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장 토요편지

[스크랩] 탈무드에서 배우는 돈의 지혜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0. 19. 18:45
탈무드에서 배우는 돈의 지혜
 

 

 

저 자  닐턴 본더

 

닐턴 본더는 브라질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미국 뉴욕소재 유대교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랍비로 서품되었다. 그는 브라질에서 녹색 랍비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환경 분야에서의 그의 활발한 활동에 기인한다. 또한 남미의 가장 큰 인권단체인 종교연구소 회장으로 있다.

 

 

 

Short Summary

 

우리는 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숫자의 무게에 짓눌려 제대로 생각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것은 아닐까? 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있으면 좋고, 없으면 할 수 없지만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돈에 대한 철학이 빈곤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부의 편재, 가진 자의 천박하기 그지없는 소비 행태, 물질 만능주의로 인한 가치관의 혼란, 무질서 등은 해묵은 논쟁거리임에도 여전히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해답을 얻기 위해선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은 돈과 관련된 문제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예사롭지 않은 접근을 시도한다. 그러나 어렵지 않으며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강요도 없다. 적절한 일화를 통해 우리에게 충분한 울림을 주면서 서서히 돈에 대한 지혜의 눈을 뜨게 만든다. 그리하여 우리가 누구이며, 진실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깨닫게 한다. 거친 물질세계에서 살아가면서 세상에 봉사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 중의 하나는 소유 개념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서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경제활동에 대하여 좀더 넓고 윤리적으로 보는 시야를 제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한다.

 

 

 

차 례

 

 

1장  마음과 주머니 사이의 진실한 거리 보기

 

2장  부를 가로막는 장애물

 

3장  보이지 않는 돈의 사이클 이해하기

 

4장  소유하지 않는 부를 부르는 방법

 

5장  적게 가지고 풍요롭게 사는 법

 

6장  세상 살아가기

 

7장  돈을 부르는 수호천사

 

8장  부의 또 다른 얼굴

 

9장  죽을 때 당신은 가져갈 수 있습니까?

 

10장 내세에서의 돈

 

 

 

 

1장  마음과 주머니 사이의 진실한 거리 보기

 

 

가장 긴 길은 우리 가슴에서 주머니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유대 격언이 있다. 우리가 삶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삶이 주는 의미를 보지 못한다면 가슴에서 주머니까지 도달할 수 없다. 돈이란 흔히 더러운 대상으로 간주된다. 또한 돈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사람들은 부끄러워한다. 사람들은 섹스에 관하여 친한 친구와 이야기하는 데는 별로 어려워하지 않으면서 예금을 얼마나 하며 월급이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를 꺼려한다. 심지어 아이들도 부모의 수입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돈은 악한 것이 아니다. 유대인은 돈을 존중한다. 다만 그 돈은 생존의 가능성을 다양화시키고 영적인 공부와 학습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게 하는 부패하지 않은 진짜 돈이다.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돈이 신성한 주제가 될 수 있는가? 어떤 돈이 내세 혹은 천국에서 화폐로 사용될 수 있는가?

 

 

잘 차려진 식탁 앞에서도 먹지 못하는 사람들

 

한 랍비가 연옥과 천국을 방문하도록 허락되었다. 처음에 그는 연옥으로 인도되어 괴로움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그 사람들은 고급스러운 은 식기와 사기 그릇에 최고의 음식물이 담겨진 호화로운 연회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괴로워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좀더 가까이 다가갔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팔꿈치가 바깥쪽으로 굽어 있어 음식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갈 수 없어서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랍비는 다시 천국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연옥에서 보았던 똑같은 음식으로 차려진 연회석상과 밖으로 팔이 굳어진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즐겁게 웃고 있었다. 천국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옆 사람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연옥은 시장이 없는 세계이며, 굽어 있는 팔, 그 단 하나의 어려움도 연회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회를 파괴하기에 충분한 곳이다. 천국은 먹을 수 있는 즐거움 이외에도 음식물을 옆 사람의 입에 넣어줌으로써 연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낭패감을 덜어주는 곳이다. 이렇게 서로를 먹여주는 통찰력을 알아내는 것과 그렇지 못함 사이의 간격은 매우 크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땅을 갈고 돌보는(창세기) 임무가 주어지는데 이것은 삶의 질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세계와 정직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계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부를 확장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이며, 결핍을 만들지 않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최대의 부를 창출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부의 획득은 인간의 요구이며 결핍에 대항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2장  부를 가로막는 장애물

