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열릴 첫 해외 전시회 준비로 미국에 다녀왔다고 한다. 가수로, 화가로, 방송 진행자로 여전히 바쁘게 살아가는 조영남. 갤러리 하우스를 연상케 하는 그의 새집을 찾아갔다.
백만불짜리 야경 자랑하는 서울에서 가장 전망 좋은 집
예상했던 것보다 매우 심플한 집이었다. 유일한 장식이라면 집안 곳곳에 포진해 있는 그의 그림들이 전부였다. 현관에서부터 거실, 안방, 식당, 복도 등에 태극기와 화투를 소재로 그린 작품들이 한가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은은한 대리석 바닥에 아이보리 컬러의 벽면이 전체적인 집안 분위기를 차분하게 다운시켰고 하나로 재질이 통일된 밝은 톤의 원목 가구들은 평범한 듯하면서도 세련된 멋을 풍겼다. 지난 1월에 조영남이 이사한 청담동의 재건축 빌라. 100평이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지만 꾸밈의 흔적을 최소화한 영향인지 전체적인 느낌이 소박하고 편안했다.
“이 빌라에서 우리 집만 다를 거야. 내 눈에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다 없애버렸거든. 샹들리에도 요란해서 얌전한 걸로 바꾸고, 욕실의 샤워 부스랑 변기를 가리는 문도 들어냈어. 인테리어 하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더라구. 좋은 것들 죄다 떼낸다구. 내 편리할 대로 하는 게 최고잖아. 있는 듯 없는 듯한 게 좋다니까.”
식탁과 거실의 테이블은 그가 직접 만든 아이템이고, 브라운 가죽 소파는 이사오면서 새로 장만했다. 소파와 테이블 역시 모던한 스타일. 거실 한쪽을 그림 그리는 공간으로, 또 다른 한쪽을 서가로 배치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아직 제 집을 찾지 못한 책들이 지천이라 조만간 식당에서 부엌으로 트인 창문을 개조해 책장을 끼워 넣을 참이다. 거실의 서가 바로 앞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는 사연이 있단다. 블랙이냐 브라운이냐, 색깔 정하는 문제를 두고 딸 은지(15)와 제법 신경전을 벌였다고. 브라운 컬러를 염두에 두고 있던 아빠는 블랙을 고집하는 딸의 주장에 결국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은지한테는 이길 수가 없어. 내가 여자한테 그렇게 약한데, 딸은 오죽하겠냐고(웃음). 우리 은지는 이렇게 좋은 집에 오고도 호들갑을 떨지 않아서 얼마나 예쁜지 몰라. 자기 방도 책상이랑 침대, 컴퓨터, 인형 몇 개, 그게 다야. 쿨하고, 그런 귀족 같은 품성이 어디서 나오는지…. 부유하지 못한 친구들에 대한 배려인 것 같아. 돈도 꼭 필요한 데만 쓰고, 아주 구두쇠야.”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통유리창은 백만불짜리 전망을 선사한다. 강을 보는 즐거움이 집에서 소일하는 가장 큰 낙이다. 이사 오기 전부터 제일 기대되던 것이 바로 통창 너머로 펼쳐질 뷰(View)였다. 언제부터인가 강을 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강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일상으로 굳어졌다.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 유학 시절 플로리다 해변에 살 때부터였다. 그때는 강이 아니라 바다였지만. 공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후로도 거의 한강변을 벗어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물이 지겨워져 강이 안 보이는 안쪽으로 집을 옮긴 적이 있었으나 석 달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바깥으로 나오게 되더란다.
“야경은 정말 기가 막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강과 다리 위로 차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거든. 서울에서 이렇게 전망 좋은 집도 없을걸. 이 집은 내 전 재산이야. 위자료를 두 번이나 주고도 이만한 집을 샀으니 뭐 그럭저럭 성공했다는 생각도 드는데, 한편으로는 나이 예순에 나한테 남은 게 겨우 먹고 자는 집 하나라고 생각하면 서글퍼지기도 해. 일반 서민들한테야 맞아 죽을 소리겠지. 스튜디오를 내볼까 하다가 고심 끝에 집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 집에 투자하는 게 제일 낫겠다는 판단이 섰거든. 집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모양이야.”
집들이는 딱 한 번 했다. 소설가 조정래·시인 김초혜씨 부부와 칼럼니스트 정운영씨 부부를 초대해 저녁을 대접한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에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고 한다. 3월 27일부터 열릴 콘서트와 전시회 준비로 바빠 더는 집들이를 못 하고 있다는 조영남. 예정된 일들이 마무리되면 가까운 지인들을 모시고 편하게 술 한잔 기울일 시간을 마련하고 싶다.
예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수많은 여자들을 몰고 다니는 비결
집의 크기에 비하면 가족의 규모가 너무 단출하다. 그와 딸 은지, 그리고 10년 넘게 살림을 봐주고 있는 할머니까지 세 식구가 다여서 어딘지 꽉 찬 느낌은 아니다. 근사한 새집을 장만했으니 핑계 김에 식구 하나 늘리는 것은 어떻겠냐고 슬쩍 물었더니 “은지도 떠나고 할머니도 떠나면”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은지가 공부하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거나 연로한 할머니가 그의 곁을 떠나게 된다면 혼자서는 도저히 허전함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렇게 되면 누군가 있어야 되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지금이 내 생애에서 가장 찬란한 시기야. 결혼해서 지금처럼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결혼이 이 시대에 맞는 제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사회구조 자체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게끔 도와주질 않잖아. 유럽에서는 결혼이 프렌드십(friendship) 개념으로 벌써 바뀌었어. 한집에 살면서 아이 낳고 복닥거리며 사는 방식과는 다르지. 상대를 배우자로 인정하면서 서로 각기 다른 상대를 허용하는 거. 우리나라도 차츰 그렇게 변해갈 거야.”
