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도론
Ⅰ. 서 론
얀 밀리치 로호만(Jan Milic Lochman, 1922-1982)은 그의 저서 주기도문 강해의 한국판 서문에서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과 신학활동에서 절대적으로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라고 말했다. 사실 그렇다. 기도는 신앙생활 및 교회봉사와 신학활동의 생명이요, 중심이다. 그래서 기도가 끊길 때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호흡은 중단이 되고,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영성이 약해지고 사역의 열매가 빈약해 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이 약해지면 그의 모든 삶과 활동이 따라서 약해지게 될 것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활동에 이처럼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성경에서도 상당한 분량으로 할애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조직신학자들은 이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따라서 본 소고에서는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하여 얼마나 신중하게 가르치고 있으며 어떻게 진지하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본고는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기초로 하여 그의 기도론을 구성하는 것인데, 그렇게만 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기도의 모범이 빠지게 된다. 예수님은 말씀(Word)뿐만이 아니라 행동(Action)을 통해서도 가르치셨기(행 1:1)때문에 예수님의 기도론에 주님의 기도 모본(행위)도 종합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 중의 기도에 관한 구절을 조사해 보면, 마태복음에는 33 구절(5:44; 6:5-13, 31-34; 7:7-12; 11:25-27; 18:18-20; 20:20-23;21:12-13,18- 22; 24:20; 26:53; 27:46)이고, 마가복음에는 29절(9:16-29; 10:35-40; 11:15-18,23-25; 12:40; 13:18; 15:34)이고, 누가복음에는 36구절(6:28; 10:21-24; 11:2-13, 12:29-31; 18:1-14; 19:46; 20:47; 21:36)이고, 요한복음에는 8구절(14:13-14; 15:16; 16:23-27)로서 총 106구절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친히 모범을 보이신 기도는 마태복음에는 5회(11:25-27, 14:23; 19:13,15; 26:36-44,53; 27:46), 마가복음에는 4회(1:35; 6:46; 14:32-41; 15:34), 누가복음에는 11회(3:21; 5:16; 6:12; 9:18,28-29; 10:21-24; 11:1; 22:31-32; 22:39-46; 23:34,46)나 되고, 요한복음에는 3회(11:41-42; 12:27-28; 17:1-26)가 나온다. 이와같이 조사된 모든 구절을 귀납적으로(inductive) 정리하여 다시 주제별(deductive)로 정리하면, 주님의 기도에 관한 가르침은 크게 두 가지로서, 말씀을 통한 가르침과 행동(모범)을 통한 가르침으로 나눌 수 있다. 말씀을 통한 가르침과 행동 즉 기도모범을 통한 가르침을 다시 세분하여 주제별로 정리하였다.
Ⅱ. 본론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근거로 하여 있는 내용을 그대로 귀납적으로 정리하면 첫째,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직접적인 교훈(마태복음에는 16구절, 마가복음에는 2구절, 누가복음에는 26구절, 요한복음에는 7구절이다.), 둘째, 기도에 관한 간접적인 교훈(마태복음에는 15구절, 11구절, 누가복음에는 7구절, 요한복음에는 1구절이다), 셋째, 예수님의 실제적인 기도 혹은 기도 모범(마태복음에는 5회, 마가복음에는 4회, 누가복음에는 11회, 요한복음에는 3회이다.), 넷째, 기도에 관한 비유적인 교훈(마태복음에 하나, 누가복음에 셋이 있다)으로 되어 있다. 이런 네 가지 내용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다 있는데,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기도에 관한 비유적인 교훈이 없다. 따라서 4복음서에 있는 기도에 관한 이 모든 내용들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실제적인 주제로 다시 정리하였다. 즉 크게 나누어 예수님의 기도의 교훈(기도의 정의, 기도자, 기도의 대상, 기도의 자세 등 15 주제)과 예수님의 기도의 모본(계시에 대한 감사의 기도, 사역후의 기도, 하루 시작전 등 20가지의 모본)이다. 이 모든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 예수님의 기도의 교훈
1. 기도의 정의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3-14).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16).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3-24).
