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진 보배-시리아 순례 소감
지난 추석절을 이용하여 10일간 나 자신을 포함하여 106명의 성도들과 함께 시리아 요르단으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본래는 레바논을 일정에 포함시키려 하였으나 레바논의 정세가 열악하여 레바논을 포기하고 그 대신 시리아에서 4박5일 요르단에서 4박5일 시리아와 요르단을 좀 더 꼼꼼히 돌아보는 여정을 채택하였습니다. 전에 없었던 요르단 와디 럼에서의 사막 체험 1박, 그리고 마인 온천에서의 1박 등으로 가슴 설레이는 모험과 흥을 더한 일정이었으나 순례단 일동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은 시리아 체험이었습니다. 별 기대 없이 갔다가 보배를 별견한 그런 기쁨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시리아를 ‘감춰진 보배’라고 묘사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묘사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성지순례는 실로 시리아 방문 없이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순례 일정임을 절감한 기회이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선민들이 본래 “우리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사람으로 소수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신26:5)라고 고백할 때 바로 아람 사람이 이 시리아의 조상들이었으니까!
시리아는 예로부터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번성하였던 곳입니다. 중국에서 출발하여 장장 6천 5백km나 되는 비단길 곧 실크 로드(Silk Road)가 끝나는 종착역이며 아라비아 반도 남부 지역에서 출발한 소위 향료길(Incence Road)이 끝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과거 수리아 안디옥(지금은 터키 영)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인(크리스챤)이라고 불리웠던 곳이며 사도 바울의 회심지(다메섹)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약속의 땅으로 향하기전 머물렀던 곳이 이 곳이기도 합니다.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뽀는 본래 아랍어 ‘할라브’에서 유래한 말인데 ‘우유’라는 뜻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여기 알레뽀 성채안에는 소위 아브라함 사원이 있는데 전승에 의하면 이곳이 아브라함이 젖소의 우유를 짜던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긴 아브라람의 충성스러운 종으로 한때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기전 자기의 상속자로 생각했던 충복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인 것도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아람 장군 나아만이 엘리사를 만나러 출발했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던 것도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무엇보다 시리아는 인류 문화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우가릿, 마리 에블라등은 지금부터 3천 5백년전에 이미 도시 국가를 이루고 고도의 문명을 꽃피웠던 곳으로 고대 역사와 문명 그리고 고대 언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피해 갈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가 방문했던 우가릿은 이미 BC2000년경 인류 최초의 알파벳을 쓰면서 동부 지중해에 군림하던 도시였습니다. 그때 이미 이 도시는 고대 이집트, 그리스, 메소포타미아등과 무역을 하면서 번영을 누린 페니키아의 최북단 항구 도시였습니다. 거기에는 90개 이상의 방이 있는 큰 궁전, 바알과 다곤을 섬겼던 거대한 두개의 신전, 이중으로 쌓은 석재 성벽, 물 탱크, 상하 수도 시설, 대장간, 유리 공장등이 발굴되었고, 무엇보다 여기서 발굴된 1,500개의 점토판들은 쐐기 문자를 사용한 최초의 알파벳 기록임을 입증하였습니다. 이 때의 우가릿 사람들은 400개에서 3,000여개에 이르는 일반 서민들이 사용할 수 없는 문자들을 30여개의 편리한 자음과 모음을 고안하여 일대 문자의 혁명을 가져와 오늘 날 서구 문명의 문자적 기초를 놓았던 곳입니다.
그러나 문화사적 의미 이상으로 우리의 영혼을 감격시킨 것은 이 곳 시리아에 아직도 예수님 당시 예수님의 언어인 아람어(지금은 사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세계 유일의 마을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말룰라(Maalula)가 그 곳입니다. 이 마을을 들어서자마자 우리 눈을 놀랍게 한 것은 마을 도처에서 보이는 십자가였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시리아는 사회주의 국가이며 동시에 이슬람 국가(이슬람 교도가 인구의 85%-90%)입니다. 그런데 웬 십자가 건물이 이렇게 많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영향력이 아직도 건재한다는 사실로 우리의 눈시울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마을에서 순교자 성 세르기우스를 기념하는 교회에 방문하여 기도를 드리는 동안 여기서 섬기는 사제 한분이 나와 조용히 주기도문을 아람어로 말씀하실 때 우리는 잠시 그 자리에 현현하신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후 우리의 모국어로 주기도문을 합창하고--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수 없도다! 그리고 여기 까지 순례의 여정을 인도하시고 주님의 언어를 듣게 하시는 은혜-과연 웬 은혜란 말인가!
