하나님! 병든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마리아에게는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라면 “에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불가능해!”라고 말할 놀라운 일 앞에 “예!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는 줄 믿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질 줄 믿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가지고 계신가요? 마리아처럼~하나님의 능력을 확실히 믿고 있나요? 우리의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 또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 분이예요! 왜냐하면 그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이시기 때문이지요!

  사도신경을 고백을 드릴 때마다, 여러분도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진짜 믿음을 갖을 수 있도록 기도하세요. 마리아처럼 하나님 나라의 믿음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세요.


2)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기적  

   오늘의 사도신경 고백 속에 나오는 성탄절의 두 번째 기적...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셨다는 사실이예요.

   우리 친구들 궁금하지 않나요? 왜!!! 예수님께서 우리들과 같은 방법으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셨을까요? 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아주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이 땅에 오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바로 하나님) 이기 때문이예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시거나, 천사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내려 오시거나, 무슨 커다란 알에서 태어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뭔가 멋진 방법으로 오셨다면 좋았을텐데, 그랬다면 사람들도 놀라서 예수님을 믿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예요. 예수님께서 여기있는 우리들과 똑같이 엄마의 뱃속에서 10달 만에 그것도 작고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것은 왜 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이땅에 오셨기 때문이예요.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어요.

   예수님은 무슨 슈퍼맨처럼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하늘을 슝~ 날아다니거나 하지 않으셨어요. 우리와 똑같이 배고프셨고, 밤이 되면 잠도 주무셨고, 오랫동안 걸어다니셔서 피곤하기도 했어요. 기쁠 땐 웃으시고, 슬플 땐 울기도 하셨어요.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셨기 때문에 우리들의 아픔도 아시고, 우리들의 외로움도 아시고, 우리들의 슬픔도 다 알고 계세요. 그래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분이세요. (예수님의 인성)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병든 자를 고쳐 주셨고, 죽은 자를 살려 주셨고, 바다 위를 걷기도 하셨어요.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5천명을 먹이기도 하시는 등등등~ 말할 수 없이 많은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기도 하셨죠. (예수님의 신성)

   사랑하는 친구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 이세요!! 죄 때문에 죽게 된 우리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신 것!! 그것이 성탄절의 두 번째 기적이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 마리아를 통해서 오신 것은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오래전부터 약속하신 그대로 오신 것이랍니다. 귀족도 아니고 공주도 아닌~ 보잘것 없는 시골 아가씨,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 화려한 왕궁도 아니고 어떤 부자집도 아닌 가장 낮고 낮은 곳 베들레헴 작은 말구유에 오신 예수님!!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분이 오셨기에 우리는 평화를 얻었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고, 그분이 부활하셨으므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친구들!! 오늘 사도신경의 고백을 드릴 때마다, 성탄절에 일어났던 놀라운 기적들을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래요. 마리아를 통해 놀라운 능력을 행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통해 기적을 베푸시길 원하고 계세요.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마리아처럼 믿음으로 받아들이시는 진짜 믿음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6과 나는 믿어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제목: 예수님 내 마음에 오세요!

본문: 로마서 5장 8절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자꾸 떠오르는 분이 계세요! 그 분이 누구인지 생각하면서 잘 들어 보세요.

   목사님 한 분이 계셨어요. 목사님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한 명 있었어요. 평소에 공부도 잘하고 예의도 바른 어린이였어요. 목사님은 아들을 볼 때마다 너무나 기뻤어요.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 이렇게 좋은 아들을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기도를 했대요. 매일 아침마다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꼭 껴안아 주면서 이렇게 말을 하셨어요. “아들아 사랑해~”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발생했어요. 목사님 집에 놀러왔던 고모의 지갑에서 돈이 없어진 것이에요. 목사님과 식구들은 모두 어떻게 된 일인가 조사를 했어요. 결국에 돈을 훔쳐간 사람이 밝혀졌는데, 도둑은 바로 목사님이 그렇게 사랑하던 아들이었어요. 장난감을 너무나 사고 싶어서 그만 고모의 돈을 훔친 것이에요. 목사님은 몹시 화가 나서 아들에게 종아리를 걷게 하고, 회초리로 때렸어요. 그런데 아들이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목사님은 “왜 울어?!”하고 꾸짖었어요. 그러자 아들은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 않지요? 그래서 지금 화를 내고, 때리시는 거지요?”라고 말했어요. 아들은 평소에 자기를 사랑하던 아빠가 이제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잘못을 했으니 이제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목사님은 말씀하셨어요. “아버지는 네가 착한 일을 할 때는 기뻐하면서 너를 사랑한단다. 그러나 네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에는 마음을 아파하면서 사랑한단다.” 아들은 알게 되었어요. 아버지는 자신이 착한 일을 할 때도 사랑하시지만 혹시 잘못을 해도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말이죠.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머릿속에 딱! 하나님이 생각났어요. 우리 친구들은 아담과 하와 이야기 잘 알고 있죠? 그래요. 아담과 하와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기억나요? 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었어요.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으면 정말 죽을 것이라고 했는데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지키지 않았어요.

