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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 성종때 발견된 삼봉도는 독도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1. 1. 20:43
선우영준 박사, 일본학계 ‘울릉도’ 주장 뒤엎는 해석

“함경도서 출발 북쪽서 접근땐 당시 묘사와 일치”

1476년(조선 성종 7년) 9월16일 왕의 명령을 받은 김한경 등 12명은 영안도(현 함경도) 경성을 노 젓는 배 다섯 척을 타고 떠나 동해에 있다고 알려진 미지의 섬 ‘삼봉도(三峯島)' 탐색에 나섰다. 열흘의 항해 끝에 삼봉도에서 7∼8리 떨어진 곳에 정박하고 섬을 살폈다. 이들은 “섬에 사람 모습이 30개나 돼 의심이 나고 두려워 상륙하지 않고 섬 모양을 그려 왔다”고 보고했다.조선은 세종부터 성종까지 ‘묘도' 또는 ‘삼봉도'라 알려진 동해의 새로운 섬을 찾는 노력을 기울였다. 부역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을 잡기 위해서였다. 1476년의 항해는 20여년에 걸친 탐색 가운데 유일하게 삼봉도의 상세한 모습을 남겼다. 그러나 삼봉도가 울릉도인지 독도인지를 둘러싼 논란이 독도영유권과 관련해 계속돼 왔다.

선우영준 한국령독도인정위원회 설립준비위원장(행정학 박사)은 26일 발간된 책 <고려와 조선국 시대의 독도>(학영사)에서 삼봉도가 독도의 서쪽 섬인 ‘서도'라는 새 해석을 내놓았다.

대부분의 일본 쪽 연구자와 일부 한국 학자들은 삼봉도를 울릉도로 파악한다. 울릉도의 봉우리 모양이나 ‘섬에 사람 30여명이 서 있었다'는 기록이 주요 근거다.

하지만 선우 위원장은 삼봉도 항해가 강원도가 아니라 함경도에서 시작됐음에 주목했다. 두만강 하구에서 출발해 울릉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북쪽에서 독도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탐사대는 “‘섬' 북쪽에 바위 세개가 나란히 서 있고 다음에 작은 섬, 바위, 가운뎃섬, 작은 섬이 있으며 모두 해수가 유통한다”고 기술했다. 여기서 ‘섬'을 독도의 서도로 본다면, 이 기술은 현재의 독도 주변 배치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게 선우 박사의 주장이다.

그는 ‘사람 모습 30개'에 대해 “탐사 지점이 해변으로부터 2∼3㎞ 떨어졌고 계절로 보아 물범무리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또 이 거리에선 큰 섬인 울릉도 봉우리 전체를 조망할 수 없다며 삼봉도의 울릉도 가설을 배척했다. 그는 “한국인들은 1900년대 초까지도 독도를 전혀 몰랐다는 일본 쪽 주장과 달리 조선시대에 국가 차원에서 섬을 탐색해 영토 행위를 했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한겨레   2007-10-27 오전 10:30:13

출처 : 독도 문지기
글쓴이 : 독도를 찾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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