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당뇨’ 의 기습
- 차 례 -
[‘한국형 당뇨’ 의 기습 01]한국형 당뇨병 아우성
[‘한국형 당뇨’ 의 기습 01] 한국형 당뇨병 아우성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2009.09.08 702호 주간동아 |
# 1지난 7월 중순 KBS 의학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에선 한때 ‘홈런왕’과 ‘철벽수비’의 대명사로 통하던 전 국가대표 야구선수 심성보(37) 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그는 삼성 라이온즈의 간판선수로 활약하던 2003년 10월 ‘일신상의 이유’라며 갑작스레 은퇴했다. 당시 31세. 그로부터 6년 만에 그는 ‘일신상의 이유’가 당뇨병이었음을 고백했다.
더욱 충격적인 소식은 그가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25세 때부터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 당뇨병은 운동으로 다져진 180cm, 75kg의 탄탄한 근육질 남자조차 피해가지 않았다. 현재 심씨의 몸무게는 63kg으로 선수시절보다 12kg이나 줄었고, 당뇨합병증인 당뇨병성 망막증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 2서울성모병원 당뇨병 집중치료 클리닉 ‘인크레틴 센터’. 30세의 이모 씨는 이곳에서 당뇨병 치료를 받은 지 3년이 넘었다. 170cm, 61kg으로 조금 마른 편인 그는 27세 때 당뇨병 판정을 받았다. 평소 식후 혈당이 치솟아 밥만 먹으면 바로 운동을 했지만 혈당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루 세 번, 한 번에 한 시간 이상의 운동 또한 몸이 불편한 그에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씨에게 인슐린 분비 기능이 조금 남아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의료진은 지금껏 투여하던 인슐린 주사를 끊고 신체 스스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도록 도와주는 인크레틴 제제(30쪽 기사 참조)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치료제를 바꾸고 3개월이 지나자 식후 혈당은 정상범위로 뚝 떨어졌다. 운동을 하루에 한 번만 하거나 가끔은 전혀 하지 않아도 혈당 수치는 더 올라가지 않았다.
왜 하필 한국인을 괴롭히는가 당뇨병 환자 500만명 시대, 성인 100명 중 8명이 당뇨병에 걸리는 시대가 왔다. 2030년에는 10명 중 2명이 당뇨병 환자가 되고, 인구의 15%가 넘는 700만명이 당뇨병에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당뇨병에 대한 인식이 낮고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지금도 당뇨병과 그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국가 중 한국이 2위다. 흔히 당뇨병은 비만일수록, 나이가 들수록 잘 생기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이 상식이라면 한국인보다 비만인구가 많은 서양인에게 당뇨병이 훨씬 많아야 하고, 노인 인구가 많은 일본이 ‘당뇨병 대국’이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심 선수와 이씨의 사례는 일부러 마르고 젊은 당뇨병 환자만 골라낸 것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당뇨병을 앓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마르고 젊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꼼꼼한 성격에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국은 체질량지수(BMI·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 ㎏/㎡)가 25 이상인 비만인구가 60%인 데 반해 한국은 10~20%에 불과하다. 하지만 양국의 성인 당뇨 유병률은 7~8%(2005년 통계)로 거의 비슷하다. 한국인의 경우 살찌지 않은 당뇨병 환자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당뇨학계 권위자인 연세대 의대 허갑범 명예교수는 “한국의 당뇨병 환자 중 60~70%는 마르거나 정상 체형이면서 배만 불룩 나온 사람이다. 심지어 10%는 의학적으로 저체중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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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당뇨병학회는 일반인의 상식을 깨는 또 하나의 통계를 발표했는데, 국내 전체 당뇨병 환자 중 40세 이하가 41%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특히 남자의 경우 40세 이하 환자가 거의 절반에 가까운 49%였다(여자는 33%).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사결과도 이런 통계를 뒷받침한다. 한국의 30대와 40대의 당뇨 유병률은 각각 4%와 6%로 서양인보다 10배 정도 높다는 것.
당뇨병이 대부분 발병 10년 후부터 합병증이 생겨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창 일할 나이인 40, 50대에 당뇨합병증으로 경제활동을 그만둬야 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환자 본인과 가족이 입는 직접적 피해는 물론, 국가 차원에서의 사회적, 경제적 손실도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이미 국민건강보험 전체 재정의 20%가 당뇨병과 그 합병증 치료에 쓰이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에만 마른 당뇨와 젊은 당뇨 환자가 넘쳐나는 것일까.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조재형 교수는 “마른 사람의 경우 비만한 사람보다 췌장 베타세포의 양이 적다. 한국인은 베타세포의 기능 이상이나 양적 감소가 조기에 발생하면서 젊은 나이에 당뇨가 발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의대 강남세브란스 내분비내과 안철호 교수도 “현재 진료하는 환자 중 절반 이상이 비만하지 않다.