   에덴동산은 살기에 너무나 좋은 곳이었어요. 먹을 것도 많고, 즐거운 일만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어요. 무엇보다 하나님과 가까이서 늘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최고였어요. 그런데 그 좋은 곳에 살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지하신 일을 하고 말았어요. 하나님이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 먹은 거예요.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거라는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에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아담과 하와는 그동안 아무 것도 입지 않았어도 창피하지 않았는데 선악과를 먹은 후부터 벗은 몸이 너무나 부끄러웠어요. 서둘러 무화가 나뭇잎을 따서 몸을 가렸어요. 그리고 지금까지는 없던 생각이 들었어요. 갑자기 하나님이 무서워진 거예요. 하나님은 죄를 너무나 미워하시는 분인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에요.


   지금까지는 하나님과 늘 함께 가까이 지냈어요. 그런데 죄를 짓자 하나님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아담과 하와는 풀 속에 몸을 숨겼어요. 우리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부모님을 피해서 자꾸 숨으려는 마음이 있어요. 친구들과 싸우고, 돈을 빼앗고, 숙제는 하나도 안 하고 게임만 몇 시간씩 하고, 보지 말아야 할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부모님이 집에 오시는 시간이 될수록 심장이 ‘두근두근’ 해요. 친구들도 그런 경험이 있죠? 선생님도 그런 적이 있어요.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 것이에요. 이렇게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을 피해 숨으려고 자꾸 하나님과 멀어지게만 돼요. 성경(사59:2)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의 사이가 점점 더 멀어져 간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죄가 나쁜 것이에요.


   그런데 하늘과 땅 그리고 세상에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칠 수 있는 곳이 과연 있을까요? 하나님은 이 세상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세요. 죄를 짓고 숨어있던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이 찾아오셨어요. 그리고 아담에게 물어보셨어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열매를 먹었느냐?” 사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잘못했어요. 하나님 용서해주세요”라고 회개하기를 바라셨어요. 그런데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핑계를 댔어요. 하나님은 처음 약속하신대로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에게 벌을 주셨어요. 그리고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도 쫓겨났어요.

   죄를 지은 사람은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해요.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서 갇히거나, 1년이나 2년 동안 다시 죄를 짓지 않으면 용서해 주는 집행유예를 받거나, 15년이나 무기징역을 받기도 하고,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사형을 받기도 해요. 이렇게 죄를 짓게 되면 당연히 벌을 받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이세상의 법도 잘 지켜야 하지만, 하나님의 법도 잘 지켜야 해요. 만약에 하나님의 법(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과 멀어지고 결국엔 죽게 돼요. 영원히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는 모두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에요. 아담과 하와처럼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그래서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의 선물을 주셨거든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옷을 입어야만 부끄럽지 않았고, 추위도 피할 수 있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에덴동산에 있는 많은 과일도 공짜로 먹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힘을 들여 열심히 농사를 지어야지만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하나님은 비록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지만, 여전히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으로 된 옷을 만들어 주셨어요.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만 선물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주셨어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요? 네, 바로 예수님이에요.

   하나님은 죄를 지은 사람을 보시고 “못된 녀석들! 그래 죄에 종노릇하다가 죽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죄를 지어 죄의 종이 된 사람들을 보시고 너무나 마음이 아프셨어요. 여전히 사랑하셨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셨던 것이에요. 그래서 죄인인 나를 위해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주신 거예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지은 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짓게 될 죄까지도 모두 용서를 받았어요. 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어요. 성경은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사람들이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고,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뜨겁고 무섭고 고통스러운 곳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어요. 고통스러운 지옥에 가야할 우리들이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게 되었어요.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세요. 목사님이 아들이 잘못했을 때도 여전히 사랑한 것처럼 하나님도 사랑하세요. 그 증거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지어서 하나님을 피해 자꾸 숨으려고 할 때 하나님은 말씀하세요. “사랑한다, 내 아들아!” “사랑한다, 내 딸아!” “네 모든 죄를 이미 십자가에서 다 없애버렸단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이 한 가지 있어요. 이미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는 거예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것과 같아요.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교회를 열심히 다녔어도 그 마음에 예수님이 없으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나 대신 십자가를 지셨어요. 원래는 죄인인 내가 못에 박히고 창에 찔려야 하는데, 예수님이 대신 못 박히고 찔리셔서 우리 죄를 없애주신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으면 하나님이 죄가 없다고 인정해 주시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실 수 있나요. 지금 바로 마음을 여는 기도를 하면 돼요. 죄를 고백하고, 용서해달라는 회개 기도를 하면 돼요. 그리고 깨끗해진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셔달라고 기도하면 돼요. 이 고백이 바로 사도신경 중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고백에 담긴 뜻이에요. 우리가 사도신경을 외울 때마다 하나님이 세상에 있는 우리를 많이 사랑하셔서 하나뿐인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을 믿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을 믿는다는 고백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항상 계시다는 고백도 하는 것이에요.


