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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아시아 일곱교회

명호경영컨설턴트 2010. 2. 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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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베소 교회 (요한계시록 2:1~7)           


1) 기간: A.D.34~100년 (사도교회 시대; 십자가 이후부터 마지막 사도가 죽을 때까지)

2) 이름의 의미: 에베소라는 이름은 “바람직한, 흠모할만한”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사도들과 제자들이 생존해 있어서 그들로부터 직접 설교를 듣고 온갖 오류와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보호를 받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을 체험하였으며, 복음전파를 위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에베소 교회 시대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3) 칭찬의 말씀: 에베소 교회는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의 핍박 속에서도 지칠줄 모르는 열심과 수고를 다하여 일하는 교회였다. 또한 성경 말씀에 기록된 진리에 충성스러웠으며,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은 그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진리로서 시험하였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 3절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당의 가르침 (영지주의, Gnosticism)을 반대하였는데, 니골라당에 속한 사람들은 도덕률에 순종하기 위해서 구태여 육체의 욕구를 자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 또한 물질과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기 때문에 육체의 방종이나 죗된 행위는 영의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어떤 의미에서 니골라당은 현대 그리스도 교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자유주의적인 가르침 즉, “그리스도를 지적으로 인정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으므로, 하나님의 율법에는 순종할 필요가 없다”라는 가르침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니골라당의 가르침에 대항하여 일어선 에베소 교인들을 칭찬하셨다.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6절

 

4) 책망의 말: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4절). 에베소 교회의 열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첫사랑을 잃어버렸다. 처음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을 받아들였을 때에 가졌던 순결한 사랑의 정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식어갔다. 5) 약속의 말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7절. 인간이 범죄한 이후, 사람은 생명의 나무에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회개학고 죄를 승리하는 자들에게는 다시 생명 나무의 과실을 먹을 수 있는 영원한 특권이 약속되어 있다. 오직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그리스도인들만이 이기심과 죄로부터 승리할 수 있으며, 진리를 분별할 수 있다.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들이 가득 차 있지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양심이 순결한 참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는 많지 않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7절

 

2. 서머나 교회 (요한계시록 2:8~11)       

1) 기간: A.D. 100~313년 (핍박과 순교의 시대; 사도 시대 이후~로마 제국의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하기 전까지)


2) 이름의 의미 : 서머나 라는 이름은 향수의 일종인 “몰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서머나 교회는 로마제국이 가하는 극렬한 핍박을 통과하였지만, 그 핍박은 교회를 파괴시키는 대신에 하늘의 복음이 온 세상에 향수처럼 번져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서머나 교회 시대는 핍박의 시대였지만, 오히려 그 고통을 통하여 신앙이 승화되고 복음이 온 천하로 전파되는 시대였다.

 

3) 칭찬의 말씀 : 두번째 교회인 서머나 교회에 대한 핍박은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가 A.D. 313년에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서머나 교회에게는 어떠한 책망의 말씀 대신에, 위안과 위로의 말씀만을 남겨 두셨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서머나 교회가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인내하면서 충성할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서머나 시대 동안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는 고난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는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었다. 교회에 가해졌던 고난과 핍박은 교회를 순결하게 정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서머나 교회 중에는 “자칭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사단의 회”였다(9절). 그리스도인들을 시기하고 미워하던 유대인들은 로마 정부와 결탁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주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다. 사도 바울은 진정한 의미의 유대인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로마서 2:28. 오직 성령을 통하여 거듭난 그리스도인만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라디아 3:29

 

4) 권면의 말 : 그리스도께서는 서머나 교회가 당면할 가난과 궁핍을 아셨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은 그들의 신앙을 부요하게 만들었으며, 그들을 사랑과 봉사의 그리스도인들로 변화시켰다. 그들은 가난하였지만 부유하였고, 부유하였지만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네가 장차 당할 고난을 두려워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 몇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9~10절. “십일”이라는 기간은 예언 해석 원칙에 의해서, 10년으로 환산된다(1일은 1년으로 환산된다. 민수기 14:34, 에스겔 4:6, 살아남는 이들 제5호와 9호 참조). 그러므로 “십일 동안의 환란은 “십년 동안의 환란”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서머나 교회 시대 동안, 사단은 로마제국의 핍박을 통해서 그리스도 교회를 제거하려고 노력하였다. 로마제국은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이 사람들 사이에 인기있는 사상이 될 것을 두려워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 교회를 하나의 위험한 경쟁자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수많은 핍박이 가해졌지만, 디오클레시안 황제 치하에서 이루어진 마지막 10년간의 핍박 즉, 차기 황제인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을 하면서 그리스도 교회에게 자유를 주기 전까지인 A.D. 303~313년 사이의 10년간의 핍박이 가장 극심하였던 사실을 역사는 증거하고 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10절. 핍박과 순교의 시대를 통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얼마나 커다란 격려와 위로가 되겠는가! 이 말씀을 입술로 되새기면서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순교자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3. 버가모 교회 (요한계시록 2:12~17)        

