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사냥이 성행했던 조선시대에는 ‘낙상매’를 최고의 매로 취급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낙상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미 매는 새끼에게 먹이를 줄 때 하늘 높이에 날아올라 떨어뜨린다. 새끼들은 그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게 되고, 몇몇은 둥지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녀석이 생긴다. 어미가 노리는 것은 새끼가 먹이를 얻으려다가 실패해 다리를 다쳐 낙상(落傷)매가 되는 것이다.” 새끼 때 낙상한 매는 그 결함이나 열등에 대한 보상으로 인해 사납고 억샌 매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라난 낙상매는 진상품으로 금테 발찌를 하여 임금의 사냥에 사용될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결함이나 열등감에 대한 보상심리로 월등한 능력을 갖게 되는 낙상매의 모습을 인간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낙상매와 같은 존재는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지난 10월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는 사생아였다. 동거하던 대학원생 부모에게서 태어났기에, 조금이지만 더 넉넉한 노동자 가정으로 입양됐다. 이러한 열악한 조건에서도 그는 보란 듯이 아이팟, 아이폰 등을 내놓으며 세상에 이름을 남겼다. 그의 전기 <스티브 잡스>를 살펴보면 사생아라는 콤플렉스는 삶의 상당한 동기부여 요인이 됐음을 알 수 있다. 가령 양부모가 평생 모은 재산을 자신의 학비에 쏟아 붓는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자퇴를 결심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물론 낙상매와 사생아는 차이가 있다. 낙상매는 어미의 숨은 의도가 있지만, 사생아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낙상매와 사생아는 공통점이 더 많다. 둘 다 자신이 선택한 환경이 아니라는 점과 어릴 적의 결함과 열등감이 삶을 이끄는 힘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사생아, 그 위대한 반전의 역사>의 저자 주레 피오릴로는 사생아로 태어나 남들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와 차별을 겪는 이들이 훗날 위인인 된 바탕에는 태생적 열등감이 야망을 더 크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불우한 환경이 어찌 보면 부모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견고한 정신세계를 만들고 더 자유로운 활동을 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은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이를 바탕으로 더 큰 인물이 된 이들의 삶을 돌아볼 예정이다. 이는 단순히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환경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힘겹다고 느껴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점령한 사생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우리는 이따금씩 자연이 하늘의 기운을 퍼붓듯, 한 사람에게 엄청난 재능이 내리는 것을 본다. 그런 사람은 하는 일 조차 신성해서 뭇 사람들이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으니 오직 홀로 밝게 드러난다. 또 그가 내는 것들은 신이 손을 내밀어 지은 것과 같아서 도저히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고 보기 어렵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의 전기를 쓴 것으로 잘 알려진 조르조 바사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이처럼 표현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하지만 그의 출생은 남들보다 뛰어날 것 없는 한낱 사생아에 불과했다. 그는 1452년 이탈리아 빈치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피렌체의 유명한 공증인 세르 피에르와 농사꾼의 딸인 카타리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신분의 차이로 아버지와 결혼을 하지 못했고, 아버지는 그가 태어날 시기에는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한 상태였다. 당시 이탈리아는 사생아에 대한 대우가 이웃 나라들보다는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귀족 가문의 피를 물려받지 않은 일반 사생아들은 의사나 약사는 물론, 대학에도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역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당연히 상속권도 물려받지 못했고, 훗날 배다른 형제들과 재산권 분쟁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불우한 환경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이 될 수 있는 요인이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이던 그는 아버지에 의해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라는 화가의 공방에 들어가게 된다. 만약 그가 사생아가 아니었다면 아버지의 가업을 받아 공증인이 됐거나, 자신이 희망하던 의사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화가가 그나마 나은 직종이었다. 이것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화가가 된 계기임과 동시에 최고의 예술가가 될 수 있었던 시작이었던 셈이다. 어쩌면 그는 부모라는 존재가 없기에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마음껏 발산했을지도 모르겠다.