   이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주님인 것을 믿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많이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통해 용서해주신 것을 믿어요? 그렇게 고백하는 친구의 마음속에는 이미 예수님이 들어와 계세요!


7과 나는 믿어요.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제목: 

본문: 요 20:21




8과 나는 믿어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을


제목: 

본문 : 롬8:34



9과 나는 믿어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는 예수님을.


본문: 마태복음 25장 1-13절

제목: “Are You Ready?” “슬기로운 하나님의 자녀, 준비됐니?”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예수님이 천국에 대해 비유로 설명해주신 부분이에요. 비유는 대상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그것과 비슷한 대상을 빌려 표현하는 것을 말해요. 예수님은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천국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를 사용해서 설명해주신 것이에요. 예수님은 천국이 어떻다고 말씀하셨어요?

   천국은 마치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명의 처녀와 같다고 하셨어요. 열 명의 처녀들이 자기들의 신랑을 맞이하러 갔다는 이야기일까요? 아니에요. 이 비유는 예수님이 사셨던 유대 풍습을 말해주고 있어요. 신부의 집에서 혼인잔치가 벌어지는데, 신부의 들러리들이 신랑을 신부집으로 안내하려고 저 멀리 나가서 기다렸어요. 신랑을 맞이해야 하는 들러리이기 때문에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면 길을 안내할 수 없으니까 등불을 미리 준비했던 것이에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열 명의 처녀는 바로 신랑을 기다리는 들러리들이에요. 그러니 신랑이 늦어져 어두워지면 당연히 등불을 켜고 안내해야 할 책임이 있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열 명의 처녀가 모두 똑같이 등불을 준비했지만, 다섯 명은 기름을 준비했고, 나머지 다섯 명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했어요. 그리고 기름을 준비한 다섯 명은 슬기롭다고 하시고, 나머지는 어리석다고 하셨어요. 당연한 일이에요! 신랑이 늦어져 밤이 되면 어둡기 때문에 등불이 필요하고, 그 등불을 밝히기 위해서는 기름이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결과는 우리가 예상한 대로 슬기롭게 기름까지 준비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고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러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가 뒤늦게 기름을 준비해 왔지만 이미 혼인잔치의 문은 굳게 닫혀 버렸어요.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문을 열어 달라고 애원하였지만, 신랑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어요. 예수님은 이 비유의 이야기를 마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어요.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돼요. 예수님이 열 명의 처녀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제일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은 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리고 그 날과 그 시각을 알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날을 모른다고 하신 것일까요?


   오늘은 사도신경 중에서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고백이 무슨 뜻인지 알아볼 거예요. 이 고백은 “나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을 믿어요!”라는 고백이에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어요. 그 때는 그냥 오시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와 함께 놀려고 오시는 것도 아니에요.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심판하러 오신다고 말씀하셨어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한다는 말은 바로 하나님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사람과 하나님을 믿지 않아 영원한 죽음을 얻게 되는 사람을 구별한다는 말이에요.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그런데 심판이라고 하니까 막 두렵고 떨리고 걱정되나요? 혹시 그런 친구가 있더라도 이젠 안심해도 돼요. 왜냐하면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 심판의 날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거든요. 열 명의 처녀의 이야기는 바로 예수님이 심판의 날을 우리가 잘 준비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신 말씀이에요.

   혼인잔치는 바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 심판과 구원의 때를 말해요. 그리고 열 명의 처녀가 기다리는 신랑은 예수님이고, 그 열 명의 처녀가 바로 우리예요. 예수님은 우리가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될 수도 있고,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말씀해 주신 거예요. 그러면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될 수 있는 방법은 깨어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일까요? 날마다 잠을 자지 않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졸리면 눈에 성냥개비를 꽂아서라도 눈을 부릅뜨고 기다리라는 것일까요? 아니에요.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잠을 자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항상 준비해야 할 것을 강조하신 것이에요.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는 그 구원의 날을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구체적으로 우리가 준비하고 행하는 것을 말해요. 그 모습이 바로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에요.

   그럼, 우리는 어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까요? 제일 먼저 우리는 믿음의 준비가 되어야 해요. 지금까지 사도신경을 고백한 것처럼, 전능하시고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빠를 믿고,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해요. 그 믿음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우리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신6:5)이에요. 그 사랑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해. 그리고 믿어!” 이런 식으로 머리로만 입으로만 하는 고백과는 달라요. 한 번 했다가 잊어버리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마음속에 고이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을 통해 반드시 드러나게 돼있어요.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마음을 자꾸 감출 수가 없는 것처럼, 그래서 계속 말을 걸고 만나려고 하고 선물을 주려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의 모습으로 표현되어야 해요. 우리가 예배하는 것, 기도와 찬송과 말씀을 읽는 것 등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요.

