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그리스도 품에서 태어나지 못한 불행한 미개인들의 삶은 고양된다. 이걸 믿지 않는 미국인은 밥값도 못하는 인간일 뿐이다.” 미국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 재임 1901~1909)에겐 미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미국은 물론 인류 전체를 위해 좋은 일이고, 그게 바로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이념을 구현하는 길이었다. 그건 미국에 지워진 의무였다. 지독한 인종주의자 루스벨트는 인류 문명의 진보란 야만적 인종들을 개명된 인종이 복속시킴으로써 성취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매긴 인종 서열의 꼭대기에는 미국 사회의 주류백인 앵글로색슨이, 맨 밑바닥에는 흑인이 있었다. 꼭대기 바로 아래엔 서유럽·동유럽 사람들이 배치되고 그 다음이 중남미 라틴계, 아시아계였다.
미국은 스페인한테서 필리핀과 쿠바 등을 빼앗아 식민지배를 했는데, 예컨대 필리핀을 지배하지 않는 것은 필리핀의 운명을 필리핀인이라는 야만인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과제”를 떠맡기는 것이고, 그것은 미국의 책임 방기라고 루스벨트는 주장했다. 그가 당시 육군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1857~1930, 1909년부터 13년까지 27대 대통령)한테 가쓰라 다로 일본 총리를 만나 흥정하게 한 것이 바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영웅 숭배자 루스벨트는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 따위를 탐독하며 아시아 인종 중에 자신들을 모방하는 데 성공한 일본인만을 예외적으로 높이 평가하면서 형편없는 조선인이 일본인의 지배를 받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그렇게 일본의 조선 지배를 보장해주고 대신 필리핀에 대한 미국 지배를 보장받았다. 그에 앞서 미국은 스페인군을 몰아낸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필리핀 독립세력을 내쫓고 ‘문명화의 은혜’를 베풀고 있었다. 루스벨트에겐 혁명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혁명은 선진 인종에게나 어울리는 일이고 야만인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후진국의 혁명은 문명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혁명이든 사회경제적 변혁을 추진하는 혁명이든 모두 막지 않으면 총체적 파국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니 아기날도가 미국처럼 독립혁명을 감행하다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 산 바위에 얼굴이 새겨진 넷 가운데 한 사람인 루스벨트는 미국 영웅이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역사학과 교수 마이클 헌트의 〈이데올로기와 미국외교〉(산지니 펴냄)는 제국으로 등장한 19~20세기 미국 대외정책의 틀을 짠 대표적인 외교 이데올로그로 루스벨트와 함께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1856~1924, 재임 1913~1921)을 꼽는다. 우리에겐 3·1운동을 이끌어낸 민족자결주의로 잘 알려진 윌슨은 루스벨트와 달랐을까. 분명 달랐지만 또 다를 게 없었다. 윌슨의 외교정책은 결국 루스벨트의 그것에 수렴돼 간다. 그는 원래 필리핀 병합에 반대했으나 아기날도가 스페인군을 몰아낸 1898년 무렵엔 필리핀을 독일이나 러시아 등 다른 유럽 열강에 넘겨주는 것보다는 미국이 차지하는 게 훨씬 낫다고 본다. 윌슨 역시 앵글로색슨의 인종적 우위를 신봉했으며, 서부 개척을 완료한 미국으로선 새로운 프런티어가 필요하다며 동아시아를 미국의 새로운 서부로 설정한 루스벨트와 똑같은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 대외정책이 19세기 말 이후 팽창주의, 대국주의로 전환됐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헌트는 미국 외교를 지배해 온 이데올로기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미국은 세계를 이끌 위대한 나라라는 국민적 자의식, 인종간에는 위계적 질서가 있다는 인종주의, 그리고 혁명은 위험하다는 혁명불가론이다. 미국역사를 관통해온 이런 이데올로기를 빼고는 외교정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게 헌트의 주장이다. 〈미국 외교의 비극〉을 쓴 윌리엄 애플먼 윌리엄스는 이 이데올로기들을 “미국 자본주의를 주무르는 고관들이 경제적 권력을 유지하고, 또 그 권력을 통해 사회정치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봤다. ‘위대한 미국’론은 〈상식론〉으로 미국 독립운동에 불을 붙인 토머스 페인부터 본격화한다. 그는 미국이 세상의 꺼져가는 자유의 불꽃을 수호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명맥한 숙명”(존 오설리번)이다. 헌트는 페인에 이어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과 국무장관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3대 대통령)을 등장시키는데, 그들 사이 관계는 출발점이 달랐지만 서로 수렴해간 루스벨트-윌슨 관계의 원형이었다. 국력과 이기심, 열정을 강조하면서 위대한 미국, 강건한 연방주의를 주장한 해밀턴과 자유와 평등, 공화주의를 선호한 제퍼슨은 애초엔 달랐지만 외교정책에서 결국 제퍼슨이 미국의 영토확장을 긍정하고 본래 서로 배치되는 자유와 대외팽창을 양립 가능한 것으로 수용한다. 해밀턴주의의 승리였다. 윌슨 외교정책의 루스벨트화는 그 변주였던 것이다. 이후 그런 변주는 지금까지 되풀이된다.
한겨레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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