 

 

자기 만족을 위한 시간낭비를 하지 마라

 

랍비들은 잠언의 ,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개미의 방법을 연구하고 배우라!라는 구절을 해석할 때 개미를 낭비된 일의 상징으로 설명한다. 즉 개미가 일 년을 살기 위해 필요한 낱알은 두 알이면 족한데 개미들은 불필요한 재산을 모으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한다는 것이다.

 

유대 전통에는 시간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의 모범답안이 있다. 그것은 공부다. 일단 기본적인 생계와 생리적 욕구, 일에 대한 요구가 충족되면 모든 자유시간은 공부에 헌신되어야 한다. 유대교에서 공부가 의미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토라에 대한 공부이며, 통찰력으로 실재를 인지하고, 타인에 대하여 동정을 느끼고, 우리 자신의 속성을 통하여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 속에서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가치의 공부이다.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일할 때 우리는 비툴 제만(시간의 낭비, 혹은 공부시간의 낭비)을 산출한다.

 

 

진짜 부자의 조건

 

랍비 메이르는 진실로 부자인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결핍을 야기하지 않으며, 최고의 삶의 질을 얻는 자이며, 책임을 지고 살아가고 시간낭비를 피하고 진실로 필요한 것 이외에는 자연으로부터 생계를 끌어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재산에서 근원하는 내면의 평화라고 표현했다. 다른 말로 이것은 참으로 부자 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처음에 왜 부자가 되려고 했는지를 잊지 않는 순수함을 요구하는 예술이며, 결국 부의 축적을 통해서 우리 자신과 타인의 삶의 질을 증가시키는 것이 최종 목적이 되어야 한다.

 

삶에서 우리는 최고가 되기를 요구하고 요구받는다. 이 최고는 많은 변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최고라는 요구는 여전하다. 삶에는 환경 속에서 사람과 사물에 대한 최고의 부와 존경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균형은 내면의 평화를 가져오고 시장 전체의 부를 증가시키고 주변세계를 향상시킨다.

 

 

 

3장  보이지 않는 돈의 사이클 이해하기

 

어리석은 자는 이를 알지 못하노라. 악한 자들은 풀처럼 돋아나고, 못된 자들이 꽃처럼 피어나지만 그들은 영원히 망하게 되리라.

- 시편

 

 

유대 전통에 존재하는 윤회론적 접근을 사용하는 랍비는 모든 것은 인과응보의 법칙에 의하여 모든 사람에게 되돌아오는, 즉 회귀가 있다고 말한다. 비록 그 순환의 범위가 너무 커서 육안의 경험으로는 원이 아닌 하나의 긴 선으로 보일지라도 말이다. 이 거대한 회귀의 사이클은 불교의 카르마 개념과 비슷하다. 이것은 악한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가까운 미래에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단순한 교리가 아니다. 단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현실에 대한 좀더 교묘한 해석이다. 따라서 참된 부는 복잡한 과정이며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더 늘어난 회귀 사이클과 관련되고 존재하는 생계와 관련된다.

 

원시시대 이후 줄곧 우리를 당황하게 했던 힘든 삶과 함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과 번영으로 축복받는 사악한 사람이 있다.는 역설, 즉 삶의 모순을 푸는 열쇠는 바로 회귀 사이클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참하고 몰상식해 보이는 실재(현실)는 거대한 질서의 한 단계를 일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현실이라는 순간적인 스냅사진을 근거로 삶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역동적인 현실(실재) 한가운데서 우리는 진실된 삶의 상황을 이해하고 평가해야 한다. 이 접근법은 확실히 더 긴 영역을 가지는 회귀 사이클에 대한 엄청난 신뢰와 이해를 요구한다.

