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춘천의 한모 씨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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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춘천시 서면은 예부터 큰 인물이 많이 배출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서면에 오래 살고 있는 한모 씨 집안은
H농산의 회장을 비롯해 국회의원과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 정·재계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집안이다.
- 풍수에 조예가 있는 설계사가 이 집을 설계한 것은 1982년경이었다. 서면에서 가장 인물이 많이 나온 집안답게
노적봉 형태를 이룬 주산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으며, 서면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명당 터였다. 설계사는 대지 조건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아서
동향 집으로 배치했으며, 대문은 서사택에 맞춰 동북쪽에 두었다.
- 현재의 집은 1996년 개축한 것으로서 구조와 형태는 과거의 설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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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강릉 최모 씨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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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의 최모 씨가 풍수에 능한 설계사를 찾은 것은 1981년경이었다. 최씨는 설계뿐만 아니라 집터 물색까지
부탁했는데, 당시 설계사는 강릉 지세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손쉽게 터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 그러나 사실, 설계사가 추천한 집은 시내 한복판에 있던 널찍한 대지의 낡은 기와집이었다. 그 낡고 오래된 집을 명당
터라고 추천하자, 최씨는 “아니, 흉가를 명당이라고 하다니?” 하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그 집에서는 계속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
폐가가 됐을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흉가로 낙인찍혀 있는 집이었다.
- 설계사는 이 집이 흉가가 된 원인은 주택 배치와 형태가 잘못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땅 자체는 명당이므로 땅의 조건에
맞춰 집을 지으면 틀림없는 명당을 만들 수 있다고 확언까지 했다.
- 최씨는 흉가라는 것이 다소 꺼림칙했지만 설계사의 말을 듣고 그 집을 구입하기로 했다. 예전의 이 집은 넓기는 하지만
ㄱ자형으로서 기운이 분산되는 형태였다. 뿐만 아니라 남향 집에 동북향 대문으로 방위도 상극 방위였으며, 마당도 전후 좌우로 분산된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 설계사는 우선 기운이 모아지는 형태의 배치를 하여 설계를 했다. 건물은 그대로 남향 집을 하되, 기존의 서쪽 대로
대신 남쪽 전면으로 진입로를 넓게 만들고 남쪽 대문을 만들었다.
- 최씨는 이 집으로 이사하기 전, 사업이 부진했으며 집안팎으로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흉가 터에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한 후에는 신기할 정도로 매사가 잘 진행되었다. 최씨는 집을 옮긴 후부터 사업이 번창됐을 뿐만 아니라 시의원에도 당선되는
등 좋은 일이 많았다고, 지금도 그 설계사에게 인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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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서울 서교동 안모
씨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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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집을 설계한 것은 1989년이었다. 당시 안모 씨는 이곳에서 20여 년간 살고 있었는데, 그 집을 헐고 3대가
함께 사는 2층집을 건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 이 집터 형태는 동서 길이가 길고 남북 길이는 짧으며, 주된 출입구는 동쪽의 공원이 있는 쪽이었다. 그래서 설계사는
건물은 서쪽에, 마당은 동쪽에, 대문은 동북쪽에 배치하여 건물과 대문이 모두 서사택이 되도록 설계했다.
- 1층에는 거실과 조부모가 사용하는 안방, 부엌과 식당 등을 두었는데, 평면 형태는 건물 중심에 기운이 모이도록
정방형에 가깝도록 배치했다. 그래서 가로 3간, 세로 3간으로 구획하여 중심 부분에 식당을 배치했으며, 1층 현관도 북동쪽에 배치해 안방과
대문이 서사택이 되도록 했다. 계단과 화장실은 모두 주택의 북쪽 구석에 배치하여 내부 기운이 안정되도록 했다.
- 2층에는 이 집의 젊은 주인 부부의 침실과 서재, 아이들 공부방 등을 배치했는데, 중심 부분에 서재를 두고 서재는
천장을 높게 하여 주택 기운이 모두 이곳에 모이도록 했다. 지하실은 창고 및 보일러실과 주차장 등으로 이용하도록 했다.
- 주택 외부 형태는 중심을 높게 하여 전체적으로 기운이 중심에 모이는 형태를 이루게 했다.