1) 기간 : A.D.313~538년 (타협의 시대; 로마 황제인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한 이후, 그리스도 교회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됨에 따라서 사람들의 인정과 인기를 추구하기 시작하였고 갑자기 수많은 이교도들이 콘스탄틴 황제를 따라서 개종하게 되었다. 교회는 새로 개종한 이교도들과 국가의 요구에 따라서 진리를 타협하게 되었다)

 

2) 이름의 의미: 버가모라는 이름의 뜻은 “성채, 요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핍박의 시대 동안에도 굳건하게 지켜지던 믿음의 순결함이 정치와 종교가 서로 손을 마주 잡음으로써 핍박이 중단되고 세속과 권력이 교회 안에 들어오자, 믿음의 성채는 무너지고 그 순결함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A.D.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 교회를 국교로 선포한 이래 교회는 세속과 타협의 길을 걸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버가모 교회를 위기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일하시는 당신의 모습을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나타내셨다(12절). 버가모 도시는 사단이 지배하는 종교의 본부지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버가모 교회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seat, 보좌)가 있는 데라.”13절.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정복한 후, 페르시아는 바벨론에 속해 있던 버가모 도시의 시민들에게 자유를 허용하였다. 그리하여 바벨론이 멸망한 후에도 바벨론의 종교는 계속되었으며, 바벨론 신전의 제사장들도 그들의 신앙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바벨론의 종교는 버가모를 통하여 나중에는 로마에까지 전달되었다. 버가모는 고대 바벨론과 로마제국을 연결하는 중간 고리 역할을 하였다.


4)칭찬의 말씀: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13절. 비록 버가모 도시가 사단이 주도하는 바벨론 종교의 중심지이긴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실한 백성들을 가지고 계셨다. 안디바(Antipas)는 버가모에서 순교당한 그리스도인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다. 안디바(Antipas)라는 이름에는“Anti-대항하는, Papas-교부(교황)”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 당시“교부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안디바(Antipas)라고 불렀다. 로마제국이 그리스도 교회를 국교로 인정하면서 교회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인정을 얻고 권력자들의 요구에 순응하기 위해서 타협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때에 안디바라고 불리우던 소수의 그리스도인 그룹은 교회의 지도층 즉, 교황권에 대해서 저항하였던 것이다. 타협과 세속의 길을 걷던 버가모 교회에 있어서, 안디바는 하나님의 남은 백성(참 백성)을 대표하였다.


5) 책망의 말씀: 배도는 참으로 신속하게 발전해 나갔다! 제1세기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나타났던 “니골라당의 행위”가 버가모 교회에 와서는 “니골라당의 교훈”(doctrine, 교리)으로 발전되었다.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15절. 니골라당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와 로마의 관습과 철학 위에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니골라당의 인간적인 가르침은 교회 안의 부유층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니골라당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고결한 표준을 사람들의 미묘한 철학적 논리와 이교 사상과 혼합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진리가 요구하는 바를 논리적으로 부인하도록 유도하였다. 인간의 의와 논리 위에 세워진 니골라당의 가르침이 버가모 교회 시대에 만연되었다. 사단은 에베소 교회시대 이후 계속해서 니골라당의 핵심 교리인 “복음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의무로부터 그리스도인을 해방시킨다”라는 도덕률 폐기론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를 공격해 왔던 것이다.


