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성서와 신앙을 알고싶어요

[스크랩] 주님이 주신 몸된 교회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1. 11. 07:35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제부터 구원받아 영생을 누리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에 관하여 상고해 보겠습니다.

이 땅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셔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보면서 주를 찬양합니다.

성도들에게는 천국시민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신부로서 부족하지 않도록 훈련장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주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면서 신분에 맞게 천상의 즐거움과 은혜를 누리며 사명을 행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교회를 세우신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이제 깊이 있게 주님의 교회가 가진 본질이 무엇이며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은 큰 기쁨이며 영광입니다.

사람이 무엇이 관대 교회를 세우셔서 천상의 은혜와 사랑을 공급해주시는지 깊이 감사 감격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정말 감격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교회를 섬길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메시야의 첫 외침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 마4:17))"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께서 계속 전하신 것은 천국복음,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세계만방에 전할 것을 명령하신 것도 천국복음입니다(행1:3).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스라엘을 통해 역사했으나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의 복음 전파 사역의 기초(마28:18-20, 엡1:20-22)와 내용(마24:14)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말세지말에 한국에 교회를 세우셨고 한국교회가 놀랍도록 부흥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정체성이 뿌리 채 흔들리면서 사회의 지탄과 염려의 대상이 되었고, 점차 세상 속에서 영향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은 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올바른 비전을 상실한 것과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분명히 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참되게 작용하기 시작하려면 교회 안에 있는 성도가 교회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져야 비로소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과 교회의 기능에 대하여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속적이고 육적인 방법을 적용시키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는 없고 사람의 소리가 크게 들리는 교회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교회의 출발점이요 그 목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경적 확신이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경적 개념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의미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영역을 의미합니다.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의뜻은 이 땅에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즉 하나님께서 왕 중 왕으로서 주권과 권능을 나타내시옵소서 라는 열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은혜와 축복 안에 들어와 예배를 드리며 교제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유의해야할 점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 교회 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학문, 교육, 정치, 노동, 예술, 경제 등의 모든 창조 세계에서 하나님의 왕적 주권이 실현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는 모든 영역일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메시야적 인격과 사역 안에서 이미(already) 이 세상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눅16:16, 마21:31, 롬14:17, 골1:13). 그러나 그 나라는 궁극적으로 예수님 재림의 때에 완성됩니다(not yet)--(막9:47, 막10:23, 마7:21, 계1:6).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already) 시작되었고 (not yet) 재림으로 완성될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신약교회는 부활하신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 아래로 이미 방주 안에 들어오듯이 들어왔으며 신약 성도들이 실제적으로 그 나라의 은혜와 능력, 축복과 영광을 이미 현재에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미 우리의 본향(in patria)에 있지만 아직 그 최종적 완성에 도달하기 위하여 여전히 순례의 예정(in via)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취되었으나 사단의 공격을 아직 받고 있고 투쟁 가운데 점차 확장되는 단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미래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최종적 완성을 대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성과 미래성의 종합(combination)으로 보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동일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으나 엄격히 구분하여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최우선적인 한 表徵으로서 그 나라를 지시하고 있을 뿐이며 그 나라와 완전 동일시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는 혈과 육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리고 가라지와 알곡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와 완전 동일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한 표징으로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지킬 때 하나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의 특징을 소유할 수 있게 됩니다. 교회는 성령께서 충만하게 오실 때 천국의 감동과 전율과 사랑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으로 성령의 열매가 맺힌 인격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큰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고 불타오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오실 때에는 그리스도인들을 기도하도록 감동시키십니다. 교회가 그토록 무력할 때는 기도하지 않을 때요 교회가 부흥을 체험할 때는 기도가 불타고 있을 때 입니다. 기도가 불타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가 불탈 때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합니다. 이등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문화를 초월합니다. 기도가 불탈 때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인이 접하는 모든 영역이 되며 천국은 내 마음에 있게 되고  내가 가는 곳은 어디나 천국이 됩니다. 교회가 기도로 부흥하면 교회생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 직장에서도 주님께서 노크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교회부흥으로 인하여  땅 끝까지 확장됩니다. 우리의 사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우리에게 교회를 주셔서 천국을 누리게 하시며 천국을 나누어 주고 천국을 확장케 하신 것은 말할 수 없는 축복인데 우리가 교회를 사업보다 못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주님이 세우신 교회의 위대함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구약교회와 신약교회