  이렇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져야 해요. 그것은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의 성령의 9가지 열매(갈5:16-24)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같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고전13:13)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같고, 기도와 감사(살전5:16-18)의 생활을 하는 것과 같아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여러 가지 꼭 있어야 할 것들이 있어요. 예수님이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믿음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신 것이에요. 그리고 그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라고 말씀하신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도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신랑이 언제 올지 몰라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던 것처럼,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과 때를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성경에 보니까 그 날과 때는 오직 하나님만 알고 계신다고 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리 준비하며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에요. 어떤 친구들은 치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미리 정확하게 가르쳐 주면 좋을 것을 말해 주지 않는다고 말이에요. 그러나 정확한 때를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분명하게 일어날 그 때를 준비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한 것이죠!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미리 기름을 준비한다면, 신랑이 언제 오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등불을 켜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법이니까요.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깨어 있으라고 하신 것은 바로 우리가 날마다 준비하라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하신 거예요.


   우리 친구들은 심판하러 다시 오시는 예수님 앞에 설 준비가 되어있나요? 떳떳하게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나요? 만약 오늘 밤 예수님이 오신다면 우리는 환하게 웃으며 “예수님, 어서 오세요!”라며 반갑게 맞이할 수 있나요? 혹시 주춤하는 친구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요.

   비록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우리가 언제 죽을지 그 때를 알지 못하지만, 이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있잖아요. 바로 항상 깨어서 준비하는 자세예요. 우리가 할 일은 오늘 알게 된 사실, 믿음을 잘 지키고 가꾸는 믿음의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에요.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이에요. 우리 친구들은 모두 아는 것을 실천하는 어린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잘 준비된 하나님의 어린이가 되기를 소망해요.


   초대교회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마라나타”라고 인사를 했어요. 마라나타는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뜻의 말이에요. 우리 친구들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믿음과 행동을 잘 준비한다면, 심판하러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을 알지 못하더라도 “마라나타!” “예수님 어서 오세요!”라고 당당하고 기쁘게 말할 수 있을 거예요!


10과 나는 믿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하나님을


제목: 성령님, 고맙습니다.

본문: 사도행전 1:6-11


(입을 가리고 바람소리를 낸다: 마이크에 가까이대로 휘~익 바람 소리를 낸다.)

사람들이 모두 하늘을 보고 있어요.  사람들은 멀어지는 예수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끝까지 보고 있었어요.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고 이제는 구름에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그때 갑자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어요.

“갈릴리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지금 너희가 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어요.


제자들은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기 시작했어요. 며칠 전에 예수님과 함께 했던 말이 제일 먼저 생각났어요.   

"주님, 주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로마제국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알 수 없는 말을 하셨어요.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아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세금을 내고 나라에서 하는 커다란 공사장에 나가서 일을 해야했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어요.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 나라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들만큼 괴로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유대인을 구해주고 로마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실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있었어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 언제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실 것인지 모두들 궁금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그렇게 물어봤던 거예요. 근데 엉뚱하게도 예수님은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을 하시고는 잘 알지도 못하는 ‘성령’이라는 것을 말씀하실 때 정말 알쏭달쏭했어요.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죽은 줄로만 알고 실망해서 집에 꼭꼭 숨어 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너무 좋아했었어요. 그리고 예수님이 정말 이스라엘을 구해 주실 줄 알았는데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으니 기운이 쭉 빠졌어요. 여러분도 기운이 쭉 빠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을 때가 있었나요? 혹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무섭고 싫어서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나요?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죄목으로 붙들려 갈까봐 꼭꼭 숨어서 집밖에서 한발자국도 나오지 못하고 숨어 있었어요. 그런데 안식일 다음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피해서 모여 있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였어요.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이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알고 계셨어요. 그리고는 40일 동안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힘과 용기를 주시고,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려 주셨어요.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사람들은 달라졌어요. 그럼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해 주었어요. 그럼 성령님과 제자들이 만나는 그 감동적인 장면을 한번 볼까요?


제자들은 예수님과의 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서로 모여서 예수님이 하신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 가르쳐 주신대로 서로 사랑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봐주면서 살아가가고 있었어요. 그날도 오순절이라서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있을 때에 하늘에서 (입을 가리고 바람소리를 낸다: 마이크에 가까이대로 휘~익 바람 소리를 낸다.)휙~ 하는 급하고 강함 바람 소리가 나더니 제자들은 갑자기 이상한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평소에 제자들이 몰랐던 나라의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겨서 구경하러 몰려들었다가 “저 사람들이 유대 사람인데 어떻게 남의 나라 말을 알 수 있느냐.” 라고 이상하게 여겼어요.         

그러면서 각 나라의 말로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성령님은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직접 이야기하고 사귈 수 있도록 도우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지혜와, 용기와, 힘을 주시는 분이예요.


성령님을 만난 뒤로 제자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냐 구요?

마음에 한없이 평화가 넘치고 기쁨이 샘솟았어요. 그래서 무엇이든지 기쁜 마음으로 일했고, 무엇보다도 자기가 만난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앞장서서 증거하는 증인들이 되었어요.


