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을 통해 본 중보기도
I. 중보사역이란?
1) 중보사역이란 둘 사이에 서서 양자를 화해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이 중보는 두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하나님과 백성사이에 중보자가 행하는 중보사역이다. 이 중보자는 아브라함과 모세를 비롯하여 왕과 예언자를 통하여 나타난다.
하나님 - 중보자 - 백성
2) 두 번째 형태의 중보사역은 이스라엘이 공동체로서 하나님과 열방 사이에 서서 중보하는 것이다.
하나님 - 이스라엘 (교회) - 열방
3) 중보사역의 거룩함 : 이 두가지 종류의 사역은 모두 중보사역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직접 만나지 않으시고 중보자를 통하여 사역하신다. 중보자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중보사역을 행하였다. 중보자 자신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과 인간사이에서 행하는 중보사역 자체가 거룩한 것이었다.
4) 그리스도의 중보사역 : 구약에서 지도자나 교회가 공동체로서 중보사역을 감당하였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한 중보사역은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셨다. 백성을 온전히 하나님께로 인도할 중보의 능력을 갖춘자는 오직 그리스도이다. 열방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구속의 능력을 갖춘자는 오직 그리스도 한분이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중보자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아 사탄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구원자였으며 동시에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하나님께 우리를 부탁하는 위로자였다.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 중보사역이 이루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중보자는 한 분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5) 계속적인 중보사역 : 그리스도가 완전히 이루신 중보사역은 그분의 사역으로 끝내야 되지 않는가? 만약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세상에 역사의 종말이 오고 영원한 구원의 시대로 옮겨졌다면 주님의 죽으시고 부활하신 중보사역 이외에 계속적인 중보사역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적인 중보사역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계속적인 중보사역이란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이 효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이루어진 중보사역이 유효하기 위하여 주님 재림의 날까지 하나님이 교회에 요구하시는 계속적인 중보사역이 있다.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하여 궁극적인 승리는 이루어졌지만 사탄은 하늘에서 �겨나서 지상에서 성도들에게 치명적인 어려움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이 역사의 마지막까지 실현될 수 있도록 성도들이 참여하여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6) 계속적인 중보사역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온 우주의 통치자라는 일원론적인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날까지 세상은 하나님과 사탄이라는 이원론적인 힘의 대결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모든 삶속에서 인간은 하나님이냐, 사탄이냐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이 두 세력의 중간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구약에서 모호하던 악의 존재는 신약에서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사탄이 되며, 사탄은 최종적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 이전에 성도를 위협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7) 하나님의 통치가 모든 외적인 영역과 개인적인 영역에 나타나기까지 두 세력간의 싸움은 계속 된다. 사탄의 영적인 지배는 인간의 죄를 통하여 강화된다. 인간에게 본래적으로 있는 원죄와 실제적인 죄가 있다. 나아가서 인간의 갈등속에 나타나는 죄와 허물이 있으며, 이 죄악은 단순히 의식적인 수준만이 아니라 무의식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나타난다. 그러므로 중보사역의 범위는 개인적인 삶과 공동체의 삶, 그리고 사회의 구조와 우주적인 영역에까지 확장된다. 하나님의 임재와 다스림이 온 우주에 넘칠 때까지 계속적인 중보사역은 필요한 것이다.
8) 그리하여 중보사역은 이 땅에 하나님의 현존이 충만해지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인간의 제의적이고 윤리적인 악함을 제거함으로 이루어진다. 예배는 이러한 정화를 목표로 하며 20세기 이래 성령운동은 중보사역을 위한 강력한 동력이 된다. 성령운동은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는 오순절운동을 시작으로, 성령세례를 강조하는 은사주의 운동으로 발전되며, 성령충만,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성령의 임재를 강조하는 쪽으로 발전한다. 성령운동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위하여 모든 악한 것들을 제거하는 제사의 의미와 관련있다. 찬양은 이와 같이 공동체의 죄와 상처를 치유하면서 정결케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준비하기 위한 도구로 존재한다.
