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3년(1866) 7월 미국의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다 거절당한 이후 독일인 옵펠트는 아산만에 상륙하여 흥성대원군의 양부인 남연군의 무덤을 파헤치는 등 우리나라 연안의 해안탐사와 측량을 빈번하게 자행하였다. 이같은 시기에 영국기선 코스타리카호는 1868(고종5년) 우리나라 남해안을 순행하다가 미확인 암초를 발견했다고 본국 정부에 타전하였다.
1900년 6월5일 21시 40분경 소코트라(Socotra)호가 암초에 부딪치는 접촉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때의 위치가 동경 125。07"이라고 소코트라(Socotra)호는 영국 해군성에 보고하였다. 1901년 영국 해군성의 지시에 따라 ‘Wates Withc'호가 이 암초의 위치와 수심을 확인하였는데 이 당시 암초의 수심은 5.5m로 측량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암초를 ‘Socotra Rock'이라 공식적으로 명명하였다.
이같은 소식이 국제사회에 전해지자 일본측도 이 암초에 대한 이용계획 및 학술조사를 시행하였다. 1951년과 1973년 양차년도에 걸쳐 우리나라에서도 이 섬을 탐사한 바 있으나 실패하고 1984년 5월9일에야 비로소 탐사에 성공하였다.
파랑도의 크기는 직경이 500m이며 그 위치는 우리나라 최남단의 마라도보다 훨씬 남쪽인 북위 32。07'8" 동경 125。10'8"에 자리잡고 있어 우리나라 영해기점 설정에 시사되는 바 크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파랑도의 기상은 여름철에는 북상하는 태풍과 겨울철의 강한 북서 계절풍의 영향으로 파고(波高)는 10m가 넘는다.
이 파랑도 주변에는 항시 파도가 일고 있으며 비바람이 혹심하게 불거나 조류가 세게 흐를때에는 와류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대기와 해수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안개발생도 잦은 지역이다. 이 해역의 평균조차는 약 2.8m이며, 서귀포항 검조서에 비하여 약 30분 정도 낮다.
Socotra Rock'의 수심은 40m까지가 굴곡이 심한 등심선을 이루고, 이 등심선을 기준으로 남, 북방향 약 1.7km 동서방향 약 1.0km 범위를 형성한다. 가장 얕은 곳은 북측으로 치우쳐 있으며, 이전에 알려진 위치와는 차이가 있다. 주위 수심은 50m내외로 비교적 평탄한 해저지형을 나타내며, 지질은 암초를 중심으로 동측은 s.m이며 서측은 m.s가 주로 형성되어 있다. Socotra Rock'은 동지나해 어장의 중심지로서 중국대륙 연안수, 황해난류수, 황해 저층내수와 같은 서로 특성을 달리하는 해수들이 교차하는 연중 조경이 형성되어 수많은 어선들의 집결지가 되고 있다.
이러한 파랑도(波浪島, Socotra Rock) 주변의 수심과 위치의 분포 범위가 확인됨으로서 선박의 안전항해는 물론 각종 학술자료 제공에 기여될 것으로 전망된다. |
출처 : 우리나라 영토이야기 중(대륙연구소출판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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