 

왜 내가 그것을 가지지 못하지? 혹은 왜 내가 이것을 가지지?와 같은 질문은 생계의 다양한 세계에 걸쳐서 우리 잠재성의 배분을 고려하는 답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 가지는 것은 긍정적 가치만이 아니며 생계의 다른 차원에서는 심각한 손실을 반영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이 우리가 그것을 효과적으로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유하지 않는 것이 반드시 우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계의 여러 차원은 자신을 이 물질계에만 표현하지는 않는다.

 

 

 

4장  체다카 요법 - 돈의 노예로부터 벗어나기

 

자선(Charity)이라는 영어 단어는 체다카(Tzedakah)란 유대 개념을 번역하기 위한 단어로 쓰인다. 그러나 체다카는 사랑을 의미하는 라틴어 카리타스(Caritas)에서 기원되는 자선이란 문자적 의미와 무관하다. 체다카의 유대적 의미는 시장과 관련되며 문자 그대로 정의(Justice)' 혹은 정의롭게 하는 것(the act of justicing)으로 번역될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이상사회 건립을 위한 최고의 덕목으로 사랑을 꼽는다. 그러나 유대교는 정의, 즉 체다카를 강조한다. 유대교에 따르면 개인, 인종, 환경 등 모든 차원에서 될 수 있는 한 남을 돕는다면, 즉 체다카를 충실히 이행한다면 이상적 세계는 현실화될 거라고 확신한다.

 

돌은 딱딱하나 쇠가 그 돌을 자르고, 쇠가 강하다 하나 불이 그 강함을 녹인다. 불은 강력하나 물이 불을 끄고, 물은 무겁기는 하나 구름이 물을 나른다. 구름은 강하나 바람이 이를 흩트리고, 바람은 강하나 우리 육체는 이를 견디어낸다. 육체는 강하나 두려움이 이를 파괴하고, 두려움은 강하나 포도주는 두려움을 피하게 하고, 포도주는 강하나 잠이 정복한다. 죽음은 이러한 것 중 가장 강하나 체다카는 죽음에서 구한다.

 

이 예화를 통해 랍비 예후다가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죽음의 개념 너머에 삶, 의미, 교환의 개념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체다카가 교환할 수 있는 구체적 추상개념이라면 죽음은 비교환의 추상개념이다. 이러한 속성을 이해하고 체다카의 책임완수를 위한 시간을 배정하는 사람은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격정을 몰아내고 치료를 받는다. 체다카의 가치를 진실로 이해할 때 우리는 그것을 일종의 로 인식하게 된다. 체다카는 축적될 수 있으며 흥미로운 어떤 상거래에 헌신하는 그러한 열정으로 추구되어야 한다. 이것은 일시적으로 덜 가짐으로써 드러나는 믿을 수 없는 부의 현시인 것이다.

 

 

 

5장  적게 가지고 풍요롭게 사는 법

 

 

내 것은 너의 것이고 너의 것은 너의 것이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너의 것은 너의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소돔과 고모라의 거주자와 같고, 내 것은 너의 것이고 또한 너의 것은 내 것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리석으며, 내 것은 너의 것이고 또한 너의 것도 너의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올바르며, 내 것은 내 것이고 또한 너의 것도 내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악한 사람이다.

 

만약 사람들이 무조건 생존해야 하고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할 경우 올바른 자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 만약 내 것은 너의 것이고 너의 것은 너의 것이다.라는 명제가 사실이라면 올바른 자는 굶어 죽을 것이다. 미슈나(유대 구전법전)는 삶의 일부로서 즉각적으로 결과가 나타나는 사이클을 무시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신의 손님이라는 이해, 즉 환대에 대한 우리의 자각을 증진시키려는 것이다.

