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혈은 무섭다. 뇌출혈은 특히 무섭다. 뇌혈관이 꽈리처럼 부푼 뇌동맥류는 파열 직후 30%가 즉사한다. 다행히 생명줄이 유지된 상태로 병원 치료를 받아도 절반은 사망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이 남는다. 중풍으로 알려진 뇌졸중 역시 혈관이 막혔건 터졌건 발병 직후 몇 시간 동안의 치료가 명운을 가른다. 이런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은 긴장의 연속이다. 병세도 위중하고 발병도 갑자기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료계에선 대표적인 ‘3D 업종’으로 분류된다.
전통적 개두술, 첨단 뇌혈관 수술법에 능숙
의대생 시절부터 뇌혈관 수술을 “세상에서 가장 멋있고 희열을 느끼는 일”로 생각했고 뇌졸중센터장이 된 지금도 “의술의 꽃”으로 찬미하는 의사가 있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신경외과 신용삼(45) 교수가 주인공이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 “자칫하면 세상을 등졌을 사람을 열심히 치료해 생명을 구하는 일은 매일매일 하느님의 생명 존중 사상을 실천하는 길”이라며 자부심을 표명한다.
“20년 전 신경외과에 입문하면서 지금까지 365일 매일같이 환자를 진료하는 걸 원칙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입원한 환자·보호자들은 언제나 의사의 방문을 환영하잖아요? 나를 필요로 하고, 또 만나고 싶어 기다리는 누군가가 매일 존재한다는 사실, 정말 축복받은 인생 아닌가요?”(신 교수)
그가 신경외과를 전공하게 된 계기는 학생 실습 때 의식불명으로 입원한 환자가 수술 후 밥 잘 먹고 말도 잘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다. 졸업 후 신경외과를 지원하자 “평생 긴장해야 하는 분야라 의사 중에서도 평균 수명이 가장 짧다는 사실은 알고 있느냐”는 말로 말리던 선배가 많았다.
그래도 그는 신경외과를 고집했다. 전공의 과정 4년 동안은 집에 온 날이 손꼽을 정도다.
전문의가 된 그는 1994년부터 용산의 미8군 121병원에서 미군과 군속을 대상으로 하는 신경외과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군의관 시절을 보냈다. “미국의 신경외과 전문의는 연봉이 높은 데다 특히 한국 군대에 근무할 자원자가 드물어 한국 군의관 중에서 한 명이 차출돼 미군부대에 근무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당시에도 신경외과 의사의 연봉은 50만 달러 정도였다).
미국을 오가며 만난 뇌혈관 전문가들을 통해 그는 “훌륭한 뇌혈관 치료 명의가 되려면 신경외과적 수술법뿐 아니라 방사선과의 중재적 시술도 배우라”는 조언을 듣게 된다.
뇌혈관 이상으로 출혈이 생겼을 때 신경외과에선 뇌를 직접 열고 병변 부위를 들여다보면서 문제의 혈관을 묶어 재발을 막는 치료를 한다. 반면 방사선과에선 허벅지 동맥으로 관을 집어넣은 뒤 뇌혈관까지 진입시켜 코일로 문제의 혈관으로 가는 길을 완전히 차단시키는 중재적 시술을 택한다. 어떤 치료법이 더 좋은지는 환자의 혈관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
이후 그는 ‘국내 최초로 두 가지 치료법을 모두 적용할 수 있는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제대 후 이를 실천하기 위해 그는 일단 세브란스병원에서 신경외과 임상강사로 근무하면서 심층적인 뇌혈관 수술법을 익혔다. 이후 또다시 방사선과 강사로 근무하면서 뇌혈관 중재술을 배웠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2000년 국내 최초로 양날을 사용하는 뇌혈관 치료 전문가가 됐다.
그는 중재적 시술의 최신 기술을 좀 더 익히기 위해 2004년 이 분야 창시자인 베렌스타인 교수가 근무하는 미국 컬럼비아대 부속병원에서 1년간 연수하기도 했다.
“두 가지 치료법에 모두 익숙해지면 어느 치료법이 더 좋다는 식의 경직된 생각보다는 ‘이 환자에게는 어떤 치료법이 더 적합하다’는 식의 판단이 가능해집니다. 최선의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거죠. 뇌혈관 치료는 단순한 치료가 아닌 고난도 기술이 요구되는 ‘복합 예술’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현재까지 약 1500명의 뇌동맥류 환자를 치료했고 사망률은 2% 미만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1500명의 환자 중 뇌동맥류를 미리 알고 예방적으로 치료했을 때 사망했던 경우는 없었습니다. 사망자는 모두 뇌출혈이 발생한 뒤 병원을 찾았던 환자죠.”
이런 이유로 신 교수는 가족 중에 뇌동맥류 환자가 있었던 사람, 40세 이후의 고혈압 환자, 갑자기 뒤통수를 치는 듯한 두통이 발생한 환자는 뇌혈관 CT를 찍어 볼 것을 권한다.
“한 번의 뇌촬영으로 병원에 오기 전 30%가 사망하는 무서운 병을 평생 제거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은 현대의학이 주는 혜택 아니겠어요?”
뇌혈관 치료 명의인 신 교수가 일반인들이 꼭 알았으면 한다며 들려주는 조언이다.
글=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강정현<기자sehee@joongang.co.kr>
홍정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교수 대접받을 수 있는데 새 치료법 배우더군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누구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의대 6년이 그렇고 밤낮 없이 병원에서 숙식하며 보내야 하는 인턴·레지던트 과정이 그래요. 그래서 의사들은 전공의 과정을 마친 뒤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면 일단 한시름 놓지요. 물론 이후에도 전임의 과정, 해외 연수, 끊임없는 환자 진료와 토론 등 기나긴 훈련 과정을 밟아야 하기는 해요. 그런데 신 교수는 전문가가 해야 할 필수 과정을 모두 끝마친 뒤 또다시 낯선 과(방사선과) 교수를 설득해 중재적 시술을 배웠어요. 대학의 전임교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새로운 과에서 새로운 치료법을 배우기 위해 고난의 훈련 과정을 새로 시작하는 건 명의가 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선택하기 어려운 결정입니다. 결국 그는 이 과정을 통해 국내 최초로 뇌혈관 환자에게 필요한 두 가지 분야의 치료법을 모두 습득하게 된 겁니다.”
홍정(사진) 교수가 신용삼 교수를 명의로 추천하게 된 첫째 이유다.
둘째 이유는 고된(?) 의사의 길을 가면서도 항상 웃음을 띠고 사는 신 교수의 태도다. “신 교수는 1년 내내 바쁘게 사는 자신의 삶에 늘 감사하며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말을 달고 살아요. 의사가 늘 밝은 표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환자를 진료하면 환자들은 상태가 위중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협조하게 마련이죠. 중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신 교수의 이런 자세가 명의가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닐까요?”
홍 교수는 신 교수의 신앙심이 지금의 그를 존재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란 생각을 할 때가 많다고 덧붙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