재즈계의 전설이 된 사생아, 빌리 홀리데이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린다. 잎사귀와 뿌리에는 피가 흥건하고, 남부의 따뜻한 산들바람에 검은 몸뚱이들이 매달린 채 흔들린다. 포플러나무에 매달려 있는 이상한 열매들. 멋진 남부의 전원 풍경, 튀어나온 눈과 찌그러진 입술, 달콤하고 상쾌한 매그놀리아 향, 그러고는 갑자기 풍겨오는 살덩이를 태우는 냄새
전설적인 재즈 보컬 빌리 홀리데이를 세상에 알린 <이상한 열매>의 노랫말이다. 이상한 열매는 린치를 당한 후 공개 처형된 흑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흑인에 대한 백인의 무차별적 린치를 고발하는 노래다. 충격적인 노랫말은 한(恨)서린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미국 사회에 커다란 울림을 만들었고 <타임>이나 <라이프> 등의 매체에서 처음으로 흑인의 사진을 싣는 사회적 변화를 일으켰다. 이후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를 가진 재즈 보컬리스트로 세상에 알려졌다. 어떤 곡이든 잊을 수 없는 독특함을 담아 불렀던 그녀의 노래는 ‘무엇을’ 부르느냐가 아닌 ‘어떻게’ 부르느냐가 중요하단 사실을 깨우치게 만들었다.
빌리 홀리데이가 목소리 하나로 세상을 울릴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비극적인 삶 때문이다. 1915년 백인 가정의 흑인 하녀로 일하던 새디 페이건이 13살의 어린 나이로 낳은 아이가 바로 그녀이다. 기타 연주자였던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을 때 집을 떠났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가난한 어머니는 딸을 제대로 돌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어머니처럼 백인 가정에서 하녀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10살의 나이에 집 주인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 그녀의 삶은 곤두박질친다. 경찰에 신고하지만 되려 어린 그녀는 불량소녀로 몰려 감화원으로 향한다. 이후에도 성폭행 및 매춘 등으로 어두운 삶을 이어간다. 15세부터 업소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재즈 장인들에게 주목을 받지만 이번에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차별을 당한다. ‘흑인 사생아’라는 삶의 시작점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지만 <이상한 열매>로 인해 단숨에 미대륙에서 가장 주목 받는 아티스트에 올라섰다. 어찌 보면 사생아와 흑인이라는 콤플렉스는 그녀로 하여금 한 없이 슬픈 목소리를 가질 수밖에 없는 숙명의 연결고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세계를 홀린 사생아, 마릴린 먼로
“노마 진은 여기서 끝난다”고 지금 막 쓰고 나니, 마치 거짓말을 하다 들킨 것처럼 얼굴이 달아오른다. 너무 조숙했던 이 슬프고 가련한 아이는 내 마음에서 떠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큰 성공을 거둘 때도 나는 노마 진의 겁에 질린 눈이 아직 내 속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즐겁게 살지 못했고 한번도 사랑받지 못했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나인지 생각하며 혼란에 빠진다.