여러분중에 혹시 제자들과 같은 성령체험을 한 친구들이 있나요? 꼭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아도, 교회에만 오면 마음이 편안하고 기쁘다는 느낌을 받은 친구들이 있나요? 그것이 바로 성령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표시예요. 또, 여러분이 실망하고 낙심되었을때 기도하며 성령님의 능력을 구하면 우리도 제자들처럼 기쁨을 얻고 다시 일어날 용기를 갖게 된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끔찍이 사랑하셔서 ‘성령님’을 선물로 주셨어요. 우리가 그 선물을 잘 누린다면 정말 최고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거예요.

 오늘 집으로 돌아가며 ‘내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쁜가?’를 속으로 물어보세요. 그리고 기쁨과 감사가 없는 친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친구가 있다면 ‘성령님,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11과 나는 믿어요.

    거룩한 교회와 우리가 서로 교제하는 것을.

본문: 고린도전서 3장 16-17절

제목: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모르니?


   마태복음의 제일 마지막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명령이 있어요. 우리 함께 찾아서 읽어 보도록 해요.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28:18-20). 아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지켜 행하게 하라고 하셨어요. 더불어 제자들과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해 주셨어요. 예수님이 부탁하신 이 명령은 바로 우리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알려서, 그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지키게 되면 바로 우리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때문이에요. 이 세상에 점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늘어나게 하는 일은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예요! 우리가 전도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에요.

   우리 친구들도 전도해 본 적 있죠? “친구야, 이번 주일날 우리 교회 같이 가자~” 이렇게 말했는데, 친구가 “교회가 뭐하는 곳인데?”라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할 거예요? 우리 친구들은 교회가 어떤 곳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나요? 이것은 중요한 문제예요. 우리가 사도신경을 외우며 믿음을 고백할 때마다,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 믿음의 고백을 하는 우리가 정작 교회가 어떤 곳인지 모른다면 진정한 고백을 한다고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우리 친구들은 지금 교회를 다니고 있고, 오늘도 교회에 나왔는데, 교회가 정말 뭐예요? 오늘은 교회가 어떤 곳인지,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우리 친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도록 해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셔서 믿음이 약한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말씀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하셨어요. 그 중에 한 가지 가장 중요한 명령 중 하나가 흩어지지 말고 함께 모여서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 것이었어요(행1:1-11).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그들은 요한의 다락방에 모였는데, 약 120명 정도가 모였어요. 이렇게 모인 것이 교회의 처음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 교회예요. 이처럼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에요.


   우리는 그런 교회를 거룩하다고 말해요. 거룩하다는 말은 다른 모임이나 장소와는 구별된다는 뜻이에요. 한 번 생각해 봐요. 우리가 사는 집은 부모님이 계신 곳이면 안방, 누나나 형 그리고 내가 있는 곳에 따라 각자의 방이 되고, 밥을 먹기 위해 있는 곳은 부엌이고, 씻거나 볼 일을 보는 곳은 화장실이에요. 이렇게 각기 다른 이름이 붙는 것은 그 곳에 누가 있느냐, 어떤 목적이냐에 따라 달라지게 돼요. 교회가 학교나 학원, 놀이터와 구분이 되는 것도 같은 이유예요. 교회는 오직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곳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주인을 목사님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불교의 ‘절(사찰)’은 그 절의 주지라는 중이 있어 수입금을 마음대로 관리하는 곳이 있대요. 그러나 우리 교회의 주인은 목사님이 아니라 어디든지 하나님뿐이에요. 교회는 예수님이 부르신 사람들이 모여 세워진 곳이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에 교회가 세워진 것이에요. 거룩한 공회라고 고백하는 것도 죄 용서함 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이는 곳이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기 때문에 거룩한 공회라고 고백하는 것이에요.


   이렇게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도 목적이 있어요. 왜 교회를 세우셨을까요? 돈을 벌기 위해 세우셨을까요? 아니면 6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주일날은 이렇게 모여서 서로 즐겁게 쉬라고 만드셨을까요? 교회가 하는 일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리는 일이에요.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고, 찬송을 드리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에요.

   두 번째는 가르치는 일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배워야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바르게 믿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 친구들은 영어를 배운 적도 없는데 잘 할 수 있나요? 축구하는 법이나 규칙을 모르는데 축구를 잘 할 수 있을까요? 그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 수 있는 길을 아는 것과 같아요.

   세 번째는 전도하는 일이에요. 처음에도 말했지만 전도는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명령이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전도해야 하는 것이에요. 전도는 하나님이 정말로 기뻐하시는 일이에요!

   네 번째는 교회 안의 성도들이 서로 교제하는 일이에요. 성도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말하고, 교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서로 가깝게 사귀며 지내는 것을 말해요. 예수님이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이죠. 교회는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이 서로에게서 넘쳐나는 곳이어야 해요.