6) 권면과 약속의 말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할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17절. 만나는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상징한다(요한복음 6:26~63). 우리가 날마다 그리스도께 나아가면, 그분께서는“생명의 떡”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셔서 우리의 품성과 생애를 그분과 같이 변화시켜 주신다. 우리가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늘의 만나를 먹는 경험을 하게 된다. “흰 돌”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당시 법정에서 재판을 할 경우, 흰 돌과 검정 돌을 사용해서 재판 결과를 나타내었다. 흰 돌은 무죄 석방을 의미하였고, 검정 돌은 유죄를 의미하였다. 또한 노예가 자유인이 되었을 때에는 그에게 흰 돌을 주었는데, 때때로 새로운 이름이 그 돌 위에 새겨졌다. 그리고 흰 돌은 싸움에서 15번 이상 승리한 투사에게도 주어졌다. 흰 돌은 자유와 명예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흰 돌”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세상을 승리한 그리스도인이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오늘날에도 오직 “흰돌”을 받는 경험을 하는 사람만이 구원의 약속을 받게 될 것이다.

 

4. 두아디라 교회 (요한계시록 2:18~28)       

1) 기간 : A.D.538~16세기초(종교 암흑시대의 교회, 광야로 피신한 교회; A.D. 538년, 유럽의 국왕들을 지배할 만큼 강력한 교황권의 세력이 확립됨에 따라서, 교황권은 교회가 제시하는 교리와 지시를 거절하고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고수하기로 선택한 그리스도인들을 직접적으로 핍박할 수 있게 되었다. 교회사 중에서 이 시기에 진리가 가장 많이 왜곡되고 변질되었다. 두아디라 교회는 16세기 초에 종교개혁 운동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교회를 말하는데, 중세기의 종교 암흑시대 동안에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산과 계곡으로 피신하여 진리를 고수하였다)


2) 이름의 의미: 두아디라의 이름이 가진 의미는 “통탄스러운 희생”인데, 이것은 이 시기를 대표하기에 너무나 적합한 의미이다. 교회 안으로 밀려 들어온 배도로 인하여 믿음의 단순성이 외적인 행함과 고행으로 대치되고 희생되었다. 교회 역사의 4번째 시기인 두아디라 교회 시대에 와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단순한 복음을 떠나서 복잡한 종교 의식과 인간 중보자와 인간 제사장 제도를 만들었다. 이 시기는 그리스도 교회에 있어서 참으로 깊은 상처를 가져온 시기였다. 교회는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회개의 신앙을 저버리고 죽은 행위과 의식을 신앙의 기초로 만들어 나갔다.


3) 칭찬의 말씀: 두아디라 교회에게 보내는 기별을 말씀하신 분은“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되었다(18절).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른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른 곳은 바로 여기 뿐이다. 중세기의 종교암흑시대 동안에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류를 위한 중보자의 위치를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서 빼앗기셨다. 마리아라는 인간 중보자가 등장함으로써,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직접 나가는 대신에 마리아라는 여인을 바라보도록 가르침 받기 시작했다. 두아디라 교회는 약 천년에 이르는 가장 긴 기간의 교회의 역사를 차지하고 있는데, 역사가들은 그 기간을 종교 암흑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종교개혁운동에 의해서 두아디라 교회 시대는 그 종말을 고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황권의 핍박을 피하고 진리를 고수하기 위하여 광야로 도망간 그리스도인들을 칭찬하시면서, 특히 그들의 “나중 행위”를 칭찬하셨다. “내가 ...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19절. 두아디라 교회 시대가 끝나갈 무렵, 위대한 개혁자들 즉, 루터, 낙스, 칼빈, 쯔윙글리 등과 같은 성직자들이 유럽의 이곳 저곳에서 일어나서 개혁운동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4) 책망의 말씀: 7개의 서신 가운데 가장 길고 강력한 책망의 말씀이 두아디라 교회에게 보내졌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20절. 세속화되고 변질된 교회를 표상하기 위해서 이세벨 만큼 적절한 표상은 없을 것이다. 이세벨은 페니키아의 여제사장이었는데,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은 이세벨과 결혼함으로써, 바알신이 이스라엘로 들어오는 문을 열어 놓았다. 이세벨은 결국 국권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의 전체가 우상숭배를 하도록 유도하였다.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왕 앞에 나타나서 이스라엘의 배도를 책망하면서 3년 반 동안 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리지 않는 대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아합왕과 이세벨의 추종자들은 엘리야의 개혁의 호소를 듣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과 이세벨의 결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체가 배도에 빠지게 되었던 것처럼, 우상숭배와 이교 사상을 받아들인 두아디라 교회의 지도자들은 중세기 동안 교회에게 주어졌던 엄청난 권력을 이용하여 각종 우상숭배와 잘못된 교리를 백성들에게 강요하였다. A.D. 538년, 저스티니안 로마 황제는 로마 교회의 주교를 “이단자들을 교정하는 자”로 세웠는데, 교회는 이단을 박멸한다는 명분을 앞세워서 교회의 지시와 가르침을 거절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투옥하고 사형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서, 교회가 정치의 권력과 손잡고 사람들의 양심의 자유를 탄압하는 종교 암흑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약 천년 동안 교회는 영적인 대기근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높은 산과 계곡의 토굴 속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셔서 보호하셨으며, 그들을 통하여 진리를 보존하고 개혁의 기별을 전파하시면서 두아디라 교회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끝내 회개치 아니하였다.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치 아니하는도다.” 21절. 오히려 교회는 개혁 운동에 참여한 개신교도들에 대항하여 반 개신교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하나님께서 보내신 기별을 보지 못하도록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우고 말았다.


