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은혜와 소망의 설교집

[스크랩] 미래를 소망으로 가꾸는 사람들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2. 6. 08:28

미래를 소망으로 가꾸는 사람들
본문:벧전 03:10-17
 

          조병우목사


한 나라나 한 가정이나 한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사료를 먹고 있는 짐승을 보면서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아무 걱정 없이 사료를 먹고 잠을 자는 돼지를 볼 때에 조금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짐승의 내일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무리 잘 먹고 아무리 걱정 없이 잠을 잔다고 해도 1년 정도 뒤에는 죽어서 사람의 먹거리가 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모든 사물을 보면서 현재의 그 삶을 달아보는 저울로 사용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소망입니다. 오늘 비록 힘든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미래에 복이 되는 삶을 살 때에 우리는 그 삶을 아름다운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그 삶이 편해 보이고 그 삶이 풍성해 보여도 미래를 망치는 삶이라고 생각될 때에 우리는 그 삶을 타락한 삶이라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삶을 미래와 연결해서 판단해 보면 그 삶의 성격이 아주 잘 설명됩니다. 삶을 보면 자기 미래를 가꾸는 삶이 있고 자기의 미래를 파괴하는 삶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탕자의 이야기를 보면 그 삶이 잘 설명이 됩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타국에 갔던 탕자의 삶이 나옵니다. 탕자는 그 재산을 가지고 기분 좋게 살았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탕자의 삶은 미래를 파괴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탕자의 이야기를 보면 그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겉모습보다도 더 초라한 것은 탕자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에게 품군의 하나로 받아 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탕자를 안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돌아오는 순간 그는 자신의 미래를 찾은 것입니다.

세상을 따라 사는 사람은 탕자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그 미래를 팔아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 삶이 가지는 축복은 미래를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 미래를 가꾼 사람들입니다. 현재에 수많은 고난 가운데 살면서도 그 미래를 위해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그 미래를 파괴하고 그 미래를 저버린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성도의 삶의 성격을 설명하면서 성도의 삶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삶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을 가진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소망을 담고 있는 삶입니다. 소망의 분량이 큰 사람입니다. 성도의 삶이 어떤 삶보다 귀한 이유는 우리가 가진 소망이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의 언어는 미래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했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미래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우리의 미래를 복되게 하기도 하고 우리의 미래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정말 우리의 미래가 복되고 좋은 날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혀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우리의 언어는 씨앗과 같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무슨 씨를 심든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좋은 말을 하는 것은 좋은 곡식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악한 말은 잡초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나쁜 씨앗을 심고 좋은 것을 기대할 수 없듯이 나쁜 말을 하면서 미래가 자신에게 좋은 결과가 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의 혀가 배에 키와 같다고 했습니다.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내 혀의 말이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성도는 내 혀를 바로 사용해야 내 삶이 올바른 미래를 향해서 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언어가 우리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성경은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언6 6:2)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문에 성도는 말로 자신을 정죄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성경은 나를 살리고 죽이는 힘이 우리의 혀에 있다고 했습니다.

성도는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신앙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인생이 신앙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서도 불신앙의 언어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언어가 결국 열매로 나타나기 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도 우선 언어라도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자들의 입술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열 두 정탐꾼 가운데 열 사람은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미래를 부순 사람들입니다. 여호수아 갈렙은 그들의 언어로 그 미래를 하나님께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미래를 소망으로 가꾸는 사람은 화평을 구하여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했습니다. 미래를 가꾸는 사람은 관계를 세워가는 사람입니다. 관계를 파괴하는 사람은 미래를 파괴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아무리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있어도 관계를 바로 세워가지 않는 사람은 미래가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만나보면 다른 사람과 자꾸 부딛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미래가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든지 서로 감싸주고 서로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질 때에 미래가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할수만 있다면 서로 화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열심히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딤전 6:18-19]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미래에 소망을 진정으로 예비하는 사람은 이웃에게 열심히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웃을 향해서 선을 행한 사람은 그 장래가 다 복이 되었습니다. 룻기의 룻을 보면 그는 시모에게 선을 행했습니다. 성경은 그가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갚으시겠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선을 행하는 것은 내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과 동일한 믿음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의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이 미래에 소망을 쌓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주님은 우리에게 미래에 소망이 되는 삶을 말씀하실 때에 고난을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받는 고난은 장차 우리가 누릴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했습니다. 모세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에도 모세는 장성한 후에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낙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고후 1: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출처 : 창골산봉서방http://cafe.daum.net/cgsbong
글쓴이 : 둥근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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