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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잭 웰치 전 GE 회장 - Passion 백만불짜리 열정 (이채욱) 中

명호경영컨설턴트 2013. 4. 4. 08:29






Passion 백만불짜리 열정 

이채욱 | 랜덤하우스중앙 | 2006.02.25 | 271p 


잭 웰치와의 ‘카 미팅’


 가끔 잭 웰치 전 GE 회장과의 만남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는 아마도 GE의 문화를 가장 혁신적으로 바꾼 사람 가운데 첫손에 꼽힐 것이다. 그는 GE의 회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영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인물이기도 한데, 내가 만날 당시 그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잭 웰치가 한국을 방문하던 중 나를 면담하게 된 건 원래 계획에는 없는 일이었다. 당시 나는 삼성GE의료기기 회사의 사장으로,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합작 상대 회사의 계열사 사장일 뿐이었다. 신라호텔 로비에서 악수를 나누는데, 그가 옆에 있던 당시 GE코리아 강석진 사장에게 “이 사람과 만나서 개별 면담을 하고 싶다”고 제안을 했다. 강 사장이 스케줄이 꽉 짜여 있어 시간이 없다고 말하자, 잭 웰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즉각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그럼 이동 중 차 안에서 하면 되잖소.” 순간 나는 그의 유연함에 몹시 놀랐다. 분 단위로 짜여 있는 스케줄 속에서 스스로 차 안에서의 미팅을 제안한다는 것은 그의 지위를 볼 때 대단한 유연함이었다. 하지만 GE의 문화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식으로든 해내는 것이 아주 당연한 것이다. 직위가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있게 마련이고, 그는 그것에 충실한 것뿐이었다는 것을 나는 후에야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잭 웰치 회장과 같은 차에 올라타 30분 정도 미팅을 했다. 그가 금호아시아나 회장을 만나러 가는 중에 이루어진 차 안에서의 미팅은 나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악수를 할 때 느껴지는 그의 강한 신념, 상대방 말을 경청할 때의 이글거리는 눈빛, 질문을 할 때마다 앞으로 다가서는 버릇 등을 통해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것은 단순한 미팅이 아니라, 나를 채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위 인사를 발굴해 내는 것은 최고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하지만 당시 나의 경영 성과나 실적 등은 이미 GE 내부에 잘 알려진 상태였다. 게다가 그의 일정이 30분도 자유롭게 빼낼 수 없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을 인사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부 사람들 생각일 뿐이다. 나 역시 잭 웰치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기업이든 인사 문제는 너무나 중요해서 더 이상 중언부언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인사 작업 과정에 책임자가 뛰어들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잭 웰치는 자신의 일을 명확히 인식했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직접 뛰어든 것이었다.


새로움을 창조해 내는 ‘열린 리더십’


 ‘그래, 기 싸움을 하자, 이거로군!’ GE에 발을 들여놓던 날,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국내 기업 문화에 익숙하던 당시의 나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취임식장에 새로 부임해 오는 사장 자리가 정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반기고 있었으니......

 나의 오해가 풀린 것은 GE의 새해 경영 전략 회의에 참석했을 때다. 그러니까 벌써 13년 전의 일이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이 주재하던 새해 경영 전략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된 나는 그곳에서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특유의 열정적인 기조 연설을 마치고 단상을 내려온 잭 웰치 회장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빈자리를 찾고 있었다. GE의 회장이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구석진 자리에 앉다니......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그런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GE 경영자들의 태도였다. ‘그래도 회장인데, 너무하는 거 아닌가? 내가 다 미안하군.’ 그런데 그런 미안한 상황은 저녁 파티에도 이어졌다. 워낙 회의 참여 인원이 많아 참가자들은 테이블 번호표를 받아 그 테이블에 가서 식사를 했는데, 400여 명의 경영자 사이에 잭 웰치 회장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모습을 3일 내내 발견할 수 있었다. 회장을 위한 고정석이 없다는 것이 이상하고 심지어 미안하기까지 하던 나는 점차 그런 상황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당연한 일인지도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를 위한 고정석이 없다는 사실은 GE의 문화에 익숙해진 내게는 이제 아무 일도 아니지만, 처음에 내가 그랬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일이다.

 고정석이 없으면 불필요한 프로토콜이 요구되지 않는다. 고정석은 말 그대로 누군가가 참여자의 자리를 정해 주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당연히 상석부터 말석까지가 정해진다. 참여 전부터 참여하는 사람들의 순위가 매겨지고, 그에 알맞은 절차를 행해야 하는 등 자못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필요 없는 의례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고정석이 정해지면 유연성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상석에서 말석까지 정해져 있으니, 비슷한 순위의 사람들끼리만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누구나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자연스런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에, 아이디어 역시 물 흐르듯 흘러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고정석이 없으면 ‘벽 없는 문화’를 형성하기가 쉽다. 직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쉽게 어울려 가까워질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하는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런 문화에 익숙해지면 직위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인간적으로 대할 수 있는 자세를 갖게 된다. 우리의 기업 문화에서는 고정석을 차지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만나는 사람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소탈한 사람이라도 고정석이 있는 문화 자체가 그를 고립되게 만드는 것이다.

누구와도 격의 없이 토론을 즐기던 잭 웰치 전 회장의 주변에는 젊고 자신에 찬 사람들로 항상 들끓었다. 격식에 구애되지 않고 파괴 속에서 새로움을 창출해 가는 창조적 생산성. 고정석 없는 GE의 문화가 오늘의 GE를 있게 한 것이다. 격식에 얽매여 고립된 리더, 사람들에 둘러싸여 새로움을 창조해 내는 열린 리더, 당신은 어떤 리더를 꿈꾸는가.

출처 : 해박한 지식의 보물창고
글쓴이 : 행복도서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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