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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파생상품 이야기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2. 17. 00:39

작년 초까지만 해도 세상엔 아무런 위험도 없어 보였다. 그 중심에 있는 월가는 미국식 금융자본주의가 누리는 영화(榮華)와 평온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 월가는 세상의 온갖 위험의 대명사이자 판도라의 상자가 됐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희생양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파생금융상품(derivatives)을 지목하고 있다. 파생금융상품이란 다른 금융자산의 가치 변동을 이용해 그 가치가 결정되는 금융상품으로, 원래 위험을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개발됐다. 하지만 종종 위험을 부채질하고 위기를 초래하는 괴물로 변하곤 한다. 이번 미국 금융위기를 확대재생산하는 주범(主犯)으로도 파생금융상품이 지목받고 있다. 포천(Fortune)은 이것을 '에볼라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번 미국 금융위기의 배경에는 자산담보부증권(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용어설명)과 신용파산스와프(CDS·Credit Default Swap·용어설명)라는 파생상품 두 형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금융위기의 시발이었던 서브프라임 위기 때는 CDO가 주로 문제가 됐지만, 최근 금융위기가 급격히 확산되는 과정에는 CDS가 문제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베어스턴스, 모노라인(용어설명), AIG 등 금융시장에 새로운 골칫거리가 등장할 때마다 그 배경엔 CDS가 있었다.

신용파산스와프는 기업 파산 위험 자체를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든 파생금융상품. 기업의 부도에 따른 원금 손실을 피하는 데 이용될 수도 있는 반면, 기업이 부도를 낼 확률에 베팅(betting)함으로써 오히려 거액의 돈을 벌 수도 있다.

최근에 CDS가 특히 문제가 된 것은, 투기적인 CDS 투자자들이 투자은행 등 금융회사의 부도 위험에 베팅함으로써 해당 기업에 대한 공포를 키우고 주가 폭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마치 주식 공매도(空賣渡)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신현송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파생상품 자체가 금융위기의 주범은 아니지만, 시장의 가격 변동 확대를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그동안 규제의 사각(死角)지대에 있었던 파생상품을 본격적으로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크리스토퍼 콕스(Cox) 미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지난주 미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신용파산스와프 시장은 사기와 속임수의 온상이 될 수 있다"면서 "투자자들이 신용 파생상품 투자를 통해 기업의 부도 가능성에 베팅하는 데도 아무런 감독이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파생금융상품이 괴물로 둔갑한 이유

잘하면 보약이 될 수 있는 파생상품이 왜 괴물로 둔갑했을까?

무엇보다 금융 거래자들이 파생상품의 위험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수많은 파생상품들이 신용파산스와프(CDS)를 통해 부도 위험이 보장된다는 사실에만 기대서 무모하게 발행됐다. CDS는 온갖 파생상품들의 주춧돌이었고, CDS를 많이 팔았던 AIG나 베어스턴스, 모노라인과 같은 금융기관은 파생상품 시장의 대부(代父)와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사실 CDS는 그렇게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CDS가 카지노와 다른 결정적 차이 중 하나는, 카지노에서는 베팅에서 이기면 반드시 돈을 받는 반면, CDS의 경우 반드시 돈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공인된 거래소가 아니라 장외(場外)에서 거래되기 때문이다.

CDS를 비롯한 파생상품 시장에는 구멍가게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소규모 헤지펀드들도 무수히 참여했다. 파생상품 거래는 투자 원금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소액의 증거금 또는 프리미엄만으로도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모한 도박을 벌이던 많은 헤지펀드들이 베팅에 실패해 파산했다. 도박에 참여한 다른 상대방에 줘야 할 돈도 못 주게 된 것은 물론이다. 주택시장이 얼어붙고, 모기지 관련 채권 가격이 폭락한 것이 치명타였다.

심지어 AIG나 모노라인 같은 대형 금융기관도 비슷한 처지가 됐다. AIG의 경우 다른 금융기관에 자산담보부증권(CDO)의 지급을 보증해 주는 CDS를 많이 발행했다가 CDO 가격이 폭락한 것이 몰락을 촉발했다.

더 큰 문제는 많은 금융상품과 금융기관들이 파생상품을 매개로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자산담보부증권은 1차 발행에서 끝나지 않고, 2차·3차 CDO가 발행되고, 신용파산스와프도 부도 위험을 보장해주기로 한 1차 매도자가 자신의 위험을 회피할 목적으로 다시 제3의 기관으로부터 CDS를 매입하는 과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결국 하나의 계약은 연쇄적으로 다른 계약에 영향을 준다. 만일 그 거대한 고리 중 어느 한 계약만 문제가 생겨도 전체 시장이 계약 불이행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마치 전염병처럼 위험이 확산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거래 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이라고 부른다.

