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바라보면 우리의 과거도 온통 보수적이고 전통지향적인 틀에 묶여있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 그 중에는 이미 수백 년 전에 이른바 ‘모성형 리더십’과 같은 요즘 중시되는 덕목을 앞서 실행했던 ‘가문의 기획자’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다. 이들이 있었기에 가문을 넘어 사회를 이끄는 수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해낼 수 있었다. 요즘 기업체의 CEO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게 바로 패러다임의 전환, 발상의 전환을 통한 창조적 기업 경영이다. 이때 간과해서는 안 될 게 모성형 리더십이다.
패러다임은 토마스 쿤이 처음 사용한 말인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말한다.
세상을 보는 방식, 즉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고의 틀을 깨야 한다. ‘칭기즈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쓴 잭 웨더포드는 칭기즈칸을 ‘근대의 기획자’로 새롭게 평가한다. 서구에서 칭기즈칸은 야만인, 피에 굶주린 미개인, 무자비한 정복자의 전형 정도로 폄훼해왔지만 웨더포더는 칭기즈칸을 ‘근대의 기획자’로 끌어올린다. 세계체제론을 주창한 월러스틴이 15~16세기에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체제가 형성됐다고 말했지만, 웨더포더는 이보다 200년 앞서 칭기즈칸이 근대세계체계를 형성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주장한다.
기동성있는 전문적인 전쟁기술, 비단길을 역사상 가장 큰 자유무역지대로 조직하는 등 세계화된 교역을 했고, 국제적 세속법을 통한 통치라는 면에서 그는 철저하게 근대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사고패턴을 깨고 패러다임을 전환해 칭기즈칸을 보면 이렇게 ‘야만인’에서 ‘근대의 기획자’로 승격된다.
모성형 리더십 실행한 가문의 기획자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바라보면 우리의 과거도 온통 보수적이고 전통지향적인 틀에 묶여있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 그 중에는 이미 수백 년 전에 이른바 ‘모성형 리더십’과 같은 요즘 중시되는 덕목을 앞서 실행했던 ‘가문의 기획자’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다. 이들이 있었기에 가문을 넘어 사회를 이끄는 수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해낼 수 있었다.
요즘 기업체의 CEO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게 바로 패러다임의 전환, 발상의 전환을 통한 창조적 기업 경영이다. 이때 간과해서는 안 될 게 모성형 리더십이다. 모성형 리더십은 서비스 정신이 근간이다. 그 바탕에는 엄마가 아이를 돌보듯 고객과 조직 구성원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 최고경영자는 마치 엄마가 되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원의 신체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도 챙겨주어야 한다.
21세기를 꾸려가는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은 윽박지르며 목표달성을 독촉하기보다 임직원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다. 마치 엄마가 자녀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동시에 훌륭한 인재로 키우기 위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퇴계 이황 이나 청계 김진이 이미 500년 전에 실천한, 21세기가 요구하는 ‘모성형 리더십’이라고 하겠다.
명문가를 창업한 아버지들은 바로 모성형 리더십의 소유자들이었다. 명문가에는 아버지가 권위주의를 벗어던지고 섬세하고 돌봄을 잘하는 ‘엄마 같은 아버지’로 가문경영에 임했다. 명가의 초석을 쌓은 전통사회의 아버지들은 통상 완고하고 권위적일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오히려 배려하고 섬세하게 돌보는 모성형 리더십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모성형 부정(父情) 발휘한 이황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문가로 꼽히는 퇴계 이황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대학자이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자녀뿐 아니라 먼 친인척의 자제들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우리의 통념을 뛰어넘고 ‘엄마 같은 아버지’가 되어 가문경영에 헌신한 인물이 다름 아닌 조선을 대표하는 대학자인 퇴계 이황이었다. 좋은 친구와 함께 지내며 학문을 닦는 것을 중시했던 퇴계는 아들과 손자, 조카뿐 아니라 형의 외손, 질녀, 형의 사위, 형의 손자, 조카의 글공부와 어려움을 힘닿는 대로 보살폈다고 한다. 조카와 조카사위, 종손자, 생질, 종질과 누님의 사위, 형제의 외손자, 질녀의 외손자까지 그가 돌본 후손들은 모두 90여명에 달했다. 공부를 하지않는 후손이 있으면 고기를 선물하면서까지 학문을 독려하기도 했다.
