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너무 웃긴다
딕과 제인이 벌이는 코미디 같은 상황에 정신 없이 웃다 남일 같지 않은 둘의 처지에 슬그머니 안쓰러워지는 웃기 미안한(?!) 코미디라고나 할까?
모 유머사이트에서 본 안내 문구처럼, 영화를 보며 ‘미친 듯이 웃다 뼈와 살이 분리’ … 될 뻔 하지만, 하루아침에 쫄딱 망해 살림살이 내다팔아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는 실업자 딕과 제인의 처지에 뼈와 살이 다시 붙어버리는-_-; 한편으론 웃기 참 미안한 영화다.
이전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 에서 진지한 연기로 호평 받았던 짐 케리의 역시나 하는 능숙한 코미디는 여전하고, 테아 레오니의 과장되지 않은 코미디 연기도 볼만하다.
진지한 짐 케리도 그리 썩 나쁘진 않지만, 망가지며 웃기는 슬랩스틱의 짐 케리가 아직 더 친근하고 편안한 이유는 뭘까? ‘이터널 선샤인’의 짐 케리가 주던 낯선 거리감을 뻔뻔한 딕의 능청스러운 코미디로 상쇄하는 느낌이다. 주로 코미디 영화에 출연해서라기 보다는 타고난 코미디 재능 탓이 더 큰게 아닐까?
잘나가는 IT 기업에서 근무하는 딕(짐 케리)은 어느 날 갑자기 홍보이사로 승진한다. 꿈만 같은 딕의 승진에 맞벌이 하던 제인(테아 레오니)은 전업주부로 살림과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당당하게 박차고 나온다. 꿈에 부푼 두 사람은 곧장 집의 인테리어를 바꾸기 위해 수영장, 정원 공사를 주문하는 등 호들갑을 떨지만 황당하게도 딕의 회사는 바로 다음날 파산한다.
비록 단 하루 동안이었지만 기업의 임직원까지 지냈던 딕은 취업 눈높이를 낮추지 못하고, 백수생활은 장기전으로 돌입한다.
결국 정원의 깔다 만 잔디까지 차압 당하는 지경에 이른 딕과 제인은 은행으로부터 최후 통첩을 받고는 부부 무장강도로 나서는데, 어설펐던 처음과 달리 횟수를 거듭할수록 능숙한 프로가 되어간다.
갑작스런 승진으로 날아갈 것 같은 딕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R. Kelly 의 ‘I believe I can fly’를 능청스럽게 불러 대는 장면, 단수로 잔디에 뿌려지는 물줄기를 기다렸다가 온 식구가 달려들어 샤워하는 장면, 아침 무료급식 시간에 맞춰진 기상시간, 잔디를 차압 당한 설움에 밤에 몰래 이웃의 잔디를 뜯어다 놓고 진흙투성이가 된 채 잠드는 모습 등 웃다가 배꼽 찾기 쉬운 포복절도할 장면들이 많다.
잘 나가던 회사가 하루 아침에 파산하면서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고, 몇 개월 만에 불러주는 회사 면접시험에 뒤따라오던 경쟁자를 떨구고 미친듯이 달려 도착한 면접장 앞에는 면접 대기자들이 이미 끝이 안보이는 줄을 섰다.
살림집기를 내다 팔아 생활하고, 아이를 돌보던 유모에게 밀린 월급을 집으로 대신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이르러서는 딕과 제인의 딱한 처지에 마냥 안쓰러워진다.
하루 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돼버린 딕과 제인이 당하는 처지가 남일 만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도 탈락한 중산층의 몰락과 재진입이 얼마나 힘겨운지 짐 케리 코미디 특유의 과장된 모습으로 그렸지만, 중산층 몰락이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닌 우리의 현실과 크게 동떨어지지 않게 느껴지면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라틴계 보모에게 맡겨져 영어보다 스페니쉬에 익숙한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부모가 아닌외국인에 의해 양육되는 미국 아이들 세태를 꼬집고, 기업 총수의 부도덕한 모습을 희화화 시켜 기업의 양심과 사회적 책무에 대한 은근한 지적도 잊지 않은 유쾌한 코미디다.
다요기 시네마살롱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