9) 중보사역을 위하여 기도는 필수적인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기도의 두가지 극단을 피하여야 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결정론을 이유로 기도를 불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기도없이도 그분의 일을 하지만, 그분의 목표는 일만이 아니다. 기도를 통하여 이루시는 목표가 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도구로 일이 끝난 후에 인간이 버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일을 통하여 인간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만약 일만이 목표라면 하나님이 인간에 기도를 요청할 필요는 없다. 그분은 일하시면서 사람들이 하나님과 신앙의 여정가운데 그분을 만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기도의 또 다른 극단은 내 기도없이 하나님은 일하지 않으신다는 교만이다. 하나님은 다가오시는 분이지 우리가 끌어내릴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분 앞에서 우리들은 기다릴 뿐이다. 기도는 그분의 행동을 조정할 수 잇는 무기가 아니다. 그분의 긍휼을 간구하는 도구일 뿐이다. 하나님은 기도의 법칙을 통하여만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오묘한 섭리가운데 기도를 사용하시는 분이다. 기도와 일의 성취사이에는 하나님의 자유가 있다. 기도는 마치 하나님의 중보사역이 부족한 것처럼 하나님의 중보사역을 보충하는 불가피한 요소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들은 위기 속에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다. 기도는 한계안에 서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다가오심을 준비하는 도구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자유를 의식한다면 기도는 또한 이 땅에서 사탄을 대적하고 승리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권위를 위임받는 도구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에 동참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기도는 악한 세력을 대적하고, 악의 현장을 정화하고, 죄와 상처를 치유하는 권세를 가졌다.
2.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지도자의 중보사역
1) 하나님이 선택한 공동체의 신앙성숙을 위하여 중보자가 요청된다. 중보자는 그가 위하여 행하여야 할 공동체를 위해 중보자로 부름받았다. 중보자는 자기 임의대로 중보사역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중보자의 구체적인 상황과 하나님의 뜻이 결정되면 중보자는 이 두가지를 파악하여 중보사역을 행한다. 어떤 중보사역을 할 것인가는 이미 공동체 안에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중보자는 백성들가운데 대표자이다. 백성들과 무관한 사람이 중보자가 되지 않는다. 백성들의 죄악과 아픔과 상처에 슬퍼하는 측은한 마음이 중보자의 마음이다. 중보자들은 백성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온다.
2) 하나님은 당신의 권위를 중보자에게 부여하신다. 공동체를 위한 능력이 중보자를 통하여 흘러가게 하신다. 하나님이 이미 중보사역을 결정하시지만 이 일들을 성실하게 감당하기 위하여는 중보자의 역량이 나타난다. 어떤 지도자는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무능하고 게을러서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중보자들이 중보사역을 잘 못 감당하는 것은 사역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역을 맡은 인간의 한계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중보자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백성들에게 복이 주어졌다.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못하시고 백성들에게 그 댓가가 돌아갔다.
3) 중보사역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지도자를 통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법칙이다. 구약의 지도자들은 지도력을 통하여 중보사역을 감당하였다.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중보사역은 거룩한 것이다. 그 사역을 위하여 모세를 비롯한 많은 지도자가 나타났다. 하나님은 중보자들보다는 백성을 사랑하셨다. 때로 중보자들은 멸망하는 백성들과 함께 사라져갔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너희의 연고로" (신 1:37; 3:26) 그들과 함께 광야에서 사라졌다. 중보자들은 백성들과 함께 죽기로 결심하는 자이다. 사람들은 중보자들을 경험하면서 이상적인 중보자에 관한 상을 형성하였으며,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상적인 중보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스도께서는 중보사역을 이루는 완전한 분으로서 우리들의 중보자가 되신다. 중보기도란 중보사역을 이루는 도구로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이다.
4) 구약에서 지도자는 그리스도의 그림자의 역할로서 강조되엇지만, 신약에 이르면 지도자와 교회의 지체들 모두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으로 인하여 구원을 경험한다. 지도자와 지체는 서로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는 일을 맡고 있다. 지도자는 제한된 범위에서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위임받아 지체들을 섬긴다. 하나님은 지도자보다는 교회를 더 사랑하신다. 개교회 지도자는 지교회가 담당하여야 할 중보자의 사명을 깨달아 지체들에게 적절히 분담하여야 한다. 지도자는 교회의 사역을 임의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각 공동체를 위하여 정하신 사역을 발견하여야 한다. 지도자가 발견한 교회의 사역을 지체들이 적절하게 담당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지도자는 일을 하는 존재라기 보다는 공동체를 위하여 꿈을 받고, 방향을 제시하는 책임이 있다. 지도자의 꿈은 지체들을 통하여 확장되고, 지체들은 각자의 고유한 일들이 있다. 지도자의 사역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행하는 것으로서 중보사역은 거룩한 것이다. 지도자가 위임된 사역의 가능성과 한계를 무시할 때 버림받을 수도 있다. 교회 모든 구성원이 함께 드리는 예배는 공동체의 과거의 구원을 회상하며 현재적인 구원을 경험하여 중보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3. 열방을 위한 교회의 중보사역
1) 이 사역은 성경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브라함은 땅의 모든 족속을 위한 복의 근원이었고 (창 12:3), 이스라엘은 열방을 위한 제사장 나라로 선택되었다 (출 19:6). 포로로부터의 귀환후에 이스라엘은 다시 이방의 빛으로 재소명을 받으며, 신약에 이르러 이 약속을 재확인 받는다 (행 1:8).