5) 권면의 말씀: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25절. 이 말씀은 계시록에 나오는 첫번째 재림에 대한 약속이다. 이 시기 동안, 어거스틴과 같은 사람은 성경의 위대한 진리인 부활에 관한 가르침을 크게 왜곡시켰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죽었던 몸이 실제적으로 부활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거스틴은 죽은 영혼이 몸을 빠져나와 부활하는 것으로 왜곡하여 가르쳤다.


6) 약속의 말씀: 이기는 자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약속하셨다(26절). 교회가 엄청난 배도로 인하여 가장 길고 어두운 밤을 통과할 때에, 그리스도의 영께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개혁자들을 일으키셨다. 위클립, 허스 등과 같은 개혁자들은 종교 개혁의 아침을 불러온 새벽별이었다. “또 내가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28절.

 

5. 사데 교회 (요한계시록 3:1~6)            

1) 기간: 16세기 초~18세기 말엽 (종교 개혁과 분열의 교회; 종교개혁운동과 함께 진리와 단순한 믿음이 되살아나는 듯 했지만, 개혁의 정신이 사라지면서 개혁자들의 후예들은 각기 다른 교파를 만들어서 안주함으로써 개신교 운동이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2) 이름의 의: “사데”라는 이름은 “남아 있는 것들”또는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천년이라는 길고 긴 배도와 박해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그리스도 교회는 참된 신앙을 거의 모두 잃어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되자, 광야에 피신하였던 소수의 남은 무리(참 백성)와 개혁자들은 개신교회의 아침을 열었다. 이 시대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로 표현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당신의 개혁자들을 통하여 무너졌던 진리를 회복할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1절).


3) 칭찬과 책망의 말씀: 사데 교회에 대한 칭찬의 말씀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데 교회는 과거에 개혁자들이 이루어 놓은 영광에만 의존하여 존속하였다. 몇몇 살아있는 것들도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외적으로는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죽어가고 있었다. 종교 개혁 이후, 여러 개신교회들이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을 회복하는 듯이 보였지만, 내적으로는 생명력을 잃고 죽어가고 있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1절. 종교 개혁의 선구자들 덕분에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지만, 거의 죽게 된 상태에 이르렀다. 한 때 그들이 개혁자들에게 들었고 받았던 신앙이 잊혀져 가고 말았다.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를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3절. 그러나 그러한 사데 교회 안에도 몇몇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부패되지 않은 신앙을 유지하였으며, 의의 흰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4절.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이 내리막 길을 달릴 때에도, 모라비안 교도(개혁자 허쓰의 후예)와 퀘이커 교도(영국의 죠지 폭스의 후예)와 청교도들은 개혁의 정신을 유지해 나갔다. 사데 교회는 한 때 진리의 빛과 약속을 가지고 시작하였지만, 곧 신학과 교리 분쟁에 골몰함으로써, 형식주의에 빠지게 되었고 개혁 사업은 중단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믿음을 통하여 마음과 성품을 변화시킨다는 성경의 대진리가 신학적 분쟁과 논쟁에 의해서 깊이 파묻히고 말았다. 우리가 아무리 루터와 칼빈과 웨슬러의 후예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세상이 우리를 정통이라고 인정해 줄지라도,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임재해 있지 않으면 그러한 인정과 역사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종교 개혁자의 후예들은 자신들이 천주교회와의 투쟁에서 승리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조직과 교단을 만들어서 안주하기 시작하였다. 루터와 낙스와 같은 개혁자들에 의해서 시작된 위대한 개혁 사업이 이제는 사람들의 돈에 의해서 운영되는 공공단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만심이 영혼을 병들어 가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데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저버리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영국에서 청교도들을 일으키셔서 신대륙인 미국에서 완전한 종교 자유를 가지고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셨다(살아남는 이들 제5호 참조).