   예수님은 로마 군병들에게 잡히던 날 밤에, 제자들을 불러 놓고 떡을 떼어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시고 또 포도즙이 담긴 잔을 나누어 주셨어요. 그리고 “이 잔은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어요. 떡은 예수님의 몸을, 포도즙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나누게 된 한 몸이라는 뜻이에요. 한 번 주위를 둘러보세요. 교회에는 정말 많은 친구들이 있어요. 그리고 선생님과 많은 어른들도 계세요. 이렇게 서로 다르게 생긴 많은 사람들 모두가 모여서 한 몸을 이루고 있어요. 우리 몸에는 눈, 코, 귀, 머리, 손등 많은 부분이 모여 한 몸을 이룬 것처럼 ○○이, □□이, △△이 우리 모두가 모여서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것이에요.

   그런데 가끔 보면 교회에 나와서 싸우는 친구들이 있어요. 친구끼리 서로 욕하고 싸우는 것은 잘못된 일이예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이죠. ○○이와 □□이가 싸우게 되면 ○○이의 마음도 아프고, □□이의 마음도 아프게 되겠죠? 뿐만 아니라 △△이의 마음도, ☆☆이의 마음도 모두 아프게 될 거고, 결국 선생님이나 부모님까지 아프게 되어, 온 교회가 함께 아프게 될 거예요. 또 그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무지 아프실 거예요. 우리 친구들은 모두 친하게 지내며, 서로 서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하나님의 어린이죠?

   어느 날 눈이 입에게 말했어요. “너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매일 먹기만 하고 있으니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옆에 있던 손도 맞장구를 쳤어요. “그래, 저 입은 혼자 맛있는 것을 다 먹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 저런 친구는 혼이 좀 나야 돼.” 옆에 있던 모든 친구들이 놀리기 시작했어요. 화가 난 입은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았어요. 그러자 꼬르륵 꼬르륵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어요. 점점 기운이 없어지자 눈은 앞을 보기 힘들어 지고, 손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게 되었어요. 그러자 옆에 있는 친구들이 입에게 사과를 하고 서로 친하게 지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끼리는 서로 돕고, 서로 위해 주어야 해요.


   조금 전에 교회가 하는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전도라고 한 것 기억나요? 전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친구들을 교회로 초대하는 것을 말해요. 생일날 함께 기뻐하기 위해 집으로 친구를 불러 축하하고 선물을 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교회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교회로 초대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하나님을 믿는 기쁨을 전해야 돼요.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있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한 번 정리해 볼까요? 교회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에요. 거룩한 하나님이 주인이신 곳이기 때문에 교회는 거룩한 곳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거룩한 사람들이에요. 교회는 예배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전도하고, 서로 사랑하는 곳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에만 갇힌 분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교회는 보이는 교회의 공간 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변화된 우리의 삶에도 세워져요. 변화된 우리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의 삶에 바로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계신 곳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도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에요. 사도 바울이 우리의 몸은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교회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예요.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 친구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분명해졌어요. 이제 우리는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어요라는 고백을 할 때마다 교회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바로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믿으며 교회로서 살아가도록 계속해서 다짐해야 돼요. 계속 다짐한다는 말은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하며,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을 안 믿는 친구들을 전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해요. 그럴 때 우리 친구들 한 명 한 명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가 되는 것이에요. 세상에 움직이는 교회 말이에요! 이제 하나님의 교회인 것을 알겠죠?


12과 나는 믿어요.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제목: 십자가에 숨어있는 사랑과 용서

본문 : 갈 1:4


방학이 지나면 아이들이 한번쯤은 시골로 놀러가서 좋은 추억을 만들고 오잖아요. 그래서 어느 날은 선생님이 어느 친구한테 물었어요. 방학때 시골에 가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왔냐구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아~ 선생님 말도 말아요. 끔찍했어요.”그러는거예요. 그래서 무슨 일인지 들어봤더니 대충 이런 내용이었어요. 


재현이는 동생과 함께 시골 할머니댁에 놀러갔다가 옆집 아저씨께서 만들어주신 새총을 가지고 놀았어요. 그런데 재연이는 새총 쏘는 연습을 하다가 그만 실수로 할머니가 아끼시는  오리를 죽게 했어요. 오리가 죽은걸 할머니가 아신다면 얼마나 섭섭해 하실지 생각하니까 할머니의 꾸중이 무서워졌어요. 그래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오리를 뒷산 땅 속에 묻어서 감추었어요. 근데 오리를 묻고 나오려니까 나무 뒤에서 여동생 재인이가 자기가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재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는게 아니겠어요?

다음날 점심 식사가 끝나고 할머니는 “재인아, 설거지하는 것 좀 도와줄래?”하고 동생을 부르셨어요. 재인이는 “오늘은 오빠가 부엌일을 도와 드리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지 오빠?”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재인이는 재현이에게 작은 소리로 속삭였어요. “오리를 기억하지?” 그래서 재현이는 설거지를 했어요. 잠시 후 할아버지께서 강가에 낚시하러 가지 않겠느냐고 재현이와 재인이를 데리고 나가려고 했을때, 할머니는 “재인이는 저녁 준비하는 것을 좀 도와줄래?”라고 말씀하셨어요. 재인이는 재현이를 보며 씩 웃으면서 말했어요. “할머니, 오빠가 저녁 준비를 돕고 싶다고 했어요.” 라고 이야기하고 또 한번 재인는 재현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어요. “오리를 기억하지?” 재인이는 할아버지와 낚시하러 갔지만 재현이는 집에 남아서 할머니의 저녁식사 준비를 도왔어요.