창12:3 하나님 - 아브라함 - 땅의 모든 족속
출 19:6 하나님 - 이스라엘 (제사장 나라) - 열국
사 49:6 하나님 - 이스라엘 (이방의 빛) - 열국
행 1:8 하나님 - 교회 (증인) - 땅 끝의 백성들
열방을 향한 교회의 중보사역은 이미 열방을 지배하는 악의 세력과의 대결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멸망할 운명을 가지고 있지만 성도와 교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악한 세력의 존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역을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를 허락하신다. 각 공동체의 지도자는 맡겨진 사역을 따라 지체들과 협력하여 이 영적인 싸움에 임하게 된다.
4. 중보사역의 원리를 위한 성경해석방법
1) 하나님은 백성을 위하여 중보자를 사용하시며, 열방을 위하여 교회에게 중보사역을 맡기신다. 이 사역의 완전함은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나타난다. 다른 성경인물의 중보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비추어 불완전한 것이지만 이들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그림자로 나타난다. 각각의 사례들은 구약의 한계상황 안에서 적절하게 구체적인 신약의 중보사역과 연결해야 한다.
2) 지도자의 한계 : 교회의 참된 지도자는 그리스도이며,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인간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행하는 위치에 있다. 중보사역이 거룩한 것이며, 사역을 벗어난 인간은 제한된 인간의 본질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지도자에게 허락하신 공동체의 비전은 지체가 함께 나누면서 확장해야 한다.
3) 교회의 구성원은 자신이 한편으로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속을 받는 존재이며 동시에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열방을 중보하는 사역에 동참하게 된다. 그들이 중보하는 열방은 해석에 따라 다양한 삶의 자리가 될 수 있다.
4) 교회는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중보사역에 동참한다. 계속적인 중보사역은 악으로부터의 정화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를 지향하는데 이에는 찬양과 기도가 중요한 도구이다. 계속적인 중보사역은 교회를 적대하는 사탄과의 대적의 형태로 나타나며, 한편으로는 사탄에 의한 죄와 상처에 대한 치유를 담당하여야 한다. 중보는 대상에 대한 사랑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며 열방의 끝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III. 구약에 나타나는 중보기도의 예
1.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1)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기도 (창 18:22-31)
2) 아비멜렉을 위한 기도 (창 20:1-18)
2. 모세의 중보기도
1) 모세의 실패 (출 2:11-25; 5:1-23)
2) 민족의 구원을 위한 모세의 기도 (열재앙과 홍해사건)
3) 마라와 엘림에서 부르짖음: 백성들은 중보자를 찾아 옴.
4) 아말렉과의 싸움 (출 17:8-16)
5) 아론과 모세 (출 32:1-35)
6) 언약의 중보자 (출 34:29-35)
3. 사무엘의 중보기도
1)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삼상 7:3-17)
2) 고별연설에서 (삼상 12:23-25)
4. 왕들의 중보기도
1) 다윗의 기도 (삼하 6:17-19; 대상 16:1-3)
2) 솔로몬의 기도 (왕상 8:62-66)
3) 히스기야
- 산헤립의 침입 (대하 20:5-13; 사 37:14-20; 왕하 19:14-19)
- 유월절을 위한 기도 (대하 30:13-20)
5. 예언자들의 중보기도
1) 엘리야의 중보기도
2) 엘리사의 중보기도
3) 아모스 (암 7:2-3; 7:4-6)
4) 이사야의 중보기도 (사 37:1-4)
5) 예레미야의 중보기도 (렘 7:16; 15:1; 렘 32:16-25)
6) 에스겔 (겔 13:5)
7) 다니엘의 중보기도 (단 9:3-19)
I. 중보사역이란?
1) 중보사역이란 둘 사이에 서서 양자를 화해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이 중보는 두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하나님과 백성사이에 중보자가 행하는 중보사역이다. 이 중보자는 아브라함과 모세를 비롯하여 왕과 예언자를 통하여 나타난다.