- 건물 형태는 물론 풍수지리 이론을 적용하여 만든 이 집은 서교동 일대의 아름다운 집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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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서교동 정모 씨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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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모 씨 집의 설계를 앞두고, 당시 정씨 부인은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이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설계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새 집을 짓는 것은 그동안 살던 집이 좁은 탓도 있지만, 풍수지리적으로 아들을 좋은 대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한
집을 짓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설계사를 찾아오기 전에 다른 건축사를 찾아가 설계도면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 그 설계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미 다른 사람이 설계를 마친 집을 내가 다시 설계한다는 것이 도의상 맞지 않아
정중히 거절하자, 부인은 이전의 건축사에게 충분한 사례를 하고 양해를 얻었으므로 꼭 설계를 해줄 것을 정중히 부탁했다. 그래서 설계사는 이전의
설계사에게 사실 확인을 한 후 설계를 시작했다.
- 이 집터는 도로에 면한 길이는 좁은 반면 깊이는 길었다. 이처럼 땅이 세로로 길고 도로가 좁은 경우에도 전면에
안방을 내는 게 일방적인 배치방법이다.
- 그러나 풍수에 조예가 깊었던 설계사는 풍수지리 이론에 입각, 도로 쪽에는 주차장과 마당을 설치하고 건물을 후면에
두는 배산임수 원칙에 따라 배치함으로써 이 집을 남서향으로 설계했다. 그리고 1층 전면에는 거실을 두고, 후면에 안방과 주방을 배치했다. 안방을
후면에 둔 것은 후면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2층 중앙에는 서재를 두고, 그 좌우에는 두 아들 방을 배치함으로써 집 안의
- 중심이 잡히도록 설계했다. 지붕은 모임 지붕 형태로 했다.
- 정씨 내외는 불심이 매우 깊어 항상 자녀들을 위해 기도를 했는데, 새 집으로 입주한 지 2년 후 아들이 서울대학
의과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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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서초동 이모 씨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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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동은 강남에서도 비교적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 전무직을 맡고
있는 이씨는, 젊은 시절에는 가수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었다. 부인과 자녀 하나를 두고 있어 비교적 식구가 단촐한 이씨는, 설계를 의뢰할 때
지하실에 차 두 대만 주차시킬 수 있는 주차 공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음악실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 대지 조건은 야트막한 언덕 위의 정방형 대지로서 북쪽으로 도로와 접해 있고, 지면은 남쪽과 서쪽으로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 대지 조건이 이러했으므로 주택은 동쪽에 두고 서향으로 배치하는 한편, 대문은 도로가 있는 북쪽에 배치함으로써 건물과
대문이 모두 동사택이 되도록 했다. 또 주택 평면은 전면을 3간으로 구획하고 중심 부분이 돌출되게 하여 강한 기운이 중심에 모이게 했다. 내부
중심에는 크고 넓은 거실을 배치해 이곳을 기운의 중심점으로 했다.
- 건물 형태나 각 방의 형태는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1:1.7 미만으로 모두 바르게 했다. 건물 형태는 이탈리아풍으로
하고, 벽체 재료는 철근 콘크리트 옹벽으로 하여 그 위에 페인트 칠을 했다. 설계를 하고 난 후부터는 사실 설계사는 목수에게 모든 것을 맡기게
되고, 목수는 설계 의도를 정확히 알고 일을 진행해 줘야 하는데, 이 집은 설계사의 그러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진행해 주어서 지금도 설계사는
그 목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 또한 주택 내부는 비교적 간단하게 처리했는데, 준공 후에 건물에서 느껴지는 전체적인 울림은 명랑하고 행복한 트럼펫
소리와 같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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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포항 이모 씨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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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도말, 평소에 풍수에 지식을 갖고 있었던 건축 설계사는 포항에 살고 있는 이모 씨로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풍수지리적으로 점검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집 안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설계사는 요청대로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는데 단층 슬래브
집이었던 이씨 집은 배치와 방위가 모두 좋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상황으로는 이사를 할만한 형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집을 헐고 다시 지을 수도
없었다.