재현이는 며칠 동안 이런 식으로 동생 재인이의 일까지 힘겹게 하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재현이는 할머니에게 자신의 잘못을 자백했어요. “재현아, 다 알고 있었단다. 너를 용서하마.”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씀 하셨어요. “나는 재인이가 너를 노예로 삼는 것을 네가 얼마나 견디는지 두고 보았지.”라고 말씀하셨데요.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그동안 자기가 조마조마하게 잘 놀지도 못하고 눈치만 봤던게 그렇게 억울 할 수가 없었데요. 

선생님은 이 얘기를 들으면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생각났어요. 우리는 살다가도 많은 실수와 죄를 저지르는데 그때마다 우리 마음속에 사탄이 찾아와서 “나는 니가 지난 여름에 저지른 잘못을 알고 있어~. 벌써 잊은건 아니겠지?” 하고 옛날 일을 자꾸 기억나게 만들고 그 일 때문에 괴로워하게 만들어요.

성경구절을 다 함께 찾아서 읽어볼까요? 요한일서 1:9절 말씀을 함께 봐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우리들의 이런 나약함을 다 아시고 죄를 우리 스스로 하나님 앞에 말하라고 말씀하세요.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우리의 죄를 대신 용서해달라고 말씀하신 것도 우리가 죄를 짓고 무거운 마음으로 사는 것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예요.

그러면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 모두 솔직하게 말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요?

먼저,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해요. 우리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보통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숨어버리는 이유가 사람들이 나의 잘못을 알면 이제 더 이상 나를 상대해 주시 않을까봐 겁나서 이야기를 못하거든요. 하지만 하나님은 달라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언제든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우리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고 하나님과 함께 슬퍼하기를 원하세요.

두 번째로 하나님은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분임을 알아야 해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고백할 때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용서를 받고 난 다음 우리의 행동이예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빌었으면, 내가 잘못한 그 사람 앞에서도 용서를 구해야해요. 왜냐하면 내가 잘못을 저질러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다면 그 사람에게 우리의 미안함 마음을 이야기하는게 순서이기 때문이예요. 십자가를 보세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선으로 긋는다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긋는 선은 하나님께 받은 용서가 이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용서를 해 주고, 용서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예요.

이처럼 우리는 서로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면서 살아가게 되어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신 그 사랑과 용서를 알고 믿는다면 우리 모두는 달라질 수 있어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에게 용서의 의미를 이렇게 가르쳐 주세요.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용서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고 용서해라



13과 나는 믿어요.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제목: 우리들의 진짜 소망

본문 : 요한복음 11장 26절

          


   전도사님이 살고 있는 동네의 놀이터에는 항상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어요. 늘 지나가면서 보면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소꿉놀이도 하고, 모래 장난도 하고, 미끄럼틀이나 그네를 타기도 하면서 신나게 놀고 있어요. 그런데 저녁이 되고 “애야~! 저녁 먹어라!” “@@아! 이제 그만 들어와라!” 라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면 아이들은 지금까지 놀던 것들을 다 내려놓고 하나씩 둘씩 집으로 돌아가요. 아무도 “난, 여기 놀이터가 너무 좋아! 그네도 있고 미끄럼틀도 있고, 모래도 있고, 시소도 있고.....여기서 밤 늦게까지 놀꺼야!! 난 집에 안가고 계속 여기서 살꺼야!” 하는 친구는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 학교에서 애버랜드로 소풍을 갔는데, 놀이기구 타고 노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집에도 안가고 계속 놀이동산에서 사는 사람은 없겠죠? 소풍이 아무리 재미있고 신나도 시간이 되면 다 집으로 돌아가야만 해요!! 마찬가지예요!! 우리들의 진짜 집은 이 세상이 아니라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신 곳! 바로 천국이예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마치 놀이터에서 노는 것과 같고 소풍나온 것과 비슷해요.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다가 엄마, 아빠가 부르시면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소풍 나온 아이들이 아무리 신나고 재밌어도 날이 저물고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우리들도 언젠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르시면, 우리들의 진짜 집인 하늘 나라로 가야하거든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한 번은 죽게 되어 있어요. 돈이 많다고 공부를 잘 한다고 안 죽고 영원히 살 수는 없겠죠. 나이가 들고 시간이 되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죽을 수 밖에 없어요. 이 세상에서의 생활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고 좋아도 100살, 200살까지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답니다. 언제인지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전도사님도, 요기 앉아있는 친구도, 저기 앉아있는 선생님도...언젠가는 죽게되요. (공부를 잘하는 친구도 공부를 못하는 친구도, 잘사는 사람도, 못사는 사람도, 건강한 사람도 병든 사람도....)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니까 그냥 대충 대충 살다 죽으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또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또 태어난 다고 믿기도 해요! 착한 일을 한 사람은 더 좋은 곳에서 부자로 태어나고, 나쁜 일을 한 사람은 동물이나 벌레로 태어난다고 믿어요. 그래서 착한 일을 많이 하면 구원받는 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정말 그럴까요? 우리가 예전에 드렸던 사도신경 신앙고백을 잘 기억하고 있겠죠? 우리가 드렸던 사도신경의 고백 중에서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라는 부분이 있었지요. 그때 우리가 배웠던 것처럼 사람이 죽으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태어나고 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요. 그 믿음에 따라 어떤 사람은 지옥에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거예요. 전도사님이 이렇게 쫘~악 둘러보니까, 여기 앉아있는 우리 친구들은 모두 천국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옥에서 영원히 살 불쌍한 친구는 한 명도 없는 것 같아요.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이 나와요. 무슨 약속이냐구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올라 가셔서 우리들이 있을 집을 준비해 주신다고 하는 약속이예요. 하늘나라에 우리가 있을 집이 다 준비되면, 우리를 그곳으로 부르셔서 참 좋으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약속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돌아가야 할 진짜 집이 있어요. 