세기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가 쓴 유일한 자서전 <마릴린 먼로 My Story>의 일부다. 대중에게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화려한 삶을 살고 간 ‘슈퍼스타’였다. 하지만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 그녀는 불행했던 어린 시절부터 스타가 된 성인시절까지 행복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밝은 빛일수록 진한 그림자가 남는 법, 가장 화려한 스타였으나, 한편으로 가장 불행한 여인이었던 셈이다. 그녀는 출생부터가 비극이었다. 1926년에 태어난 그녀의 본명은 노마 진. 할리우드의 한 스튜디오에서 필름 편집자로 일했던 생모는 그녀를 뱃속에 가진 상태에서 이혼했다. 어린 먼로가 아버지에 대해 물으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모른 채 커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평생 그녀를 괴롭혔다. 어쩌면 수많은 남성의 사랑을 받아야만 했던 것도 생의 가장 첫 번째 남성인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마릴린 먼로는 아버지는 물론 생모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생모는 경제적인 이유로 딸이 태어나자마자 다른 집에 입양을 보내고 가끔씩 그녀를 찾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가 너무 무서웠던 어린 그녀는 엄마가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옷장 속에 숨었다고 한다. 이후 생모는 정신분열증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어린 그녀는 고아원과 입양생활을 반복했다. 고아원에서 지내던 아홉 살 때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부모의 부재가 부른 비극이다. 세상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던 그녀의 희망은 극장에서 피어났다. 입양되어 살 때 가족들은 그녀를 극장으로 쫓아 보냈다. 늘 혼자였던 그녀는 영화에 푹 빠졌고, 공상을 시작한다. 그녀는 외로움에 시달릴 때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달콤한 상상 속으로 도망쳤다.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세상 남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상상. 이것은 그녀가 성장하며 아름다움을 갖추면서 현실로 펼쳐진다. 그 이후로는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전세계의 남성을 설레게 만든 섹시 스타가 됐다. 태생부터 지녀야 했던 외로움은 누구보다 사랑 받고 싶다는 욕망으로 변했고, 그녀가 세기를 뒤흔든 여성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생아, 오프라 윈프리
“오스카상을 받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이렇게 영광스런 상을 받은 것은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 준 모든 이들의 덕분이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지난 11월 12일 뉴욕에서 열린 ‘거버너스 어워즈’에서 ‘장 허숄트 인권주의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이 상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의 싹을 퍼뜨리고 사회적으로 모범이 된 개인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지난 5월 <오프라 윈프리 쇼>를 종영한 그녀에게 돌아갔다. 그녀는 명실상부한 현 시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그녀의 명성의 시작은 25년 동안 전세계인을 웃고 울린 <오프라 윈프리 쇼>였다. 총 47번이나 에미상을 수상했고, 사회자인 그녀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 됐다. 이 영광의 이면에는 그녀의 슬픈 과거가 존재한다.
흑인, 사생아, 특별할 것 없는 환경. ‘잘난 것 하나 없는’ 인생의 출발이었다. 그녀는 1954년 미시시피 주에서 가난한 흑인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당시 그녀의 어머니는 겨우 18살이었고 가정부 생활로 생계를 이어가던 시기였다. 당연히 그녀는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성장했다.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자라던 그녀는 9살이란 어린 나이에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14살에는 임신을 했지만 태어난 아이는 2주 만에 죽었다. 비참한 삶은 그녀를 바닥으로 끌어내렸고 마약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이들은 그녀의 인생은 ‘그렇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그들의 생각처럼 비참하게 끝나지 않았다. 고동학교 시절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일을 했던 경험으로 지역 방송에서 공동뉴스캐스터를 시작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타고난 재능으로 한 걸음씩 성장한 그녀는 결국 지역방송을 넘어 전 세계에 방영되는 최고의 토크쇼를 만들어냈다. 이후 그녀는 ‘토크쇼의 여왕’ ‘기부의 여왕’이라는 별명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손꼽히게 됐다.
그녀의 성공 신화는 불행했던 그녀의 유년기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미국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오프라(Oprah)’란 단어가 있다. 이는 고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친근한 말로 끈질기게 질문하는 것을 의미한다. 25년 동안 최고의 방송을 이끈 그녀의 모습은 바로 이 단어로 요약된다. 단순히 대답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처절했던 삶을 살았던 스스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능력은 그녀를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만들었다. 그녀는 따뜻한 시신과 겸손한 자세, 진실된 마음을 바탕으로 대통령은 물론 인기스타, 일반인들까지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고백을 하게 만들면서 전 세계인들을 웃고 울렸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생아로 태어나 힘들었던 시기를 보냈던 경험이 바탕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