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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스데반 선교사 저서 `깨달은 복음` 읽은 독후감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7. 27. 07:09

             깨달은 복음 (The Acts of the Apostles)을 읽고서

                    저  : 하 스데반 선교사

신약의 사도행전을 강해설교 하듯이 구체적이고 이해하기 쉽도록 쓴 책이다. 특별히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분이 성령이 아주 충만한 분이요 다른 신앙서적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신비한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저자만이 가지는 깊은 믿음을 바탕으로 각 사건마다 하나님의 생각, 저자의 신학적 견해, 목회철학, 교회관, 선교관 등 보석같은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그 동안 내 안에 정리되지 않은 부분들을 체계화시키고 올바르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여러분에게도 분명 유익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되어 소개드린다.

 

528쪽에 달하는 비교적 방대한 책이라서 초심자께서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데 제가 여러분의 시간과 노력을 아껴드리면서 저자의 중심사상을 16쪽으로 요약하여 전하려 한다. 사도행전 자체의 내용 설명은 생략하고, 나의 생각은 아주 조금 추가하면서-

 

참 고 :

저자가 인도하는 집회에 지난 11월에 참석한 적이 있다. 찬양 드리면서 중간 중간에 말씀을 전하는 방식으로 3시간 동안 진행하는 독특한 예배인데,

찬양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특정 참석자에게 손을 향하면 그 사람은 그대로 쓸어져  수면에 빠져 깊은 묵상으로 들어가는 이적을 행한다. 수십 명을

성령의 역사하심을 내 눈앞에서 보면서 더욱 존경하게 된 분이다. 이분은 온누리 교회의 하용조목사님 동생이기도 하다.  

 

이제 이분의 '깨달은 복음' 속으로 들어가 보자.

 

누가는 누구인가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이 아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어떤 사람을 통해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고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서 함께 하며 많은 경험과 자료들을 얻게 된다.

의사이자 학자로서 듣고 체험한 사실들을 AD 63~70 년경 정확하고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세상에 내 놓았다.

누가 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누가'를 누가 전도했을까? 

'누가'를 전도한 사람은 정말 큰 일을 하지 않았는가? 전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누가복음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고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역사하시는 것에 관하여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30년간 신약의 제자들과 교회가 열방을 향해 나아갔던 선교사역의 기록이며 신약의 유일한 역사서이다.

 

사도행전을 간략히 한 말씀으로 요약한다면 다음 말씀으로 대신 할 수 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1:8)

 사도 행전(使徒 行傳)은 성령님이 주인공이므로 성령 행전(聖靈 行傳)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도행전을 읽으면 은혜가 더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을 저버렸던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변화되어 예수그리스도의 충성스런 사도가 되어 사도행전의 사건 속에 새롭게 등장한다.

이들을 변화시킨 것은 무엇인가? 바로 성령 충만함이었다.

성령 충만한 제자들은 그 당시 하나님 나라 확장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사도행전의 기록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독자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을 파괴시키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키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아마도 바울이 로마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시기에 쓰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책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모든 교회에 적용하는 보편적인 진리를 제시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전도여행(1~12)과 회심한 바울을 중심으로 한 전도여행(13~28)으로 구분된다. 그 외에 사도 요한과 스데반, 빌립, 바나바, 실라, 디모데, 누가 등이 전도여행에 참여하였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주요 내용 3가지

1)    복음을 전할 때 많은 기적과 이사가 나타났다.

2)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된다. 처음에는 120명의 제자가, 곧 이어 3,120, 8120명으로 급증하다가 나중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나오게 된다.

3)    믿은 자들은 극심한 핍박과 환란에 직면한다.

 

제자들의 연합한 기도

제자들이 사역을 위해 준비한 것은 기도이다. 예수님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가장 먼저한 행동은 예수님께 헌신할 약 120명을 모으고, 서로 연합하여 쉬지않고 기도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오랜 시간을 보낼수록,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 깊은 기도와 친밀함 가운데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우신다여기서 연합된 기도는 매우 중요하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1:14)

 

연합은 곧 하나님의 사랑을 강력하게 증거하는 것이다. 연합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부흥을 위해 움직이신다.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할 때, 이 기도는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흘러나오게 되는 것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말이 아니라 마음을 살펴보시는 바 우리 마음 속의 간절함이 하나님께 전달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서만 전적으로 자신을 내려 놓고 헌신할 수 있게 되며 우리 앞에 놓인 사역에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시게 된다.