오히려 저체중인 경우도 있으며 이는 인슐린 분비 능력을 좌우하는 췌장 베타세포 양이 한국인의 경우 서양인보다 70~80%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췌장 베타세포에 뭔가 해답이 있는 것 같은데 쉽지 않은 의학용어다. 의학자들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뇨병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지를 전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음식물을 먹으면 소화기관에선 이를 분해해 탄소화물, 지방, 단백질 등 영양소의 형태로 간에 보내고, 간은 그중 탄수화물을 포도당으로 만들어 각 혈관으로 내보낸다. 이때 혈액 속에 녹아든 포도당을 혈당이라 하는데, 신체 각 세포는 혈당을 흡수한 후 이를 각 기관을 움직이는 에너지로 사용한다. 이때 혈관에 있는 당을 녹여서 신체 세포로 들어가게 만드는 호르몬이 바로 췌장에서 만들어지는 인슐린이다. 인슐린이 ‘혈당조절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런 순환구조가 제대로 이뤄지면 간은 적절한 시점에서 당 생산을 중단하며, 세포에 흡입되지 않은 여분의 혈당은 혈관을 타고 내려가 신장에서 걸러진다. 당뇨병은 세포에 흡수되지 않고 남은 혈당이 혈관에 지나치게 많이 돌아다니면서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혈관에 혈당이 남아도는데도 간은 계속 포도당을 만들어 혈관으로 내보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혈관 속에서는 그야말로 ‘포도당 대란’이 일어난다.
당뇨합병증에 심혈관 질환, 뇌혈관 질환, 미세혈관 질환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최근 들어 혈당치(공복 측정 시 126㎎/㎗, 임의 측정 시 200㎎/㎗ 이상이면 당뇨병 진단)와 함께 당화혈색소의 개념이 강조되는 이유도 이런 사정에서 비롯된다. 당화혈색소는 적혈구 내의 혈색소(헤모글로빈)가 포도당과 결합하면서 생성된 것으로, 혈당조절이 안 되면 이 수치가 증가한다(한국은 6.5% 이하, 서양은 7% 이하가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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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혈당조절의 궁극적 목표가 당화혈색소의 감소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혈당이 정상 범위로 떨어졌다고 해도 당화혈색소가 그대로이면 나아진 것은 없다.
당화혈색소는 혈관 질환의 원인이 되고, 이는 결국 환자의 사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혈관으로 들어가 ‘사고’를 치지 않은 여분의 당은 신장으로 내려가는데, 그 양이 지나치게 많으면 신장에 과부하가 걸려 만성신부전을 일으킨다.
당뇨병 환자가 물을 많이 마시고 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도 혈관에 돌아다니는 여분의 당을 소변으로 배출하려는 신체의 절박한 요구에서 비롯된다. 만성신부전에 이르면 환자는 평생 투석치료를 받아야 한다.
인슐린 적은데 기름진 음식 많이 섭취 결국 당뇨 발병 여부는 혈액 속 혈당을 줄이는(세포로 흡수되게 만드는) 인슐린의 분비량과 그렇게 분비된 인슐린이 제 기능을 하는지에 달렸다. 이때 인슐린 분비량을 늘렸다 줄였다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췌장 베타세포다. 췌장에 있는 베타세포는 혈관 속에 당이 많으면 인슐린 분비량을 늘리고, 적으면 그만큼 줄인다.
베타세포의 숫자와 비만도는 대부분 비례하는데, 마른 사람은 비만한 사람보다 베타세포의 양이 50% 정도 적다. 즉, 마른 사람은 인슐린을 분비할 수 있는 능력(인슐린 분비 능력)이 비만한 사람보다 그만큼 떨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살이 찌는 만큼 베타세포의 수가 불어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기엔 유전적 성향이 크게 작용하리라 추측할 따름이다.