 

6. 빌라델비아 교회 (요한계시록 3:7~13)   

1) 기간:18세기 말엽~19세기 중엽(세계를 향하여 나간 선교 교회)

2) 이름의 의미: 빌라델비아는 “형제의 사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3) 칭찬과 책망의 말씀: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전혀 책망의 말씀이 없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처럼, 이 교회는 정열과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교회이다.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8절. 사데 교회에게는 전혀 없던 칭찬의 말씀이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기록되어 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을 채우고 나가서 선교에 전념한 교회였다.


4) 권면의 말씀: 빌라델비아는 그리스도 교회의 역사상 가장 전도 설교가 성한 시대였다. 요한 웨슬리, 조지 휫트휠드, 요나단 에드워드 등과 같은 수많은 전도자들이 나와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특히, 웨슬리는“세계가 나의 전도 지역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열렬한 선교 정신을 표현하였는데, 그는 칼빈이 주장한 구원받을 자는 이미 예정되었다는 “예정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반대함으로써,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을 올바른 길로 회복시켰다. 그들의 이러한 전도 활동은 18세기의 끝을 밝혀 주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기간의 교회를 위하여, 세계를 향한 선교의 문이 열릴 것이라는 허락의 말씀을 남겨두셨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닫을 사람이 없으리니”8절. 유럽의 산업혁명 이후로 교통 수단이 발달하기 시작하였으며, 공산주의가 미처 뿌리를 내리기 전인 이 시기야말로 온 세상의 문이 복음을 위해서 열려져 있던 때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이 기간 동안에 거의 모든 지역에 선교사가 파송될 수 있었다. 윌리엄 캐리가 1793년에 인도에 갔으며, 로버트 모리슨이 1807년에 중국에 갔고, 리빙스턴에 뒤이어서 로버트 모펫은 1817년에 아프리카로 떠났다. 각 대륙에서 성서 공회가 조직되기 시작했으며, 주일 학교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한 때도 이 무렵이다. 세계 선교를 위해서 교파와 국경을 초월해서 형제의 사랑을 나타낸 때가 바로 이 때이다. 1780년 5월 19일이 암흑일(dark day)로서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고, 1833년에는 수많은 별들이 떨어짐으로써 다시 한번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후, 세계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말세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었으며, 성경이 말하는 예언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 교회의 복음이 전파되는 일을 크게 도와 주었다.

 

7.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14~22)        


1) 기간: 19세기 중엽 이후~ 예수 재림까지 (마지막 교회, 현대 기독교회)


2) 이름의 의미: 라오디게아의 뜻은 “백성을 심판하심”이다. 이 교회는 지구 역사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교회를 말한다. 그 이름이 의미하듯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심판하는 시대의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이다.


3) 칭찬의 말씀: 두려운 사실은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칭찬의 말씀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세속적인 자기 만족의 정신에 빠져 있으며, 영적 혼돈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당신의 책망을 표현하셨다.“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15절.


