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성지순례이야기

[스크랩] 여수 손양원목사 순교유적지 1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5.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2. 1. 07:39

손양원목사 옥중 생활 모습

 

손양원목사가 일제시대 때와 육이오 사변때 옥중생활 하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목사님은 언제 화장실 옆에 자리를 하셨다. 그 키가 큰 사람들의 발을 가슴에 품고 잠을 잤다.

주먹밥은 하나님께서 자신은 키도 조그마하게 만드시고 체구 적게 만드셔서

조금만 먹어도 된다며 주먹밥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옥중생활할 때 취조받게 고문받는 장면이다.

 

손양원목사 순교장면

 

공산군에게 9월13일 붙잡혀 가셔서 여수 경찰서에서 계시다가 9월28일 끌려 나가

여수시 미평 과수원에서 총에 맞아 순교 하셨다.

손목사님은 순교를 예감하시고 여수 경찰서에서 순교 장소까지 계속 공산군에게 전도를 했다.

그러자 공산군들이 시끄럽다고 총 개머리판으로 목사님의 입을 내리쳐서 입이 짖이겨졌다.

그럼에도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전도를 하셨다.

저녁 11시쯤에 순교하셨다. 현재는 여수 입구 새중앙교회 옆에 순교비가 서있다.

관리는 여수 산돌교회에서 하고 있다.

 

순교자 손양원 목사와 사모, 안고있는 아들은 손 목사님이 순교하신 날 낳은 아들이다.

 

순교하신 손목사님 시신과 함께한 가족들

 

정면에 누워계신 분이 순교하신 손양원목사님이시다.

우측부터 둘째 딸 손동임씨, 그 아래 막내 딸 손동연씨,

정양순 사모님, 사모님이 안고 있는 갓난 아기는 유복자 손동길 목사이고,

그 우측으로 양 아들 안재선씨와 셋째 아들 손동장씨이다. 큰 딸 손동희씨만 빠져있다.

중요한 것은 동인,동신씨를 죽인 안재선이 손목사님의 양아들이 되어서 손목사님의 장례식에서 맏 상주가 되었다.

안재선씨는 1988년에 목암으로 소천되었다.

 (막내는 손동길 목사, 세째 사위 김원하 목사, 큰 외손자 박유신 목사)

 

손양원 목사 장례식

 

손양원 목사 하관식

 

손양원 목사의 생전의 옷 솜바지

 

손양원 목사의 생전의 옷 조끼

 

손양원 목사의 생전의 옷 조끼

 

순교자 동인, 동신 장례식, 1948. 10.24 애양원 교회 장례식 장면

 

1948. 10. 19 여순 사건 발생으로 동년 10.21 공산폭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동인 나이 23살, 동신 나이 18살이었다.

 

손양원 목사 안장후 손동인,동신씨의 무덤 앞에선 가족들과 교우들

 

사진 정면에서 왼쪽이 손동인의 묘이고 오른쪽이 손동신씨의 묘이다.

그리고 보이는 비석은 두 아들의 묘 비석이다. 그 비석뒤에 손양원목사님이 안장되었다.

 1948년 10월 21일 여순사건으로 두 아들이 순교하자 손목사님이 친히

두 아들의 묘를 쓰시고 현재 안장된 자리에서서 내가 죽거든 이 자리에 나를 묻으라고 했다.

그래서 순교하신 손목사님을 순교지에서 모셔와서 목사님께서 말씀한 자리에 안장을 하게 되었다.

손목사님이 안장 당시 사모님이 내가 죽거든 목사님과 합장을 해달라고 해서

1977년 11월 26일 사모님이 부산청십자 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모셔와 합장을 했다.

그래서 현재 애양원에 있는 동도섬의 무덤들은 두아들과 합장된 손양원목사님의 묘가 있다. 

 

순교자 손동인

 

1925년 11월 6일 손양원 목사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절대 하나님 중심으로 살다가 1948.10.21  여순사건 때 공산폭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23세에 순교하였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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