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이단종교

[스크랩] 정통교회와 구원파와 비교분석

명호경영컨설턴트 2011. 2. 4. 13:08

정통교회와 비교 분석 비판
지금까지 침례교라고 자처하는 구원파의 세 교파에 대해서 일반적인 특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정통침례교단의 명칭은 무엇인가요?
.“기독교한국침례회”입니다. 구원파들도 우리처럼 '침례회' 간판을 걸고 있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소속된 '기독교한국침례회'나 “성서침례교”라는 기성교단까지 이단이 아닌가 오해받음으로써 선교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침례교회라고 하지 않고 00교회로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굳이 교회이름으로 인한 선입견 때문에 교회에 와서 복음을 들을 기회마저 제한받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역의 이름을 따서 교회이름을 짓는다든가, 교파이름을 붙이지 않음으로써 교파의 교리에 집착하지 않고 초교파적으로 성경대로 실천해가는 교회가 있습니다.
 
 상담학에서는 상담을 받는 사람의 개인인생의 역사를 아주 중요하게 다룹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그 사람의 모습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잠시나마 구원파의 지도자들의 과거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할 것입니다. 원래 그들은 장로교 신자였습니다.  50년대와 60년대의 보수적 장로교는 심할 정도로 율법적이었습니다. 주일성수가 무섭게 요구되는 시대적 배경이었습니다. 유병언과 권신찬은 율법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죄의식에 짓눌려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권신찬, 유병언, 박옥수 그리고 이요한은 거의 같은 시기에 선교사들로부터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이들의 체험은 장로교회에서 생활하면서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죄사함을 깨달음”으로 해방감을 맛보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기존교회에 대하여 부정적 시각을 갖게 되었고, 기존교회의 “새벽기도, 예배의식, 주일성수, 십일조, 장로집사 제도”는 모두 율법적이라고 비판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이란 율법의 멍에에서 벗어나는 것, 양심이 해방을 받는 것, 종교로부터 자유하는 것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내게 된 것입니다.
  이제, 좀더 구체적으로 이들의 교리와 잘못된 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병언 계열의 구원파에서 대외적으로 발표한 12신조나 이요한 계열의 10신조(12신조에 대한 약간의 수정)를 보면 별다른 문제점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다른 이단과 마찬가지로 소속교인들끼리 자부심을 가지고 믿고 있는 특이한 교리들이 있습니다. 대외선전용 교리와 대내교육용 교리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파의 주요 세 교파들은 교리적으로 특별한 차이점이 없이 비슷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성경관이란 성경관이란 성경을 어떻게 보고 해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원파가 성경에 대해서 범하는 오류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사사로이 억지로 해석하는 데 있습니다.
정 통 교 회
구 원 파
1. 성경을 역사적, 신학적 근거나 문맥에 의하여 종합적, 객관적으로 해석한다.
 
2. 신구약 성경을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도들의 신앙과 행위의 규범으로 삼고 있습니다.
 
3. “율법과 종교에서의 해방, 양심의 죄책감에서의 해방, 종교에서의 해방”은 이들의 구원론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율법과 종교, 양심이란 말은 이들에게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구원파들의 주장은 초대교회 당시의 율법폐기론자들과 니골라당(요한계시록의 반율법주의 이단)의 주장과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율법의 정죄와 저주와 형벌에서 구원하신 것이지, 율법의 교훈과 윤리적 규범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1. 역사적, 신학적, 문맥적 근거에 의하지 않고 자의적 풍유적, 우화적으로 해석(요15:포도나무-구원파교회)하면서 성경을 종합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선별하여 의도적으로 왜곡하며 성경을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
 
2.구원파 교주들의 깨달은 말씀(성경해석)이 유일한 진리이며, 일반신앙서적을 읽지 못하게 한다. 권신찬과 유병언은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모임의 입'으로 이들의 가르침이 곧 진리요 하나님의 말씀이다. 기록한 구약성경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
 
3. “지금은 은혜시대이므로 율법은 필요없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이미 완성된 예언이므로 더 이상 신앙생활에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약의 율법은 종교를 가리키는 것이다. 기성교회는 종교다. 종교는 사망이다. 참된 해방은 '율법과 종교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라고 주장
둘째. 하나님관 -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이해 하느냐하는 것입니다.
정 통 교 회
구 원 파
1. 삼위일체 하나님관을 주장하며,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한 본질에 세 위격을 가지신 분으로 이해한다.
 
