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엠 사업부의 부활
로엠은 1998년까지만 하더라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97년 5백억원이었던 매출이 98년 1백90억원까지 추락했다. 2백30여명이던 직원은 1백여명으로 줄었고 1백67개의 대리점은 94개까지 축소됐다.
고민을 거듭하던 당시 오상흔 로엠사업 본부장은 99년 가을 장광규 전무의 방을 노크하게 된다.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대책을 논의한 그가 내린 결론은 BSC 도입. 업무 노하우가 지식창고에 쌓이더라고 평가를 하지 않으면 지식경영이 제대로 수행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한달 가량 장 전무 방을 드나들며 BSC를 배운 그는 BSC 운영원칙을 준수하고 매월 실적평가회의를 열어 직원들의 개별 목표를 관리했다. 직원들에게 매장회전율, 납기준수율, 제조이익률 등 각종 경영지표를 익히게 하고 그 변수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웠다.
그런 노력끝에 서울 종각점에서 성과가 나타났다. 정수정 대리가 매출 50% 성과를 달성했던 것. "2000년 5월 당시 종각점은
매출액 5천만원, 하루 방문고객수 1백70여명, 구매율 35%, 객단가 4만원, 재구매율 5% 수준이었어요. 그래서 연구 끝에 브랜드 파워를
높여야한다고 판단했어요". 정 대리는 브랜드 파워를 높이기 위해 상권 내에서 최고의 매출액을 올리기로 했다.
매장 외벽에 대형 광고판을 설치하고 이틀에 한번 씩 마네킨의 코디를 바꿔 행인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구매율은 판매사원의 능력이 좌우한다고 보고 최고의 능력을 지닌 사람을 투입했다. 또 풍부한 코디 자료를 만들어 윗도리를 사는 손님에게는 거기에 어울리는 바지를 추천해주는 식으로 객단가를 올리고 단골고객을 대상으로 "마일리지제"를 도입, 재구매율도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같은 변수들을 조합해 그는 "매출성장 공식"을 만들었다. 매출이 안늘면 어느 변수에 문제가 있는지 따져보고 원인을 분석해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을 한 지 1년. 종각점은 성과가 눈에 띄게 나아졌다. 1년이 지난 2001년 5월 종각점은 월매출액 1억원,구매율 55%,객단가 5만원,재구매율 10%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파장은 컸다. 어떻게 해 냈느냐는 문의가 다른 사업부에서 빗발쳤다. BSC에 대한 열정이"푸마""브랜따노"등으로 번져가며 "생산성 50% 향상 직원 참여율 70%"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로엠사업부의 성공사례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BSC의 힘"을 깨닫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이랜드는 2000년까지 BSC와 지식경영을 위한 시스템 정착과 직원들의 관심 끌어내기에 매달렸다.
그러나 로엠이 1억 매장 만들기에 성공한 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장 전무는 “BSC의 가장 큰 공헌은 회사의 목표를 개개인에 연결시켜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한다. BSC 시스템을 도입하자 가치사슬의 흐름이 바로 드러났다. 그 결과 직원들은 그때그때 적절하게 목표를 조절할 수 있게 됐다. 매장들은 제품이 나오는 즉시 반응을 점검해 가격과 생산량을 적당히 조정하고 재고를 없애 매장 순이익을 높일 수 있었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이 만든 디자인이 얼마나 팔려나가는지 바로 확인해 다음 디자인에 참고할 수 있었다.
매장별, 개인별 실적은 더욱 투명하게 드러났다. 실적이 잘 보이니 인센티브도 모든 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게 부여했다. 한 디자이너는 성과상여금으로 급여의 800%를 받았다. 그가 속한 사업부가 BSC 종합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언더우드 사업부는 사업이익에서 목표의 204%를, 매장평균 기여이익에서 목표의 661%를 달성했다.