그리고 사막의 꽃 팔미라의 도시에서 경험한 오아시스의 감동--우리는 왜 솔로몬이 이 도시를 다드몰(대추 야자 도시)이라고 부르고 사막에 이 도시를 건축(역하8:4)한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는 사막에서 신기루처럼 등장한 대추 야자 숲의 감격--아마도 옛날 대상들이 혹은 카라반의 행렬이 이 곳에서 누릴 쉼이 짐작이 되는 환상의 도시였습니다. 여기에 남아있는 거대한 로마 유적은 우리를 다시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그런 로마에 복음이 필요한 것을 알고 “내가 이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복음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외치며 안디옥으로 소아시아로 유럽으로 로마로 나아가던 바울의 환상은 우리를 더욱 감동시키는 회상의 여정이었습니다. 보너스로 만난 알레뽀 교외의 주상 성자 시메온 수도원은 영감 그 자체였습니다. 한때는 현존하는 최고의 수도원으로 알려진 그 자취는 허물어 졌으나 그 영감은 떠나지 않고 우리를 마중했습니다. 37년간 수도원에 20m높이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서 묵상과 기도로 하나님을 만났던 그는 당시의 수도원 운동의 영감의 근원이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그의 영감이 갑절이나 우리에게 머물게 해달라고--그의 제자중의 하나인 제롬은 그 영감으로 베들레헴 예수 탄생 교회로 가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했다고 하는데--주여, 우리에게는 어떤 영감을 주시겠나이까?
감춰진 보배-시리아가 남긴 또 하나의 강렬한 인상은 시장에서 만난 풋풋한 인정들입니다. 아직은 관광객들이 덜 찾아서 인지 우리들 동양 사람에게 호기심으로 접근하며 “아 유 차이니스?, 아 유 제파니스?” 그러다 “원 달러!” “원 달러!”를 외치던 순진 무구한 아이들의 얼굴--차도르, 히잡으로 온몸을 감았지만 우리를 흥미롭게 주목하던 얼굴과 얼굴들, 눈동자와 눈동자들--그들 모두가 주님을 필요로 하는 영혼들임을 기억하며 땅 밟기 기도로 그 땅을 축복하고 또 축복하였습니다. 이미 한국제 현대 기아 자동차들이 이들의 거리를 누비듯 한국인의 손길을 통한 복음의 사역도 풍성할 날이 멀지 않음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징조들이 넘쳐 나는 듯 합니다. 주님, 언제 시리아에 다시 복음의 계절이 되돌아오게 하시겠나이까? 그들에게 복음을 받았던 우리가 다시 그 땅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는 이 아이러니--그러나 어쩌면 이런 아이러니는 어느 날 다시 시리아인들이 복음을 가지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 쿠리아로 찾아오는 일도 가능하게 될 것인가로 머리를 굴리다보니 어느새 버스는 요르단 지경으로 근접하고 있었습니다.
순례 목자, 이 동원
바그다드 카페의 한잔의 ‘차이’ 추억을 그리워하며
2007년 9월을 마무리 하는 날에.
시리아는 예로부터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번성하였던 곳입니다. 중국에서 출발하여 장장 6천 5백km나 되는 비단길 곧 실크 로드(Silk Road)가 끝나는 종착역이며 아라비아 반도 남부 지역에서 출발한 소위 향료길(Incence Road)이 끝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과거 수리아 안디옥(지금은 터키 영)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인(크리스챤)이라고 불리웠던 곳이며 사도 바울의 회심지(다메섹)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약속의 땅으로 향하기전 머물렀던 곳이 이 곳이기도 합니다.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뽀는 본래 아랍어 ‘할라브’에서 유래한 말인데 ‘우유’라는 뜻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여기 알레뽀 성채안에는 소위 아브라함 사원이 있는데 전승에 의하면 이곳이 아브라함이 젖소의 우유를 짜던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긴 아브라람의 충성스러운 종으로 한때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기전 자기의 상속자로 생각했던 충복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인 것도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아람 장군 나아만이 엘리사를 만나러 출발했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던 것도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무엇보다 시리아는 인류 문화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우가릿, 마리 에블라등은 지금부터 3천 5백년전에 이미 도시 국가를 이루고 고도의 문명을 꽃피웠던 곳으로 고대 역사와 문명 그리고 고대 언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피해 갈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가 방문했던 우가릿은 이미 BC2000년경 인류 최초의 알파벳을 쓰면서 동부 지중해에 군림하던 도시였습니다. 그때 이미 이 도시는 고대 이집트, 그리스, 메소포타미아등과 무역을 하면서 번영을 누린 페니키아의 최북단 항구 도시였습니다. 거기에는 90개 이상의 방이 있는 큰 궁전, 바알과 다곤을 섬겼던 거대한 두개의 신전, 이중으로 쌓은 석재 성벽, 물 탱크, 상하 수도 시설, 대장간, 유리 공장등이 발굴되었고, 무엇보다 여기서 발굴된 1,500개의 점토판들은 쐐기 문자를 사용한 최초의 알파벳 기록임을 입증하였습니다. 이 때의 우가릿 사람들은 400개에서 3,000여개에 이르는 일반 서민들이 사용할 수 없는 문자들을 30여개의 편리한 자음과 모음을 고안하여 일대 문자의 혁명을 가져와 오늘 날 서구 문명의 문자적 기초를 놓았던 곳입니다.
