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사하라 ! ‘정신적 재산’이 불어난다
부자학회 세미나 성황 …
“분식회계·리베이트 멀리 하면 존경받는 부자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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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寄附)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아요. 정확히 희사(喜捨)입니다. 말 그대로 기쁘게 버리는 정신이지요.”
경주 최부자 가문의 장손 최염(75)씨는 부의 사회 환원을 이렇게 설명했다. 26일 밤 서울 삼성동 섬유회관에서 열린 ‘존경받는 부자 데이’ 세미나 자리에서다. 부자학연구학회(KAAS)가 마련한 이날 모임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부자가 제대로 존경받을 수 있을까’였다.
고희(古稀)를 훨씬 넘긴 연령에도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경주 최씨 종친회 명예회장이기도 한 그는 “우리 집안이 오랫동안 만석꾼이면서도 욕을 먹지 않은 건 정당하게 벌고 잘 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집안의 오랜 가르침에 ‘흉년에는 전답을 사지 마라’는 구절이 있다. 최 명예회장은 “요즘 말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하지 말라는 뜻 정도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또 최부자 가문은 마름(대리 감독인)을 안 뒀다. “중간 마진을 없앤 격이지요. 이러면 소작인에게 소출이 조금이라도 더 갈 수 있어요.”
이런 전통은 엄격한 교육을 통해 이어졌다. 그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문파[汶坡] 최준·1884~1970)와 함께 사랑방에서 살았다. 매일 아침 그분 앞에서 육연(六然·집안의 가훈)을 붓글씨로 써야 했다”고 회고했다. 또 “할아버지는 ‘큰돈 아끼지 말고 작은 돈 아끼라’고 가르쳤다. 근검절약해 돈을 모아 좋은 일에 쓰라는 가르침이었다”고 말했다.
일제 때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에 자금을 대 준 문파는 광복 후 남은 재산을 털어 대구대(현 영남대)와 계림대를 세웠다. 이때 최 명예회장을 불러놓고 “내가 기부하면 너는 한푼도 못 받는다. 네 의견을 묻겠다”고 했다. 최 명예회장은 마지못해 “동의합니다”라고 응했다고 한다. “속으론 무척 서운했지만 지금은 그 큰 뜻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는 병원사업과 무역업을 해봤지만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지금은 평범한 중산층이라고 스스로 평한다. “재산은 많지 않아도 조상 대대로 물려온 정신적 재산이 풍족하다. 이게 진정한 부자 아니냐”고 반문했다.
◇존경받는 부자가 되려면=그를 비롯한 6명의 초청 연사는 이날 세미나에서 올바른 부자상을 그려 나갔다. 박종규(73) KSS해운 고문은 리베이트·분식회계·경영상속을 하지 않고 기업을 경영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김상원(54·철학) 광운대 교수는 부와 철학은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혜원(58) 중부재단 이사장은 기부의 진정한 의미를, 이태영(67) 미국 IPM 회장은 미국의 기부문화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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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철(50·서울여대 교수·경영학) 부자학연구학회장은 성인 남녀 187명을 상대로 한 ‘부의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존경받을 만한 부자는 전체 부자 가운데 10%가 안 된다는 응답(75%)이 가장 높았다. 존경받는 부자가 되려면 ‘뚜렷한 부자관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는 대답(41%)이 으뜸이었다.
부자학연구학회 회원은 다채롭다. 교수·부자·기업인·봉사단체 임직원 등 300명이 가입했다. 특히 학자들의 면면을 보면 경영·경제학자는 물론이고 심리·역사·사회·법·종교·국문·의학 등 각계 전문가도 대거 참여해 통섭(統攝)의 한마당이 섰다.
이날 세미나에도 각계에서 200여 명이 참석했다. 신분을 드러내길 꺼리는 수백억~수천억원대 ‘알부자’들이 구석에서 조용히 강연을 경청했다. 명품업체·금융회사·의류업체 실무자도 마케팅 자료를 수집하려고 모여들었다. 한 회장은 “재테크 강연 못지않은 성황이었다. 부의 의미를 재정립하려는 노력에 일반인의 관심이 커진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경주 최부자 가문=12대 300년의 명문가. 병자호란 때 숨진 정무공 최진립(1568~1636)의 공신 토지를 기반으로 만석의 재산을 일궜다. 사회사업과 독립운동에 큰돈을 보태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칭송받았다.
◇부자학연구학회(Korean Academy of Affluent Studies)=올바른 부자상을 연구하기 위해 지난해 9월 결성됐다. 정당한 부의 축적과 부의 적절한 사회환원을 통해 한국에서도 존경받는 부자의 수를 늘리는 게 목표다.
부자마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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