1. 구약 교회


하나님은 인간을 그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축복하심으로 거기에 이미 '교회'의 모형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는 에덴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교회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첫 인간들 속에 이미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예표'되어 있었고 아담은 예수그리스도의 표상(롬5:14)이었으며, 그리스도는 '둘째 아담'(고전15:45,47)으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구약'이란 말은 '옛 언약'이라는 뜻입니다. 뱀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범죄케 했을 때 하나님은 뱀 즉 사탄에게 여자의 후손으로 나타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를 멸망시킬 것을 말씀하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원시 복음(창3:15)을 언약으로 주셨습니다.

원시시대에는 조직이 가족뿐이고 정치조직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아담과 이브로 구성된 부부 단위의 가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은 노아의 8식구는 '방주 교회'로서 교회의 모형이었으며, 그 후대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가족들의 교회는 '족장 교회'로서 교회의 모형이었고, 출애굽 이후 광야 40년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교회'로서 교회의 모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정규적인 예배가 없었고 셋의 가정에서 비로소 공식적인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창4:26).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의 교회는 미약한 상태이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시대부터 보다 분명한 유형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 에덴동산 교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7,28).


에덴동산 교회는 아담과 하와 두 사람만의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의 탄생이 가능 하였습니다. 에덴동산 교회에서 우주적 교회로의 미래가 보였고 현실적인 축복 속에 함축되어 있었으며 가장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생활 자체가 예배였습니다. 그들에게 만물을 정복하고 지배할 수 있는 축복과 능력이 주어졌고(창1:27,28) 또한 오직 한 가지의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인간이며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조건이었으며, 약속을 어길 때에는 죽음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창2:16,17). 에덴동산 교회가 무한한 축복과 위대한 권세를 부여받은 교회이긴 하였으나 반면에 인류에게 '죽음'의 유산을 물려 줄 연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에덴동산 교회는 만물에게 이름을 지음으로써 인류의 문화와 문명의 시초를 열었습니다(창2:19,20).

시작은 좋았으나 에덴동산의 교회는 뱀(사탄)의 유혹으로 범죄하고 언약을 어긴 불순종으로 소멸 되었습니다.



2) 방주 교회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창6:18).


방주교회는 노아 내외와 그 아들 3형제와 그들의 아내들 합하여 8명의 가족으로 이루어진 교회였습니다. 죄 가운데 모든 인류가 홍수로 멸망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창6:8) 구원받은 교회입니다.

방주 교회의 예배는 그들이 배에서 나오자마자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린 것으로 모든 생물이 다 멸망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다는 기쁨과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방주 교회의 예배는 에덴동산 교회의 예배와는 달리 이때부터는 죄에 대한 속죄의 의미가 예배에 내포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 교회에 하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창9:1)할 것을 언약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어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을 것을 언약하셨습니다(창9:11-17).


방주 교회는 신앙과 순종으로 구원을 얻은 교회입니다. 홍수 심판의 예고와 방주 제조의 명령을 그대로 믿고 순종한 결과였습니다(창6:13-22). 방주 교회는 인류와 생물의 재출발의 교회이며 '무지개'의 새 언약을 받은 교회입니다. 방주 교회는 그 안에 들어오는 자를 구원하는 교회였으며 밖으로 나와서는 새로운 인류의 문화와 문명을 개척한 교회이었습니다. 방주는 곧 그리스도와 교회의 상징입니다. 방주교회는 순종함으로 성장하였습니다.



3) 족장 교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2,3).


족장 교회는 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3대를 통한 가족 교회로서, 믿음으로 의를 얻은 교회입니다(창15:6). 이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대대로 승계 받은 언약의 교회로서(창28:13). '가나안'이라는 영원한 기업을 약속받은 교회입니다(창12:6,7).


아브라함은 세겜 땅 모레와(창12:6,7), 헤브론 땅 마므레(창13:18), 그리고 브엘세바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창21:31-34). 이삭은 그랄에서(창26:1-5), 그리고 브엘세바(창26:23-25)에서 단을 쌓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들 족장들의 예배는 생활 근거지가 마련되는 곳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유랑 예배였고 그것은 항상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창28:15).


