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리버티 신학교에 박사과정 세미나 강의 수업차 미국을 방문중인 조상훈 목사님이 리버티 신학교의 창설자인 제리 포웰 박사가 심장 마비로 만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지난 3월 12일 주간 리버티 신학교 객원 교수 자격으로 리더십 강의차 신학교에 한 주간을 머물며 화요일 점심을 제리 포웰 박사와 함께 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그의 부음을 접한 것입니다. 제리 포웰은 우리 시대의 기독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영적 거인이었습니다. 아마도 그가 남긴 자취는 기독교 역사에 오래 동안 긴 영향을 남기며 평가될 것입니다.
흔히 그를 가르쳐 우리 시대 근본주의 신학운동의 대부라고 일컫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정확한 그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가 기독교 교리의 근본인 성경 무오류의 교리,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 그리고 그의 육체적 부활, 그리고 그의 육체적 재림을 문자 그대로 믿고 수호하려고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소위 저를 포함한 대다수의 복음주의자들 역시 근본주의자라고 불리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리 포웰은 좁은 스펙트럼의 근본주의자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가 접촉한 사람들 그리고 사역의 범주는 너무나 광범하여 그는 같은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더 이상 그는 근본 주의자가 아니라고 비판 받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그가 미국 역사의 커버스토리에 기억할 인물로 등장한 것은 소위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운동을 일으키며 보수적 신앙인으로서 미국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까닭이었습니다. 1980년 그는 성경적 가치에 입각한 미국 사회가 형성되기 위하여 당시 로날드 레이건을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공적으로 지지하고 선출하는 일에 앞장서기에 이르렀습니다. 제리 포웰 이전만 해도 소위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은 정교 분리를 이유로 사회 참여에 관한 한 소극적인 입장으로 일관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국 사회 전반 특히 미국의 백악관이 자유주의적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점령당함으로 미국 사회가 좌경화되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소위 근본주의-복음주의권을 묶어 미국 사회의 보수화에 적극적으로 투신하여 자유주의자들에 의한 낙태지지, 공교육 기관에서의 기도 금지, 미국 휴일의 기독교적 상징 사용 금지 운동들과 적극적으로 투쟁하며 성경적이고 보수적 가치를 대변하는 일에 앞장서 왔던 지도자였습니다.
물론 그의 모든 정치적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이었고 그의 입장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지해야만 했었느냐는 것은 별개의 토론이 필요한 이슈인 것은 사실이나 그가 보수적 기독교인들도 결코 역사의 방관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것은 틀림없는 그의 역사적 기여로 남을 것입니다.
그는 특별히 한국을 사랑했던 분이셨습니다. 김창엽 박사님께서 리버티 신학교 교수님으로 부임하신 이래로 그는 특히 한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그 리버티 대학과 신학에서 공부하도록 배려했고 김 박사님을 통해 한국 교회 지도자들을 육성하는 일에 헌신해 오신 분이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조상훈 목사님, 김 인환 목사님을 위시해서 여러 목사님들도 그렇게 리버티 신학교와 연관되어 공부하실 수 있었습니다. 제리 포웰 박사님은 특히 김 박사님을 좋아하셔서 김 박사님을 ‘한국 포프(교황)’으로 부르기를 재미있어 하셨고 김 박사님이 무엇을 요청하시든지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지금쯤 제리 포웰 박사님의 천국 부르심을 제일 힘들게 받아드리고 계실 분은 김 박사님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김창엽 박사님께서 살아계셔서 리버티에서 사역하시는 한 제리 포웰의 보금자리인 리버티와 한국 교회의 컨넥숀은 여러 모양으로 의미 있는 교통을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미국의 여러 뉴스 채널들은 그의 별세 소식을 보도하며 여러 다양한 관점에 따라 그의 생이 끼친 영향을 분석하는 일에 바빠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는 미국 사회의 격동하는 영향력의 중심에 있었던 지도자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실로 여러 다양한 얼굴을 가진 지도자이었습니다. 미국의 조용한 시골도시 버지니아 린치버그를 문자 그대로 복음화한 토마스 로드 침례교회의 담임 목사, 미국 최대의 복음주의적 교육기관인 리버티 대학의 창설자, 세계적인 전도자, 인류 사회를 향하여 보수적 가치를 대변한 예언자, 보수적 시민운동가, 보수적 가치위에 선 미 합중국 킹-메이커, 이스라엘의 친구, 한국 교회의 친구, 직선적이고 단순한 복음적 메시지의 설교자, 자신의 확신을 증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이웃들과의 대담한 직면을 회피하지 않았던 용기의 사람--그에 대한 묘사는 한 책의 증언으로 모자랄 느낌입니다.
그러나 그는 한 뉴스 메이커의 증언처럼 그의 생의 마지막 무렵을 향해 갈수록 그의 복음 운동에 대한 애정을 보다 폭 넓게 표현하며 근본주의에서 복음주의로 방향을 선회한 통 큰 지도자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미 남 침례교 교단이 신 복음주의적 방향에서 보다 보수적인 복음주의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을 보고 세계적인 복음주의 운동에 기여하고자 남 침례교회로 그의 소속을 천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유명한 영국의 복음 주의자 스펄존은 당신이 속해 있던 영국의 교회가 복음주의적 확신에서 떠나가는 것을 보고 영국 침례교회를 떠났지만, 제리 포웰은 반대로 미국 남 침례교회가 복음주의의 방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미 남 침례교회로 영혼의 둥지를 정하고 돌아 온 것입니다.
한 기독교 뉴스는 그가 별세하기 며칠 전 그가 평생을 걸고 동성연애나 마약 중독, 낙태 지지등과 같은 죄들을 공격했으나, 그런 비 성경적 죄들의 실존과 상관없이 그가 사랑했어야 했던 죄인들인 동성연애자들, 마약 중독자들, 낙태 지지자들에 대한 인간적 긍휼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한 것을 보도하면서 어쩌면 그것이 제리 포웰의 공식적인 마지막 유언적 메시지가 된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상기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확신을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양심에 신실하고자 한 정직한 지도자상을 마지막으로 남긴 것입니다. 나는 지난 3월 그와 함께 점심을 마치고 린치버그의 한 식당을 떠나면서 그가 내 손을 잡고 부탁하던 음성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세계적 복음주의 운동은 더 이상 나 같은 미국 지도자들이 아닌 당신과 같은 제3세계 지도자들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이 말 또한 나에게는 그분의 마지막 유언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제리! 당신과 같은 미국 교회 지도자들에게 복음의 빚을 진 우리는 진정 당신의 애정 어린 부탁을 잊지 않고 이제 이후로 하나님 나라 건설과 확장을 위해 우리 몫의 책임을 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사랑했던 주님의 품안에서 모든 것을 잊으시고 이제는 제발 편히 쉬시길! 진정 당신의 삶은 한편의 위대한 도전과 감동의 드라마이었습니다. 당신은 정말이지 당신의 배역을 훌륭하게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부디 당신의 가족 그리고 리버티 가족들과 함께 하시기를!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당신의 동역자 된, 이동원 목사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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