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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권 9장 성경을 떠난 직접 계시로 비약하는 광신자들은...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29. 06:17

 

제 1 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

 

 


제 9 장

 

성경을 떠난 직접 계시로 비약하는 광신자들은 모든 신앙의 원칙을 파괴한다

 

 

 

1. 광신자들의 성령에 대한 잘못된 호소

 

더우기 성경을 떠나서도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어떤길이 달리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오류에 사로잡혀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광란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최근에 경솔한 사람들이 더러 출현하여 아주 거만하게 마치 성령의 가르침을 직접 받는 것처럼 자랑하면서 성경 읽는 것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한편, 그들의 표현대로 죽은 그리고 죽이는 문자를 아직도 따르는 사람들의 그 단순성을 비웃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의 교리를 감히 유치하고 천한 것이라고 멸시할 만큼 그들을 높은 자리에까지 오르게 한 그 영이란 도대체 어떤 영인가라고 나는 묻고 싶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그들이 대답한다면, 그 확신이야말로 참으로 웃음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신자들이 다른 영으로 조명되지 않았음을 그들은 인정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욱이 이들 중 한 사람도 그 영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도록 가르침을 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들의 저작에서 훌륭하게 증명된 대로 보다 높은 존경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이미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예언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사 59 : 21). 이 말씀에서 이사야는 구약 시대의 사람들을 마치 글을 처음 배우는 어린이들처럼 외부적인 교리에만 묶어 두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의 통치하에서 새 교회가 참되고 완전한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곧 성령에 의해서 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도 지배받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은, 예언자들이 침범할 수 없도록 결속시켜 놓은 것들을 이 악한 자들은 가증하고 참람되게 분리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삼층천에 이끌려 다녀 온 후에도 계속하여 율법과 선지자들의 교리를 연구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후 12 : 2). 또한 그는 훌륭한 교사 디모데에게도 읽는 것에 착념(着念)하라고 권고하였다(딤전 4 : 13).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성경에 대한 찬사는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 : 16-l7)고 말하였다. 성경의 효용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궁극적인 목적지에 인도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순간적인 것이라거나 일시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은 악마적인 광란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또한, 그들이 주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영과는 전혀 다른 영을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하는 데 대해 답변해 주기를 바란다. 그들이 완전히 정신 착란증에 걸려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자랑으로 여길 정도로 광신에 사로잡혀 있다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께서는 어떤 영을 약속하신다고 하셨는가? 실로 그 영은 "자의로 말하지 않는" 영으로서 예수님께서 친히 과거에 말씀하신 것들을 저들의 마음속에 넣어 주시며 암시해 주시는 영인 것이다(요 16 : 13). 그러므로 우리에게 약속된 성령의 임무는 아직 들어보지도 못한 새로운 계시를 만들어 내거나 어떤 새로운 교리 자체를 날조하여 이미 받은 복음의 교리에서 우리를 떠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복음이 말하는 바로 그 교리를 우리의 마음에 앉혀 주는 데 있는 것이다.

 

 

 

2. 성령은 성경과 뜻을 같이할 때 인정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무슨 유익이나 만족을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으며 성경에 유의해야만 한다는 것을 여기서 쉽게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복음의 빛이 나타난 후에는 물러갔다고 생각되었던 예언자의 교훈을 열심히 경청하는 사람들을 베드로가 칭찬한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벧후 1 : 19).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는 제쳐 두고 다른 교리를 우리에게 강요하는 영이 있다고 하면 이는 마땅히 허망하고 거짓된 것으로 의심을 받아야 한다(갈 1 : 6-9). 그것은 어떻게 해서 그런가?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고후 11 : 14)하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특징에 의해 그가 식별되지 않는 한 성령이 우리에 대하여 어떻게 권위를 행사하실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의 음성에 의해 가장 분명하게 우리에게 지시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성령을 하나님께로부터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들로부터 찾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파멸에 이르는 이 가련한 사람들은 예외이다. 더욱이 그들은 만물이 예속되어 있는 하나님의 영을 성경에 예속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마치 성령은 어디서나 동일하시고 자신과 일치하시며 만사에 시종일관 하시며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로 생각된다는 말과도 같다.