하나님 - 중보자 - 백성
2) 두 번째 형태의 중보사역은 이스라엘이 공동체로서 하나님과 열방 사이에 서서 중보하는 것이다.
하나님 - 이스라엘 (교회) - 열방
3) 중보사역의 거룩함 : 이 두가지 종류의 사역은 모두 중보사역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직접 만나지 않으시고 중보자를 통하여 사역하신다. 중보자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중보사역을 행하였다. 중보자 자신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과 인간사이에서 행하는 중보사역 자체가 거룩한 것이었다.
4) 그리스도의 중보사역 : 구약에서 지도자나 교회가 공동체로서 중보사역을 감당하였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한 중보사역은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셨다. 백성을 온전히 하나님께로 인도할 중보의 능력을 갖춘자는 오직 그리스도이다. 열방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구속의 능력을 갖춘자는 오직 그리스도 한분이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중보자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아 사탄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구원자였으며 동시에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하나님께 우리를 부탁하는 위로자였다.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 중보사역이 이루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중보자는 한 분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5) 계속적인 중보사역 : 그리스도가 완전히 이루신 중보사역은 그분의 사역으로 끝내야 되지 않는가? 만약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세상에 역사의 종말이 오고 영원한 구원의 시대로 옮겨졌다면 주님의 죽으시고 부활하신 중보사역 이외에 계속적인 중보사역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적인 중보사역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계속적인 중보사역이란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이 효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이루어진 중보사역이 유효하기 위하여 주님 재림의 날까지 하나님이 교회에 요구하시는 계속적인 중보사역이 있다.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하여 궁극적인 승리는 이루어졌지만 사탄은 하늘에서 �겨나서 지상에서 성도들에게 치명적인 어려움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이 역사의 마지막까지 실현될 수 있도록 성도들이 참여하여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6) 계속적인 중보사역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온 우주의 통치자라는 일원론적인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날까지 세상은 하나님과 사탄이라는 이원론적인 힘의 대결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모든 삶속에서 인간은 하나님이냐, 사탄이냐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이 두 세력의 중간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구약에서 모호하던 악의 존재는 신약에서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사탄이 되며, 사탄은 최종적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 이전에 성도를 위협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7) 하나님의 통치가 모든 외적인 영역과 개인적인 영역에 나타나기까지 두 세력간의 싸움은 계속 된다. 사탄의 영적인 지배는 인간의 죄를 통하여 강화된다. 인간에게 본래적으로 있는 원죄와 실제적인 죄가 있다. 나아가서 인간의 갈등속에 나타나는 죄와 허물이 있으며, 이 죄악은 단순히 의식적인 수준만이 아니라 무의식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나타난다. 그러므로 중보사역의 범위는 개인적인 삶과 공동체의 삶, 그리고 사회의 구조와 우주적인 영역에까지 확장된다. 하나님의 임재와 다스림이 온 우주에 넘칠 때까지 계속적인 중보사역은 필요한 것이다.
8) 그리하여 중보사역은 이 땅에 하나님의 현존이 충만해지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인간의 제의적이고 윤리적인 악함을 제거함으로 이루어진다. 예배는 이러한 정화를 목표로 하며 20세기 이래 성령운동은 중보사역을 위한 강력한 동력이 된다. 성령운동은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는 오순절운동을 시작으로, 성령세례를 강조하는 은사주의 운동으로 발전되며, 성령충만,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성령의 임재를 강조하는 쪽으로 발전한다. 성령운동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위하여 모든 악한 것들을 제거하는 제사의 의미와 관련있다. 찬양은 이와 같이 공동체의 죄와 상처를 치유하면서 정결케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준비하기 위한 도구로 존재한다.
