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인가? 아니면, 예수님인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와 기독교가 쌍벽을 이루고 있다. 불교와 기독교, 둘 다 옳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진리는 하나이며, 두 종교의 주장이 서로 상반되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것이 참일까? 불교일까? 아니면 기독교일까? 이를 분별하는 방법으로 부처님과 예수님을 직접 비교해 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1. 두 분 중 누가 진정으로 의(義)로운가?
① 부처님 - 본생경에 의하면 아득한 옛날 히말라야 산에서 수도를 하던 한 도인(道人)이 있었다. 그때 그 나라의 임금은 매우 음란하였고, 교만 방자하여 그 도인을 모욕하고 멸시하였다. 화가 난 도인은 신통력을 발휘하여 비가 오지 않게 하였다. 그러자 임금은 “누구든지 그 도인을 타락하게 하여 신통력이 떨어지게 해서 비가 오게 하면 큰상을 내리겠노라”고 온 나라에 공포하였다. 그때 요염하기 그지없는 고급 창녀가 자원하고 나섰다. 그 창녀는 사람을 뇌쇄 시킬 수 있는 고급 향수로 치장을 하고 좋은 술과 안주를 준비하여 도인을 찾아갔다. 처음 그 도인은 창녀를 거절하였으나 그 이튿날부터 술과 그 고급 창녀를 등에 업고 힘없는 몰골로 임금의 궁전에 나타났다. 그 순간 신통력은 사라졌고 그러자 3년 6개월간의 가뭄이 끝나고 많은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직접 하신 이야기이다. 부처님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 도인이 전생의 자기였고 고급 창녀는 자기 부인 아쇼다라고 하였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부처님은 음탕한 파계승이고, 만일 사실이 아니라면 터무니없는 거짓말쟁이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이외에도 전생(前生)에 관해 많은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보건대 부처님은 결코 절대 의로운 분이 아니다.
② 예수님 -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다. 그 분은 “내가 항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이라고 불렀고, 요한은 “그에게는 죄가 없다”고 증언하였다. 바울은 예수님을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라고 말했고, 히브리서 기자는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 자로서 우리와 같이 시험은 받았으나 죄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예수님의 대적들조차도 예수님의 의로움을 인정했다. 예수님을 판 유다는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라고 후회했고, 예수님을 재판하고 유대인들의 압력에 의해 마지못해 사형을 언도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황제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마음을 끄는 평온한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 그는 물로 포도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바다를 잠들게 하고 폭풍을 멈추게 하고, 고기를 잡아 그 입에서 은전을 얻어낼 수 있었던 분입니다. ... 그는 범죄함으로, 어떤 법을 어김으로써 또 누구를 그릇되게 함으로써 비난을 산 적은 없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그를 지지하였던 사람 뿐 아니라 그를 대항하였던 수많은 사람들까지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극악한 강도조차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고 인정했고, 사형집행에 참여한 백부장은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절로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으신 의로운 분이시다.
2. 두 분 중 누가 진정으로 전능자인가?