- 설계사는 굳이 다시 집을 짓지 않고 개조를 함으로써 명당 형태로 만들 수 있으므로, 증축을 권했다. 이씨는 설계사가
말한 대로 주택 방위에 맞춰 한쪽을 증축했다. 이후 집안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고, 얼마 후부터는 이씨의 사업도 번창하기
시작했다.
- 얼마 후, 불심이 깊은 이씨 부부는 주택의 2층을 증축하여 서재나 기도실로 사용하기 위해 그 설계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또다시 설계 자문을 구했다. 설계사는 지붕을 원형으로 하되 중심을 높이고 좌우는 낮게 하여, 기운이 중심에 모이도록
설계했다.
- 일반적으로 둥근 지붕은 공사가 어렵고 공사비도 많이 소요된다. 그러나 이씨 부부는 이 집을 증축할 때에 값이
저렴하면서 튼튼한 특수 재료를 이용해 비교적 비용이 적게 들었다.
- 완성된 2층 서재에 들어서면 천장이 높고 원형 형태라서 매우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층의 특수한 구조는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하고, 심지어는 비싼 값에 팔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금은 아예 외부 사람들에게는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층이 만들어진 후 집안에 더욱 여유가 생긴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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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중국집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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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집 D를 운영하는 라모 씨가 풍수를 알고 있는 설계사를 찾아온 것은, 강남에서 크게 중국집을 운영하다가 그
건물을 내주게 됨으로써 새로운 터를 잡아 놓은 1990년도였다. 그가 보아 둔 새로운 터란 서울 이태원에 있는 한 호텔 별관 건물이었는데,
이전에는 레스토랑으로 사용되었지만 사업이 부진해 오래도록 비워 둔 곳으로 전체 평수는 200여 평이었다.
- 라씨가 운영하던 중국집의 음식 맛은 정·재계 고위층 단골이 특히 많을 정도로 이름나 있었는데, 그는 새 터로 옮겨
가서도 사업이 변함 없이 잘되기를 바라며 설계사에게 내부 인테리어 설계를 부탁했다.
- 설계사는 레스토랑 안팎을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 외부의 지리적인 조건과 함께 내부, 즉 주방과 홀, 대문 등 각
부분의 배치와 방위, 공간 형태 등을 살펴봄으로써 레스토랑이 망하게 된 원인을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그 건물은 남동향이면서 현관이 남에 위치해
있는, 오행상 상극을 이루고 있었다. 또 주방은 본래 현관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북쪽에 있었으며, 홀이 ㄱ자 형태로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 레스토랑과 중국집은 음식점으로서 그 기능이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음식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방 위치이다.
주방이 자리를 잘 잡고 있으면 음식 맛이 좋고 모든 일이 순조롭다.
- 반면에 주방 위치가 좋지 않으면 음식 맛이 없어지는데, 음식점에서 음식 맛이 없으면 제아무리 인테리어를 잘해 놓아도
손님이 들 리가 없다.
- 망한 레스토랑 터에 중국 음식점을 차려 성공하려면 기존의 대문을 폐쇄하고 다른 자리에 대문을 달아야 했으며, 주방과
홀, 화장실 등 각 부분도 다시 배치해야 했다. 결국 외형만 남겨 놓은 채 내부는 모두 뜯어내고 다시 짓는 것이 되는데, 이렇게 하려면 상당히
많은 공사비가 소요되었다. 라씨는 공사 비용이 많이 들어도 좋다고 하면서, 실내 색깔이나 장식을 완전한 중국식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래서
설계사는 풍수지리 이론에 입각해 설계를 하는 한편, 라씨와 함께 중국 북경과 상해, 대만 등의 음식점을 돌아보기도 했다.
- 설계는 다음과 같이 했다. 우선 건물이 남동향 건물이었으므로, 현관을 기존의 남쪽에서 남서쪽으로 뜯어고쳤다. 또
북쪽에 있던 주방을 북동쪽에 두었으며, 홀도 중심에 넓게 두었다. 화장실도 서쪽에 있던 것을 방위에 맞춰 동쪽으로 옮겼다.
- 공사를 마치자 흉가처럼 보이던 건물이 새롭게 단장되어 전혀 다른 건물이 되었는데, 이후 지금까지 계속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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