 

 

만일 성령이 인간이나 천사, 혹은 어떤 다른 무엇의 규범에 따라 판단된다고 하면 틀림없이 성령은 그 지위에서 격하될 것이며, 또한 그렇게 말하기를 원한다면 그러한 성령은 노예 상태에까지 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그 자신과 비교되고 자신 안에서 고려된다고 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손상을 입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일종의 검토(检讨)를 받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에 대하여 자신의 위엄을 확립하고자 하시는 검토인 것이다. 우리로서는 성령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임재하시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사탄의 영이 성령의 이름으로 침투하지 않도록 성령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형상대로 인식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성령은 성경의 저자이시다. 그는 변하실 수도, 자신과 다를 수도 없으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분명히 그는 성경 안에서 일단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그대로 영원히 존속하실 것이다. 성령이 자신을 퇴화, 혹은 타락시키는 것이 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우리가 생각하지 않는 한 이 말은 성령에 대하여 모욕적인 언사가 아니다.

 

 

 

3. 말씀과 성령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들은 우리가 죽이는 문자에 의존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 일 자체에서 그들은 성경을 무시한 데 대한 형벌을 치르고 있다. 왜냐하면 바울이 고린도후서 3장 6절에서 거짓 사도들을 대항해서 싸우고 있음이 아주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들 거짓 사도들은 그리스도가 없는 율법을 추천하며, 주께서 "그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렘 31 : 33)하기로 약속하신 계약의 축복들을 사람들로부터 탈취하였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은총과는 관계가 끊어져서 다만 귀에만 울릴 뿐, 마음에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는 그런 문자는 죽은 글이며(고후 3 : 6), 따라서 주의 율법은 그것을 읽는 독자들을 죽인다.

 

 

그러나 그 문자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에 효과적으로 새겨지며 그리스도를 제시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영혼을 소생케 하고 우둔한 자도 지혜롭게 하는"(시 19 : 7) 생명의 말씀이 될 것이다(빌 2 : 16). 더욱이 사도는 같은 곳에서 자기의 설교를 "영의 직분"이라고 말하였다(고후 3 : 8). 의심의 여지없이 이 말의 의미는, 성령께서는 성경에서 보여 주신 자신의 진리와 아주 굳게 결속하여 계시므로 그 말씀이 당연한 존경과 위엄을 받을 때에만 비로소 성령이 자신의 권능을 발휘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말씀 자체가 성령의 증거로 말미암아 확증되지 않는 한, 우리에 대하여 큰 확실성을 가지지 못한다고 내가 앞서 주장한 것과 조금도 모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일종의 상호 결속 관계를 통하여 말씀의 확실성과 성령의 확실성을 결합시키셨으므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게 하시는 성령께서 빛을 비추어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에 말씀에 대한 완전한 신앙이 머물 수 있으며, 또한 우리가 그의 형상을 따라 곧 그 말씀을 따라 그를 인식할 때에 우리는 속는다는 두려움 없이 성령을 마음에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 이것은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임하면 즉시 말씀을 폐기할 생각으로 일시적인 전시(展示)를 위해 자신의 말씀을 인류에게 보이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동일한 성령을 보내셔서 그 권능으로 말씀을 나누어주신 것은 그 말씀에 대한 효과적인 확증으로 자신의 일을 완성하시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리스도는 두 제자의 마음을 열어 주셨는데(눅 24 : 27,45), 이는 그들이 성경을 거절하고 자신의 지혜를 믿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성경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이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 5 : 19-20)라고 데살로니가 사람들을 권면할 때에도, 그는 말씀을 떠난 공허한 사색(思索)으로 그들을 이끌지 아니하고 오히려 예언이 멸시를 당해서는 안 된다고 즉시 덧붙여 말하였다. 이 사실을 통해서 그는 예언이 경시될 때에 성령의 빛이 소멸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암시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저 거만한 광신자들은 무엇이라고 답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솔하게 버리며, 또한 그 말씀에 결별을 고하면서도 대담하고 뻔뻔스럽게 자신들의 마음에 일어나는 몽상들을 아무 것이나 붙잡는 것만이 곧 유일하고도 탁월한 조명이라고 생각한 자들이 바로 저들이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이와는 전혀 다른 절제(节制)인 것이다. 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영을 떠나서는 전적으로 진리의 빛을 잃게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며, 따라서 말씀을 주님께서 자기 영의 조명을 모든 신자들에게 나누어주시는 도구로 알고 있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알고 있는 영은 사도들 안에 거하였고 사도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성령 이외의 그 어떤 다른 영이 아니며,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끊임없이 말씀을 듣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 심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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