“시원한 밤 책 읽기 좋을 때다. 시간을 아껴라. 좋은 계절에 고요한 절에서 힘써 공부해 주기 바란다. 술 한 병, 닭 한 마리, 생선 한 마리, 고기 한 덩어리를 보낸다.” 퇴계가 맏형의 외손자 민응기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과연 요즘에도 큰형의 외손자까지 챙기는 자상한 할아버지가 있을까. 기업의 CEO가 퇴계처럼 임직원들에게 임한다면 리더십은 절로 생겨나지 않을까.
의성김씨를 일으킨 가문주식회사의 CEO격인 청계 김진은 청운의 꿈을 접고 백년대계를 기획하는 일에 착수했다. 청계 김진은 바로 퇴계에게 자신의 다섯 아들을 제자로 보내 그의 학문뿐 아니라 넉넉한 마음을 흡수할 수 있게 했다. 퇴계의 리더십으로 회자되는 게 ‘너그러움’이다. 그래서 퇴계의 문하에는 늘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흔히 가정에 사람이 몰려들면 흥한다는 말이 있다. 기업도 인재가 몰려들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때로는 너그러움으로 기업을 경영해야 한다. 임직원이 실수해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혀도 때로는 문책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도 길게 보면 공생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실수를 하거나 손실을 입을 때마다 문책한다면 누가 마음 놓고 일을 하겠는가.
청계는 8남매를 남겨두고 그의 아내가 죽자 그는 새장가도 가지 않고 자녀양육과 함께 교육에 전념했다. 한편으로 자애로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호연지기를 북돋우며 5형제를 큰 인물로 키우는데 주력했다. 특히 청계는 아들 5형제에게 퇴계를 스승으로 삼아 학문을 배우게 하면서 그의 모성형 리더십을 흡수하게 했다. 청계의 노력으로 그의 5형제가 과거시험에 합격하면서 가문의 기초를 내리기 시작했다. 500년이 흐른 지금 영남의 내로라하는 명문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청계 김진의 다섯 아들과 그 후손들이 남긴 종택은 무려 6곳에 이른다. 이는 조선시대의 내로라하는 명문가들도 지금은 종택이 없어진 것과 대조적이다. 종택은 동학혁명이나 해방 후 좌우익의 대결로 인해 불에 타 없어진 경우가 많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 나오듯이 지역사회에서 신망을 받지 못한 양반가는 동학혁명 때 불에 타는 수모를 당했다.
해방 후 좌우익이 동거하던 시기에는 지역민을 수탈한 일부 양반가의 종택은 방화뿐 아니라 인명이 살상당하는 등 처참하게 곤경을 당했다. 의성김씨 김진과 그 후손들의 종택은 단 한곳도 불에 타지 않고 6곳 모두 고스란히 남았다. 청계가문이 그만큼 지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가문이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종가의 인간경영학적인 측면이라고 하겠다.
섬세한 여성성 강한 리더 원해
요즘의 지식사회는 권위적인 아빠가 아니라 ‘엄마 같은 아빠’를 요구한다.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산업화시대에는 ‘마초’적인 남성성이 제격이었지만, 산업화이후의 지식시대에는 강한 것보다 섬세한 여성성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시대에서는 기업 내에서 상하간 구분이 없어져 권위적인 지시와 감독으로는 더 이상 생산성을 높일 수 없다.
피터 드러커 경영센터의 진 리프먼 블루먼은 인재를 중시하는 리더십으로 ‘관계지향적 리더십’을 들고 있다. 관계지향적 리더십은 다른 사람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돕는 데 보람을 찾는다. 여기에는 협력형, 헌신형 그리고 성원형 스타일이 있다. 협력형 스타일의 사람은 팀을 구성해 협력하며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헌신형 스타일은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주는데서 진정한 만족을 얻는다. 성원형 스타일은 다른 사람의 성취감을 북돋워 주거나 스승처럼 조언하고 자신이 동일시하는 사람이나 집단의 업적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갖는다.