성경에서 “기도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사전적으로 정의해 놓은 본문은 없다. 그러나 상기의 몇 구절에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우선 예수님이 사용하신 “구한다”(ιτέω)라는 용어의 뜻을 통해서 알 수 있다. Gustav Stählin 은 ιτέω 가 “요구하다” (to demand) 와 “간청(혹은 간구)하다” (to request) 의 의미가 있다고 하면서 예수님은 이 단어를 자기의 기도를 의미하는 데에는 사용하시지 않으시고, 제자들이 하는 기도에만 사용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 단어의 근본적인 의미는 우선적으로 자신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원하는 요구라고 한다. 그래서 김상복 박사는 “간구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무엇을” 혹은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의 뜻을 종합해 보면 “기도란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기도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 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 14:13).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4).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눅 11:9).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눅 11:10).
기도자는 누구인가? 즉 누가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는가?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실 때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cf. 롬 8:15, 갈 4:6). 그러므로 예수님이 “너희가 구하라”고 하셨을 때 “너희”는 그의 “거듭난 제자들”이거나 아니면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무리들(cf. 마 7:8, 28)”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기도자의 보편성이다. 주님은 “구하는 이마다” 혹은 “찾는 이마다” 혹은 “두드리는 이마다” 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 세상 누구에게나 열려진 초청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진 기도에의 초청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3. 기도의 대상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마 6: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눅 11:2).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4).
예수님은 기도의 대상으로 두 분을 언급한다. 하나님과 예수님 자신이다. 물론 이 두 분은 삼위일체로서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예수님 자신도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간구를 받으시고, 시행하시는 분 즉 응답하시는 분으로 소개하셨다. 특히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기도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을 “아버지”(πάτερ)라고 부르라는 것이다. Joachim Jeremias 는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언사(sayings)를 “아버지(The Father, 인칭 대명사 없이)”, “너희들의 아버지(Your Father)”, “나의 아버지(My Father)” 등 세 가지로 보면서 “너희들의 아버지”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제자들에 대하여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친절과 사랑으로 돌보시고, 그들의 구원을 준비하시는 그런 자상하신 아버지로 보여 주신는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필요를 이미 다 아시고 스스로 채워 주시 주지만 또한 우리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채워주시는 자상하신 아버지이시다.
4. 기도의 자세
마태복음 6장 5절 이하에 있는 예수님의 기도의 교훈은 4 복음서에서 처음으로 언급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교훈에서 맨 먼저 언급된 것은 기도의 여러가지 교훈 중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 “기도의 자세”이다. 기도의 자세가 중요한 것은 기도의 응답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외식하는 자의 기도는 이미 “자기 상”(마 6:5)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자의 기도에는 응답이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암시하셨다. 요컨데 기도자세가 응답을 전제하는 것이라면 기도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모든 기도의 교훈들중에서 기도의 자세는 모든 기도의 응답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유추하여 알 수 있다.
a. 외식하는 자세를 버리라.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5-6). 외식하는 자의 기도의 특징은 첫째,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앞에서 의를 행할려고 하는 것”(마 6:1)이다. 이런 기도는 의도하는 바 대로 이미 사람들로 부터 자기 상을 받았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부터는 상을 얻지 못하는 것”(마 6:1)이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하는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하셨다.
b. 중언부언으로 기도하지 말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6:7-8).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이 말이 ‘무의미한’ 혹은 ‘쓸데없는’ 이란 뜻을 가진 아람어 βατταλ 에서 유래되었는지 일종의 의성어인(말더듬이)에서 유래했는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말은 생각없이 말을 많이 하거나 같은 말을 의미없이 반복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길게 기도하는 것이나 반복적인 기도자체를 금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길게 기도를 하셨고(마 6:12), 반복하는 기도도 하셨다(마 26:44). 예수님이 지적하신 것은 길게 하는 기도가 효력을 보장한다는 이교도들의 주문(呪文)형식의 기도를 금하신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효력이 있는 것은 주문형식의 무의미한 반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기도와 이방인들의 중언부언의 기도를 강력하게 금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아신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면서 구하라고 가르치신다. 왜냐하면 기도는 나의 시급한 형편에 있는 정보를 하나님께 알리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사정을 다 아시는 것을 전제하고서도 기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무능력함의 고백이요, 그 도움은 오직 하나님 외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 부터 찾을 수 없다는 것과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으로 부터도 그 도움을 찾지 않겠다는 공언된 포기인 것이다. 바로 이 고백과 승인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요,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이요,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것이다.
c. 지속적으로 담대하게 구하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7-12).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11:5-13). 예수님은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논증법은 랍비들의 소위 “경한 것에서 중한 것으로의 논증법”(argument from minor to major)이다. 즉 인간의 아버지가 자식이 구하는 대로 주고, 인간친구가 강청하는 대로 필요를 준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더욱 더 구하는 자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기도에로 초청하시는 강력한 자애로운 권면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기도에의 초청을 마음놓고 신뢰하라는 자세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d.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3-24).