 

오순절의 성령강림과 교회의 탄생

교회의 탄생 시기에 대하여는 여러 견해가 있다.

- 아담이 하나님께 예배했던 그 순간이 교회의 시작이라는 의견

-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고향인 우르를 떠날 때

- 모세가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끌고 시내 광야에 도착하는 순간, 교회(church)와 회중(congregation)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아 이때를 교회 시작으로 보는 의견

-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불러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 것이 교회 시작이라는 의견

- 성령 강림일을 교회가 탄생한 날로 보는 견해. 이것이 실제적이며 구체적이라 하겠다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요 교회이다. 교회의 진정한 본질은, 바로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새롭게 태어나 예수님의 몸의 구성원이 되어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 세례와 함께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은 것처럼 예수님의 새로운 몸인 우리들도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할 때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임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새로운 몸인 제자들이 사역을 시작될 때도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났다. 그곳에 바람이 불고 성령의 불이 임한 것이다.

 

성령님을 지칭하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paracletos 이며 보혜사 (counselor)로 번역된다. (15:26 16:7). paracletos우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성령 외에 더 이상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다.

 

오순절

오순절은 유월절 이후의 50번째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날을 기념하는 뜻도 가지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말씀을 어겨 결국 3,000명이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반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날로부터 열흘 후를 오순절이라고 한다. 이날 성령 강림으로 인해 3,000명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

,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법인 율법에서 벗어나 생명의 삶을 살게 되기를 원하고 계시다.

 

초대교회의 5가지 특징

1)    많은 표적과 기사가 있었다

2)    온전한 연합을 성령님께서 자연스럽게 이루셨다

3)    성령으로 거듭 난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명백한 경계선이 생겼다

4)    교회에 진실이 더해 졌다. 사람들은 종교에는 관심이 없지만 진실에는 관심이 많은 법으로,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에는 진실이 있다.

5)    병든 사람이 나음을 받고 묶인 자들이 자유케 되었다.

 

성령이 임하면

성령은 폭풍 같은 하나님의 호흡이자 거대한 힘을 생각하게 한다. 에스겔서 37장에서 하나님은 마른 뼈의 골짜기에서 뼈들에게 살을 입히고 강하고 큰 군대로 변화시킨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호흡이 들어가라고 대언(代言)하게하자 죽었던 자들이 다시 생명을 얻게 된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이 행하는 역사 중에 각기 다른 언어로 말하게 하는 것이 있다. 방언이다.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들어 가셔서 그들의 입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세상에는 6,000여 개의 언어가 있는데 하늘에는 또 다른 언어들이 있다.

성령이 이 같은 일을 하는 이유는 기도할 때 우리의 잡다한 생각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이기 때문이다.

 

 <방언 은사는 누구나 받을 수 있을까

나이가 들었는데 받을 수 있을까? 저는 환갑이 넘어서야 방언은사를 받았지요.

그 당시의 상황 등을 제 블로그(http://blog.daum.net/koting)에 글로 써서(나의 방언은 이런 것) 

실었으니 한번 보시고  ‘방언이 아직이면 꼭 시도해보세요.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부활과 승천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이다. 성령 강림 이후 성령님께서는 사람들 안에 들어와 다스리시기 시작한다.

예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항상 함께 계셨지만 그들 안에 계신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성령 강림 이후에는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그의 백성들 안에 거하시게 되었다. , 성령이 강림하면 믿는 자들 안에 거하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

 

성령이 임하면 무익한 것이라고 부르던 것이 생명을 갖게 된다. 오늘날 교회는 무언가 새로운 모습과 사역을 무리하게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신약성경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형식적이고 죽은 것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역사를 보여 준다.

 

성령님은 교회의 제도나 방법에 임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임하신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몸에 내주하시며 방향을 지시하시고 힘을 공급해 주시며 각 지체에 능력을 주신다.

 

베드로는 부활에 대해 말한다. 마지막 때의 시작은 성령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마지막 때는 끝날 것이라고.

마지막이란 절망의 시간이 아니라 소망을 위한 시간이며 누구든지 주님을 부르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성령 강림이 일어난 첫날부터 무수한 사람들이 주를 부르고 새사람으로 변화되어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믿음은 오직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시는 것을 확신함으로 강하게 된다. , 예수님은 부활하여 살아 계시고 성령의 능력은 이 세상 어떤 능력보다도 강하며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심을 믿을 때 더욱 강해지게 된다.