9) 중보사역을 위하여 기도는 필수적인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은 기도의 두가지 극단을 피하여야 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결정론을 이유로 기도를 불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기도없이도 그분의 일을 하지만, 그분의 목표는 일만이 아니다. 기도를 통하여 이루시는 목표가 있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도구로 일이 끝난 후에 인간이 버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일을 통하여 인간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만약 일만이 목표라면 하나님이 인간에 기도를 요청할 필요는 없다. 그분은 일하시면서 사람들이 하나님과 신앙의 여정가운데 그분을 만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기도의 또 다른 극단은 내 기도없이 하나님은 일하지 않으신다는 교만이다. 하나님은 다가오시는 분이지 우리가 끌어내릴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분 앞에서 우리들은 기다릴 뿐이다. 기도는 그분의 행동을 조정할 수 잇는 무기가 아니다. 그분의 긍휼을 간구하는 도구일 뿐이다. 하나님은 기도의 법칙을 통하여만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오묘한 섭리가운데 기도를 사용하시는 분이다. 기도와 일의 성취사이에는 하나님의 자유가 있다. 기도는 마치 하나님의 중보사역이 부족한 것처럼 하나님의 중보사역을 보충하는 불가피한 요소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들은 위기 속에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다. 기도는 한계안에 서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다가오심을 준비하는 도구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자유를 의식한다면 기도는 또한 이 땅에서 사탄을 대적하고 승리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권위를 위임받는 도구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에 동참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기도는 악한 세력을 대적하고, 악의 현장을 정화하고, 죄와 상처를 치유하는 권세를 가졌다.
2.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지도자의 중보사역
1) 하나님이 선택한 공동체의 신앙성숙을 위하여 중보자가 요청된다. 중보자는 그가 위하여 행하여야 할 공동체를 위해 중보자로 부름받았다. 중보자는 자기 임의대로 중보사역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중보자의 구체적인 상황과 하나님의 뜻이 결정되면 중보자는 이 두가지를 파악하여 중보사역을 행한다. 어떤 중보사역을 할 것인가는 이미 공동체 안에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중보자는 백성들가운데 대표자이다. 백성들과 무관한 사람이 중보자가 되지 않는다. 백성들의 죄악과 아픔과 상처에 슬퍼하는 측은한 마음이 중보자의 마음이다. 중보자들은 백성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온다.
2) 하나님은 당신의 권위를 중보자에게 부여하신다. 공동체를 위한 능력이 중보자를 통하여 흘러가게 하신다. 하나님이 이미 중보사역을 결정하시지만 이 일들을 성실하게 감당하기 위하여는 중보자의 역량이 나타난다. 어떤 지도자는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무능하고 게을러서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중보자들이 중보사역을 잘 못 감당하는 것은 사역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역을 맡은 인간의 한계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중보자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백성들에게 복이 주어졌다.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못하시고 백성들에게 그 댓가가 돌아갔다.
3) 중보사역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지도자를 통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법칙이다. 구약의 지도자들은 지도력을 통하여 중보사역을 감당하였다.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중보사역은 거룩한 것이다. 그 사역을 위하여 모세를 비롯한 많은 지도자가 나타났다. 하나님은 중보자들보다는 백성을 사랑하셨다. 때로 중보자들은 멸망하는 백성들과 함께 사라져갔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너희의 연고로" (신 1:37; 3:26) 그들과 함께 광야에서 사라졌다. 중보자들은 백성들과 함께 죽기로 결심하는 자이다. 사람들은 중보자들을 경험하면서 이상적인 중보자에 관한 상을 형성하였으며,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상적인 중보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스도께서는 중보사역을 이루는 완전한 분으로서 우리들의 중보자가 되신다. 중보기도란 중보사역을 이루는 도구로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이다.
4) 구약에서 지도자는 그리스도의 그림자의 역할로서 강조되엇지만, 신약에 이르면 지도자와 교회의 지체들 모두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으로 인하여 구원을 경험한다. 지도자와 지체는 서로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자라는 일을 맡고 있다. 지도자는 제한된 범위에서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위임받아 지체들을 섬긴다. 하나님은 지도자보다는 교회를 더 사랑하신다. 개교회 지도자는 지교회가 담당하여야 할 중보자의 사명을 깨달아 지체들에게 적절히 분담하여야 한다. 지도자는 교회의 사역을 임의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각 공동체를 위하여 정하신 사역을 발견하여야 한다. 지도자가 발견한 교회의 사역을 지체들이 적절하게 담당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지도자는 일을 하는 존재라기 보다는 공동체를 위하여 꿈을 받고, 방향을 제시하는 책임이 있다. 지도자의 꿈은 지체들을 통하여 확장되고, 지체들은 각자의 고유한 일들이 있다. 지도자의 사역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행하는 것으로서 중보사역은 거룩한 것이다. 지도자가 위임된 사역의 가능성과 한계를 무시할 때 버림받을 수도 있다. 교회 모든 구성원이 함께 드리는 예배는 공동체의 과거의 구원을 회상하며 현재적인 구원을 경험하여 중보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3. 열방을 위한 교회의 중보사역
1) 이 사역은 성경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브라함은 땅의 모든 족속을 위한 복의 근원이었고 (창 12:3), 이스라엘은 열방을 위한 제사장 나라로 선택되었다 (출 19:6). 포로로부터의 귀환후에 이스라엘은 다시 이방의 빛으로 재소명을 받으며, 신약에 이르러 이 약속을 재확인 받는다 (행 1:8).