2. 하나님은 영이시며 인격적인 분으로서 인간의 의지적 회개와 전인(격)적인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다.
 
3.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지니신 분이다.
 
4. 믿음을 주시고 중생케 하시는 성령의 보편적 역사를 믿는다.
 
5. 하나님은 한분이시며 전지전능하신 분으로서 언제 어디서나 모든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응답하심을 믿는다.
1. 입으로는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를 주장하나 삼위의 구분이나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중요하지 않다. 특히 성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이 없으며 기도의 대상도 아니다.
 
2.  하나님은 추상적이고 비인격적 영이며, 초월적인 존재이다. 인간의 의지나 감정, 지성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3. 예수의 신성과 초월성만을 강조하며 인성을 부인한다.
 
4. 성령의 보편적 역사를 부인(기존교회의 축도를 부인)하거나 제한한다(자기들 집단안에서만 성령의 역사가 존재)
 
5. 하나님은 한분이시기에 많은 사람이 동시에 기도하면 듣지 못하신다. 기도는 일대일의 기도만 들으신다고 주장한다. 사업을 의논하는 성도의 교제가 기도요, 예배이다(유병언).
 
셋째. 구원관 -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한 생각입니다.
이들이 ‘구원파’라고 불리워지는 이유는 구원파에게는 구원의 개념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원파는 구원관에 있어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정 통 교 회
구 원 파
1. 구원은 의지적인 회개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살아있는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행 20:21). 그리고 성도는 끊임없이 기도와 말씀으로 성화의 구원을 이루어 가야한다(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과 성화의 구원)
 
비판:  구원이란 그 단계에 따라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중생 즉 거듭남에만 강조점을 두고 있는 단 일회적인 좁은 의미의 구원도 있고 거듭난 이후 성화의 단계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구원도 있다. 그런데 박옥수는 좁은 의미의 구원에만 모든 관심의 초점을 모아(좁은 의미의 구원도 잘못 말하고 있지만) 마치 그것이 기독교교리의 전부인양 편협되게 해석하고 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내가 죄인 중의 괴수”(딤전1:13,훼방자,포행자,핍박자는 과거시제지만, 15절은 현재시제)라고 고백한 바울이나 범죄한 후에 여러 번 회개한 다윗 왕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된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롬 3:22-26). 그러나 신분상으로, 법적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지 실제로 죄가 없는 의인이 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 일뿐 여전히 죄를 짓는다. 구원파의 주장은 결국 회개하기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합리화하며 자유롭게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2.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해야 한다.
 
3. 구원받은 시각과 장소를 기억하지 못한다해서 구원받지 못한 것은 아니다.
또한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증거는 성경 어느 곳에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확신을 갖고 생활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학자 로이드존스(1982)의 말대로, “우리는 성경 어느 곳에서도 당신이 정확한 순간을 대고 사용된 성구를 정확히 인용하고 설교자의 이름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발견하지 못한다. 이런 것들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 단 한가지는 당신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학자 사무엘 서더드(1965)의 말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여러가지 다른 방법으로 불렀음을 인정할 수 있다. 우리가 섬길 주님은 오직 한 분이나 우리는 다양한 회심의 경험을 통하여 그에게 나아오게 된다”
 
