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학자의 세상보기, 세상읽기 참새의 수컷과 암컷은 어떻게 구분할까? 앞가슴에 검은 깃털을 가지고 있으면 수컷이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에 의하면 서양 여자들은 털 있는 남자들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참새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앞가슴의 검은 깃털이 발달한 수컷일수록 암컷들의 애정도 많이 받으며 그만큼 교미도 빈번하다고 한다.
'이 앞가슴 털이 과연 어느 정도의 영향일까?' 시애틀의 어느 대학 연구팀이 실험해보았다. 소외되고 있는 수컷참새 앞가슴에 까만 매직으로 가짜 털을 표시하여 참새사회에 보냈다. 느닷없이 나타난 이 무적(?)의 참새를 그동안 기세등등하던 참새들이 슬금슬금 피하더니 자리까지 내어 주었다. 그러나 참새들은 일시적으로는 속았지만 금방 실험참새의 허울뿐인 실체를 눈치 채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앞가슴 털과 함께 남성 호르몬 '테스타스테론'을 이 참새에게 주입하였다. 그러자 실험참새는 이번에는 도전해오는 참새들에게 당당하게 맞서 싸웠으며 더 나아가 싸움을 걸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뻔했다. 제대로 된 실력이나 기초 없이 일시적으로 갖게 된 거품 같은 힘으로 의기양양하던 실험참새는 처참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알이 닭을 낳는다>의 첫 주제로서, 정당하지 못한 방법이나 노력 없이 요행으로 얻은 떳떳하지 못한 '조건과 배경'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충고다. 그리고 실속 없는 거품에 대한 충고라고 할까? 허장성세와 요행으로 얻어진 '어떤 거품'은 결국 거품일 뿐이다. 알이 먼저? 닭이 먼저? 닭이 꼬꼬댁거리며 모이도 쪼아 먹고 짝짓기도 하는 걸 보면 닭이 닭이라는 생명의 주체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린 닭이 알을 낳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어쩌면 알이 닭을 낳는 것인지도 모른다. 닭의 눈으로 보지 않고 알 속에 들어 있는 유전자의 눈으로 보라. 닭은 잠시 이승에 나타났다 달이 차면 사라져버리는 일시적인 존재에 불과하지만 태초에서 지금까지 면면히 숨을 이어온 알 속의 DNA야말로 진정 닭이라는 생명의 주인이다. 적어도 이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닭이라는 생명에게는 말이다. 유전자의 눈높이에서 다시 보는 생명은 퍽 허무해 보인다. 그러나 약간의 허무함을 받아들이면 스스로가 철저하게 겸허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곤 자연의 일부로 거듭나게 된다. <알이 닭을 낳는다>는 생태학자의 세상읽기로서 저자의 의도를 잘 말해주는 제목이다. 같은 것일지라도 관점을 어떻게 하여 보는가에 따라 분명 달라진다. 저자는 생태학자답게, 또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생태이야기와 사회 전반의 이야기를 적절히 접목시켜 강한 설득력으로 새로운 관점을 시도한다. 재미있는 비유와 다양한 생태학적인 소재들이 매끄러운 문체로 쏙쏙 파고든다. 책 내용에 들어가기 전 20여 컷의 칼라화보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귀중한 자료로 책 내용 일부를 아주 잘 말해주고 있다. 나는 이 화보를 보고 충격을 받아 책을 바짝 끌어당겨 읽게 되었다. 또 이 화보를 통하여 제인 구달을 만났고, 제인 구달을 만나면서 좀 더 넓은 세계로 관심이 뻗어 나갔다. 보노보 원숭이가 성(性)을 이용하여 개인의 이득은 물론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는 이야기도 다소 충격이었다. 보노보 원숭이는 성에 대해 무척 개방적이다. 침팬지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이 번식기에만 성관계를 갖는 반면 보노보는 월경주기 내내 빈번하게 성관계를 갖는다. 보노보 암컷은 일생동안 줄잡아 5500번의 성교를 하며, 그 중 약 3000번을 첫 임신 전에 하는 것으로 관찰됐다. 그들의 성은 반드시 임신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보노보들은 열매가 잔득 달린 무화과나무를 발견하면 우선 성관계부터 갖는다. 심지어는 서로 잘 모르는 패거리들이 우연히 맞닥뜨렸을 때에도 서로 잠자리부터 같이 한다. 암컷들이 성을 이용하여 불필요한 싸움이나 지나친 경쟁을 줄이는 것이다. 어느 동물에서나 이권을 위해 몸을 허락할 수 있는 것은 암컷뿐이다. '동물들도 몸 로비 한다' 중에서-
동물들의 생태이야기는 물론 우리들의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들도 제법 많이 나온다. 동성동본 결혼을 둘러 싼 이야기, 어떤 경우에든 암컷에게 유리한 유전자 이야기, 달거리와 관련된 이야기 등. 아울러 흰개미를 잡아먹는 침팬지의 다양한 도구 사용 이야기 역시 흔히 많이 알려진 것이 아닌 귀중한 자료들이다. 일일이 나열하지 못할 만큼 60가지 주제의 글들은 재미있으며 귀중한 자료들 또한 많다. 침팬지 사회의 동의보감이란 주제의 글은 야생에서 살아가는 침팬지가 풀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풀 13가지에 대한 관련 글이다. 긴 세월을 두고 어미에서 새끼로 전수되는 '엄마 손은 약손'식의 침팬지 사회의 질병치료가 신기하다.(닭의장풀, 무궁화, 무화과도 이에 든다) 아프리카 남부 사막에 사는 부족인 쿵산족 연구를 하던 리처드 리 박사 일화 또한 마음을 잡아끈다. 연구에 들어가기 전 추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선물을 하였다. 그런데 연구를 위하여 가는 지역의 집집마다 자신이 선물하였던 것과 똑같은 것이 있었다. 자신에게 선물을 받은 추장이 모두에게 선물을 한 것이다. 쿵산족은 남보다 하나 더 가지는 것을 수치스러워 한다. 이 겨울에 다시 펼쳐 읽는 쿵산족의 이야기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왜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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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다림에 지쳐 잠시 딴 생각을 하다!
글쓴이 : 하늘향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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