 

다소 역설적이고 불공평하게 보일지라도 내 것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작은 회귀 사이클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난에 집착함 없이 여러 세계의 풍부함을 기꺼이 함께 하려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너의 것은 너의 것이다.는 어떤 종류의 보상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우리는 내 것은 너의 것이고 또한 너의 것은 너의 것이다라고 함에 의해서 가짐의 한계와 무게를 자신에게서 제거한다. 적게 가질 때 진실로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부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라

 

적게 가짐으로써 늘어나는 부에 관하여 지금까지 보아온 것은 부를 얻으려는 강박관념을 피하는 것은 일종의 진실한 부라는 것이다. 이 강박관념은 부에 대한 우리의 접근을 더 어렵게 만들뿐만 아니라 또한 탈무드에서 말한 바와 같이 보물을 구하는 자는 자신의 죽음을 재촉한다.에 해당되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우리의 야망 수준을 주시해야 한다. 우리는 체다카와 공부를 통해서 적음많음으로 변형시키려고 할 때 그 자체 안에 부의 형태와 우리에게 열려 있는 선택권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소유권을 즐겨야 큰 이익이 온다

 

우주시장은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권리와 잠정적 소유의 계속적 흐름 속에 있다. 그런 흐름을 방해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문제를 일으킨다. 예를 들면 음식의 적절한 교환(섭취)을 무시하고 많이 먹는 사람은 비만이 될 것이며, 필요 이상의 음식을 자신의 신체에 보유하는 것이며 이로써 시장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다. 만약 재산의 순환법칙을 지키고 삶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부를 쌓아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를 적절하게 쓰는 방법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소유물을 포기하고 대신 선물을 줄 시기를 아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랍비 나만은 한때 자신의 집에 가난한 여행자를 투숙시켰다. 다음날 아침 그 손님이 자신의 코트를 가지고 떠났음을 알았다. 랍비 나만이 유대교당에 도착했을 때 한 젊은 사람이 다가와서 말하길, 랍비님, 조금 전에 랍비님의 옷과 똑같은 코트를 입은 사람을 보았지요. 처음에는 그 코트가 랍비님 코트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지금 코트를 입지 않고 계시는 것을 보니 이젠 확신이 듭니다. 하였다. 그러자 랍비가 그 코트가 그 사람에 잘 맞던가? 물었다. 그 젊은이는 그 사람에게 아주 잘 맞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면 그 사람이 계속 입게 두게. 그는 아주 가난한 사람이고 올 겨울은 너무나 춥다네.라고 랍비는 말하였다.

 

올바른 사람은 자신의 소유물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나 자신의 소유물이 더 이상 자신의 소유물이 아님을 알 때 이를 포기함으로써 가져올 더 큰 이익의 시기를 안다. 우리의 소유물이 가장 가치 있을 때, 우리를 위해 가장 큰 즐거움과 보상을 발생시킬 수 있을 때, 그 소유물을 떠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6장  세상 살아가기

 

 

성공과 실패는 수레바퀴의 상승과 하강일 뿐

 

떨어지는 것(실패)은 올라가는 것(성공)의 필요한 부분이다.라는 랍비 나만의 말은 생계의 필수적인 면, 즉 성공과 실패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성을 드러낸다. 우리가 넓은 구조 안에서 시장을 생각할 때 시장은 한 개인이나 그룹의 부분적인 생계뿐만 아니라 전체를 고려해야 할 대상이다. 여기서 전체, 즉 상호연결성은 마치 수레바퀴를 닮았다. 이 수레바퀴는 반대편이 떨어질 때 다른 편은 올라간다. 가장 높은 점은 하락의 시작이며, 가장 낮은 점은 우리가 다시 상승함을 의미한다.

