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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스테판 설교와 베드로 설교-6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2. 21. 07:27

스테판 설교와 베드로 설교-6

 

한국 백성이 전란의 고통과 전후에 어려운 환경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낄 때에 한국교회는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 희망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다. 절망과 암흑 속에서 헤매던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구원의 메세지는 백성들에게 죄와 저주와, 가난의 굴레를 벗어버릴 수 있는 믿음을 주었다.


60년대와 70년대의 왕성한 복음운동은 많은 교회의 부흥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가져왔고 한국 경제의 눈부신 발전을 불러왔다.

그리고 80년대의 교회 안정기를 거쳐서 90년대 교회 부흥의 침체는 한국 경제에 그대로 투영되어 90년대 말의 외환위기를 불러 왔고 2000년대의 교회의 쇠락은 그대로 이 나라에 영향을 미쳐서 한국 백성들에게 생활의 위협과 장래에 대한 절망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


한국의 미래와 한국백성의 희망은 전적으로 한국교회에 달려 있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한국교회의 성쇠(盛衰)가 그대로 이 나라와 백성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성쇠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언제 이 나라가 다른 종교의 영향력 안에 있을 때에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잘 살아 본적이 있는가? 오늘 종교권 별로 분류할 때에 어느 종교 권이 잘사는 나라인지 세계지도만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불교 권이 잘사는 나라가 있는가? 남미의 카톨릭 국가가 잘사는 나라가 있는가? 비기독교 권에서 잘사는 나라는 싱가폴과 일본 정도이다. 싱가폴은 도시국가이니 국가 분류에 표준으로 삼을 수 없고 국가 중에서 비기독교 권으로 잘사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워낙 부지런하고 정직한 일본인의 근면성이 오늘의 경제부국을 이룬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공의(公義)의 법칙이 세상에서 부지런 한 만큼 잘 살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궁극적인 복인 생명구원의 복은 없다 . 세상에서 수고한 만큼 소득을 올리고 살뿐이다.

 

한국이 오늘의 경제 대국을 이루고 부유한 백성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한국교회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인 것은 같은 민족인 북한 백성이 처참한 생활고에서 굶어죽는 것을 보면 너무나도 확실해진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교회를 허물고 많은 기독교 교인들을 죽인 북한 사회는 오늘 참혹한 저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또한 이 사실은 우리도 한국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없었다면 북한 백성의 지옥 같은 상황이 이 남쪽에서도 벌어졌을 것을 것임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남한이나 북한이나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공산 정권이라 해서 그렇게 처참해진 것이 아니다. 같은 공산 정권이라도 중국은 절충식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고 베트남의 공산정권은 착실하게 국민의 생활 향상과 국가 발전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어찌하여 같은 공산주의를 해도 한국민족만 이렇게 백성을 못살게 하는 정치를 하는가? 왜 북한 공산주의는 등소평이나 호지명 같은 백성을 살리는 지도자가 나오지 않는가?

 

이씨조선 오 백년동안 유교라는 중국 경세(經世) 철학을 도입한 조선인은 편협하게 주자학 일변도로 나라를 운용하였다. 유교의 발상지인 중국보다도 더욱 주자학(朱子學) 일변도로 행하여 주자학 이외에는 모든 사상과 문화와 학문을 거부하고 말살하였다. 그리하여 정치와 사상과 문화의 다양성을 통한 힘을 배양하지 못한 채 시대의 낙오자가 되어 이웃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굴욕을 당했다.

 

우리 민족은 고구려가 중국과 동북아 패권을 겨룰 때에는 웅혼(雄渾)한 기상을 지닌 백성이었지만 중국과의 패권에 밀려 반도에 갇힌 후로는 중국에 종속(從屬)되어 늘 대륙종족의 견제와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근자에 들어와 우리가 중국을 추월하고 먼저 발전한 것은 실로 반만년 역사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리끼리 아무리 자기가 잘 낫다고 해도 우리 역사는 우리가 중국의 사상적, 문화적 식민지요, 일본의 영토적 식민지로 전락할 정도로 그들보다 약한 백성임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못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의 현실이다. 공산주의도 백성을 잘 살게 하기 위한 정치이념일진대 같은 공산주의를 하는데 중국사람이나 베트남 사람보다 못하는 공산주의를 하는가?