   전도사님은 전도사이라서 다른 사람보다 많은 장례식에 가보았어요. 믿는 사람의 장례식에도 가보았고, 믿지 않는 사람의 장례식에도 가보았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두 장례식에는 큰 차이가 있더라구요. 어떤 차이냐구요? 두 장례식 모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기 때문에 슬픈 것은 같아요.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장례식에는 슬픔보다 더 큰 소망과 기쁨이 있었어요. 지금은 잠깐 헤어져서 슬프지만, 언젠가 하늘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소망과 기쁨 말이예요.

   예수님께서는 죄 때문에 죽을 수 밖 에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고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어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의 모든 권세를 완전히 깨뜨려 버리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왜요? 우리가 죽으면 예수님처럼 부활해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되니까요~

   세계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에 본 회퍼라는 목사님이 나찌 정권에 반대 하다가 잡혀서 죽게 되었어요. 험악하게 생긴 독일군이 감방을 향해 소리쳤어요. “죄수 본회퍼, 우리를 따라와!” 감옥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본 회퍼 목사님이 이제 사형장으로 끌려간 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 때 같은 감옥에 있던 한 사람이 본 회퍼 목사님을 향해서 “목사님, 이제 마지막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인사를 했어요. 이 말에 본회퍼 목사님은 미소를 머금고 평화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말했어요. “이것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이 이제 곧 시작 될 것입니다.” 라고 대답셨어요.    

   사랑하는 **교회 친구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죽음이 끝이 아니예요. 죽음은 전혀 새로운, 그러면서도 놀랍고 영광스러운 새 삶의 시작일 뿐이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부활과 영생 (영원한 생명)을 믿기 때문이지요. 우리들이 내가 언제 죽는 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들의 생각과 지식으로 하늘나라가 어떤 곳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어요. 그렇지만 전도사님은 그 곳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고 기쁘게 살고 있어요.

   전도사님은 가끔 이런 상상을 하면서 혼자서 행복해 한답니다. 어떤 상상인지 궁금하다구요? 그럼 우리 친구들도 눈을 감고 전도사님이 말하는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언젠가 전도사님이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고 죽음의 문을 지나 하나님 나라에 도착하면, 성경에 나오는 많은 믿음의 주인공들이 박수를 치면서 전도사님을 환영해 주는 거예요. 천사들과 함께 우리의 사랑하는 예수님도 두 팔을 벌려서 “어서 와라! 잘 왔다! 내가 널 기다리고 있었단다!” 하시면서 반갑게 전도사님을 맞아 주시고 말이지요. 어때요! 여러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나요? 너무 멋지지 않나요?

   우리가 사도신경의 고백을 드릴 때마다, 부활과 영생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길 바래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과 기쁨이 여러분 마음속에 가득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예화는 어떨까요? 뽀너스*^^*) 어느 날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함께 놀았어요.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만나자."고 말했어요. "내일이 뭔데?" "캄캄한 밤이 지나면 밝은 날이 오는데 그게 내일이야." 하루살이는 메뚜기의 이 말을 듣고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요. 이 메뚜기가 어느 날 개구리와 함께 놀았습니다. 개구리와 함께 신나게 노는데 개구리가 "이제 날씨가 추워지니까  그만 놀고 내년에 만나자."고 했어요. "내년이 뭔데?" 내년은 겨울이 끝난후 날이 따뜻해지려고 할 때 오는 거야." 그러나 메뚜기는 개구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어요. 사랑하는 친구들 사람이 죽은 뒤에는 영생이 있어요. 그러나 이 세상밖에 모르는 사람은 하루살이가 “내일이 뭔데?”라고 묻는 것처럼, 메뚜기가 “내년이 뭔데?”라고 묻는 것처럼 "영생이 뭔데?"라고 말해요.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영생이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을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친구들!! 그 사실을 그냥 알고서 끝나면 안돼요!! 정말로 믿어서 영생을 누릴 수 있어야 해요.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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