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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머나(폴리캅 기념교회 외)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10. 11:16


서머나교회(폴리캅기념교회)

 

스미르나 라고 하며 현재명은 이즈밀 이다. 터키 남부의 미항으로큰 도시이다. 현재의 교회는 아시아 7교회 중 유일하게 건물이 있는 곳으로 황제 숭배를 거부해 순교한 서머나 감독 폴리캅을 기념하여 세운 교회이다.  당시 서머나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고 그들은 기독교인들을 잔학하게 탄압하였다. 또한 로마 황제 숭배 거부로 서머나 교회는 많은 재정적 궁핍을 겪었다. 그럼에도 서머나교회는 모든 핍박과 유혹을 물리치고 열렬한 신앙을 지켜 가장 모범적인 교회로 칭찬을 받았다.  

 


서머나교회

 


교회 내부

 


교회 강단

 


폴리캅 감독

 


폴리캅 감독

 


화형당하는 폴리캅

 

서머나 교회는 105년경에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갑이 맡고 있었다. 폴리갑(AD.80-165)은 본래 안디옥 출신이었다. 구전에 의하면, 서머나의 어느 과부가 안디옥에서 폴리갑을 노예로 샀는데, 그가 너무 똑똑해서 그녀가 죽게 될 즈음에 폴리갑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폴리갑은 젊었을 때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다., 성격은 직설적이고, 정열적이었다. 20대의 청년 나이에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 되었고, 86세 때에(아우텔리우스 황제) 순교했다. 익나티우스가 순교한 후 약 반세기 후에 폴리갑이 순교했다. 폴리갑은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후대에 가르치고, 가르친 대로 삶을 증거했던 인물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처음에는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아첨하는 자들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의 박해는 참혹했다. 기독교인들은 채찍에 맞아 온 몸이 찢기었고 속살이 드러나고 창자까지 밖으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바닷조개껍질이나 땅위에 박아 놓은 창끝에 눕혀졌으며 온갖 종류의 고문을 받은 뒤에 사나운 짐승의 밥으로 던져졌다. 박해의 강도가 점점 심해지자 프리지아(Phrygia)에서 온 퀸투스(Quintus)는 사나운 짐승들과 고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겁에 질려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갖은 고문과 박해 속에서도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다. 이 박해로 인해 게르마니쿠스(Germanicus)라는 청년이 순교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힘을 얻고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극복했다.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고 사나운 짐승의 밥이 되어 마침내 불의하고 무법한 세대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게르마니쿠스의 영광스런 죽음을 본 군중들은 이 경건한 순교자의 용기와 모든 기독교인들의 강건한 믿음에 놀랐다. 그래서 이렇게 외쳤다. “악인들을 제거하라. 폴리갑을 데려 오라” 라고 소리쳤다. 이러한 소식을 듣고서도 폴리갑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계속 그 도시에 머물기를 원했다. 그러나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에게 은밀하게 그 도시를 떠나라고 간청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농장으로 피신했다. 폴리갑은 몇 명의 친구들과 그곳에서 전 세계 모든 교회에 평화를 주시기를 주님께 간구했다. 이것은 그가 항상 해 온 습관이었다. 폴리갑이 체포되기 사흘 전날 밤, 기도 중에 자기가 베고 자던 베개에 갑자기 불이 붙어 타버리는 환상을 보았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즉시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꿈을 해석해주었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예언하면서 폴리갑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불길 속에서 목숨을 바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적하는 무리들 때문에 폴리갑은 자기를 염려하는 형제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 추적하는 무리들은 그곳까지 쫓아왔다. 무리들은 두 명의 소년을 붙잡아서 그중 한 아이에게 매질을 하면서 폴리갑이 숨어있는 곳을 말하게 만들었다. 해질 무렵 추적하는 무리들이 폴리갑이 있는 곳으로 왔을 때에, 그는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더 이상 피신하지 않았다. 폴리갑은 쾌활하고 온유한 얼굴로 추적하는 무리들에게 말을 건넸다. 폴리갑을 본 적이 없는 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눈앞에 선 사람은 굳건하고 장엄한 얼굴한 노인이었으며, 이처럼 훌륭한 노인을 체포하기 위해 자신들이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했다는 사실이 그들을 놀라게 했다. 