4. 교회는 성화구원을 위한 신앙성장과 교제를 위한 곳이다.
주일 성수, 새벽 기도, 십일조 등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땅한 의무이며 은혜받는 통로이다(눅11:42). 그리고, 성경은 율법이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고 선언하고 있다(롬 7:12). 권 씨와 박 씨는 구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도덕법이 영원히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5. 구원받은 후 성화는 교회를 통해 혹은 개인적으로 기도와 말씀, 봉사와 예배를 통해서 이루어가야 하며 성령께서는 교회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개개인의 성화를 도우신다.
1. ‘구원’은 ‘복음을 깨달음으로 얻는 것’이고 ‘복음’은 ‘이미 죄사함을 받았다는 소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복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이미 죄사함 받았음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죄사함을 깨달은 사람은 완전한 구원을 받았으므로 용서의 회개는 필요치 않으며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주시든지 않든지 그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며 문제도 되지 않는다.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다.(깨달음에 의한 단한번에 의한 완전한 구원-(권신찬씨가 ‘죄사함을 깨닫고’, 이요한씨가 ‘복음을 깨닫고’, 박옥수씨가 ‘거듭난 체험’을 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교주의 형식적인 기도외에는, 주기도문이나 기도를 하지 않는다.
비판
구원파의 믿음에서는 복음에 대한 인식과 동의와 깨달음(intuitive understanding)은 있어도 의지적인 의탁(trust)으로서의 믿음과 의지적으로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구원파의 모든 계파가 개인적인 죄를 강조하지 않고 인류가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었다는 것만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박옥수는 죄(아담의원죄)와 범죄(스스로짓는자범죄)를 구분하고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된 것을 예수님이 해결하였다는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자범죄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면만을 강조하여 자신의 지은 자범죄나 개인적인 죄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회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2. 예수를 영접하지 않아도 예수가 이루어놓은 속죄를 깨달으면 구원을 얻는다.
 
3. 구원받은 확신이 있어야 구원받은 자며, 구원받은 시각(영적 생일)과 장소를 알아야 한다. 육적 생일을 기억하는 것과 같이 영적 생일을 기억해야 구원받은 증거가 확실하다./비판: 이들 주장대로라면, 육적생일도 부모님이 알려줘야지 스스로 알 수 없듯이 영적생일을 이들이 알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4.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교회의 제도(예,장로집사제도등)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주일성수, 새벽기도, 십일조는 율법의 소산이다. 권신찬은, 복음과 종교를 구별하면서 종교는 죽은 것이요. 복음은 살리는 것인데 기성교회도 종교요 자신들만이 복음이라고 주장한다.
 
5. 개인은 죄 사함을 깨닫는 경험만 있을 뿐 성령은 교회에만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개인은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전적으로 (구원파)교회를 목표로 한 것이지 개인의 구원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다.
 
넷째. 교회관 - 교회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견해
정 통 교 회
구 원 파
1.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지체인 성도들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몸이며 동시에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교회는 유형교회와 무형교회로 존재하며 모든 교회는 하나이다./비판: 요한복음 14장 6절을 “(구원파)교회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다”고 해석하며, 요한복음 15장 4~5절은 “사람이 (구원파)교회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영적으로 고갈되어 멸망한다”고 해석합니다.
 
2.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과 기도를 드리며 성도간에 사랑, 봉사와 친교를 나누는 곳이다. /비판: 유병언계열은 교리관련찬양만 부르고(찬양과경배,기도,헌신,축도등의찬양은제외), 예배와 기도가없이 전도와 교제 때문에 모인다. 이요한과 박옥수는 어느 정도 예배형식을 갖추고 기도를 할 때도 있으나 이는 기존교회의 비판에 대응하기 위한 것일 뿐 예배와 기도와 찬양을 경시하는 것은 이들 모두의 공통점이다.
 
3. 교회의 일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상을 향해 봉사하는 것이다.      
1. 모임(구원파교회)의 머리는 오직 한사람(유병언)이며 사무국(서울)을 통해 모든 신도를 인도하고 지시한다. 참 포도나무(구원파)에 붙어 있으면 재림시에 들림을 받으나 포도나무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하며(구원파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주장), 유형교회를 부정한다.
 
2. 기성교회는 예배를 망쳐 놓았다. 예수님은 예배의 장소와 시간과 의식을 파괴하시고 형식적인 예배를 없애 버리셨다. 특히, 유병언은 자신이 주도하는 사업이 교회이며 하나님의 일이다. 예배는 사업논의와 구원파 신도간에 교제가 바로 예배이다.
 