창12:3 하나님 - 아브라함 - 땅의 모든 족속
출 19:6 하나님 - 이스라엘 (제사장 나라) - 열국
사 49:6 하나님 - 이스라엘 (이방의 빛) - 열국
행 1:8 하나님 - 교회 (증인) - 땅 끝의 백성들
열방을 향한 교회의 중보사역은 이미 열방을 지배하는 악의 세력과의 대결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멸망할 운명을 가지고 있지만 성도와 교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악한 세력의 존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역을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를 허락하신다. 각 공동체의 지도자는 맡겨진 사역을 따라 지체들과 협력하여 이 영적인 싸움에 임하게 된다.
4. 중보사역의 원리를 위한 성경해석방법
1) 하나님은 백성을 위하여 중보자를 사용하시며, 열방을 위하여 교회에게 중보사역을 맡기신다. 이 사역의 완전함은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나타난다. 다른 성경인물의 중보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비추어 불완전한 것이지만 이들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그림자로 나타난다. 각각의 사례들은 구약의 한계상황 안에서 적절하게 구체적인 신약의 중보사역과 연결해야 한다.
2) 지도자의 한계 : 교회의 참된 지도자는 그리스도이며,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인간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행하는 위치에 있다. 중보사역이 거룩한 것이며, 사역을 벗어난 인간은 제한된 인간의 본질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지도자에게 허락하신 공동체의 비전은 지체가 함께 나누면서 확장해야 한다.
3) 교회의 구성원은 자신이 한편으로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속을 받는 존재이며 동시에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열방을 중보하는 사역에 동참하게 된다. 그들이 중보하는 열방은 해석에 따라 다양한 삶의 자리가 될 수 있다.
4) 교회는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중보사역에 동참한다. 계속적인 중보사역은 악으로부터의 정화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를 지향하는데 이에는 찬양과 기도가 중요한 도구이다. 계속적인 중보사역은 교회를 적대하는 사탄과의 대적의 형태로 나타나며, 한편으로는 사탄에 의한 죄와 상처에 대한 치유를 담당하여야 한다. 중보는 대상에 대한 사랑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며 열방의 끝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III. 구약에 나타나는 중보기도의 예
1.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1)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기도 (창 18:22-31)
2) 아비멜렉을 위한 기도 (창 20:1-18)
2. 모세의 중보기도
1) 모세의 실패 (출 2:11-25; 5:1-23)
2) 민족의 구원을 위한 모세의 기도 (열재앙과 홍해사건)
3) 마라와 엘림에서 부르짖음: 백성들은 중보자를 찾아 옴.
4) 아말렉과의 싸움 (출 17:8-16)
5) 아론과 모세 (출 32:1-35)
6) 언약의 중보자 (출 34:29-35)
3. 사무엘의 중보기도
1)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삼상 7:3-17)
2) 고별연설에서 (삼상 12:23-25)
4. 왕들의 중보기도
1) 다윗의 기도 (삼하 6:17-19; 대상 16:1-3)
2) 솔로몬의 기도 (왕상 8:62-66)
3) 히스기야
- 산헤립의 침입 (대하 20:5-13; 사 37:14-20; 왕하 19:14-19)
- 유월절을 위한 기도 (대하 30:13-20)
5. 예언자들의 중보기도
1) 엘리야의 중보기도
2) 엘리사의 중보기도
3) 아모스 (암 7:2-3; 7:4-6)
4) 이사야의 중보기도 (사 37:1-4)
5) 예레미야의 중보기도 (렘 7:16; 15:1; 렘 32:16-25)
6) 에스겔 (겔 13:5)
7) 다니엘의 중보기도 (단 9:3-19)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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