더구나 누가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태풍으로 집을 잃은 집주인이 어느 보험회사를 찾아가서 보험금을 받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CDS를 '폭탄 돌리기'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 2000년대 저금리가 급성장을 부추겨

파생상품은 1970년대에 본격 개발됐지만, 최근 10년 사이에 급격히 커졌다. CDS 시장의 경우 6월 말 현재 계약금액이 54조6000억 달러에 이르러 지난 2001년에 비해 59배로 늘어났다.

이렇게 규모가 급성장한 가장 큰 이유는 실제 금융상품(채권이나 주식)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CDS를 얼마든지 매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CDS의 계약 금액은 모든 기업의 부채와 모든 자산담보부채무를 합친 것의 3.4배에 이른다. 채무를 보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CDS인데, 이젠 꼬리(베팅 액수)가 몸통(채무)보다 훨씬 커진 셈이다.

CDS는 부도 위험을 보장하는 보험의 성격을 띠지만, 실제로 대부분은 단순히 투기적인 목적으로 거래됐다. 즉, 많은 투자가들은 단순히 어떤 기업이 부도가 날 것인지를 두고 베팅(betting)하는 수단으로 CDS를 많이 활용했다.

온갖 가능성이 다 CDS 거래의 대상이 됐다. 심지어 미국 정부가 파산할지에 돈을 거는 CDS 상품도 살 수 있다. 슬롯머신의 버튼 하나만 누르면 돈을 베팅할 수 있는 것처럼, CDS도 거래 당사자 간에 전화 한 통, 혹은 인터넷 메신저로 몇 분 만에 쉽게 사고팔 수 있었다. 포천은 "CDS는 세계 최대의 카지노가 됐다"고 보도했다

2000년대 들어 파생상품 시장이 급성장한 데는 저금리도 큰 기여를 했다고 FT는 분석했다. 저금리로 인해 일상적인 금융 비즈니스로는 고수익을 올리기 힘들었던 금융회사들이 새로운 탈출구로 파생상품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파생상품은 금융감독당국의 까다로운 규제로부터도 벗어나 있었기에 금상첨화였다. 파생상품은 월가 최고의 성장 엔진이 됐다.

월가의 로비가 파생상품 규제 막아

파생상품 시장을 규제해야 한다는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매번 유야무야되곤 했다. 1994년 미 오렌지 카운티(County) 정부가 파생상품 투자 실패로 큰 손실을 입고, 1998년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가 파산하면서 파생상품 시장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월가는 치열한 로비를 통해 이를 피해갔다.

파생상품시장을 규제의 사각지대에 두는데 중요한 기여자 중 한 사람이 앨런 그린스펀(Greenspan) 전 미 연준 의장이다. 그는 1999년 미 선물산업협회 강연에서 "파생금융상품은 여러 위험을 구별하는 한편, 그 위험을 감당할 능력과 의향이 있는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파생상품이 시스템 위험을 증대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단서를 달긴 했지만, 파생상품 시장에 대한 새로운 규제는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0년 미 의회는 파생상품 시장에 결정적인 날개를 달아줬다. CDS를 비롯한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규제를 금지하는 법안(상품선물현대화법)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헨리 폴슨(Paulson) 현 재무장관이 당시 골드만삭스 회장으로서 규제를 없애려는 로비의 주역이었고, 그린스펀 의장과 로렌스 서머스(Summers) 재무장관은 이 법안을 지원했다. 당시 법안을 주도했던 필 그램 상원의원(공화당·당시 상원 은행위원장)은 당시 새 법안이 "금융기관들을 과도한 규제로부터 막아주는 한편, 미국이 세계 금융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의 규제 논의는 과거에 비해 훨씬 무게 있게 진행되고 있으며, 상당한 수준의 변화가 예상된다. 분명한 것은 어떤 식으로 귀결되든 앞으로 파생상품 비즈니스 환경은 갈수록 빡빡해질 것이고, 이 사업이 당분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기는 힘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박상용 연세대 교수는 "미국 금융위기의 교훈은, 파생상품 등 금융 혁신이 필요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수준에 맞는 한도 내에서 도입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금융기관의 위험 관리 시스템이나 금융감독이 따라갈 수 있는 정도의 금융 혁신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파생금융상품 용어 설명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자산담보부증권)

모기지 저당 증권 등 위험 정도가 다른 여러 채권을 담보로 발행한 파생금융상품. ▶보다 자세한 설명은 본지 2월16일자 C7면 참조

CDS(Credit Default Swap·신용파산스와프)

기업 파산 위험 자체를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든 파생금융상품.

거래 당사자 중 한 쪽이 상대방에게 연간 수수료를 주는 대신, 특정 기업이 부도나거나 채무가 불이행될 경우 상대방으로부터 보상을 받는다. 이 상품을 통해 부도 위험이 은행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투자자들에게 분산되는 이점이 있다.

모노라인(Monoline)


기업이나 지방정부 등 채권 발행기관으로부터 보증료를 받고 지불을 보증해 주는 채권보증 업체를 말한다. 금융채권 보증 업무 한 가지만 한다고 해서 '모노라인'이라고 부른다.

출처 : 행복한 동네
글쓴이 : 행복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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