① 부처님 - 옛날 인도의 구시라성의 시다림(林)에서 한 과부가 슬피 울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이 그곳을 지나가시다가 그 이유를 물었다. 과부는 병중에 있는 외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이에 부처님은 한번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의 쌀을 한줌씩 얻어다가 죽을 끓여 먹이면 살아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오후에 돌아온 과부는 “부처님이시여. 하루종일 다녀도 그런 집이 없어 빈손으로 왔습니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때 부처님이 이렇게 말했다. “자매여.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사람이 나면 반드시 죽는 것, 인연 따라 일어나 인연 따라 없어지는 것이니 너무 슬퍼할 것이 없느니라.” 부처님은 지혜로운 분이었으나 전능하신 신은 아니었으며 한 사람의 뛰어난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부처님도 그 가련한 과부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② 예수님 - 예수님은 수천의 각색 병든 자들과 불구자들을 기적적으로 치유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죽은 자까지도 다시 살리셨다.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사로, 나인성 과부의 아들 등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셨다. 예수님이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까지도 살렸다는 것은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로마의 역사가요, 로마 황제의 친한 벗으로서 16년간 로마군을 지휘하였던 발레루스 파테르쿠러스는 예수님과 동시대 사람이다. 예수님이 태어났을 떄 그는 19세였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예수는 모든 종류의 병자들을 치료하였으며 죽은 자를 살렸고, 그가 결실하지 못하는 나무를 저주하였을 때 그 나무는 즉시 뿌리까지 시들어 말라죽었다. 예수는 그의 놀라운 능력을 타인을 해치기 위하여는 결코 사용치 않았으며 항상 불쌍한 자들의 마음에 주의를 기울였다.” 비단 예수님 뿐만이 아니다. 성경에 보면 엘리야, 엘리사, 베드로, 바울 등도 각각 죽은 자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렸다. 그리고 흔한 일은 아니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예수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아마 가장 놀라운 경우는 스미스 위글스워드 목사님의 경우일 것이다. 그분은 84년의 생애를 사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으로 수천의 병자들을 치유했을 뿐 아니라 무려 23명의 죽은 자를 다시 살렸다.
3. 두 분 중 누가 진정으로 자비로운가?
① 부처님 - 옛날 부처님이 한 촌락을 지나가는데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고 벙어리이고 앉은뱅이인 거지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 제자들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스승님! 이 사람은 전생(前生)에 무슨 일을 하였기에 이렇게 한 가지도 아니고 여러 가지 병신이 되어 있습니까?” 이 물음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여러 생을 두고 지은 업보(業報)니라. 이 사람은 전생에 못된 산 도적이었다. 하루는 가까운 마을로 강도질을 하려고 내려갔다. 가는 도중에 소를 몰고 밭을 가는 농부를 털려고 ‘이놈 게 섰거라’하니 그 농부가 마을로 도망가면서 ‘강도야!’하고 고함을 질렀다. 이 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몽둥이와 창을 들고 방비를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냥 돌아서는데 농부가 버리고 간 소가 거만하게 쳐다본다. 이에 화가 난 강도는 칼로 그 소의 두 눈을 찔렀다. 그리고 혀와 다리를 잘라버렸다. 그래서 그 소는 보지도 울부짖지도 걷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후 그 강도가 죽었다가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 소에게 한 업보로 장님과 벙어리와 앉은뱅이가 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제자들이 “스승님! 불쌍하니 우리가 먹을 것을 조금 줄까요?”라고 물으니 부처님은 “그만 두어라. 그 죄업을 스스로 닦아야 하니 동정을 하게 되면 그 죄과를 빨리 보상할 수가 없단다.”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이 부처님의 자비이고 불교의 자비이다. 참 편하고 해괴한 자비가 아닐 수 없다. 흔히 불교는 자비의 종교라 불려진다. 그러나 불교가 윤회설이라는 허황된 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불교에서 자비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② 예수님 - 성경에 보면 날 때부터 소경인 거지가 구걸하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님!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자기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니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후 예수님은 그 소경을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불쌍한 장애자들에게 전생의 죄인이라는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우고 그들의 인격을 모독하거나 정죄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은 제자들에게 하신 그 분의 명령에도 잘 나타난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이처럼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사랑하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범죄한 온 인류를 사랑하셨다. 그래서 죄 없으신 그 분은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고난을 당하셨다.
이상 세 가지로 부처님과 예수님의 차이를 소개하였다. 그러나 두분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부처님은 우리 같은 사람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여러분도 잘 아다시피 부처님은 독버섯이 든 음식을 먹고 설사를 계속 하면서 비참하게 돌아가셨고, 예수님은 나와 당신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나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죽음으로 입증하셨고,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부활로써 입증하셨다. 종교란 신(神)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섬기는 것은 너무도 마땅한 일이다. 부모가 부모이기 때문에 섬겨야 한다면 더더욱 신은 신이기 때문에 섬겨야 한다. 이것이 신의 최고의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의 당연한 도리요, 본분이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언 14:12)
출처 :미산성실교회공식카페 http://cafe.daum.net/soungsil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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