 

어떤 분야에서 풍성함과 성공을 경험한 사람 누구도 하강을 피할 수 없다. 반대로 우리가 더 높이 올라갈수록 하강에 대비하여 더 많은 것을 영혼을 풍부하게 하는데 적립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강의 기간동안 우리는 다시 반복되는 상승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수레바퀴는 또 다른 하강이 계속하여 다가오기 때문에 사이클이 나선형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우리 생계의 많은 부분은 이러한 상승과 하강의 기억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확신은 생계의 순환성과 모든 세계의 상호작용성을 이해할 때 온다. 우리가 때때로 느끼는 절망은 상승과 하락이 선명하게 선적인 것으로 다가올 때이다. 수레바퀴의 회전을 역회전하여 꼭대기에 돌아가려고 시도하는 것은 단지 하강을 연장할 뿐이다. 필사적으로 우물의 바닥까지 떨어지는 것을 거절하는 사람은 작은 상승의 승리 속에 끝없는 떨어짐을 야기한다.

 

 

허술하게 계약하지 마라

 

어느 누구도 좋은 계약서를 작성하는 법을 이해하지 않고는 부자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신경 써야 한다. 우리는 사업관계에 있어서 순진하고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서면으로 자세히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증인을 세우는 것을 부끄럽거나 실례되는 일로 여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눈 먼 자 앞에 장애물을 놓는 일일 것이다. 부주의한 계약 때문에 경우에 따라 결혼이 파괴되고 가족은 싸우고 사회가 해체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랍비들에게 계약은 신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계약의 가장 큰 적은 거래의 규칙을 설정할 때 우리를 당혹하게 하는 성숙치 못한 태도이다. 우리는 흔히 거래관계를 상세히 처리하기를 원하는 것은 신뢰나 연대의 부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올바른 사람은 연대의 한계를 알고 계약서를 조심스럽게 작성할 것이다. 우리는 창조자를 모방해야 한다. 만약 신의 시간이 계약에 헌신된다면 그때 우리의 시간 또한 그러해야 한다.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위한 명백한 계약서를 만들고 부주의를 피하라. 그렇지 않다면 인생에서 모든 협력관계는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

 

 

모든 창조물이 서로에게서 빌리는 것을 관찰하라

 

우리가 사는 우주는 대부의 세계이다. 삶 그 자체는 부모로부터 빌려온 자본으로 구성되며, 부모는 그 자본을 앞 세대 자금에서 빌린 것이다. 대부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고 우리의 생존을 가능케 만드는 관대함의 활동이다. 유대 전통에서 대부는 일종의 체다카이다. 우리는 대부를 통해서 가난과 맞서 싸울 수 있으며 같은 방식으로 잉여 생산품을 세계 빈곤을 위해 사용하고 그것에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성경이 만약 그대가 나의 사람들 중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준다면, 채권자처럼 그들에게 행동하지 말라. 이자를 부과하지 말라.라고 한 이유다. 

 

위에서 언급된 출애굽기 구절은 많은 의문을 제기했으며 대부시장에 여러 문제를 드러내기도 한다. 채권자처럼 그들에게 행동하지 말라.를 만약 채무자가 상환할 수 없으면 어떤 대부도 반환예정일이 지난 후에는 징수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잘못 해석되기도 한다. 랍비들은 체다카(대부 행위)를 좋은 행위 혹은 친절한 행위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의와 친절은 명백히 구별되는 서로 다른 영역이며, 세계와 시장의 균형은 이 두 개의 구별성에 의존한다. 정의와 친절은 함께 작용하나 서로 독립적으로 남아 있어야 하며, 정의와 자비(친절) 사이에 조화가 있는 사회에 사는 사람만이 행복해질 수 있다.

 

 

 

7장  돈을 부르는 수호천사

 

유대 전통에, 작은 운이 모든 차이점을 생기게 한다.는 말과 작은 운은 1파운드의 금보다 가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운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이 운을 적당히 분배해 주는 누군가가 있는 것인가, 혹은 그 행운의 분배는 완전히 무작위적인 것인가?

 

으로 번역되는 마젤(Mazel)은 원래 히브리어로 운명을 뜻한다. 그리고 운명은 탈무드에 따르면 신에 대한 인간들의 존경심을 제외하고 모든 것은 신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의 모든 결정과 자유의지는 신에 대한 존경심의 유무에 한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은 삶과 물질세계가 만날 때 그 결과로서 발생하는 일종의 환영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유대 전통에서 으로 해석되는 마젤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마젤은 아주 작은 기적이며, 우리가 몰입하는 더 큰 시장의 불꽃이며, 우리는 가끔 이들을 불러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운을 필요로 할 때 어떻게 운을 발견할 수 있을까?