3. 이들은 사업이 곧 예배요 교회의 일이기 때문에 교회의 일은 당연히 신도들의 헌금을 강요하여 사업을 확장시키고 성공시키는 것이다(유병언계열).
 
다섯째. 종말관 - 인류의 마지막 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원파는 극단적인 세대주의 종말론을 흉내내고 있다. 박옥수 계통의 구원파가 ”거듭남, 죄사함의 비밀“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성화가 빠진 구원만을 부르짓고 있는 동안(요즘은 어떻게 하는지 모름), 권신찬, 유병언, 그리고 이요한 계통의 구원파는 대환란과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메시지의 중심으로 삼아왔습니다.
 
이들의 종말관은 예수님의 재림날자를 못박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미선교회의 종말관과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에 세뇌당한 교인들에게는 1980년대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비밀리에 말해왔다고 합니다.
 
권신찬은 그의 설교집에서 이스라엘 국가의 독립 및 회복, 666, 적그리스도의 출현, 유럽경제공동체(EEC), 세계정부의 실현가능성, 예루살렘성전의 재건을 계속 거론하면서 재림이 임박했음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신찬은 성령이 구원파 형성 초기에 유병언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마지막 시대의 “입(선지자 및 예언자)”으로 세웠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글을 인용해보면, “유병언에게 성령이 기름을 부어 그를 마지막 시대의 입으로 세운 그러한 경험이 있은 후부터는 그 형제(유병언)에게 그렇게 어렵던 성경이 풀리기 시작했고...입을 열기만 하면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커다란 변화는 그 때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러한 경험 후에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이 곧 성경을 성취시키는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알려지기 시작함으로써 그것이 이 복음운동(구원파)의 중심 메시지가 된 것이다”(인류역사와 하나님의 교회,37). 
 
  그들이 여러 출판사의 이름으로 펴내는 [임박한 대환란], [세계독재자와 666], [세계정부와 666], [카운트다운 예수재림과 휴거], [인류파멸의 징조와 중동사태], [한계에 도달한 인류역사], [잠시 잠간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가는 자와 남는 자] 등의 책을 보면, 7년동안의 대환란이 있기전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주로 구원파 소속교인)이 들림을 받게 된다는 이들의 주장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구원파에서는 종말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1990년대 부터는 [제3성전 건립시작되다]라는 제목의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해 대대적으로 시판하고 있습니다. 한편 유병언은 666, 적그리스도의 인을 들먹이면서, 적그리스도의 인을 받지 않으려면 재산을 헌납해 공동생활을 해야한다고 성경을 자기맘대로 해석함으로써 많은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들이 종말의식을 가르치기 때문에 이단이란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말씀의 비중을 따라 성도들에게 주님의 재림과 종말에 대하여도 가르치고 설교해야 합니다. 그러나
(1) 성경에서 강조하는 만큼 강조해야 하며,
(2) 그 목적이 성경적이어야 하며,
(3) 그 내용이 성경적으로 옳아야 한다. 권신찬과 유병언의 종말론은 그 내용도 문제가 있지만, 그 목적이 크게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왕국건설을 위하여, 사업확장과 교세확장을 위하여 종말을 집중적으로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생전에 세계의 종말이 온다. 신앙생활은 개인이 할 수 없고 교회가 대신한다. 구원받은 교인들은 한데 모여 살아야 한다. 현금은 쓸모없는 시대가 온다. 그러므로 현금은 바쳐라. 떨어져 있으면 휴거받지 못한다. 구원파 모임에 붙어있는 자만 들림받을 수 있다”고 가르쳐 교인들을 집단생활로 유도하고, 막대한 헌금을 저들이 운영하는 (주)세모 및 다른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파의 10가지 접근방법과 성경적 대응
그들은 어떻게 기성교인의 전도 대상자들에게 접근하는가? 이들은 먼저
“1.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거듭났습니까?
  2.당신은 완전히 중생했습니까?
  3.당신은 지금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와 같은 질문공세를 통해 구원의 확신에 대해 혼란을 일으킨다. 우물쭈물 대답이 시원치 않으면 구원을 못받은 증거라고 매도하는가 하면 구원을 받았다고 답변하면 언제 어디서 받았느냐고 다그쳐 묻는다. 그리고 당신은 의인인가, 죄인인가 묻기도 하며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아직 의인된 확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정죄하여 성경지식이 부족한 신자들을 당혹하게 만들고 잘못된 교리로 유혹한다. 그리고 이어서 십일조, 목회자 우대, 새벽기도, 성전건축 등 기존교회의 약점이라 생각되는 행습을 집중공격 해 기성교회를 부정하고 불신하게 만들면서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해 기존교회에서 공통적으로 행하고 있는 예배행위, 십일조헌금, 장로집사제도, 주일성수, 율법을 지키려는 노력 등을 모두 종교라고 규정한다. 즉,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이 모두 헛수고였음을 고백하게 한 다음,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시인하게 한다.
 