폴리갑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그 사람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도록 하고 마음껏 먹도록 청했다. 그리고는 한 시간 동안만 방해받지 않고 기도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허락해 주었다. 폴리갑은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 즉 위대한 사람이나 평범한 사람들, 귀족이나 미천한 사람들 그리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을 위해서 기도했다. 무리들은 폴리갑을 나귀에 태우고 서머나 시로 데려왔다. 그 날은 큰 안식일이었다. 폴리갑을 맞은 헤롯 왕과 그의 부친 니세테스(Nicetes)는 폴리갑을 자기 마차에 태운 뒤,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면서 “가이사를 신이라고 말하고 그에게 제사를 지내어 당신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해로운 일이냐?”고 말했다. 폴리갑은 처음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끈질기게 권면하자 폴리갑은 “나는 당신들의 충고대로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화가 난 헤롯왕은 폴리갑을 저주하며  마차에서 밀어버렸다. 폴리갑은 허벅다리를 삐었지만 그는 꽂꽂하게 걸어서 경기장으로 끌려갔다. 폴리갑이 경기장으로 들어갈 때 하늘로부터 “폴리갑, 강건하라! 대장부답게 싸워라!” 하는 음성이 들렸다. 경기장이 너무 소란했기 때문에 그 음성을 들은 청중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믿음의 형제들 중 다수가 그 음성을 들었다. 노령의 지방 총독 게르마니쿠스(Germanicus)가 재판정에 서게 되었다. 재판관은 폴리갑이 노인임을 생각하여 고문과 죽음을 당하느니 개심하도록 충고했다. 이때 폴리갑은 총독에게 말한다. “나는 86년 동안 그분을 섬겨 왔는데, 그동안 그분은 한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적이 없소.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가 있겠소” 총독이 말한다.‘나는 사나운 짐승들을 준비해 두고 있소, 만일 당신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당신을 그 짐승들에게 던져 버리겠소’ 폴리갑이 대답한다.“그 짐승들을 부르시오. 우리는 선을 버리고 악으로 돌이켜서는 안 되오, 오히려  악에서 돌이켜 덕을 택하는 것이 선한 일이오” 뜻을 굽히지 않는 폴리갑을 향해 총독이 마지막으로 위협을 한다. 만일 당신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당신을 화형 시키겠소’ 폴리갑이 대답한다. “당신은 잠시 타오르다가 곧 꺼져버리는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소. 왜냐하면 당신은 장차 임할 심판과 악인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형벌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요”  이렇게 대답하는 폴리갑의 얼굴은 확신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총독의 위협에 전혀 용기를 잃지 않았다. 총독은 전령을 경기장 한복판으로 보내어 ‘폴리갑은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고백했다’고 선포하게 했다. 경기장의 청중들은 열광하며, 아시아 의회원(Asiarch) 빌립에게 사자를 풀어놓아 폴리갑을 죽이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빌립은 이미 원형 경기장에서 검투 경기를 마쳤기 때문에 자기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청중들은 폴리갑을 산채로 태워 죽이라고 소리쳤다. 군중들은 상점이나 목욕탕으로부터 장작과 밀짚을 모아다가 단을 만들고 폴리갑을 그 위에 세웠다. 그들은 폴리갑을 큰 못으로 말뚝에 고정시키려했다. 그때 폴리갑은 이렇게 말했다. “나를 이대로 두시오. 나에게 화형을 견뎌낼 힘을 주실 그 분은 당신들이 못을 박지 않아도 장작더미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견딜 능력도 주실 것이요.”그들은 못을 박지 않고 그냥 말뚝에 묶었다.

폴리갑이 마지막 기도를 한다. “사랑하는 복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당신에 관한 지식을 주신 아버지여! 당신 앞에 살고 있는 모든 천사들과 천군들과 피조물, 그리고 모든 의인들의 하나님이시여! 당신께서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순교자의 반열, 그리스도의 잔에 참예하게 하시어 내  놈과 영혼이 성령의 썩지 않은 축복속에서 영생의 부활을 얻기에 합당하게 여겨주심을 감사하나이다. 오늘 나는 신실하고 참되신 하나님이신 당신께서 예배하시고, 계시하시고, 이루신 풍성하고 열납될 만한 제물로 당신 앞에 드려지기를 소원하나이다. 나는 이 모든 일을 인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영원한 대제사장을 통해서 당신을 찬양하고, 감사드리며 영광을  돌리나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제부터 영원토록 영광이 있을 지어다. 아멘” 

폴리갑이 기도를 마친 후 집행인들은 불을 붙였다.  폴리갑의 순교 현장을 목격한 우리의 형제들이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불길이 크게 솟아올랐을 때 우리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불꽃은 마치 바람을 맞은 돛처럼 아치형태를 이루어 순교자 폴리갑의 육체를 담처럼 에워쌌습니다. 그 한 가운데 선 폴리갑의 몸은 전혀 불타는 육체 같지 않았습니다.