 

랍비 위트자크는 3일 연속으로 프라하의 다리 밑에 숨겨진 보물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 꿈이 너무도 선명해서 그는 보물을 찾기 위해 프라하로 떠난다. 그가 다리에 도착했을 때 밤낮으로 왕의 군대가 그 다리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는 근위대의 지휘관이 와서 무엇을 원하는지 물을 때까지 거기에서 기다렸다. 위트자크는 그 지휘관에게 자신의 꿈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런 꿈을 믿으라는 겁니까? 그 지휘관은 웃었다. 만약 내가 그 꿈을 믿는다면 나는 랍비 한 분을 찾기 위하여 멀리 있는 크라코우 마을로 떠나겠지요. 그 랍비 이름이 위트자크라고 여겨집니다. 나는 그의 침대 밑에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오. 이 말을 듣고 위트자크는 지휘관에게 감사를 표하고 집에 돌아가 자신의 침대 밑에서 보물을 발견하였다. 

 

이 이야기는 모든 보물의 원천은 우리 안에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보물은 우리 자신의 집에 그것도 침대 아래 - 우리 본질 안에 깊숙이 - 있다. 현명한 사람은 하나의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화폐를 변환시키고 창문을 열기 위해 침대 밑의 보물을 사용한다. 마치 기적, 즉 작은 운이 나타나는 것처럼! 이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침대 밑에 숨겨진 보물로부터이다.

8장  부의 또 다른 얼굴

유대 구전율법에서 다른 면(other side)'이란 말은 악한 것을 언급할 때 주로 쓰인다. 히브리어로 적()을 의미하는 사탄부작용(side effect)을 의미하기도 한다. 삶이 복잡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많이 잃어야 하며 다른 면은 더욱 강렬해진다. 마치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빛에 드러나는 물질의 결과로 생기는 그늘은 더욱 뚜렷해지는 것처럼. 이것은 육체에 거주하는 존재가 가지는 어려움 중의 하나이며, 수천 년 동안 종교가 우리 인간을 물질세계의 죄인이라고 강조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부라는 것이 우리에게 고민과 물질세계의 모순을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부와 가난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도 없다. 궁핍은 우리를 시장과 시장의 멋진 기회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파괴적인 악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또한 물질의 육체적 조건인 가난은 생계의 단면일 뿐이다. 우리가 보는 색상처럼 잘 살고, 못 살고는 단지 육체라는 도구를 사용해 이해하는 지각일 뿐이다.

 

체치브의 랍비는 신이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빌어주도록 명령한 사제의 축복 야훼께서 너희를 축복하고 지켜주시기를!(민수기)에 대하여 주석을 달았다.

 

랍비들은 왜 우리를 축복하고, 지켜주시는가?라고 의문을 나타내었다. 우리가 축복 받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지지 않는가? 그런데 왜 지켜주시기를!이라고 말하였는가? 이것은 부는 종종 악한 것을 가져오기 때문이며 사제들이 지켜줌의 말과 함께 축복하는 이유이다. 사제들은 우리가 부로 축복받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동시에 부로부터 보호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물질계에서 이 다른 면을 제거할 수는 없다. 이것은 왜 영성이 중요한가의 이유이다. 왜냐하면 영에 관련되는 것은 다른 면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혼에 속하는 것, 영적인 성장에 속하는 것은 어떤 그늘도 드리우지 않으며 손실의 두려움이 없는 가짐의 형태이다. 이것은 우리가 죽음에 직면해서도 결코 잃지 않을 우리의 신성한 면이다. 물질계에서 우리는 체다카(정의)와 거래의 책임 있는 부담을 통해서 세계의 안정과 풍부함을 위해 일해야 하며, 이렇게 일한다면 우리는 참된 부를 증가시킬 수 있다.