그런데 최근 의학계는 한국인의 경우 비만 여부에 관계없이 서양인보다 췌장 베타세포가 70~80% 적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인슐린 분비 능력이 서양인의 20~30%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한국인은 미국인과 비슷한 식사를 해도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혈당조절 능력은 한정돼 있는데 그보다 많은 당이 만들어지면 혈관 속에 남아도는 당의 양도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 작은 컵에 물을 많이 부으면 넘쳐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이 ‘컵’(췌장 베타세포)은 매우 약한 재질이라 충격(많은 포도당)이 자주, 그리고 크게 가해지면 조금씩 부서져 결국엔 깨지고 만다. 췌장 베타세포가 손상을 받아 조금씩 수가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는 뜻인데, 이는 곧 인슐린 분비 능력의 감소 또는 박탈을 의미한다. 문제는 췌장 베타세포의 수를 줄이고 기능을 손상시키는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가 비만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1980년대 이후 서구형, 즉 비만형 식습관이 확산되면서 당뇨병 환자가 급격히 늘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췌장 베타세포가 근본적으로 적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당이 공급됐기 때문이다. 췌장 베타세포의 수가 살이 찌는 만큼 늘어나는 게 아니므로 한국인에게 비만은 당뇨병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젊은 당뇨병 환자가 많은 이유도 췌장 베타세포가 청년시기부터 혈당조절의 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손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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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당뇨병 치료제에 거는 기대 의학적 분류에 따르면 췌장 베타세포가 없어 인슐린 분비가 전혀 되지 않는 당뇨병을 제1형(주로 소아당뇨병) 또는 인슐린 의존형 당뇨병이라 하고, 췌장 베타세포의 인슐린 분비 능력이 모자라거나 분비는 충분히 되지만 인슐린 자체가 혈당조절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인슐린 저항성) 당뇨병을 제2형 또는 인슐린 비의존형 당뇨병이라고 한다. 제1형 당뇨병은 유전적 성향이 매우 강하며, 인슐린이 전혀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허갑범 교수를 비롯한 일단의 의학자들은 제2형 당뇨병 중 인슐린 분비 능력이 조금 남은 마른 당뇨를 ‘제1.5형 당뇨병’으로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결국 한국인에게 젊고 마른 당뇨병, 다시 말해 한국형 당뇨병이 많은 것은 서양인의 20~30%에 불과한 췌장 베타세포 수의 부족, 인슐린 분비 능력(혈당조절 능력)을 벗어난 ‘상대적 비만’(의학적으로 비만은 아니지만 인슐린 분비 능력을 고려했을 때의 비만)이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
이들 가운데 체질량지수는 정상인데 아랫배가 볼록한 복부비만이 많고, 배가 전혀 나오지 않았지만 근육량이 지방보다 적은 사람도 적지 않다. 말랐거나 살이 쪘거나 모든 당뇨병 환자에게 식이·운동 요법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운동은 근육과 지방조직의 각 세포에 있는 당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혈관 속의 당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종국에는 비만을 해소함으로써 췌장 베타세포에 대한 부담을 급격히 감소시켜 인슐린 분비 능력을 되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금껏 한국형 당뇨병 환자에게 가장 많이 사용된 치료제가 췌장 베타세포를 강제로 자극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기전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제1형 당뇨병은 인슐린 제제를 직접 주사). 아니면 간에서의 포도당 생산을 막는 기전의 약품들이 사용됐다. 그런데 이들 약물은 저혈당, 체중 증가, 빈혈, 인슐린 생산 기능 마비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당뇨병 전문의의 철저한 관리 아래 처방이 이뤄지는 형편이다.
이런 와중에 각종 부작용 유발의 가능성을 줄인 인크레틴 계열 약물이 지난해 말 개발됐다. 이들 약물은 췌장 베타세포를 쥐어짜고 괴롭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기존 치료제들과 달리, 췌장 베타세포의 인슐린 분비 기능을 돕고 손상된 부분을 복구시켜 기대를 모으고 있다(30쪽 기사 참조).