 

오스왈드 샌더스는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믿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믿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이 초대교회의 기도 모임에서 일어난 것이다.

 

초대 교회와 현대 교회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보여 주었던 교회의 모습 5가지

1)    하나님께 경외함을 보이는 교회

2)    나누어 줄 준비가 되어있는 교회 - 강요가 아니라 삶 가운데 자연스럽게

3)    지속성이 있는 교회 - 기도 찬양 교제가 성전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4)    기쁨이 넘치는 교회

5)    성장하는 교회 - 교회는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성장시키신다

 

초대교회가 공산주의와 다른 점

1)    전체 공동체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 어떤 법적인 절차나 집행없이 자발적으로 사랑으로 모든 물건을 공동 사용했다.

2)    모두 성령으로 충만했다. 자아는 죽고 하나님의 영으로 숨 쉬었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으로, 그 동기가 하나님이 아닌 인간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3)    그들에게 속했던 재산은 그들의 소유권 안에 있었다. 사유재산이 폐지된 것이 아니므로 공산주의와 근본이 다르다.

4)    그리스도 몸 안에서 생겨난 공동체는 공산주의로는 결코 성취될 수 없는 것이다.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헌신하고 다른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뉘어 썼다. 여기서 궁핍한 사람은 없다. 반면 공산주의는 실현 불가한 이상일 뿐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며 또한 종파가 아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몸이다. 교회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행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ecclesia) , 하나로 부름 받음을 뜻한다.

우리가 선택권을 가지고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양육되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떼이며 성령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교회를 위하여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교회 안의 부패에 대해 하나님은 굉장히 염려하신다. 참고로 죄가 공개적으로 들어난 이후에 오히려 더 많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난다는 점에 유의하자. 하나님이 움직이기 시작하신 것이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그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 가운데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설교는 선포되지만 성령의 강한 능력과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슬퍼해야 한다.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문제이자 비극 2가지

1)    기독교를 인간의 노력과 섬김으로 행하는 종교라고 생각케 하는 것이다. 예배와 봉사를 열심히 하고 율법적인 원칙과 자신 만의 모범을 만든다. 그러나 구원은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성령 충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 외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다른 방법은 없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들의 배후는 무엇인가? 나의 목표를 추구하고 나의 견해를 관철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없는지? 나의 방식대로 일하려는 자신을 깊이 들여 봐야 한다. 이기심을 씻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2)    기독교는 항상 즐거운 것으로 보이게 노력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에는 고난과 환란이 따른다는 것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때로는 조롱도, 거부와 희생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해 나눌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징계에 대해서도 나누어야 한다. 천국에 대해 이야기 할 뿐만 아니라 지옥의 두려움에 대해서도 알려야 한다.

 

사도행전의 목적은 바로 말씀을 삶에 연관시키는데 있다. 성장과 고통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차원을 넘어 어두움의 권세들과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는 원수들도 어김없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 안의 장애물

1)    물질주의

2)    조직과 일 중심적인 모습 (이로 인해 바뻐 지쳐있는 사역자들로 가득함)

3)    인본주의 (하나님 방식대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함)

4)    지성주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인간의 생각에 맞추려는 위험)

5)    부정적인 사고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기대도, 하나님을 위해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 태도)

 

그 결과, 성전 안에서 사람들은 좋은 프로그램은 갖고 있지만 능력이 없다.

예배의식은 행해지지만 하나님의 임재는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우선순위를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어둠의 왕국으로부터 건져내어 예수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모든 것의 우선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성장을 위한 4가지

1)     뼈를 깎는 변화로 하나님의 생명이 넘쳐 나야 함

2)    다음과 같은 사역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함

가)  설교를 잘 하는 자           ) 아픈 자, 유가족을 돌보는 자

) 행정 능력이 뛰어난 자     ) 젊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자

3)    집사를 임명하려 할 때 과연 이 사람은 성령충만 한가가 기준이 되어야 함.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자를 뽑아야 함

4)    성경에 근거한 기준과 방법을 적용해야 함

 

스데반의 항변

스테반은 예수님 이후 첫 순교자이다. 우리가 능력을 받는 목적은 바로 증인이 되기 위한 것이다. 증인이란 단어는 헬라어 martyrs이며, 여기에서 martyr(순교자)가 파생되었다.