 


폴리캅이 고문당하던 곳, 파고스 언덕

 

 총독은 기독교인들을 잡아들이기만 하면, 파고스의 언덕에 있는 경기장에 몰아넣어 군중들이 보는 가운데 처형해 버렸다. 서머나인들이 로마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듯이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세상에서의 그들의 생명을 포기함으로서 주님께 충성을 다했다. 폴리갑은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형제들을 격려한 서머나 교회의 지도자이다.

 

 


폴리캅이 고문당하던 장소

 

서머나 지역에서 발굴된 동전에는 로마 신전과 로마 신전과 티베리우스 신전, 하드리안 신전, 티케 신전, 네메시스 신전이 그려져 있다. 또한 황제들에게 서머나의 충성을 묘사하는 것으로 황제의 모습이 담긴 동전을 포함해서 티투스와 도미티안 황제에게 헌납된 것들이 있다. 그리고 도미티안과 트라야누스 황제와 하드리안 황제의 동상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트라얀 황제의 아버지는 수도를 건설하였고AD.102 - 112년에 지방 총독 베비우스툴루스가 이 수도를 다시 보수했다는 몇 개의 비문들이 발견되었다. 서머나에 있는 유적으로는 기원전 2세기에 건축된 시장터인 아고라, 폴리갑이 순교한 파고스의 언덕으로 알려진 카디페 칼레가 있다. 성지 순례객들은 폴리갑 기념교회를 방문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주후 1600년경 프랑스 교구에서 폴리갑을 기념하여 기증한 것으로 초대교회의 유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이 교회의 벽화에는 폴리갑이 로마군인들에게 연행되는 장면, 원형 경기장에서 화형 당해 순교하는 장면, 폴리갑이 안디옥 교회의 감독 익나티우스를  만나는 장면 등이 있어서 초대교회의 박해 역사를 회상해 볼 수 있다 BC.195년 서머나 도시는 로마황제의 숭배를 위해서 황제 신전을 세운 소아시아 도시들 가운데 최초의 도시였다.

 

 1세기 후 로마군인들이 미트라다테스4세(Mithradates Ⅳ)와의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자 서머나 공회는 서머나인들의 옷을 벗겨 사기가 떨어져 있던 로마인들에게 주었다. 키케로(Cicero)가, "서머나는 우리의 가장 충성스럽고 가장 오랜 원조자다“라고 격찬할 만큼 서머나인들은 로마에 충성하였다고 한다. 서머나인들은 로마 황제의 숭배를 위한 신전을 세웠고 그 충성심을 인정받아 BC. 23년 티베리우스 황제를 위한 신전 건설의 특권을 따냈고, 이로 인해 서머나는 로마 황제로부터 자치도시이며, 자유도시로 승격될 수 있었다. 그 후 이곳은 순회 재판이 열리는 등 로마의 중요한 정치적 도시로 변모해 갔다. 서머나 도시의 아름다움이 로마인들에게 알려지면서, 로마의 귀족과 부자들이 계절에 상관없이 서머나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파고스 언덕에는 로마인들을 만족시켜주는 자극적인  경기와 연극들이 공연되었다. 휴양지답게 서머나의 모든 목욕탕과 술집 그리고 유곽들이 휴일도 없이 초만원을 이루었다. 로마인들로부터 많은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 보다 자극적인 장사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이 사람들의 주된 고민 거리였다.

 

서머나를 정복한 로마인들은 알렉산더가 그랬던 것처럼 이곳을 신들의 도시로 만들었다. 서머나 곳곳에는 수많은 제단들이 만들어지고 제우스와 디오니소스, 키벨레(아데미), 게다가 황제의 신전까지 등장하여 서머나는 신들의 공원을 이루었다. 결국 서머나는 이교 문화와 종교의 집합처요 황제숭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공식적으로 이곳 서머나인들의 로마 황제숭배는 티베리우스(Tiberius)황제를 숭배하기로 결정한 때부터 시작되었다. 티베리우스 다음 황제인 갈리굴라(Galigula AD.37-41)는 로마시민이 아닌 사람에게까지 황제를 숭배하도록 강요했다.

