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촌교회
1935년 5월 7일 설립된 병촌교회는 1943년 일제 탄압으로 교역자와 신도 대표들이 구속되었고 교단이 해산될 때 교회도 폐쇄 매각되었다. 이 후 가정교회 형태로 유지되던 병촌교회는 해방과 함께 우제학 집사, 노미종 권사, 김주옥 집사 등 평신도들이 주축이 되어 교회를 재건하였다. 충청도 논산 지역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일찍이 선교의 후보지로 선정하여 답사하고 선교하였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풍요로운 삶을 누린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으나, 6.25로 인한 사상 분쟁은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하였다. 공산당들이 정부군의 후퇴 이래 여러 지역을 장악하면서 민주 우익인사들을 체포, 감금, 구타, 고문 심지어는 죽이는 등 갖가지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그러다가 유엔 연합군의 인천상륙과 더불어 불리해진 공산군들이 도주에 앞서 1950. 9. 27-28일 양일간 병촌교회 신도 16세대 66명(남 27명, 여 39명) 을 한꺼번에 흙구덩이를 파고 쇠스랑과 삽과 몽둥이로 죽여 매장하였다. 이러한 처참한 상황에서도 정수일(여) 집사는 시부모와 3남 1녀의 자녀 그리고 시동생과 어린 조카등 11명은 둘러앉아 기도와 찬송을 했으며 죽음 앞에서 "공산군은 패전하니 이제 회개하고 예수 믿어 구원받으라" 고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고 한다. 김주학 집사의 모친과 부인, 자녀 등 가족 전체가 몰살당한 가정이 5가정이었고, 교회적으로는 직원1명, 세례인 14명, 학습인 12명, 구도자 8명, 학생 및 유아 31명 등 66명이 순교하였다. 이같은 사실은 김주옥 장로 (당시 집사)와 붙잡히기 전 어린 동생과 함께 도망 친 김 장로의 딸 김명호 사모(영광교회)의 증언을 통해 알려졌다. 반동분자라는 죄목으로 온갖 고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켰던 김주학 집사는 미군 비행기 폭격을 틈타 기적적으로 죽음을 모면하였다. 66인의 대 학살 사건이 후 김주학 집사 등은 교회 재건에 매진하였다. 1956년 3월 현재 위치에 52평의 순교자 기념예배당을 신축하였으며 교회 뜰에 "6.25 동란 순교자 기념비"를 세웠다. 1981년 5월 "순교자 기념교회"로 현재의 교회를 신축하였다. 교회의 모습은 면류관의 모습으로 건축 되었다. 1989년 병촌교회와 교단은 "66인 순교기념탑"을 건립하였다.
순교기념탑과 병촌교회
병촌교회 구 예배당(우)와 현 순교자 기념성전(좌)
병촌교회
구 순교자 기념예배당(1956년 3월, 52평) 교회 뜰에 "6.25 동란 순교자 기념비"를 세웠다.
6.25 동란 순교자기념비 (1956년)
현 순교자 기념성전 (1981년 5월, 교회의 모습은 면류관의 모습)
기념성전 머릿돌
현 성전 내부
66인 순교기념탑 (1989년)
66인 순교기념탑
66인 순교기념탑, 교회 2층에서 내려다본 모습
66인 순교기념탑
66인 순교기념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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