 

복음의 증인이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

1)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2)    증인의 삶은 언행이 일치한다.

3)    증인은 자신의 유익에 얽매이지 않는다.

 

하나님이 거하는 장소는 사람이 제한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스스로 움직이시는 분이시다.

다윗은 장막(skene)처럼 이동성이 있는 처소(skenoma)에 하나님을 모시려고 했고 솔로몬은 영원한 거처인 집(oikos)에 모시려 했다. 하나님은 고정적인 장소에 계신 분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움직이시는 분이시다.

 

율법은 우리를 의와 거룩한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해방되었으며 성령을 통해 마음의 변화를 받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스데반은 율법을 파괴했다는 유대인의 협의를 이런 논리로 항변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울의 회심

하나님을 따르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종교가 있다.

1)    노력하는 종교

이것은 자신의 노력을 의지하는 종교로서 천국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울과 같은 삶이다. 하나님 은혜를 얻기 위해 자신의 행위에 의지하는 것이다.

2)    믿음을 강조하는 종교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열어주신 유일한 길을 믿는 것이다. 유일하게 의지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충만하게 하기 오셨다. 우리가 이룬 일은 아무 것도 없고 앞으로도 없다. 사울이 이것을 발견함으로서 결국 바울이 되었다.

 

사울이 바울되는 데는 시간적인 간격이 있다.(사울 9~바울 13) 그 이유는,

1)    바울은 자신의 믿음을 명확히 할 시간이 필요했다.(편견의 묶임에서 자유)

2)    공동체에서 바울을 그리스도인으로 확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우리가 구원의 예수님을 부활의 영광과 변화의 능력 가운데에서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편견의 속박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붙잡고 있는 전통이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가 예수님께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선한 일을 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다. 천국을 향해 가고 있던 사람이기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할 때 죽은 자가 부활하는 것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성령님께서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흘리신 보혈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생명으로 우리를 확신 가운데 인도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능하게 만드셨던 것을 성령님께서는 이제 실현 시키실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공동체 안의 기쁨이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

하나님의 실제를 경험하기 위한 첫 단계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것이다. 경외심은 존경심, 큰 존재로서 여기는 것인데 하나님께 가져야 하는 경외감은 하나님을 거역하게 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는 하나님을 건강하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사람들은 선을 요구하지 않는 하나님을 원한다. 눈물을 흘리거나 희생을 치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진리를 원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지불해야 한다.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내 놓아야 한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므로서 결국 죽임에 이르게 된다.

 

베드로는 잠시 옥에서 풀려나지만 야고보는 죽임을 당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마다 다른 모습의 삶을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 적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되기 전에 먼저 증거가 보여지는 것이다. 이것이 말씀을 전파하는 방법이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 3:6-7)

 

기적에 대한 정의

1)    지적은 자연의 영역 안에서 발생하는 초자연적인 사건이다

2)    기적은 자연 법칙을 깨뜨리는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과학으로는 설명이 불가하다

3)    기적은 초자연적인 실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초자연적인 사건이다.

 

기적은 그 근원과 과정이 하나님께 있다는 점에서 초자연적인 사건이다.

기적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다.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게 된다. 이 또한 기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능력 가운데 행하신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메시지이다.

 

우리가 기적을 믿지 않는다면 성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도 불가능하다. 기적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믿는다고 말할 수 없다. 깊은 감동과 두려움 없이, 기적이 도처에서 등장하는 사도행전을 깊이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초대교회는 어린 피조물처럼 단순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세상을 향해 기쁘고 담대하게 전진함으로 큰 쓰임을 받았다.

 

은 사

모든 은사를 소유할 수는 없다. 빌립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들어내기 위해 치유와 기적의 은사를 사용했고 반면 베드로와 요한은 새 신자를 위해 가르치는 은사를 사용했다. 나중에 베드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며 회개케 하는 지혜의 은사를 사용한다.

은사는 각기 다르지만 이러한 영적 은사들은 반드시 서로 공유되어야 한다. 모든 은사는 동등하며 가치있는 것이다. 영적 은사는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의 토양 위에서 비로서 풍성해 진다. 서로를 위한 사랑을 더욱 풍성케 하는 것이다.

 

기 도

기도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다. 무릎 끓고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은 기도 때문이며 기도가 시작되면 천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대감 없이 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곳에서 시작해야 하며 성령님의 능력으로 나아가야 한다.