 

 

 

9장  죽을 때 당신은 가져갈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현금과 함께 우리는 가짐의 많은 가능성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금은 투자가 아니라 투자에 대한 회수이며 일시적인 생계의 수단일 뿐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미래의 생계를 위해 일하고 투자해야 한다. 그렇다면 가능한 투자는 무엇인가? 탈무드의 다음 이야기는 투자하는 방법에 대한 비밀의 계명을 발견하게 할 것이다.

 

기근 시기에 왕 모노바즈는 자신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재산을 국민에게 나누어 주었다. 왕의 형제와 친척들은 왕이시여, 당신은 당신의 돈뿐만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돈까지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라며 항의하였다. 그러자 왕은, 나의 조상은 여기(땅)에 재산을 모았소. 그러나 나는 천국에다 재산을 축적할 것이오. 왜냐하면 진리는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리라.(시편)라고 써 있기 때문이오.라고 말하였다. 나의 조상은 인간의 손이 훔칠 수 있는 장소에 보물을 저장하였소. 그러나 나는 어떤 손도 닿을 수 없는 곳에 보물을 저장하오. 성경에는 정의와 공정은 당신의 왕관의 토대입니다.(시편)라고 써 있기 때문이오.

 

나의 조상은 보물을 보관하였으나 지금 이자도 받지 못하오. 나는 이자를 받기 위하여 그들을 보관하오. 성경에는 복되어라 올바른 사람, 자기의 일한 보람을 먹고 사는구나!(이사야)라고 써 있기 때문이오 나의 조상은 그들의 돈을 금고에 저장하였으나 나는 구원되어진 혼에다 돈을 보관하오. 올바른 자의 과실(현금)은 생명나무이며 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는 사람은 현명하도다.(시편)라고 써 있기 때문이오. 나의 조상은 자신의 후손을 위해 보물을 보관하였으나 나는 내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보관하오. 그대를 위하여 정의는 신 앞에서 명예롭게 되어야 한다.(신명기)라고 써 있기 때문이오

 

우리는 거래의 진실한 창조물이기 위하여 모든 차원에서 투자하고 저축하는 방법을 시장에서 배워야 한다. 만약 우리가 물질계에서 단지 물질적인 것만 축적하는데 시간을 소비한다면 우리는 다음 단계로 그들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다음 단계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유일한 것은 그 단계는 어떤 물질적인 것의 통과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투자를 위해 우리는 다른 것, 즉 이 우주에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인 이웃을 찾아냄으로써 시작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투자할 때 우리는 이 세계로부터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잠언에 얼굴을 비치는 물과 같이 한 사람의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비춘다.라는 말이 있다. 랍비들은 왜 물이고 거울이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는 왜냐하면 물 위에 자신을 비춰보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고 물에 가까이 가야 하기 때문이다.라는 답을 구했다.

 

 

 

10장  내세에서의 돈

 

어떤 한 농부의 소환을 명령한 왕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그 농부는 그 소환에 매우 놀랐다. 그는 곧 짐을 꾸려 왕궁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친구들은 그를 마을 입구까지 동행하였고 가족들은 왕궁 성문까지 동행하였다. 그 후로부터는 단지 농부의 공덕과 스스로를 돌볼 능력만이 그와 같이 하였다.

 

랍비들은 이것을 삶에 대한 우화로 생각한다. 언젠가 우리는 그 왕궁으로 불려갈 것이다. 앞의 이야기에서 친구로 불리는 우리의 소유재산은 마을의 외곽까지만 우리를 따른다. 다른 말로 우리는 재산을 마지막 숨이 붙어 있는 순간까지만 즐길 수 있다. 가족은 우리가 묻힐 때까지만 즉 왕궁의 입구까지 동행한다. 그러나 더 이상 함께 가지 않는다. 그 왕궁 안으로 그리고 연회장 안으로는 단지 우리의 선한 행동만이 동행할 수 있다. 왕을 만날 때 삶에서 우리가 만든 선택, 즉 신용으로 변환될 수 있는 좋은 거래만을 가져갈 수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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