  계속해서 죄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에게 죄사함이나 거듭남과 관계되는 구절(예:히 9:12)을 계속 제시하여 “예수님의 보혈로 내 죄가 단번에 영원히 용서받은 것”을 깨닫게 도와준다. 이와 같이 어느 순간에 죄사함을 깨달았다고 하면 그것이 구원이라고 인정해 준다.
 
  그리고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불신자에게 접근할 때에는 방법을 달리한다. 개인 전도와 5~7일 동안 계속되는 ‘성경강연회’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둘러 싼 중동정세와 환경오염, 인구폭발, 기아 등 긴박한 시사문제를 거론하여 하나님의 예언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다고 억지로 주입함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만든다.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저들과 접하게 될텐데 그들에게 대처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를 소개하고자 한다.

① 그들은 “귀하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확실히 기록된 것을 알 수 있습니까?”라며 접근한다.
이 때는 당황하지 말고
“우리는 확실히 알고 믿는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3장 5절에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는 말씀을 믿기 때문이다”라고 답함으로써 그들을 물리쳐야 한다.
 
② 그들이 두번째로 하게 되는 질문, “귀하는 거듭났습니까”하는 질문을 해오면
“거듭났습니다.
요한복음 3장 15절에 보면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는 말씀에 따라 예수를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좋다.
 
③“성령님이 마음속에 계심을 믿습니까?”라고 세번재 질문을 받으면
“성령님이 내 마음에 계심을 믿으며 더욱 충만해지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8장 9절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으며 사도행전 13장 5절에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고 하신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
 
④“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이 확실합니까?”라고 물으면
“옮겨졌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는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해야 한다.
 
⑤“귀하는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하고 물을 때는
“믿음으로는 의인이 되었으나 행위로는 죄인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말씀과 로마서 7장 2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는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⑥“모든 죄가 용서되었습니까?”라고 물으면
“다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위해 회개할 것은 없지만 성화를 위해서는 날마다 회개합니다.
요한일서 1장  8~9절에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는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은 아닙니까”라고 질문하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성도의 견인을 생각할 때 사랑과 감사의 용기를 느끼며 하나님의 공으를 생각할 때 두려움을 느낍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베드로전서 1장 17절에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라는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해야 한다.
 
“구원받은 것이 확신이 되어 집니다?”라고 물으면
“확실히 구원받았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는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재림의 주를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주님이 빨리 오시기를 사모하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더 큰 상급을 얻기 위하여 날마다 준비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4장 7절 이하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라는 말로 대답해야 한다.
 
⑩“구원의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있고, 둘째, 약속의 말씀위에 있고, 셋째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에베소서 1장 4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하신 말씀과 요한일서 5장 13절의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또한 사도행전 16장 31절에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이상은 물론 예를 든 것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질문에 성경적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이단의 미혹에 빠지지 않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다시 한번 성경 말씀대로 사는 삶의 중요성과 동시에 올바른 교회 교육의 시급함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비단 특정한 이단 집단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는 예방책으로서의 성경공부가 아니라 진실로 주안에서 확신있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 말씀 배움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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