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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와 두려움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0. 13. 22:36

]미래에 대한 두려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장 7절)

사탄의 목적과 그에 따른 방법


사탄에게는 단 하나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사역의 평판이 나빠지게 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하는데 사탄은 단념하는 법이 없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나님의 사역을 불신하게 만드는데에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는 일을 일관성 있게 일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마귀는 그의 진행 과정과 접근 방법을 바꾸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셨을 때, 그는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세상은 완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그의 질투와 악의로 “하나님의 사역”을 망쳐놓고 못쓰게 하는 것과 그의 모든 노력을 “특별히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최고의 사역”에 집중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사탄에게 속은 사람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뛰어나신 영광에 어떤 문제될 것도 없었습니다. 창조보다 더 위대한 구속의 사역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탄은 이제 구원의 후사들인 기독교인들을 공격할 특별한 목적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를 침체시켜 이 자랑스런 구원은 상상의 파편에 지나지 않으며 이 구원을 믿는 우리는 ‘교묘하게 고안된 우화들을 믿는 것이라’는 인상을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

“헛된 후회”를 벗어난 사람들에게 오는 다른 어려움

만일 마귀가 우리를 과거에 집착하게끔 몰아넣는 일에 실패하면, 우리는 사탄이 그의 절차를 완전히 바꾸어 미래를 바라보고 두려워하게 한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보편적인 상태로서 겉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는 것 같으면서 이것들(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의하여 동일한 사람들에게 동일한 기본적인 상태를 산출합니다.

과거에 대하여 올바른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곧 바로 미래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미래에 관하여 그리고 앞에 가로놓인 문제에 대하여 두려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항상 현재에 침체되어 있게 됩니다. 디모데 또한 이 상태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것 때문에 그에게 이 두 서신을 써 보낸 것이 분명합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원인과 그 모습


기질


원인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기질(그 특별한 성격)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동일한 일반적 성격들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적인 부분들은 경우에 따라 엄청난 변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의 기질들은 다양하고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는 지금 기독교인들입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될 때 그런 모든 차이는 헐어졌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중생은 사람의 기질을 바꾸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자아)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중지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의 근본적인 인격은 우리의 개종전과 동일하게 남아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은사들을 성령을 통하여 다양한 형태로 나누어 주십니다. 우리는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그것들을 다르게 합니다.


선천적으로 소심한 사람들의 모습

그들은 항상 기독교인들에게 부딪치는 힘이 드는 과업의 본질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개종한 후, 그들은 이것이 고귀한 부름이며 신앙의 선한 싸움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과업의 위대성과 자신의 결핍과 부족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 그들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혹은 어떤 특별한 일에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으면서 미래에 대한 일반적인 두려움으로 고민합니다.


영적침체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 종종 상상적인 두려움 - 으로 기인합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를 사로잡음으로서 우리를 완전히 마비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의 극복


일반적 교훈


정당한 선견지명과 마비된 선견지명 사이의 구분선을 어디에다 그을 것인가를 정확히 발견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은 정당한 점(이성적 사고)까지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점을 넘어서게 되면 그것은 걱정과 근심으로 화하며 마침내는 마비되어 절룩거리게 됩니다.


성경(딤 1:7)의 교훈

바울은 책망과 회고로 교훈을 우리에게 주면서 좀더 고도의 수준에 이르는 이성을 내세웁니다. 그는 디모데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라고 책망합니다. 디모데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과 하나님이 우리 안에 지금도 행하시고 계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하여야 할 일은 여러분 자신을 굳게 붙잡아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자신을 불일 듯 하게하며 자신의 모험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며 자신에게 말할 수 있도록 하여야합니다.


바울은 이제 디모데에게 할 일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기억하는 일이요, 또한 이것 때문에 생에 대한 전체적 전망과 미래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의 영을 주셨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의 능력을 생각해야합니다.

우리의 기질이 다르다할지라도 우리의 기질들은 과업을 대면함에 있어 전혀 어떤 차이를 주지 않습니다. 기질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기질은 더 이상 지배하지를 않습니다. 성령님이 지배하십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기질을 통하여 여러분 자신의 독특한 방법대로 일할 수 있도록 가능케 하여 주십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두려움과 떨림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기질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능력에 의해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소심한 사람이 모든 것을, 심지어는 죽기까지라도 할 수 있도록 그에게 주어진 능력을 의미합니다.

다음으로 언급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두려워하는 영의 중요한 원인은 결국 자아(자기사랑, 자기관심, 자기보호)입니다. 바로 여기(자아)에 사랑의 영이 들어오십니다. 이것만이 자신에게서 벗어날 유일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아를 우리 자신이 다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고생시키면 시킬수록 우리의 자아는 더욱 더 우리를 괴롭힐 것입니다.

자아를 벗어나는 유일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생각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것을 가능케 해주십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타락한 우리를 구속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들의 필요, 그들의 관심에 대하여 생각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이 사랑의 영에 삼키움을 당하면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는 그리스도 밖에는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근신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두려워하는 영에 대한 “자제, 수양, 균형된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뱀처럼 지혜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 것을, 필요하다면 여러분을 자제하도록 하기도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는 능력과 사랑과 근신의 영이십니다.

미래와 그에 대한 생각이 여러분을 사로잡도록 하는 대신에 여러분이 누구이며 어떤 자인가를, 또한 여러분 안에 계신 영이 어떤 분이신 것을 자신에게 말하며 자신에게 상기시켜 주십시오. 그리면 여러분은 두려움이 없이 미래를 준비하게 되며 현재를 살아가면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분에게 영광 돌리려는 단 한 가지의 욕망을 향하여 굳건히 전진하여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