올해로 그의 나이 예순이다.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변에는 항상 젊고 예쁘고 착하고 말이 잘 통하는 여자친구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 좋아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젊은 여자들이랑 수다떠는 것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남자. 젊고 예쁘고 착하고 말이 잘 통하는 여자들이 나이 많은 자신을 따르는 이유에 대해서는 적당한 경제력과 유명세, 인간적인 매력이나 개성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것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었다.
“늙었다는 게 점점 불리해질 거야. 나이 먹은 사람이 옆에 있는 것처럼 불편한 게 없잖아. 그런데도 상대방이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 걸 보면 내가 나이 먹은 티를 안 낸다는 뜻이겠지. 나는 늙는다는 걸 의식하지 않아. 의식하면 어떻게 20대 여자한테 차 한잔 마시자고 말할 수 있겠어. 흰머리가 나고 정력이 약해지는 건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어도 그걸 총체적으로 늙는다라고 규정해버리는 건 너무 기계적인 사고 같아. 젊게 살려고 아득바득 노력하는 사람도 못 돼. 내가 할 수 있는 건 의식하지 않는 거지.”
문득문득 나이듦의 서글픔을 느낄 법도 한데 그는 그것마저도 이성으로 조율한다. 살다 보면 서글픈 일이 반드시 있으나 반면에 그만큼 서글프지 않은 일도 있다는 것. 기쁨만큼의 슬픔도 있게 마련이고 행복만큼의 불행도 있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이다. 지나치게 낙관적이지도 않게, 또한 지나치게 비관적이지도 않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내가 보기보다 계산적이거든. 계산과는 거리가 멀 듯하지만 아주 치밀한 면이 있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게나 살 것 같지?” 그가 만나는 젊은 여자들은 로맨스의 상대라기보다는 사전적인 의미 그대로의 친구에 가깝다. 섹스 비즈니스가 끼어들기 시작하면 일이 복잡해짐을 알기에 긁어 부스럼은 만들지 않는다. 섹스를 배제하면 관계가 더욱 풍요로워지고 만남의 매순간이 즐거워진다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만 충실해야 할 의무도 없고. 젊고 예쁘고 착하고 말이 잘 통하는 여자들과 영화 보고 밥 먹고 수다떠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 두 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싱글로 돌아오면서 세웠던 작전이랄까 전략이 적중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퍼펙트하다.
내가 꿈꾸는 세 번째 여자, 세 번째 결혼은…
“사람들은 내가 뭐 대단한 연애 박사일 거라고 넘겨짚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해. 내세울 만한 로맨스 하나 없잖아. 요즘은 하도 나를 선각자인 양 쳐다보고 뭔가를 기대하는 눈치여서 미안하기까지 하다니까(웃음). 내가 이렇게 멋있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시달리는 거지. 불행하게도, 소문만 요란하고 내실이 없어.”
여러 여자들로부터 프러포즈를 받기도 했다. 물론 개중에는 결혼이 성사될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번번이 무엇인가 걸렸고, 결혼까지 가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두 번이나 실패를 하고 보니 더 이상은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잘못된 선택으로 무수한 시간을 전전긍긍하며 헛되이 보내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인 전쟁인지 속속들이 꿰는 까닭이다. 결혼 생활의 실패로 인한 좌절감은 배가 부르도록 맛봤다.
“여자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혜안이 생기더군. 노하우. 아마도 여자를 보는 눈이 최정상에 이르렀을 거야. 나쁘게 말하면 까다로움이지. 만약 이 눈높이에서 누군가가 마음에 든다, 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면 정말 대단한 여자지 싶어. 찰리 채플린은 마지막에 좋은 여자를 만났고 피카소는 마구잡이로 여성 편력을 보이다 고생한 케이스고, 나는 실제보다 소문만 부풀려졌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해. 진짜로. 얼마 전에 우리 은지가 아빠의 결혼에 대해서 처음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었어. 결혼을 하게 되면 자기랑 나이 차이는 많이 났으면 좋겠다고. 그걸 부탁하더라구.”
이번 전시회와 콘서트를 끝내면 오는 6월에 미국 뉴욕에서 열릴 첫 해외 전시회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번거로운 절차와 형식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 큰 그림들을 짊어지고 미국까지 가서 전시회 장소를 알아보고 팸플릿 제작에서부터 개막 리셉션 내용까지 큐레이터와 상의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의아할 따름이다. 미술에 알 수 없는 이상한 매료를 느낀다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는 조영남. 지난 90년에 처음으로 전시회를 개최했으니 공식적인 화가 경력만 따져도 14년이다.
“미술은 내 취미 생활이야. 이것에만 유독 열정을 쏟게 돼. 늙은 나이에 이런 취미 생활을 가지고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집에 있으면 항상 붓을 들고 있어. 누가 와서 이야기할 때에도 손으로는 그림을 그린다니까. 작업실은 따로 없어. 아무 데서나 하거든.” 요즘 그는 내년쯤에 모든 일들을 그만두고 한동안 조용히 사라질 궁리를 하고 있다. 실행에 옮겨질지 확신은 없지만 그냥 꼭 한번 그렇게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멋있게 ‘fade out’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로 각본을 짜본다. 새로 이사한 넓은 집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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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aum 2008 경향하우징페어 |
080122옮김_서라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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