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학생시절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은 뒤 이런 도덕서는 실로 오랜만에 읽는 책인 것 같습니다. 책을 그리 빨리 읽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번 책은 특히나 읽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습니다. 단순히 책의 내용을 쫓아가기보다는 책과 함께 제 고민들과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점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개별적인 사례에 맞춰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독자와 함께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강의에서 학생들과 같이 토론하는 것보다 생동감은 덜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정치 사회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사항에 대해 같이 고민하게끔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한 생각에 깔린 근본적인 사상(크게 자유지상주의와 공리주의)에 대해서 설명 해주고 이런 생각이 가지는 한계점에 대해서 다시 지적해줍니다. 서로의 한계와 단점을 지적하면서 발전해왔던 철학의 발전을 독자가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게 해줍니다. 마지막으론 기존의 사상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글을 마무리합니다.
책의 실질적인 재미는 아마도 책을 직접 차근차근 읽어봐야지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짧은 글 몇줄로 요약할 수 있는 책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글의 내용만으로는 어느 도덕책과 다를 바 없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본질은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수행하는 사고 과정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때론 저자에게 맞서고 때론 저자와 동조하면서 저자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이 책의 실질적인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일단 책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실상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이후 이야기부터는 책을 읽으신 분들이 보면 좀더 이해가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사실 제가 최근에 계속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업'이란 무엇인가 입니다. 현재 기업을 하나 경영하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과연 어떤 기업이 좋은 기업인가? 어떻게 해야 기업을 잘 경영하는 것일까? 기업은 왜 필요한가? 기업은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 기업은 이 사회에서 어떤 존재인가? 기업은 직원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등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의문에 대해 좀 더 잘 알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오히려 더 알 수 없어집니다.
일단 사전적인 의미로 기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재화나 용역을 생산, 판매하는 조직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기업이라면 영리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이익이 없다면 기업이 생존할 수 없으므로 기업이 영리를 추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과연 영리만 추구하면 되는 것일까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런 기업에 대한 정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직폭력 조직도 기업일까요? 아니면 인신매매를 하는 조직도 기업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들은 자신들의 영리를 위해 누군가에게 필요한 용역을 제공하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조직을 기업이라고 해야 할까요? 기업형 폭력조직이나 기업형 인신매매라는 말은 쓰지만 인신매매기업 같은 말은 쓰지 않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들을 기업이라고 한다해도 결코 좋은 기업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조직을 기업이라고 부른다면 기업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욕보이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실 기업의 정의는 아래와 같이 바뀌어야 합니다. 기업이란 영리를 목적으로 사회 발전에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생산 판매하는 조직을 말합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어느정도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발전이라는 말이 때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될 여지는 있지만 명백히 인신매매나 조직폭력등은 사회악으로 치부됩니다. (가끔 조폭영화에선 조폭들이 자신들이 사회에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하곤 하지만요.) 또 대부분의 사회가 공통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인권존중, 자유, 평등 등에 반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 역시 사회 발전에 반하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예(?)계약으로 저렴하게 사회에 필요한 재화를 생산하는 조직은 이런 가치에 반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기업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모두가 동의했다고 해도 이제부터는 사실 쉽지 않은 문제가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사회의 발전'이란 무엇인가? 혹은 '발전된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에 대해 고민해봐야 합니다. 단순히 사회의 발전이 경제적 발전을 뜻한다면 조폭들도 철거현장에서 철거를 원활히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재개발을 빨리 진척시켜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물론 이건 조폭들의 논리지만요) 단순히 생각해서 어떤 일을 하든 경제적 발전에만 기여한다면 제대로 된 기업인 것일까요?
실제로 법망을 피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는 기업도 있고 혹자는 '돈은 불법과 합법 사이에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단 이런 것은 불법이나 편법이니 따지지 않는다고 치면 카지노 사업은 어떨까요? 도박 사업은 국내에서는 불법이지만 강원도 정선의 카지노는 현재 우리나라 상장업체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라스베가스나 마카오의 도박사업을 벤치마킹하여 해외 및 국내 외지의 관광수입을 얻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업입니다. 물론 내지인(아마도 정선이나 강원도민인 듯)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지만 이미 이런 카지노에서 수많은 도박빚을 지고 집안이 풍지박산난 사례가 넘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 기업은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고 이 수익으로 강원도와 정선시 재정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얼마나 오는지 알 수 없으니 우리나라 전체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사회 경제 발전에 이바지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인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단순히 정부가 승인하면 옳은 일, 안하면 나쁜 일이라고 하면 이처럼 부당한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이 많을 수록 사람들은 법을 우습게 알고 권력자에게 아부하고 원칙없는 정치인들에게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기업이 추구해야 하는 사회발전이 경제발전(어차피 기업의 목적은 영리이므로)이어야하고 부당한 것은 정부가 통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기업은 정부가 제한하지 않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인가요? 이 문제는 개인의 입장에서부터 생각해보면 간단합니다. 개인은 국가가 제한하지 않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꼭 읽길 권합니다. (세상에는 정말 정부가 일일이 통제할 수 없는 미친 사람이 많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개인은 가능하지 않지만 법인은 가능하다면 이것은 불합리한 일이 아닌가요?
사실 제가 이야기하는 사회발전은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의 정의와 맞닿아 있습니다.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이야기와 공리주의자들의 이야기는 지금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를 부르짖으며 기업의 자유를 이야기하고 국가경제발전을 국가의 발전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너무나도 많이 닮아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수십년간 절대빈곤으로부터 벋어나려고 애썼던 지난 세대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정의이자 사회발전이었을 모릅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 세대에게도 이 같은 이야기가 역시 정의인지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사회발전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바라는 사회발전이 단순한 경제발전이 아니라면 과연 우리가 만들어 가야하는 기업이란 어떤 기업이고 우리가 제대로 된 기업 혹은 성공한 기업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기업은 어떤 기업일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전 이 책을 읽고 막힌 가슴이 뻥 뚤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책을 읽고 제가 드린 고민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쉽게도 동영상 강의는 EBS에서 지난 토요일 마지막으로 방영이 되었습니다. 3월에 영어자막으로 다시 방송된다고 하지만 아마도 이해하기 힘들듯 하고 책이 어려우신 분들은 다시보기 서비스나 DVD를 구매해 보셔야 할 듯 합니다. 동영상 강의가 더 잼있지만 책으로 보는 것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습니다. 동영상 강의는 아무래도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하기에는 정신없이 지나간다는 느낌이 있으니까요.(이해가 안되도 진도나가는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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