 

염 려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염려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염려는 자기 자신의 계획과 생각대로 일하게 한다. 그래서 마귀는 자신에게 소득이 없는 희생은 무가치하니 먼저 너 자신을 좀 돌아보라고 한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 라고 하시는데 그 이유는 염려는 성령께서 일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만약 사람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매일 나를 따르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16:13)고 말씀하신다.

 

십일조

하나님께 수입의 10%을 드려야만 한다는 법은 사실상 없다. 십일조는 그리스도인에게 단지 하나의 기준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더 많이, 적게 낼 수도 있다.

십일조를 근거로 성도들에게 헌금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정성껏 내는 것 만을 하나님은 받으시기 때문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는 것을 명심하자.

 

<십일조는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주제로 제가 연구한 결과와 저자의 생각이 거의 같은 의견

이라서 제가 용기를 내어 감히 여러분께 저의 블로그(http://blog.daum.net/koting)실린

제 글을 읽어 보실 것을 권합니다. 읽으시고 21세기에 합당한 헌금 제도가 이땅에

뿌리 내리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영역이나 지리적인 위치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통치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들어가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체험할 때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특징 5가지

1)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밖에서 이 세상에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받는 것이지 우리가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2)   하나님 나라는 그 안에서 역사를 일으킨다. 누룩 처럼

3)   하나님 나라는 막을 수 없다. 한번 뿌려진 씨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생명력을 보여 준다

4)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초기에는 눈에 띄지 않게 진행되나 마지막 열매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5)     회개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회개가 없으면 하나님 안에서  생명과 천국의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더 깊은 이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

1)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교제를 위해 창조하셨다

2)    하나님과의 교제 이외에 이웃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교제하도록 부름받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2가지 원리

1)    닫혀진 문의 원리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고 생각하고 매우 열정을 가지고 흥분하며 기대로 가득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움직이자 마자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 열리기만을 기다리기만 하면 안된다.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야 한다.

 

2)    움직이는 물체의 원리

정지해 있는 물체의 방향을 바꾸는 것보다 움직이고 있는 물체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훨씬 쉽다.

바울처럼 그냥 움직이면 하나님께서 그게 아니고 저리로 가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쉽게 목적지를 알 수 있고 열려진 문을 찾게 되는 것이다.

 

창조 세계로부터 배울 수 있는 하나님의 위대함 3가지

1)    창조의 섭리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제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주보다 크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건물, 성전 안에 거하신다고 하였지만 신약에서는 사람들 안에 거하신다고 가르치며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며 성령이 내주하시는 건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대 교회의 각종 제도는 때로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제한하려 한다.

 

2)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부유하게 만들 수는 없다.

내가 없으면 하나님이 일하지 못 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를 원하시지만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시편의 말씀을 들어보자.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하는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 임이로다.’

 

3)    창조는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창조는 낮아져야 함을 가르쳐 준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고백을 들어보자. 내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창공과 내 안에 있는 양심은 매번 나를 경외감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채우며, 이 마음은 점점 더 커진다.

 

 하나님의 시각을 갖게 하는 2가지 열쇠

1)    하나님께서는 자연적인 세계와 초자연적인 세계에 동시에 존재한다.

2)    하나님께서는 선과 악을 분명히 구별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반면에 세상은 선과 악을 함께 섞으려 한다.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초자연적인 실제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초자연적인 것을 부인하는 과학적 사고에 대해 영적인 묶임을 끊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연 세계에 일어날 기적에 대해 기대감을 갖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기도할 때 자신의 요청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죽은 기도이다. 진정한 기도는 자연과 초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곳에 있다.

 

복음의 숙련된 전도

전도는 낚시할 때와 마찬가지로 적응력과 민감함, 그리고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바울은 유대인 가운데 있을 때는 유대인으로서 전도하였고 이방인 가운데 있을 때는 헬라인의 방식으로 하였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유대 율법으로 할례를 받게 했는데 이는 디모데로 하여금 유대인 가족들과 유대인 친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돕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에게 말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으니 전도는 예수님의 명령이자 우리의 권리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하며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먼저 부딪치게 되는 것은 종교이다.

구습을 따르는 외형적인 경건은 마찰을 겪게 된다.