이 교훈은 기도할 때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까?” 하는 회의와 의심을 가지고 기도해서는 안되며, “내가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확실한 믿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산을 명하여 바다에 던지우라”는 것과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전자는 문자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산을 바다로 옮기는 것은 불필요하고 어리석은 일이지만 그러나 그와같은 기적적인 일, 즉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나 하나님으로서는 가능한 일들이 필요한 때가 있으며 이런 일은 실제로 제자들의 사역을 통해서도 나타났다. 후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요컨데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e. 낙심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기도하라.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 18:1-8). 기도가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낙심하지 말아야 하며, 지속적으로 신뢰를 가지고 기도하여야 할 것을 가르치신다. 여기서도 역시 랍비들의 논증법인 “경한 것에서 중한 것으로의 논증법”(argument from minor to major)을 사용하신다. 즉 이 세상의 불의한 재판관도 한 과부의 소송을 들어준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들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서는 응답이 늦어진다고 생각되는 때에도 실망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신뢰하는 가운데 기도 할 것을 가르치셨다.
f. 겸손하여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라.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눅 18:9-14).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기도응답의 원리와도 연관된다. 즉 기도응답은 율법의 규정들을 그대로 다 지킨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규정들을 다 지키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죄인됨을 통감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이 가져야 할 기도의 영적인 자세이다.
g. 기도에 경성하라.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 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막 14:37-38).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눅22:45-4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눅 21:36).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 있다는 것이고, 육신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기도하지 않을 때에라도 오는 시험이 면제되는 것이 아님을 가르치심으로서 기도에 얼마나 경성해야 하는 것을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말세에 있는 고난이나 세상의 쾌락의 유혹앞에서도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특히 마음이 둔하여 질 것을 경계하셨다. 그 만큼 기도는 우리의 신앙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며, 때문에 기도에 경성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맥으로 볼 때 유혹과 시험이 있다는 것은 마귀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더우기 기도에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5. 기도와 장소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6).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 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마 21:13).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막 11:17).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눅 19:46).
예수님께서 은밀한 중에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은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이루어 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말은 공적인 장소에서 기도하면 안된다는 말이 아니라 기도의 내적인 은밀성을 추구하라는 가르침이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공석(cf. 마 11:25-27; 19:13-15; 26:36-44; 27:46; 막 14:32-41; 15:34; 눅 3:21; 9:28-29; 10:21-24; 22:39-46; 23:34,36; 요 11:41; 12:27 17:1-26)에서도 기도하셨지만 내적인 은밀성을 추구하기 위하여 종종 홀로 산이나 조용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기 때문이다(cf. 마 14:23; 막 1:35; 6:46; 눅 5:16; 6:12; 9:18; 11:1; 22:31-32). 수님은 성전을 기도의 장소로 언급하셨다. 예수님께서 은밀한 기도를 위하여 골방을 말씀하셨는데 반드시 공간적인 장소만을 언급하신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장소에 영향을 받는 것을 고려 할 때,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장소 보다는 교회당이나 기도원이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 2장 21절에서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시라는 것을 고려할 때 영적인 공간 즉 “예수님 안에서” 혹은 “성령안에서”(엡 6:18)의 기도가 필요함을 암시하셨다고도 할 수 있다.
6. 기도와 시간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마 14:23),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 1:3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막 6:45-4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 5:16).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 6:12).
예수님은 몇시에 기도해야 된다고 하는 가르침은 하시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할 수 있는 한 자주 기도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기도의 모본을 통해 주목해 볼 수 있는 것은 유대인이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관습(시 55:17; 단 6:10,13)을 따라 새벽(막 1:35)에, 혹은 정오(눅 5:16)에, 혹은 저녁(마 14:23)에 기도하셨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는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고(눅 6:12), 상황에 따라 기도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군중들을 멀리 하시고 즉시 기도하시기도 하셨다(막 6:45-46).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을 보면 하나의 패턴 즉 주옥과 같은 하루 하루의 삶이 기도라고 하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7. 기도와 성화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막 12:40).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눅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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