 

이것이 우리 민족이 그들보다 역량이 부족한 민족임을 증명해준다면 오늘 남한이 세계 경제 대국이 되도록 잘 살게 된 것은 우리 힘으로 된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똑똑 해서가 아니고 배후에서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통하여 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민족의 마음이 순수하고 종교성이 강해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많아지므로 하나님의 복이 한국교회와 이 민족 위에 임한 결과다. 그러므로 이 나라의 운명과 백성의 장래는 전적으로 한국교회에 달려 있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부요가 우리 힘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나라와 민족의 장래가 한국교회의 흥망(興亡)에 달려 있다면 오늘의 한국교회의 쇠락은 이 나라 이 백성에게 비통(悲痛)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쇠락해 진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오늘의 한국교회 강단(講檀)에서 선포하는 멧세지가 복음의 핵심을 잃어버린 것이 중요한 원인이 되는 것이다. 교회의 부흥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서 핵심적인 역활을 하는 것이 설교이다. 하나님을 모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모르는 인생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할 때 하나님이 그렇게 기뻐하시는 생명구원의 사건이 일어난다.

 

그런데 강단에서 나오는 설교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지 못하고 기성교인들의 귀나 즐겁게 하는 세상철학이나 학문이나 정보전달에 머물 때에 복음으로 살아야 할 영혼은 복음을 알지 못하므로 구원받지 못한다. 그리고 믿음의 확신 없이 교회 출입만 하다가 세상으로 나가버린다.

 

복음은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마련한 구원의 길이다.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서 살리려고 한 영혼이 복음으로 살아나면 그렇게 기뻐하시는데 구원하려고 교회에 보낸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 채 다시 세상으로 나가면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겠는가?


오늘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복음으로 영혼을 살리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진정한 부흥을 이룰 수 없다. 그리고 나중에 하나님을 만났을 때 복음이 없는 강단 사역을 한 사람들은 평신도나 교역자나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지도 모른다.

 

복음이 없이 현란한 말재주로 사람을 모을 수가 있다. 세상에도 자신이 지닌 재주와 학문으로,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불러모으는 사람은 많다. 교회에서도 복음이 없이도 사람들을 모아서 교회를 성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이 없는 곳에서는 진정한 영혼 구원이 일어나지 않는다. 교회가 외형적으로 성장하여 수많은 사람이 구름 떼 같이 몰려와도 복음이 없는 교회에서는 한사람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모르고 교회를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보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한 사람을 원 하실지 모른다. 그 수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을 모른 채 생을 마친다면 하나님의 피 흘린 희생이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평생동안 교회를 출입하면서도 복음을 모르고 그리스도의 구원도 모른채 로 종교철학, 인생철학을 듣다가 죽을 때에 "예수가 누군지 몰라" 하고 죽는다면 이 영혼이 구원받았다고 할 것인가?

 

목사님이 와서 장례를 집전하고 가족들이 천국가는 찬송을 불렀다고 해서 신앙고백이 없이 죽은 이 영혼이 과연 구원받았다고 할 것인가? 그리고 이 영혼이 평생 출입하던 교회에서 신앙으로 이 사람을 지도하던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책망을 받을 것인가? 복음으로 영혼을 살리려고 구역장과 속장과 순장과 교사와 장로와 목사로 세웠는데 복음이 없는 종교철학과 도덕, 교훈만으로 가르쳐서 복음 선포의 사명과 책임을 감당치 못했다면 나중에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파숫군이 경계하여도 태만하여 죽은 사람은 자기 죄에 죽으려니와 파숫군이 경계의 나팔을 불지 못하여 죽으면 그 죄를 파숫군에게 찾겠다고(겔 33:2-6) 하나님은 경고하셨다. 먼저 믿고 복음을 아는 자들은 교역자나 일반신자나 복음의 파숫군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나팔을 불어서 파숫군의 사명을 감당해야하며 만약 이 사명을 감당치 못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책망을 받을 지 모른다.
먼저 복음을 알고 믿은 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복음의 나팔을 불어야할 사명과 책임이 있으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출처 : 충신사 기독교 문서 선교회
글쓴이 : josep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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