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은 한자로 ‘菜食’으로 쓰는데 ‘菜’는 ‘++(풀 초)’와 ‘爪(손톱 조)’ 그리고 ‘木(나무 목)’자가 합쳐진 문자로 ‘采(채)’가 음(音)을 나타내고 ‘++’는 풀(草)의 뜻(意)을 나타내어 심어서 기른 풀, 곧 채소(菜蔬)를 표현하였다. 자전에서 살펴보면 채식을 ‘푸성귀로 만든 반찬만을 먹음’이라 해설해 놓았는데 한자의 채식은 vegetarian의 어원이었던 veget(abel)을 푸성귀, 채소로 해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vegetarian을 한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채식은 지금도 단지 풀만 먹는다는 뜻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어 채식에 대한 편견에 힘을 더하고 있다. ‘풀만 먹고 어떻게 살아?’라는 우스갯소리를 보건대 채식이라는 단어가 편견의 인식에 상당부분 기여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바른 채식의 핵심은 통곡류, 콩류, 견과류, 종실류, 채소류, 해조류, 과일류를 골고루 먹는 것이며 어원적으로만 본다면 채식은 이 중 채소류만을 나타내고 있다. vegetarian의 어원인 vegetus의 의미로 거슬러 올라가 vigorous, energetic, lively, move, excite를 음미해 본다면, 채식은 건강식이나 활력식, 생명식, 역동식 정도로 표현될 수 있겠다. 중국에서는 채식을 소박한 식사라는 뜻의 ‘素食(소식)’으로 흔히 표현하고 있으며 일본은 한국처럼 채식이라는 용어를 쓴다. (6-7쪽)
피타고라스는 물고기부터 철학자까지 모두 형제관계이고 영혼은 이들 형태들 간에 이동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채식은 너무나 당연한 실천이었다. 피타고라스는 인간은 내면의 언어와 외면의 언어가 있지만 동물들은 내면의 언어만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내면의 언어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고기를 먹는 것과 물질주의는 피타고라스 학교에서는 금기였다. 피타고라스 학교의 철학자들에게 그것은 도덕적인 수치로 간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순수한 명상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또한 흰색의 식물성 망토를 입었으며 동물을 사냥하거나 양털로 만든 옷도 사용하지 않았다. (22-23쪽)
바오로는 예수를 한 번도 직접 대면한 적이 없었음에도 사도들의 채식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예수를 직접 따르던 사도들 중 상당수가 채식을 하였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예수가 채식을 하였고 그 제자들에게 권장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사실 예수가 죽고 난 후 각지로 전파된 기독교는 수많은 분파를 만들었다. 콘스탄틴(Constantinus, 228~337)은 313년에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였고 323년에는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다. 그는 교회 성직자의 토지세를 면제하고 세속적인 의무를 면제해 주었는데 이 같은 정치의 호혜를 눈감으며 로마의 기독교는 정치의 간섭을 묵인한다. 그 묵인 중 하나가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정신 중 하나였던 채식의 제거이다. 결국 로마 제국의 지원을 받은 비채식인 가톨릭교회가 기독교계를 지배하게 되었고 채식을 하던 초기 기독교의 정신은 점차 파괴되어 갔다. (40-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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