특히 AD.81-96년에는 도미티안(Domitian)황제는 자기 스스로 ‘주와 신’이라 칭하면서 자신을  숭배치 않는 자들에게는 큰 핍박을 가했다. 이러한 환란 중에 사도 요한은 에베소에서 결박되어 밧모 섬으로 유배를 갔다. 서머나는 에베소와 마찬가지로 로마제국 내에서 세계적인 상업도시였고, 포도주의 명산지로 유명했다. 영웅들만 마신다는 프람니안 포도주가 바로 이곳에서 생산되었다. 키벨레 신전 바로 옆에서 만들어진 이 포도주는 호머에 의하면 마시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꿀과 함께 치즈와 빵에 발라먹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지역에서 나는 포도주는 독특한 향기 때문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서머나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포도주는 만들 때에 포도주 안에 꿀을 넣지 않고, 단지 두 잔의 포도주 원액에 다섯 잔의 물과 바닷물을 조금 가미해서 백묵가루와 대리석 가루를 섞어서 희석시켜서 만든다고 한다. 당시 헬라인들은 무엇이든지 혼합된 것을 좋아한 것 같다. 헬라어로 포도주란 오이노스(Oinos)라고 하는데 이 말은 “섞음”이란 뜻이다. 포도주는 취하기 위해서 마시기도 했지만, 두통이나 위장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으로도 사용되었다. 사도 바울은 신약성경 디모데전서 5장 23절에서 디모데에게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면하기도 했다.

 


서머나 시내

 


서머나 옛 아고라 유적지

 

이 도시의 명칭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첫째는 향료인“몰약”이란 말에서 유례 되었다고 한다. 서머나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왜 이 도시가 “몰약” 이란 뜻의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 한다. 왜냐하면, 서머나에서는 “몰약”이 난 적이 없고, 지금도 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Theseus)는 아마존족인 한 여인을 사랑하여 그녀와 결혼했다고 한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이 언제까지나 기억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지중해의 아름다운 도시인 이곳을 아내의 이름으로 ‘서머나’라고 불렀다고 한다.

 

서머나(이즈밀)는 지금도 터키에서 세 번째 큰 도시로 인구가 450만 명에 이른다.  항구 도시로서의 명성을 지금도 잃지 않고 있다. 서머나는 공업이 발전된 도시는 아니지만, 많은 물품들을 수출하고 있다. 서머나를 중심으로 한 에게 지역에서 생산되는 연초와 건포도를 비롯한 농산물, 그리고 세계적으로 명성을 자랑하고 있는 터키 대리석, 넓은 목초지에서 건강하게 자란 양들을 통해 얻어지는 가죽 등이 주요 수출 품목이다.

서머나가 아름다운 해안 도시로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바다에서 내륙으로 길게 뻗어있는 만과 병풍처럼 도시를 둘러쌓고 있는 두 개의 형제산인 시필산(Sipil)과 니프산(Nif)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부들은 시필산과 니프산 사이에서 떠오르는 아침 태양을 바라보며 그물을 거둔다. 저녁에는 황혼의 아름다움과 함께 태양이 서머나의 바다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간다. 또 풍랑을 잔잔하게 하는 만은 항구로서의 좋은 입지조건을 제공하여 이곳을 계속 상업도시와 휴양도시로 발전하게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래서 서머나에 역사에는 아름다움을 격찬하는 언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티데스(Aristides)는 “서머나는 아시아의 자랑, 아시아의 꽃, 아시아의  단장, 그리고 아시아의 면류관이다”라고 했다.  루키안(Lucian)은 ‘서머나야말로  아시아의 영광의 도시요, 화려한 한편의 시와 같다.’고 표현했다. 역사가 스트라보는 ‘아시아의 보석’이라고 하였다. 서머나를 방문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서머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요, 이상적인 도시였다. 그곳에 세워진 많은 신전들은 사람들의 영혼에 안식을 주었고, 목욕탕과 마차 경기장들은 육체의 쾌락을 만족시켜 주었다


출처 : 일곱샘
글쓴이 : 일곱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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