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테크/파랑새의원( 제주도)과 섬이야기

[스크랩] 김순이 시인의 ‘제주수선화’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2. 25. 18:09

 

어제는 사라봉에 가서, 이 수선화꽃을 보자마자 문득 김순이 선생이 생각났다.

10년 전 1월1일 아침 6시. 새해 첫날 해맞이 산행을 하기 위해 모였는데

김순이 시인은 참가 일행에게 제주수선화를 한 다발씩 주었다.

아무 조건 없이 받아보는 첫 꽃이었고, 향기가 진했다.


그날 해 뜨는 시각, 높은오름에는 비가 많이 쏟아졌는데

우의를 입고 우산을 든 채로 한 해 산행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사회자는 예고도 없이 나에게 한 마디 하도록 시키기에, 문득 돼지머리의 둥근 코를 보며    

“지금 구름에 가려 안 보이지만 해는 분명 구름 뒤에 떠오르고 있으니,

모두들 소원을 빌고 자기 나름대로 멋진 해를 그려 가슴 속에 하나씩 품고 갑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그 뒤로 10년 동안 첫날 해맞이를 위해 오름에 올랐고,

지금까지 일출다운 일출을 볼 수 없어 그 얘기를 계속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 ‘제주수선화’는 제주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종(種)으로

금잔옥대(金盞玉臺)라 하는 형태의 외지(外地)의 꽃과는 달리

암술과 수술이 노란 꽃잎으로 퇴화되어 향기만 진하게 남은 형태이다.  

나머지 전설이나 시, 그리고 다른 얘기는 여기에 3년 동안 써놓았으므로 찾아보시길 권한다.

 

  

♧ 제주수선화 1 - 김순이


너는 곁에 두어도

멀리 떠돌고


그리워 손을 뻗으면

허공 집히는 어느 날

슬픔에 접은 채 끝나는

마지막 악장(樂章)처럼

눈이 내린다


지독하구나

내 미움

겨울 한가운데

꽃으로 피어

외로움 더욱 외롭게 하는

사랑 되는가

너는 곁에 두어도

멀리 떠돌고

 

 

♧ 제주수선화 2 - 김순이


어머니는 겨울마다 수선화를 한 아름 꺾어 오신다

사투리로밖에 말할 줄 모르는 내 고향 처녀 같은

들꽃 가난한 친구들에게 한 다발씩 보낸다 한 송이

마다 한 번씩 아픈 허리 구부린 내 어머니의 수고를

그들이 알 리 없건만 마음 빈 자의 제단에서 기름도

없이 타오르는 향기로운 불꽃 되기를 기도하는 내

마음 그들이 알 리 없건만 그래도 다시 겨울 오면

수선화꽃 나누어주고 싶어라

 

 

♧ 제주수선화 3 - 김순이


외로운 친구에게

너를 보낸다

어둠 가운데

홀로 깨어

스스로를 닦는 그에게로 가서

한 송이 맑은

촛불이 되어라

가난한 자의 호사는

오로지 마음속에 있어

누구도 축낼 수 없다


멀리 있는 너

들꽃을 사랑하는 너

나의 간절함도

그 어떤 위안이

될 수 없을 때

가슴 속 적막은 바람에 날려

날려도 남아

슬픈 얼굴로 웃고

 

 

♧ 제주수선화 5 - 김순이


물처럼 흐르는 향기는

내게 없어라


바람에 흩뿌리는

싸락눈 맞아 얼얼한 그 자국을

밟아 가는 어린 체취가 나의 것


겨울 들판의 쓸쓸함을

못 견디게 사랑하는 자의 품안에

나는 그리움의 터를 잡는다


어린 새의 깃털 같아라

내 사랑은

작고부서지기 쉬워


연인아

따스운 손길은 거두고

내게는 얼어붙은 손을 다오

열정으로 꽁꽁 얼린

그리운 손을

 

 

♧ 제주수선화 6 - 김순이


겨울새의 젖은 깃 소리

마른 들녘을 스친다


한 송이 겨울 꽃 되랴

더욱 깊이 간직할 이름을 위하여


멀어라

너무 멀어라

마음으로만 손을 잡는

그대

 

 

♬ 첼로 연주곡 모음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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