우리의 관심은 거리에서 혁명을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영적인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사단의 덫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 구원받기 위한 필요조건 6가지

1)    겸손한 태도

2)    정직

3)    죄를 고백

4)    회개하고 포기하는 것

5)    용서

6)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

  

자매들에게 사역의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기를 권면한다

-         여성이 남성보다 영성이 깊고 헌신한다.

-         디모데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할머니와 어머니이며 바울을 도와 준 하나님의 종 루디아를 보자.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심지어 조롱 당하고 죽음을 당한다 할 지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안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단어가 2개가 있다. Agrammatoi idiotis 비상식적인 바보들이라는 뜻이다.

 

선교사는 죄에 대 해 전파하기 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전파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이것이 선교의 핵심이다.

 

다툼은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재앙과 같다,

 

세례의 의미는 우리의 옛 생활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에 대해 용서받고, 세례 가운데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는 것이다.

세례는 현재 예수님께 속해있다고 선포하는 것이요 예수의 부활 생명 가운데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 물에서 일어나 나오는, 미래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2차원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3차원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고 예수님의 죄 사함으로 채우심을 받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아가는 3차원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 주셨다.

 

부흥이란 이전까지 경건의 모양만 있던 사람이 현재 능력의 경건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생명 없던 것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교회 예배는 얼마나 길어야 하나?

   초대교회는 적어도 예배를 두 시간 동안 계속하였다. 바울은 밤중까지 나눔을 계속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께서 능력을 나타내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어야 한다,

 

예수님과 대화하기

  우리는 예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과 대화하는데 지름길은 없다, 다만 꼭 필요한 2가지 요소가 있다.

1)    우리는 다른 음성들로부터 예수님의 음성을 구별해 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소리들로부터 예수님의 음성을 분별해 낼 수 있는 사람에게 말씀하신다.

 

2)    나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아가 죽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가 있게 된다. 염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는 아래 말씀을 새겨서 매일의 삶 속에 적용해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2:20)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네가 이것을 믿기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 그러나 누구든지 내 말을 믿는다면 내가 하는 일들을 행할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나 보다 더 큰 일도 행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4:12)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나는 네가 예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눈으로 사람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 가운데 묶여 있는 사람들, 죄의 무게에 눌려 있는 사람들, 죄악 가운데 놓여서 회개하고 용서 받아야 할 사람들을 보아야 한다. 사단에 의해 구석진 곳에 고립되고 소외된 사람들을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보아 그들을 하나님의 가족으로 교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도전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면,

첫째, 청중은 말씀을 받는 사람과 받지 않는 사람 둘로 갈라진다.

둘째, 죄인이 죄를 회개하고 자유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는 날이 선 검이기 때문에 말씀의 검은 우리의 심령을 쪼갠다. 이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수술이고 죄인을 자유케 하는 수술이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변화되지 않을 수 없다. 말씀을 듣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시는 것을 넘어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데 있다.

아직 온전하지 못한 부분을 거룩하게 만들어가는 것은 고통이 따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의 어두움의 모든 영역을 다루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너에 대해 정확히 알고있다는 사실을 확신시키시기를 원하신다.

  

맺는 말

사도 행전은 28장으로 끝을 맺고 있다.

그러나 요한을 비롯하며 바울 등 많은 사도들은 그 후에도 계속 살아서 전도하고 있었는데 왜 여기서 기록을 멈추었을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기 까지만 쓰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2000년 전의 교회사에서 초기 30년을 하나님께서 역사의 본으로 삼으시려고 작정한 기간이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모든 교회의 표준과 기준으로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역사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교회에서 세상으로 복음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생명을 얻고 세상으로 나가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교회는 우리의 영적 베이스캠프로 그 역할을 다 해야 한다.

 

성령님이 우리 각자 안에 계시니 성령 행전 29은 우리 각자가 써 나가야 한다.

성령님과 함께 움직이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영역 속으로 깊이 들어가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어디로 인도하실 지를 기대한 것은 정말 흥미진진한 일이다. 큰 기대감을 가지고 기쁨으로 세상에 나아가며 함께 기도를~

 

   위대하신 사랑의 하나님!

   이 죄인을 주님의 백성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워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나의 주인이신 예수님! 늘 성령을 충만하게 채워 주옵소서

   저를 묶고 있는 어두움에서 늘 자유하게 하옵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어두움에 속한 이웃들을 자유케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남은 생애를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 하나님의 전쟁 연구소 (소장 고태영)
글쓴이 : 십자가군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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