‘풍요 속의 빈곤’, 당뇨병이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서 걸리는 병이란 뜻에서 사용되는 말이지만 근본적으로 당뇨병에 취약한 체질을 가진 한국인에겐 그 의미가 각별하다. 우리는 조금 잘살게 됐다고 전통 식습관을 저버린 죄 때문에 벌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아직도 음식을 두고 질보다 양에 목숨 거는 사람이 있다면 당뇨병으로 인해 정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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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당뇨’ 의 기습 02] |
한국인을 덮치는 ‘당뇨 쓰나미’ 30년 새 환자 6배 급증 400여 만명 … 2030년 세계 1위 ‘당뇨국’ 우려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
“30년 전에 당뇨병 환자가 입원하면 의사들이 신기하다며 환자를 구경하러 갔다. 지금은 가족 중에 당뇨병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국민병’이라 할 만하다.”(연세대 의대 신촌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차봉수 교수)
“예전에는 300병상의 병원에 2, 3명이 고작이던 당뇨병 환자가 지금은 1000병상에 130명이 넘는다.”(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윤건호 교수)
국내 당뇨병 환자의 증가세는 이렇듯 가히 폭발적이다. 대한당뇨학회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07년 한국인 당뇨병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당뇨병 환자는 6배 급증했다. 20~79세 인구 기준 국내 당뇨병 유병률은 7.7%(269만4220명, 전체 환자는 286만명)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12~14위다.
이런 추세라면 2010년에 351만명(전 인구 추계 기준 7.08%), 2029년 455만명(8.97%), 2030년 545만명(10.85%)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에는 한국인 10명 중 1명이 당뇨병 환자가 된다는 얘기인데, 이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 이 연구보고서가 2003년 병원을 찾은 환자 수를 기준으로 한 것임을 감안하면, 병원을 찾지 않은 환자까지 포함한 국내 당뇨병 환자는 현재 약 400만명으로 추산된다.
우울한 뉴스는 또 있다. 최근 서울성모병원 윤건호 교수 등이 참여한 ‘아시아 지역의 당뇨-유행병학, 위험요인 그리고 병리생리학(Diabetes in Asia-Epidemiology, Risk Factors, and Pathophysiology)’ 논문은 2007년 2억4000만명이던 세계 당뇨병 환자가 2025년에는 3억8000만명으로 급증하며, 그중 60% 이상이 아시아 환자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의 주요 사망원인은 동양인의 경우 뇌졸중과 만성신부전이며, 서양인은 심혈관계 질환이다. 아시아인 환자에게 미세혈관 합병증(만성신부전, 당뇨망막증)이 주로 나타나는 것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당뇨병이 발생해 오랜 기간 노출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또 당뇨 환자는 비당뇨 환자보다 유방암, 자궁내막암, 췌장암, 간암 발병률이 30~40% 높았고, 당뇨가 있는 암 환자는 당뇨가 없는 환자보다 40~80% 높은 사망위험률을 보였다.
1970년 총인구의 1% 미만으로 추정되던 국내 당뇨병 환자가 30년 사이에 이처럼 급증한 까닭은 무엇일까. 왜 유독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 ‘당뇨병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일까. “의사들끼리는 ‘당뇨 치료는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다’고 말한다. 당뇨 약 투여와 효과가 사람마다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같은 환자라도 의사마다 처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만큼 당뇨 유발요인은 다양하다.”
차봉수 교수의 말처럼 당뇨병 환자가 폭증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당뇨병 환자들을 통해 그 원인을 추정할 수 있다. 윤건호 교수는 아시아 각국에서 당뇨병 환자가 급증한 이유로 서구화한 식생활과 트랜스 지방 섭취 증가, 도시화 및 산업화에 따른 신체활동 감소, 과도한 스트레스와 수면시간 부족, 흡연인구 증가 등을 꼽는다.
“보통 1인당 GDP가 4000~5000달러인 나라에서 당뇨병이 급격히 늘어나고, 4만 달러가 되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5000달러 수준의 나라는 국민들이 마음먹고 먹으면 양껏 먹을 수 있는 경제력이 있다. 우리나라도 4000~5000달러 시대인 1980년대에 당뇨 환자가 급격히 늘었고 2000년 들어 합병증 등으로 인한 내원 환자가 폭증했다. 우리는 그때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15년 이상을 사실상 방치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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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에 힘입어 먹고 마실 게 많아졌지만 이를 소모하지 못해 ‘인덕(人德)’이 쌓이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우스갯소리지만 ‘바람 난 남편 빨리 죽이는 방법’으로 기름진 음식과 설탕을 매일 먹인다는 것도 틀린 말이 말이다.
복부 등에 체지방이 쌓이면 췌장에서 인슐린이 활발히 분비되고,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돼도 기능이 떨어져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 결국 췌장은 과로로 점점 기능이 약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발도상국 초입병 … 시·군 환자 증가세 평소 탄산음료나 정크푸드 등 ‘비만 유발 음식’을 먹지 않는다 하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최근에 포도 한 송이를 먹었을 때와 30년 전 포도 한 송이를 먹었을 때는 당 섭취량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지난 30년간 품종개량으로 포도는 꾸준히 당도를 높였다. 어디 포도뿐이랴. 그만큼 환경이 ‘살찌는 환경’으로 변한 것이다.