4) 책망의 말씀: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7절. 이 마지막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는 너무나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는데, 라오디게아 교인들 자신은 너무나 부요해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 있는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이미 구원받았다는 생각에 도취되어 있다. 성경을 가지고 있지만,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에 대해서는 눈이 멀어 있으며, 신앙은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인 현대 기독교회의 신앙을 보시면서“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경고하고 계신다(16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앞두고 가장 뜨거워야 할 이 마지막 교회가 가장 미지근한 상태 가운데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말씀하시는데, 라오디게아 교인들인 우리는 자기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과 필요를 느껴야 구조의 도움을 요청할텐데, 거의 완전한 자기만족과 자기기만 속에서 종교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위험한 비극이 있을까? 5) 권면의 말씀: 마지막 교회에 속한 교인들의 이러한 치명적 상태를 치료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처방을 내려 주셨다.“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18절. 불로 연단한 금: 용광로에서 연단되어 나온 금은 시련을 통하여 연단된 순결한 믿음을 의미한다.“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베드로전서 1:7.“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 흰 옷: 성도들의 의를 나타냄.“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요한계시록 19:8. 안약: 양심을 민감하게 하고, 진리를 식별하고 깨닫게 하는 성령을 의미한다.“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1:18~19.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요한복음 16:13. 결국, 이 3가지 처방을 종합하여 보면, 순결한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깨끗한 의를 옷입어서 성품이 변화되고 의로운 생활을 살며, 성령의 감화를 통하여 진리를 분별하는 영적 눈을 뜨며, 양심이 순결한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치료의 말씀인데, 바로 이것이 마지막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다.


6) 약속의 말씀: 구원은 언제나 개인적인 문제이다. 예수께서는 우리 각 개인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마음문을 두드리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스도의 책망과 권면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그리스도께 대하여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내가 문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20절. 예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한다. 마지막 시대인 라오디게아 시대에도 오직 이기는 자들에게만 구원의 특권이 주어진다.“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1~22절. (www.sostv.net  살아남는 이들 14호)

 

현대에 적용되는 이스라엘은 누구인가?


성경은 참 이스라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은 자, 거듭난 자들, 곧 예수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드리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을 하나님의 이스라엘, 곧 참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고 있다.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흔히들, 계시록에 나오는 14만 4천은 유대인들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요한 계시록 7장에, 14만 4천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서 나온다고 언급되어 있으므로 그렇게 말들을 한다. 그러나 계시록의 12지파의 이름들은 원래의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들과 조금 다르다. 또한 야고보는 성경 야고보서 1장 1절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이 안부의 말은 소아시아 지방에 있는 초대 교회들에게 한 것이었으며, 그 교회의 교인들은 이방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교회들이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이스라엘 백성들이 흩어지고 만 다음에는 유대인들은 더 이상 선택된 민족이 아니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진리를 세상에 전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국가 대신 교회를 택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빛, 곧 진리를 전수하시기 위하여서였다. 하나님께서 이제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영적인 이스라엘로 택하셨다. 초대 교회는 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제일 먼저 예루살렘과 유대에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그 진리를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진리가 이방인들에게로 전파되도록 계획하셨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하나님의 약속은 항상 조건적이다. 복음을 거절한 유대 국가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선민국가로서의 특권을 박탈당하고, 대신 복음을 받아드린 교회가 하나님의 약속과 부르심을 대신 받게 된 것이다.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며”(왕상 9:4-7). 하나님의 약속은 항상 조건적인데, 그 조건은 순종이다. 그런데 이 성경의 가르침을 모르고 또 잊어버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유대인들과 심지어는 많은 무신론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실재 이스라엘 나라를 마치 성경의 마지막 예언을 성취시킬 주인공인양 생각하여, 중동지방에서 되어가고 있는 일들의 귀추를 열심히 주목하고 있고, 또한 그곳으로 이민을 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말한다고 다 영적인 이스라엘 아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이스라엘 아니다. 열매를 맺는 백성,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는 성화의 경험을 하는 사람들, 변화함을 받은 사람들이 참 이스라엘이다. 실재 유대인들도 순종치 않고 열매를 맺지 않았을 때에 버림을 받았다. 그 조건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유대인들도 버림 받았는데, 하물며 우리는 얼마나 더 신실한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야 할 것인가! 사도 바울은 신약시대에 시작한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경고했다.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꺽기우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롬 11:20,21).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1장 4절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무슨 열매를 말하는가? 이것은 바로 성령의 열매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품성을 닮은 열매, 주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순종의 열매를 말한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에 순복하며, 주님과 늘 동행하고, 마음 속에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그리스도의 의의 옷, 곧 그리스도의 품성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 때에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 참 이스라엘, 하나님의 참 교회가 될 것이다.

출처 : 창골산봉서방http://cafe.daum.net/cgsbong
글쓴이 : 둥근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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