그러나 문화사적 의미 이상으로 우리의 영혼을 감격시킨 것은 이 곳 시리아에 아직도 예수님 당시 예수님의 언어인 아람어(지금은 사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세계 유일의 마을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말룰라(Maalula)가 그 곳입니다. 이 마을을 들어서자마자 우리 눈을 놀랍게 한 것은 마을 도처에서 보이는 십자가였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시리아는 사회주의 국가이며 동시에 이슬람 국가(이슬람 교도가 인구의 85%-90%)입니다. 그런데 웬 십자가 건물이 이렇게 많이----.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영향력이 아직도 건재한다는 사실로 우리의 눈시울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마을에서 순교자 성 세르기우스를 기념하는 교회에 방문하여 기도를 드리는 동안 여기서 섬기는 사제 한분이 나와 조용히 주기도문을 아람어로 말씀하실 때 우리는 잠시 그 자리에 현현하신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후 우리의 모국어로 주기도문을 합창하고--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수 없도다! 그리고 여기 까지 순례의 여정을 인도하시고 주님의 언어를 듣게 하시는 은혜-과연 웬 은혜란 말인가!
그리고 사막의 꽃 팔미라의 도시에서 경험한 오아시스의 감동--우리는 왜 솔로몬이 이 도시를 다드몰(대추 야자 도시)이라고 부르고 사막에 이 도시를 건축(역하8:4)한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는 사막에서 신기루처럼 등장한 대추 야자 숲의 감격--아마도 옛날 대상들이 혹은 카라반의 행렬이 이 곳에서 누릴 쉼이 짐작이 되는 환상의 도시였습니다. 여기에 남아있는 거대한 로마 유적은 우리를 다시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그런 로마에 복음이 필요한 것을 알고 “내가 이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복음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외치며 안디옥으로 소아시아로 유럽으로 로마로 나아가던 바울의 환상은 우리를 더욱 감동시키는 회상의 여정이었습니다. 보너스로 만난 알레뽀 교외의 주상 성자 시메온 수도원은 영감 그 자체였습니다. 한때는 현존하는 최고의 수도원으로 알려진 그 자취는 허물어 졌으나 그 영감은 떠나지 않고 우리를 마중했습니다. 37년간 수도원에 20m높이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서 묵상과 기도로 하나님을 만났던 그는 당시의 수도원 운동의 영감의 근원이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그의 영감이 갑절이나 우리에게 머물게 해달라고--그의 제자중의 하나인 제롬은 그 영감으로 베들레헴 예수 탄생 교회로 가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했다고 하는데--주여, 우리에게는 어떤 영감을 주시겠나이까?
감춰진 보배-시리아가 남긴 또 하나의 강렬한 인상은 시장에서 만난 풋풋한 인정들입니다. 아직은 관광객들이 덜 찾아서 인지 우리들 동양 사람에게 호기심으로 접근하며 “아 유 차이니스?, 아 유 제파니스?” 그러다 “원 달러!” “원 달러!”를 외치던 순진 무구한 아이들의 얼굴--차도르, 히잡으로 온몸을 감았지만 우리를 흥미롭게 주목하던 얼굴과 얼굴들, 눈동자와 눈동자들--그들 모두가 주님을 필요로 하는 영혼들임을 기억하며 땅 밟기 기도로 그 땅을 축복하고 또 축복하였습니다. 이미 한국제 현대 기아 자동차들이 이들의 거리를 누비듯 한국인의 손길을 통한 복음의 사역도 풍성할 날이 멀지 않음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징조들이 넘쳐 나는 듯 합니다. 주님, 언제 시리아에 다시 복음의 계절이 되돌아오게 하시겠나이까? 그들에게 복음을 받았던 우리가 다시 그 땅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는 이 아이러니--그러나 어쩌면 이런 아이러니는 어느 날 다시 시리아인들이 복음을 가지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 쿠리아로 찾아오는 일도 가능하게 될 것인가로 머리를 굴리다보니 어느새 버스는 요르단 지경으로 근접하고 있었습니다.
순례 목자, 이 동원
바그다드 카페의 한잔의 ‘차이’ 추억을 그리워하며
2007년 9월을 마무리 하는 날에.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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