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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계적인 부자를 만든 아버지의 교육법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5. 18. 04:56



21세기 세계 부호, 빌 게이츠. 잘나가는 변호사 아버지와 은행장 딸 출신인 어머니 밑에서 유복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그를 세계 제1의 부자로 만든 것은 부모의 부가 아닌 비즈니스를 보고 읽을 줄 아는 감각이었다.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는 빌이 어렸을 때부터 그와 함께 비즈니스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즐겼다. 또한 논리적인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독서를 권장했는데, 책 읽는 데 집중하도록 주중에는 아예 텔레비전 보는 것을 금지했을 정도. 그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무엇이 비즈니스가 되고 돈이 되는지를 알게 된 것. 단적으로 빌 게이츠가 생애 처음으로 맺은 계약은 11살 때 누나 크리스티와 맺은 계약으로, 빌이 누나에게 5달러를 주는 대신 빌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누나의 야구 장갑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받은 훈련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계약을 작성하는 법을 체득하고, 이런 비즈니스 감각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할 수 있었다.




세계적 기업 GE(제너럴 일렉트릭)에서 CEO 자리를 20년 동안 지켜 온 잭 웰치는 샐러리맨들에게 신화와 같은 존재.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 집안의 아들이었던 그가 대기업 GE에서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 사장의 자리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그를 성공으로 이끈 비결은 바로 일에 대한 책임감. 주 5일이 일반화된 미국 사회에서 끝내야 할 일이 있을 땐 주말에도 어김없이 회사에 출근했고, 호텔에서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야간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다녔을 정도. 그의 유별난 일 습관은 그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자산이다. 잭 웰치의 아버지는 열차의 차장으로 근무했는데 다음 날 아침 날씨가 나쁠 것이라 예보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밤에 다시 일터로 향해 악천후로 출근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비할 정도로 책임감이 강했다고.




자신이 죽을 때 재산을 자식에게 거의 남기지 않겠다고 공언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실제로 그의 재산의 85%는 빌 게이츠가 운영하는 재단 등 각종 자선 단체에 기부하게 돼 있다. 워런 버핏의 아버지 하워드 버핏 또한 아들에게 유산을 한 푼도 물려주지 않았다. 버핏의 요청 때문이기도 했지만 부모의 재력과 관계없이 아들이 독립적으로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하워드 버핏은 강직하고 남에게 의존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한때 잘나가는 주식 중개인이었지만 대공황의 여파로 생활이 궁핍해진 후에도 가족에게 손 벌리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이처럼 재정적으로 독립해서 사는 것을 중시하는 정신은 버핏 집안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록펠러 가문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부자 가문 중의 하나. 록펠러 가문은 철저한 용돈 교육으로 3대를 이어 부자 가문의 명예를 지켜 왔다. 록펠러 2세는 미국 최고의 부자였지만 자녀들에게 주는 용돈은 매우 적었다. 록펠러 집안의 용돈 교육은 단순히 용돈을 얼마만큼 주느냐에 그치지 않았다. 용돈의 사용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확실히 한 후 잘했을 때는 용돈을 올려 줬고, 그렇지 못했을 때는 벌금을 매겼다. 용돈 출처에 대한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은 개인적인 용도, 저축, 기부로 분리했다.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용돈 관리법을 익힌 자녀들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자산의 규모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데이비드 록펠러는 “현명한 부모가 제대로 인도해 주지 않은 상속은 축복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깝다”고 얘기했다.




영화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할리우드 액션 배우이자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널드 슈워제네거. 2007년 현재 재산이 8억~9억 달러(약 7600~8550억원)에 이르는 억만장자다.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은 바로 아버지 구스타프 슈워제네거의 철저한 훈련 덕분. 오스트리아 작은 마을의 경찰서장이었던 아버지는 권위주의적이고 엄격했다. 통금 시간까지 정해 놓았음은 물론 책읽기와 글쓰기, 권투와 수영 등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부자가 되는 공식을 ‘수입-지출=재산’이라고 정하고 재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수입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항상 아들에게 주지시켰다.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아들의 재능을 계발해 수입을 늘릴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아버지의 공. 흔히 재능이 있더라도 깜짝 스타로 떴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아널드의 경우는 훈련을 통해 재능을 계발해 부를 창출했던 것.




국내 1등 기업 삼성이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이건희 회장. 그의 경영 방식의 대부분은 고 이병철 회장의 교육 방식에서 비롯됐다. 이 회장은 고 이병철 회장의 셋째 아들로 형 맹희씨와 창희씨를 제치고 1976년 후계자로 지목받았다. 1987년 실제로 경영권을 물려받기까지 이건희 회장이 부친으로부터 경영 교육을 받은 기간은 20년이 넘은 셈. 그 기간 동안 이병철 회장은 경영 일선에 항상 이 회장을 데리고 다니며, 직접 무언가를 해보라는 주문을 많이 했다. 그러나 자세한 설명이나 구체적인 로드맵은 결코 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엔 그런 교육 방식에 화도 나고 속을 태우기도 했지만 “어느덧 현장을 통해 경영을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고 이건희 회장은 회고한다.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 배우고 익히게 만드는 교육 방식은 이건희 회장을 통해 오늘날 글로벌 그룹, 삼성을 낳았다.




우리나라 굴지의 침대 회사 에이스 침대의 안유수 회장. 장남 안성호씨는 가업인 에이스 침대를 물려받았고, 차남인 안정호씨는 독립해 시몬스 침대를 세웠다. 현재 두 회사는 국내 침대 업계를 장악하고 있다. 안유수 회장이 두 아들에게 물려준 노하우는 바로 욕심 없는 경영. 사업하는 사람에게 욕심이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욕심 없는 경영이란 무리하게 남의 돈을 끌어들여 사업을 확장하지 않는 것. 북한 황해도 출신인 그는 한국전쟁 당시 혈혈단신으로 남쪽으로 내려와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자수성가했다. 사업을 키우려면 때로 다른 회사에서 자금도 빌려야 하고, 은행에서 대출도 받아야 하지만, 결국은 갚아야 할 빚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영 철학은 IMF 외환 위기 때 더욱 빛을 발했다. 두 아들 모두 무리하게 은행 돈을 끌어다 쓰지 않았기에 위기 상황에서 더욱 회사를 크게 키울 수 있었다고.




국내 간장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는 샘표식품. 창업주인 고 박규회 회장을 거쳐 박승복 회장과 박진선 사장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경영하고 있는 가족 기업이다. 샘표는 가족 기업 문화에서는 보기 힘든 자율 교육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지금의 박승복 회장이 샘표의 경영에 나선 것은 그의 나이 55세 때였다. 재무부와 국무총리실 등에서 오랫동안 공직자의 길을 걸었지만 “장자로서 가업을 이어라”는 부친의 뜻에 따라 샘표의 경영을 맡게 됐다. 처음엔 경영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라 주위의 반대도 심했지만 결국 성공한 승계란 평가를 받았다. 1980년대 중반 ‘간장 파동’이 터졌을 당시 박 회장이 일선에 나서 소비자들의 오해를 풀고 간장 파동에 종지부를 찍은 것. 젊은 시절에는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게 하고 세상을 읽는 안목이 생긴 뒤에 회사를

 

 

출처 : 여성중앙

출처 : 부자마을 사람들
글쓴이 : 스파이스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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