모성형 리더십은 관계지향적 리더십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관계지향적 리더십은 명문가의 초석을 쌓은 ‘가문의 기획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덕목이다. 신생 기업들의 경우도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딛고 성장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명문가로 도약시킨 가문 기획자들이 보여준 관계지향적 리더십이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경쟁과 목적달성이 어느 때보다 치열한 글로벌 기업환경에서 남성보다 오히려 여성들이 대접받는다. 그 이유가 다름 아닌 챙겨주고 섬기는 모성형 리더십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500년 전에 가문의 기획자들은 이미 모성형 리더십을 발휘해 새 세상을 열었다.
퇴계 이황이나 청계 김진이 500년 앞선 모성형 리더십을 실천한 가문경영의 선구자라면 백의정승의 상징인 명재 윤증은 400년 전에 시스템적 접근으로 교육과 빈곤추방에 앞장서면서 오늘날 화두가 된 지속가능경영의 선구자였다. 명재가문은 교육기관인 종학당과 구휼기관인 사창(社倉)을 만들어 운영규약을 명문화하면서 ‘시스템 경영’을 도입했다.
명재 가는 이미 400년 전에 문중학교인 종학당을 만들어 요즘의 경영학에 해당하는 ‘이재(理財)’를 자녀들에게 교육했다. 1628년에 문을 연 종학당은 현재 세계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대학교보다 10년앞서 문을 연 학교로 기록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조선시대도 결코 해외의 조류와 크게 뒤지지 않았던 셈이다. 특히 종학당은 엄격한 학칙(종약)을 만들고 내외척, 처가의 자녀들이 합숙을 하며 체계적인 교과과정에 따라 교육을 했다. 바로 여기서 시대정신을 조직화할 수 있는 기획자의 존재와 시스템의 도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명재 가는 또 배품의 방안도 다른 가문들과 달리 시스템으로 접근했다. 국가가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사창을 만들고 여기에 그 운영과 실천방안을 명문화했다. 문중과 주변 사람들을 위한 베풂의 방안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의창을 200년 동안 운영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명재 가는 매년 각출하는 200석의 쌀로 수해나 가뭄 때 굶주리는 이웃들을 위해 구휼사업에 나섰다. 사창은 불의의 재난과 일가의 궁핍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즉 위기관리경영 시스템이었던 셈이다. 규약을 정한 종약의 ‘치전제(置錢財)’에 따르면 가정에서는 사람 수에 따라 벼 1섬씩을 내놓았고 관리로 재임하고 있을 경우 봉급의 일부를 내놓게 하는 등 사창의 구체적인 운영 조목이 들어있다.
현감으로 재직 중일 경우 ‘필목 10필, 백지 10속, 먹 5동, 붓 10자루’를 받았다. 문중의 구성원들은 종약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500년 명문가의 가문 경영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가정에서도 위기를 관리하지 않으면 결코 지속 가능한 가문 경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지속가능 경영의 출발은 바로 사회와의 소통을 잘 하느냐에 달려있다. 그 소통의 시작은 가문의 구성원들(내부)에게는 엄격함으로 관리하되 이웃들(외부)에게는 베풂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돌볼 줄 아는 관대함에서 시작했다. 이게 윤리에서 우위를 점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명문가들이 온갖 위험요소를 이겨내며 수백 년 동안 당대의 핵심인재를 배출하고 위기를 관리하며 명성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비결을 분석해보면 오늘날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특히 요구되는 ‘지속가능경영’ 혹은 ‘위기관리경영’의 생존철학의 진수를 벤치마킹할 수 있지 않을까.
- 출처 : 월간 CHIEF EXECUTIVE 2009년 6월호 -
'기본,기초,기술테크 > 자기계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강의 잘하는 방법 (0) | 2009.08.31 |
---|---|
[스크랩] 샐러리맨의 자기경영 12 (0) | 2009.08.13 |
[스크랩] 사람다운 사람 (0) | 2009.07.20 |
[스크랩] [실천 나눔터]매일 적는 <감사일기>가 인생을 바꾼다! (0) | 2009.07.20 |
[스크랩] 성공을 향한 이미지 향상법 (0) | 2009.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