족장 교회는 메시야(복의 근원)(창12:1; 17, 8; 창22:18) 출생에 대한 약속을 받은 교회입니다. '할례'를 통하여 성별되고 공동체의 순결을 보전한 교회이며, 아브라함은 '순종'을, 이삭은 '헌신'을 야곱은 '갈망과 추구'를 그들의 신앙적 본질로 삼은 교회이었습니다.

족장교회의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4) 광야 교회(=국가교회)


광야 교회(행7:38)는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애굽에서는 430년 동안 족장(가족) 교회였던 교회가 민족 국가 교회로 성장한 것입니다. 그들은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40년 동안 출애굽 1세대는 죽고 출애굽 2세대가 새로운 세대로 교체되어가는 교회였습니다.


애굽으로부터 구속된 사건은 국가교회(churchstate)의 첫 출발이 되었습니다. 애굽에서 불러내어 홍해에서 세례를 받게 하시고, 시내 산에서 총회로 모이게 하시고, 법을 주셔서 그 백성들이 국가교회가 된 것입니다. 광야 교회는 성문화된 계시(율법)에 의한 교회였으며 '성막'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광야 교회는 성막을 중심으로 한 민족 공동체 교회로서 제정일치의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했으며 광야 교회의 하나님은 가장 현실적으로 교회에 함께한 하나님이셨습니다. 광야 교회는 그리스도 교회의 모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 교회를 향하여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다"(암3:2)고 하시면서 계속 율법을 상기시켰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으로 그들을 구별되게 하시면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다스렸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곧 진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언약, 즉 진리 위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창15:5,6).

언약을 믿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구약 교회는 옛 언약(진리)의 반석 위에 서 있던 교회였으며 그 교회는 하나님 외에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2. 신약 교회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신약 교회는 예수를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임을 믿는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으며, 이는 오순절 성령 강림(행2:1-4)을 통하여 공식적으로 옛 언약의 성취로, 예언된 말씀의 성취로 설립된 것입니다(시2:2,7; 욜2:28-32). 그러므로 신약 교회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의 터 위에 세워진 본질적인 영속성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의 교회는 유대인도 없고 이방인도 없는 새로운 피조물만 있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지정된 구약의 교회가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특권의식만 가지고 있던 그들에게 참 진리가 선포되자 메사야를 죽였습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과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으로 구분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reconcile)하여 가깝게 된 사람과 그리스도의 피가 없는 사람으로 나뉘어 졌습니다. 민족적, 정치적, 혈통적, 환경적, 신분적인 모든 것은 끝이 났습니다. 신약교회는 새로운 창조입니다. 구약시대는 약속의 시대, 신약시대는 그 성취의 시대입니다.


최초의 신약교회는 성령의 권능과 영향과 지도 아래에 살았습니다. 교회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그것만으로도 성령을 소멸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소멸한다는 말은 성령의 감화력과 영향력에 더 관련되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근심케 한다는 말은 성령의 인격과 훨씬 더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말씀입니다. 정상적인 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입니다. 정상적인 성도의 생활은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입니다.

결국 교회가 그리스도 대신 세상의 다른 것을 기초로 삼을 때 쇠퇴, 변질하며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힘써야 가치 있는 신앙적 열매들을 맺고 궁극적으로 승리함을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요15:1-5). 교회의 생명은 언제나 성령의 능력 안에 그리고 그 능력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합니다.


신약교회가 '사랑의 원리'를 상실하면 에베소 교회처럼 교회로서의 '존재적 방향'을 상실한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런 의미에서 '정통주의'혹은 '보수주의'를 추구하는 교회가 범하기 쉬운 독선적이며 폐쇄적인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교회의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그리스도의 품을 떠나 '세상'과 결혼한 세속 교회의 모델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양극화된 두 가지 유혹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날도 발람의 '탐욕적 상업주의'와 니골라 당의 '인본 철학사조'에 빠진 세속화된 교회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위장된 '기복주의'와 그 반대로 '하나님의 의'로 위장된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분별할줄 알아야합니다.