대한비만학회지에 실린 논문(‘한국인의 10년간 비만 수준의 변화 양상 : 1997~2007’)에 따르면 ‘뚱뚱한 한국인’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한국인 남성의 경우 과체중군과 비만군이 1997년에는 각각 26.3%, 21.6%였지만 2007년에는 29.5%, 33.4%로 증가했다. 여성은 1997년 19.1%, 17.2%에서 2007년 각각 23.0%, 23.6%로 늘었다.
“당뇨를 흔히 ‘부자병’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개발도상국 초입병’이라고 할 수 있다. 탄산음료와 지방질 섭취는 늘지만 교육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서울 강남지역 당뇨 환자의 수가 감소 추세를 보이는 반면, 시·군·구 지역 환자들은 증가세를 보이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단순하게 비만이 당뇨병의 주범이라고 한다면, 서구에 비해 비만도가 훨씬 낮은 우리나라에서 당뇨병 유병률이 비슷하게 보고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윤 교수를 비롯한 다수의 연구진은 민족 또는 인종적 특성으로 눈을 돌린다. “아시아인에게는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의 양이나 기능이 약하거나, 혹은 기능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에 문제가 있다.”
현재 아시아인은 서양인보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베타세포 양이 적어 당뇨병에 취약하며, 약간의 당 부하만 발생해도 베타세포의 기능이 조기에 심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국 당뇨병학회는 ‘아시아인은 당뇨병 위험 인종’이라고까지 경고한 바 있다. 결국 한국인은 선천적으로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 능력이 떨어지는 데다 설상가상으로 식생활의 서구화와 운동량 부족으로 서양인보다 복부비만이 쉽게 쌓이고, 이렇게 쌓인 복부비만이 인슐린 저항성을 유도함으로써 당뇨병의 급속한 증가를 초래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스트레스와 흡연, 음주와의 상관관계는 어떨까. 차 교수의 설명이다. “스트레스는 몸에 위기상황이라는 경고를 보내 몸으로 하여금 에너지를 만들어내게 한다. 결국 스트레스는 호르몬을 통해 혈당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일반적으로 중·후진국은 급격한 사회적 변화로 스트레스와 분노를 많이 받는다.”
‘만병의 근원’으로 꼽히는 흡연과 음주도 당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담배는 몸의 교감신경을 자극해 인슐린 저항성을 올릴 수 있고, 술자리는 음식 조절 등 ‘셀프 케어’가 어렵기 때문에 되도록 자제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그렇다고 당뇨가 ‘죽음의 쓰나미’만은 아니다. 관리를 잘하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돈을 적게 벌어도 규모 있게 쓰면 되듯, 아시아인이 인슐린 분비 능력이 떨어진다면 거기에 맞게 생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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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쓰듯 관리 … U-헬스케어 기반 필요 “고교시절에 열심히 공부하면 평생을 잘 살 수도 있듯이 발병 초기에 관리를 잘하면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다만 합병증으로 전환되는 등 증상을 느끼는 시점에서 병원을 찾으면 늦다.” 윤 교수는 평균수명 60세일 때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은 문제 되지 않지만, 평균수명 80세에 육박하는 요즘은 건강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거에는 30, 40대에 당뇨병이 생겼다 해도 합병증이 올 때쯤인 60대에 죽어도 억울할 게 없다. 하지만 요즘은 100세까지 살게 하려고 치료를 한다. 당뇨 환자 중에는 비싼 약을 처방한다고 가끔 항의하는 사람이 있는데, 제때 투약하지 않아 심장병이라도 생기면 당뇨 약값의 4배는 더 든다. 당뇨는 안경을 쓰는 개념이다. 눈이 나쁘면 안경을 쓰듯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윤 교수는 당뇨 같은 만성질환자가 늘면서 진료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환자와의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수시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U-헬스케어’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당뇨병이 없다면 사람은 끝없이 뚱뚱해지고 몸속의 혈관은 다 망가질 수 있다. 당뇨로 당이 빠져나가면서 그나마 체중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하느님이 인슐린 분비 세포를 몸속 장기 한 곳에서만 나오게 한 것은 사람들이 설마 이렇게 뚱뚱해질 줄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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