지식관리시스템과의 연계
성과가 눈에 보이자 직원들은 어떻게 실적을 높일 수 있을까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냈다. 직원들은 얼굴에 생기가 돌고 적극적인 자세로 변했다. BSC를 통해 직원들의 개별 목표를 관리하자 학력 직종, 직급에 관계없이 이 부서 저 부서에서 팝콘 튀듯 매출을 올리기 위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이때부터 KMS가 빛을 뿜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KMS 사이트에 서로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여나갔다. 직원들은 자신의 노하우와 지식은 다른 직원한테 전수해주고, 모르는 것은 배웠다.
어떤 의류 브랜드 직원은 전국 매장을 가장 빠르게 순회하는 법을 이 사이트에 올렸다. 2001아울렛의 한 직원은 수박 진열을 멋지게 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올렸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특히 영업부서에서 많이 제출됐다."2001아울렛" 서울 중계점 정육매장의 김성호 주임은 가장 좋은 맛을 내는 삼겹살 두께를 연구해 공개했다. 삼겹살은 6mm 두께로 썰어 내놓을 때 육즙과 향, 부드러움이 가장 좋다는 노하우다. 같은 2001아울렛의 천호점매장 윤종삼 주임은 고기 색깔로 매출을 몇 배 높였다. 고객들이 고기를 살 때 색깔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안 그는 냉장. 냉동육이 가장신선한 선홍색을 낼 수 있도록 시간과 온도를 조절하는 방안을 공개했다.
영업부서의 아이디어가 매출증대에 기여했다면 기술개발 관리부서의 노하우는 원가절감과납기단축 등에 효과가 있었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몸으로 터득해 낸 기술 노하우는 파급영향이 컸다. 이랜드 기술개발실 김영태 과장은 옷감 소요량을 측정하는 "요척"에 모듈화 계산 개념을 도입, 납품기간을 2주 이상 단축시켰다. "요척"은 근무기간에 비례할 만큼 개인의 경험과 노하우가 핵심. 그는 업무혁신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회사에서 상까지 받았다. 설악산 캔싱턴호텔 보일러실의 이명환 관리실장도 비슷하다. 그는 호텔 보일러실 운영비 절감 아이디어를 내 놔 호텔본부장을 놀라게 했다.
이공계 분야의 지식은 이처럼 업무 혁신을 불러왔다. 물론 공개하기를 꺼려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기술개발실 김 과장의 경우 지식을 공개하지 않아 승진에서 제외돼 담당부장이 담당 실무자들과 6개월간 불편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참여도 높아졌다. 각종 평가제도를 바탕으로 만든 아이디어, 지식 경연대회도 참여도를 확산시키는 촉매 역할을 했다.
사내강의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KMS 사이트에는 하루에 대여섯건씩 새로운 강의 개설 공지가 떴다. 이렇게 배우고(Learn), 사용하고(Use), 가르치고(Teach), 점검하는(Inspect) 활동은 이랜드가 개발한 LUTI 지수로 직원들 PC에 나타난다. 이 지수는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박 회장은 2002년을 잊을 수 없다. BSC를 시작한 지 4년만에 뚜렷하게 개선된 성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 해 이랜드는 32개 전 브랜드에서 흑자를 기록했다. 매출도 1조9백26억원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2000년 이후 매출액이 연평균 20% 이상씩 급성장한 결과이다. 2000년 이후 순이익 향상률도 평균 77%를 기록했다. 돌이켜 보면 이랜드는 외환위기 직전 95년에도 높은 외형을 자랑한 적이 있다. 당시 43개의 브랜드와 4천여명의 임직원으로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그러나 생산성에서 보면 그때와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2002년 실적은 브랜드(25개)와 임직원(2천여명)이 절반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만들어낸 기록이다. 외형위주의 경영에서 빚어진 거품을 완전히 걷어 낸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5∼6년전까지만 해도 중저가 의류업체에 불과했던 이랜드는 그룹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이랜드는 최근 1∼2년새 공격적인 M&A로 몸집을 불려 이미 재계 37위권까지 올랐다. 지난 2000년 매출액 7018억원에 불과했던 이랜드는 2004년에는 2조654억원, 지난해에는 2조7130억원으로 매출액을 늘렸고 올해는 까르푸와 합쳐 5조원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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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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