두아디라 교회처럼 거짓 선지자 이세벨을 함께 섬기는 즉 '합리적 사고와 자유주의적 사조'에 물들은 교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뿌리 내린 교회 즉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은 교회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물질적인 사조를 사랑하는 '두 마음을 품은'(약4:8) 교회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사데 교회처럼 인본주의의 힘과 수단을 교회의 생명으로 삼은 교회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계3:1,2절). 오늘날도 교회의 생명인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대신 인간이 만든 사상과 기술을 신앙의 대상으로 대체하는 교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비성경적인 전략과 경영으로 교회를 '물량주의'로 성장시키려는 사조를 주의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법'(갈6:2) 아래 있을 때에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결코 '그리스도를 이용'하는 것을 '신앙'으로 혼돈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인본주의 문화 속에 심취하여 자만과 교만에 빠진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오직 인간의 지혜와 힘을 자원으로 삼은 교만한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질을 '생명'으로 삼고(계18장) 그리스도의 속죄 은총보다 인간 문화의 부요를 인생의 행복으로 삼으며 하나님 말씀보다 과학과 이성에 신앙의 눈이 멀어도 안 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인간의 교회'로 전락하여 목적을 상실한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교회의 생명인 믿음과 말씀과 사명을 지키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서머나 교회처럼 환란과 궁핍의 환경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교회는 오직 주님이 언약하신 '영생'을 존재의 목적으로 삼을 때 칭찬받고 항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칼빈이 지적한 것과 같이 한 믿음과 한 성령으로 연합된 참된 교회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신구약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와 언약의 신실하심을 비추는 거울인 것입니다. 유대인은 단순히 유대인이라는 것 때문에 필연적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오해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닌다고 필연적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 교회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로 시작 되었습니다. 신약 교회는 예수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임을 고백하는 믿음 위에 세우셨고, 이는 오순절 성령 강림(행2:1-4)을 통하여 옛 언약의 성취로 세우신 것입니다(시2:2,7; 욜2:28-32). 그러므로 신약 교회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딤후2:19, 엡2:20).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교회의 생명의 원천과 중심이 되십니다.




말세의 교회


오늘날 세속이 교회 안에 침투해 들어와서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차이를 말하기가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는 인간의 제도가 아닙니다. 성경은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할 때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교리의 순수함을 힘써 지켜야 하며 항상 진단해서 병을 알아내고 그 다음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며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자비와 긍휼을 구하며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며 교회의 본질을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목사의 임무는 성도를 세우는 일이지 군중을 끌어 모으는 일이 아닙니다. 많이 모아 재정은 좋아질 수 있어나 제자삼지 않으면 아무런 능력과 생명이 없으며 오히려 세속화됩니다.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여야 합니다. 교회사에서 교회의 황금시대에는 능력있는 가르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매력적인 것입니다. 영적 매력적이지 육적 매력적이 아닙니다.


교회는 계급과 서열이 교회를 경직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획일화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다양성 안에서 통일성을 유지하는 것이라야 하고 교회의 중심 되는 영광의 본질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이 고안한 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God's initiation)선택하신 교회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그 대가로 지불한 교회입니다. 교회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했습니다. 성경은 교회의 본질을 '하나님의 백성''하나님의 나라' 의 개념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교회가 실현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사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모든 교회생활에 적용되고 실현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잔꾀나 정치적 수완 따위가 통용되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집(family of God, household of God)으로서의 교회를 깨닫고 매우 흥분했습니다.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 '하나님의 권속'(엡2:19)‘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 '그리스도의 비밀' '영원부터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등으로 묘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새로운 가족공동체의 출현으로 선언한 것입니다. 혈육의 가족 관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공동체가 탄생했음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영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영적 가족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마귀를 공격하기 위한 마지막 준비된 새로운 존재입니다. 위대한 성도가 되면 될수록 마귀의 속임수를 더욱 더 알게 됩니다. 마귀가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마귀는 없다는 것을 교회에 가르치는 것입니다. 교회는 마취 당하고 혼미하게 되어 잠에 떨어지고 전혀 그 투쟁을 알지 못합니다. 요즘은 마귀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되며 악에 대해서만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격적인 마귀를 믿지 않는다면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거절하는 것이 되고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치신 마귀에 대한 교훈을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성령님에 대하여 인격적인 성령님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원리나 힘이나 감화력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진정한 고민은 교회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의미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교회가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를 건물로 인식하는 개념은 교회의 정체성의 위기라는 심각한 현상의 한 증상입니다.







출처 : 하나님의 기쁨
글쓴이 : 낮은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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