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쿄 맑음'의 실제 주인공 아라키 노부요시. (1940 ~ )
서울에 올 때마다 이태원의 트레스젠더 클럽에 간다는 그는 전 세계 미술관에서 전시를 열 때마다 검열 논란이 일었으며 동성애자들이 참석하는 요란한 오프닝 파티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사진 작가이다.
연예인, 소설가, 시인, 영화감독 등 경력이 다채로운 아라키의 사진 작품은 성(性)을 엽기적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치를 때는 일부 페미니스트와 여성 미술인들이 아라키의 작품은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폭력을 정당화하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불과한 외설 사진이라고 미술관 밖에서 피켓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의 사진이 실린 잡지가 폐간되는가 하면 외설시비로 고발되어 벌금형 받기도 했다. 또한, 전시회 도록이 외설스럽다 하여 갤러리의 큐레이터가 체포되기도 했었다. 나중에 큐레이터는 석방됐으나, 아라키는 경찰에 의해 취조당하고 집과 사무실이 수색됐었다.
(아라키 노부요시의 인터뷰 기사 中)
- 당신은 변태인가?
- "보통 사람들은 욕망을 감추고 촬영하지만 나는 정직하게 표출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숨기는 쪽이 변태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난 사진을 찍기 위해서 여자들한테 한 번도 돈을 줘본 적이 없다.
나와 모델들은 언제나 연애 관계에 있었다.
내 사진에는 나의 욕정과 상대의 욕정이 모두 드러난다.
카메라라는 도구로 우리는 서로를 자극하는 관계다. 그게 학대인가?"
-사진에 나온 여성들이 옷을 벗고도 수줍어 하거나 부자연스럽지 않다. 특별한 비결이 있나? 예를 들면 돈을 준다든지….
-"돈을 준 적은 한번도 없다. 하하.. 내가 아마 귀여우니까 여자들이 별로 긴장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사진을 찍기 전 상대방과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사진은 거울과 같다. 내가 나쁜 표정이나 마음을 먹으면 상대방도 그렇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상대방과 둘만의 연애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을 소중히 여기고 배려하면 남도 나를 그렇게 대한다."
-왜 여자의 몸에 탐닉하는가.
-"아름다우니까."
-그런 아름다운 여체를 왜 로프에 묶어 사진을 찍나?
-"자극을 가하면 여체는 더 아름다워지니까. 하하하..."
-당신에게 아내는 어떤 존재였나?
-"내가 사진을 찍는 의미였고 지금도 그렇다. 아내 사진을 찍기 전에는 주로 보도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아내의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를 찍을 때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을 알게됐다. 음식과 꽃에 대한 사진에 몰입하게 된 것도 아내 때문이다. 아내가 죽기 전 일주일 동안 옆에서 간병하면서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것이 음식과 꽃이었다. 아내가 먹는 음식을 찍으면서 생명의 원천같은 것을 느꼈고 죽기 직전 아내에게 선물했던 꽃이 아내가 죽은 직후 봉오리를 틔우는 것을 보고 '생의 전달' 같은 것을 느꼈다. 내게 있어 꽃과 음식은 생과 사의 뒤범벅이다."
-당신에게 사진이란 무엇인가?
-"내가 사진이다."
"사진은 기억이다. 나와 우주,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기억말이다."
도쿄의 빈민촌에서 태어나 홍등가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라키 노부요시는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아버지에게 'Baby Pearl' 카메라를 선물받고, 학교 소풍 때 처음으로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그때의 경험이 삶과 죽음에 대한 느낌을 결정했으며 '사라지는 것들'을 찍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 한다.
그 후 한 아파트에 살고 있던 초등학생 아이들의 해맑은 일상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사친(Satchin)>이란 작품으로 타이요(太陽)상을 수상하면서 아라키 노부요시는 일본사진계에 화려한 등장을 하게된다.
'사진은 카피이다'라는 개념을 주창한 그는 아내의 사진집을 모델로 한 <도쿄 맑음>의 뒷부분에 차장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
'다카하시 반메이'의 영화 <사랑의 신세기>는 1993년 출간된 아라키의 사진집을 영화로 각색한 것인데 여기서 그는 직접 출연하고 스틸사진을 촬영했다.
그의 최초의 사진은 태어날 때 찍은 '어머니의 자궁'이라고 고백할 만큼 아라키는 여성의 몸을 많이 찍었다.
에로틱하고 섬세하던 그의 여성 사진은 1990년 부인의 죽음 이후 노골적이고 난폭한 성향을 갖게 되었고 '긴바쿠'(로프로 묶기, bondage)를 연출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의 사진은 정지된 기억,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존재론적 죽음이라는 의미를 두드러지게 갖게 된다.
그러나 이후 그의 전시가 열릴 때마다 외설시비가 불거졌다. 아라키는 일본 반문화의 아이콘이 되어 작가로선 드물게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지금까지 260여권의 사진집을 낸 그에게 사진은 매일매일의 연속인 일기와도 같다. 그는 현재 도쿄에 살면서 여전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있다
yahoo blog - artsoo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