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매매가 안 되는데 정부 대책이 나온 뒤로 그나마 있던 손님들도 뚝 끊겼어요."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수정아파트 단지 내 상가. 점심시간에 나온 직장인들로 상가는 북적였으나 부동산중개업소들은 정적이 흘렀다. '우리부동산' 이대상 부장은 "정부가 대책을 내놨지만 뭐 하나 확실한 게 없어서 그런지 문의 전화가 한 통도 없다"며 신문을 뒤적였다.
정부가 주택거래 활성화를 위해 22일 분양가 상한제 폐지, 취득세 감면과 같은 비중 있는 규제 완화책을 내놓았지만, 주택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다. 정부가 발표한 대책 실시 여부가 여전히 불확실한 데다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의 부활이 금리 인상, 유가 상승 등 국내외 여러 악재와 맞물려 매매심리를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분양가 상한제에 '미지근한' 시장 반응
정부는 '3·22 부동산 대책'에서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등 투기지역을 제외한 민간 택지에 짓는 아파트의 분양가 상한제를 없애겠다고 했다. 상한제가 없어지면 건설사가 분양가를 주변 아파트 시세 또는 그 이상으로 높게 책정할 수 있어 주변 집값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다. 결국 상한제 폐지는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를 부추겨 주택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 그동안 사업성 부족 등으로 진척이 없었던 재개발·재건축 단지와 뉴타운지구 등 대부분의 민간택지 사업이 활성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부산을 중심으로 최근 '청약 열풍'이 부는 지방 분양시장의 경우 아파트 공급 증가와 함께 분양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경기도 과천시, 서울 강동구 등 재건축단지와 서울 용산·성동구 등지의 재개발 사업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시장 분위기는 차분했다. 과천의 '청솔부동산' 이동민 사장은 "국내외 경제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DTI 규제가 부각되다 보니 투자자들이 상한제 폐지를 호재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며 "취득세 감면도 (DTI 규제 부활로) 자금력이 있는 수요자에게만 해당돼서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서울에 신규 공급되는 아파트 대부분이 재개발·재건축 물량이라는 점에서 조합이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분양가를 높게 책정할 가능성도 크다. 당초 이달로 예정됐던 성동구 왕십리뉴타운 사업의 일반분양 일정이 늦춰진 것도 분양가를 높이려는 조합과 이를 낮추려는 건설사 간의 이견 때문이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최근 분양가에 웃돈이 붙을 정도로 분양시장이 활기를 띠는 지방에서 분양가 상승이 우려된다"면서 "공공택지에 짓는 수도권 미분양 주택을 해소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막연한 정책 발표에 시장 더 불안
서울 잠실의 '잠실1번지' 부동산중개업소에는 이날 오전에만 20통이 넘는 전화가 걸려왔다. 주택구매를 고려하고 있거나 이미 계약을 맺은 수요자들이 전날 정부가 발표한 취득세율 인하 조치가 언제 시행되는지를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김찬경 사장은 "취득세율 인하가 정확히 언제부터 적용되는지 몰라 매수 의사를 밝혔던 투자자들도 잠시 기다려보겠다고 마음을 바꾸고 있다"면서 "안그래도 얼어붙은 시장이 더 오래갈 것 같다"고 했다. 이처럼 시장에 불확실성이 높아지다 보니 거래는 오히려 일시적으로 끊기고 가격도 거의 변동이 없는 모습이다. 양천구 목동 5단지 89㎡(27평)의 가격은 6억7000만~7억원, 148㎡(45평)형 주택은 12억5000만~14억원 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목동의 '한미부동산' 곽영진 대표는 "지난달에 계약한 고객이 이번 주 잔금 납부를 앞두고 시기를 뒤로 미뤄야 하는 것 아닌지 망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대책에서 시장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분양가 상한제 폐지도 '국회에서 언제 통과될지' 미지수다. 민주당·자유선진당 등 야당은 정부의 정책 발표 다음 날인 23일 "반서민적인 주택 정책"이라고 상한제 폐지를 강하게 비판했다. 상한제 폐지 시기를 예측하기 힘든 만큼 서울 성동 옥수12구역 래미안, 마포 신공덕6구역 아이파크, 성동 행당더샾 등 분양이 임박한 사업장의 일정이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대형건설업체 분양담당자는 "현재로서는 예정대로 분양하려 하지만 조합의 요청이 들어오면 일정을 미룰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남 재건축값 하락 등 '기초 체력' 허약
정부의 다양한 대책 발표에도 주택 시장이 꿈쩍도 않는 주된 이유는 강남 재건축 단지 가격이 하락하는 등 부동산 시장의 '기초 체력'이 여전히 허약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지난 8개월 동안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상하면서 투자자들의 대출금리 부담이 높아진 데다 리비아 공습, 일본 원전 사태 등 국내외 경제 여건의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는 것도 거래를 잠재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천의 '금강부동산'사장은 "지금까지 집값 상승을 주도했던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값이 내려가는 마당에 다른 지역에 투자자가 몰리겠느냐"며 "강남의 큰 부동산이 움직여야 시장이 살아나는데 거기는 꽉 잡아놓고 취득세 완화만으로 숨통을 틔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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