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효용론에 대해서도 다른 경우에서처럼 여러가지 담론이 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예를
들어 지난 번 독후감을 올렸던 다치바나 다카시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선적으로 모르던 걸 알게
해주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그러한 실용적인 독서의 역할에 가장 많은 표를 던지겠지만 좀
더 나이브(?)한 관점에서 보자면 독서란 세상엔 나와 같은 감성을 지닌 사람들도 꽤 있다는, 다
시 말해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주고, 또 그러므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인간들을 더 사랑
하게 만드는 역할 같은 거요.
물론 이것 말고도 독서의 효용적 가치에 대해선 여러가지 할 말이 많지만 이쯤 접겠습니다.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솔직담백한,
그러면서 동시에 여러 사람들에게 잔잔하지만 벅찬 감동을 주는 일종의 다큐멘터리 작품에 관
한 제 감상이니까요. 바로 이 책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말입니다.
이 책은 스포츠 칼럼니스트였던 작가 미치 앨봄이 대학 졸업 한참이 지난 후 우연히 TV에서 자
기가 존경해마지 않았던 은사 모리 스와츠의 이름을 듣게 되고, 그의 근황을 알게 되면서 시작
되는 두 남자의 우정과 사랑, 인생의 탐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 미치가 오랜 만에 스승
을 만났을 때 이미 모리는 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이라는 일명,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중이었지요. 하지만 이 책은 흔히 유추할 수 있는, 죽음을 앞둔 한 노교수의 절망적인
회한이나 추억담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신 죽음에 대해서도 삶처럼 계획을 세우고 준
비해나가는 한 지성인의 적나라한 기록이자, 그가 마지막으로 완성하는 제자와의 '논문'입니다.
학창 시절 모리 교수에게서 깊은 감화를 받았던 미치였지만 모리교수를 만나기 전 그는 거의
모든 졸업생들과 마찬가지로 교수님에 대한 기억의 흔적이 말라가고 있었고, 모리란 이름을
방송에서 듣는 순간에서야 그는 지나온 세월동안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과 꿈을 기억하게 됩니
다. 그에게 모리교수는 단순히 학문만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었고, 그의 인생을 '코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깊은 후회와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는 이제 더 이상 열정적이고
의기만만하지 않은 교수님을 방문하지요. 그 날부터 모리교수는 여전히 병상에서도 그에게
조근조근 인생의 참 의미에 관한 '수업'을 시작하고, 또한 미치는 노교수의 수업을 진지하게
경청합니다.
하지만 이제 둘의 관계는 단순히 사제지간이 아니라 함께 인생을 논하고, 함께 죽음까지의 여
정을 기록하는 동반자가 됩니다. 화요일마다 만나 차분하게 서로의 흉금을 터놓고, 의견을
나누고 우정과 사랑을 나눕니다. 처음 미치는 노래부르기, 춤추기를 좋아하던 모리교수가 더
이상 그런 것들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 나오는 것, 팔을 스스로 드는 것 조차 어렵
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죽음을 앞두고서까지도 인간 존엄성을
잃지 않고 그것을 농담과 익살로 승화시킬 줄 아는 그의 높은 정신세계에 감화됩니다. 동시에
그러한 한 인간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고, 영혼의 합일을 깊이 느끼게 되지요.
또한 미치는 마지막 떠나기 전까지 사랑하는 제자에게 남김없이 들려주고 가르쳐주려는 모리
교수의 수업에서 그때까지 깨달지 못했던 여러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세상에 대해, 자기연민
에 대해, 후회에 대해, 죽음에 대해, 가족에 대해, 감성에 대해, 나이듦의 두려움에 대해, 돈
에 대해, 사랑이 지속되는 방법에 대해, 결혼에 대해, 문화에 대해, 용서에 대해, 완벽한 날에
대해, 그리고 작별에 대해... 이렇게 14번의 수업 후 미치는 드디어 졸업을 하게 됩니다.
모리교수가 드디어 세상과 작별을 고했으니까요.
각각의 수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또 끝이 없을 듯 합니다. 다만 노교수가 세상살이
에서 배웠던 모든 지혜를 자신이 사랑했던 제자에게 고스란히 남겨주었다는 것, 그리고 모리교
수는 그 누구보다 세상을 사랑했고, 가족과 주변인들을 사랑했다는 것, 또한 숨이 끊기는 그 순
간까지 인간의 숭고함을 잃지 않았고, 죽음을 적으로 보지 않고 언젠가 맞닿뜨려야 할 삶의 한
과정으로 여겼다는 것, 그러기에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미리 '살아있는 장례식'
을 치룰 수 있었으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끝까지 귀감이 될 수 있었다는 것 등 저 또한 덩달아
배운 것이 말할 수 없이 많답니다. 거기에 이 책 덕분으로 새로운 미국 시인을 또 알게 되었
지요. W. H. Auden이라는 시인인데 모리가 좋아했던 시인으로 소개되어 있어 앞으로 그의 시를
좀 읽어볼까 합니다.
그리고 벅찬 마음으로 아마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 감동을 주었던 책으로 이 책을 오랫동안
기억, 간직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벅찬 감동으로만 기억할 게 아니라 여기에서
배운 모든 가르침을 제 안에 육화(肉化)하여야겠단, 그래서 반드시 실천해야겠단 결심을 또 굳
혔답니다. 이것이 바로 독서의 효용성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 아닐까 싶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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